소설리스트

S급의 히든 퀘스트-1화 (1/112)

1화.

1장. 다시 회귀

1.1

재앙을 알리는 징조는 하나도 없었다. 서울 하늘은 맑고 화창했으며 사람들은 두려움 없이 사방을 걸어 다녔다. 점심시간을 맞아 밖으로 나온 직장인도 많았다. 이세아도 그런 직장인 중 하나였다.

“아, 배부르다. 우리 들어가는 길에 아이스크림 좀 살까요?”

동료 혜진이 그렇게 말해 모두 편의점으로 가는 길이었다. 앞장서서 걸어가던 혜진이 갑자기 세아의 팔을 쥐었다. 멈추라는 느낌이어서 세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요?”

“저게 뭐예요?”

혜진이 가까운 곳의 가로수를 가리켰다. 흔한 은행나무라 세아는 저게 뭐 어떻다고,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흙 속에서 수백 개의 붉은 선이 솟아올랐다. 선은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리며 가로수를 밑동부터 감싸고 하늘 높이 솟구쳤다.

“꿈인가?”

혜진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동료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아만은 느낄 수 있었다. 당장 여기서 멀어져야 한다, 지금 당장!

세아는 두 손을 뻗어 사람들을 뒤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달아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꿈같은 일과 마주쳤을 때 늘 그렇듯 멍청하게 굳어 버린 것이다.

“도망가야 돼요!”

“아니, 신고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저게 뭐예요?”

혜진이 더듬더듬 묻는 동안 붉은 선이 사방으로 뻗어 갔다. 커다란 붉은 밤송이 같았다. 선이 뭉친 중심은 징그러울 정도로 시뻘겠고, 선은 마치 핏줄처럼 생생하게 고동쳤다. 곧 중심이 입처럼 쩍 벌어지더니, 물컹하고 거대한 생명체가 스르르 흘러내리듯 기어 나왔다.

“저게 대체…….”

혜진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듯, 생명체가 재빠르게 굴러왔다. 혜진이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을 쳤지만, 그것은 단숨에 혜진을 덮쳤다. 물컹한 그것 안으로 혜진의 몸이 잡아먹히는 듯 빨려 들어갔다.

“으아아악!”

마침내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아는 그러지 않았다. 혜진이 거대한 생명체 안에서, 숨이 막히는 듯 입을 뻐끔거리며 눈을 치켜뜬 걸 보았으므로. 세아는 무얼 어째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생명체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잡아요! 혜진 씨, 내 손 잡으라고요!”

그러나 혜진은 공포에 질려 버둥거리느라 세아의 손을 붙들지 못했다. 세아는 입술을 꾹 깨물며 젤리 같은 생명체 안으로, 안으로 팔을 더 밀어 넣었다. 통증은 전혀 없었다. 그저 조금 시원했다.

마침내 혜진의 손을 잡은 순간, 꾸루룩 소리를 내며 생명체가 움직였다. 그리고 어찌할 틈도 없이 세아 쪽으로 한 바퀴 빙글 굴러 그대로 세아를 삼켰다. 숨이 막혔고, 혜진은 동아줄이라도 잡은 양 세아를 끌어안았다.

같이 죽자는 건가, 세아는 숨이 막혀 죽어 가는 중에도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는 절대!

펑! 엄청난 소리와 함께 그대로 생명체가 폭발했다. 물주머니가 터진 듯 진득하고 끈적한 물이 주르륵 흘러내렸고 세아와 혜진의 몸도 그대로 공기 중에 해방되었다. 기침을 쏟고 따가운 눈을 비비고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새하얀 세아의 눈앞을 가렸다.

[이세아. 24세. 각성 등급 S.]

“이게 대체 뭐야?”

세아가 멍하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누가 자기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낯선 얼굴의 남자가 세아를 향해 절박하게 소리쳤다.

“저쪽도 구해 주세요, 저쪽도!”

아득하게 고개를 드니 수십 개의 기이한 생명체가 사람을 잡아먹고 있었다. 그중에는 머리가 둘 달린 사자도 보여서, 세아는 갑자기 영화 속으로 내동댕이쳐진 듯한 비현실감에 휩싸였다. 그녀는 남자의 손을 떨쳐내며 머리를 내저었다.

“아니, 전 아무것도 안 했는데…….”

[스킬을 개방합니다. 내부 폭발, 스킬 등급 S. 발동어 없음.]

“아무것도 안 하긴요, 방금 저 안에서 저 괴물을 폭발시켰잖아요!”

“제가 언제요?”

[스킬을 개방합니다. 고속 이동, 스킬 등급 S. 발동어 없음.]

“이 글자는 도대체 뭐야?”

세아가 멍하게 중얼거리는 사이 남자는 허둥지둥 그녀를 데리고 괴물 근처로 데려갔다. 세아는 반쯤 떠밀리듯 괴물에게 손을 댔고 그 순간, 다시 귀를 찢는 펑 소리를 들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로……!”

남자의 감사 인사를 받으면서도 세아는 멍하게 서 있기만 했다. 그러나 그것도 아주 잠시의 여유일 뿐이었다. 그녀는 곧 사방에서 뻗어 오는 손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괴물을 터뜨려야 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는 혼자 알아서 움직였다.

“어서요, 어서!”

“저건 또 새로운 괴물이에요!”

“저희 아이 좀 구해 줘요!”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세아는 미친 듯이 사방을 뛰어다녔다. 감사 인사를 받을 틈도 없었고 몸이 열두 개라도 모자랐다.

그날 세상은 미쳐 버렸고, 평범한 막내 직장인 이세아는 S급 헌터로 각성했다.

1.2

몬스터가 도사린 던전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날을 사람들은 ‘재앙’이라고 불렀다.

가족이나 친구를 구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위해, 그 밖의 여러 이유로 몇 사람이 능력자로 각성했다. 세아도 그중 하나였다. 갑자기 나타난 시스템 창, 새로운 동식물과 몬스터,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이능. 세상은 혼란에 빠졌다.

물론, 이건 오래전 이야기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세아는 자기 앞의 의료진을 보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하고 대답하는 목소리에는 절망도 공포도 없었다.

호화로운 방에 혼자 남은 세아는 천천히 일어나 창문 가까이 걸어갔다. 호텔 아래,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진을 친 게 보였다. 일반인도 많았다. 그들은 ‘우리의 영웅, 헌터 이세아, 고맙고 사랑하고 미안합니다.’ 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다.

세아는 조용히 창가에서 물러났다.

S급으로 각성한 지도 벌써 15년. 최상위 등급 헌터로서 던전을 공략해 안정시키고, 사람들을 구하고,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그야말로 세상을 위해 애썼다.

그러나 희생뿐인 인생은 아니었다.

일반 회사원으로 살았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재산. 금보다 더 휘황찬란한 명예, 아낌없는 존경, 쏟아지는 사랑. 그녀의 말 한마디면 못 갈 곳이 없었고 얻지 못할 게 없었다. 세아는 현존하는 12명의 S급 헌터 중 가장 강했고 어딜 가나 그만한 대접을 받았다.

아쉬운 게 있다면 너무 일찍 죽어야 한다는 것.

“그래도 이만하면 오래 살았지.”

각성 후 15년이나 버틴 S급 헌터는 몇 없다. 강대한 능력을 가진 대신 수명도 짧은 것이다. 기이한 힘은 생명력을 갉아먹고 미래를 앗아간다. 그래도 이만하면, 이만하면……. 세아는 천천히 침대에 등을 대고 누웠다.

저 아래 사람들은 최강의 헌터, 이세아를 추모하기 위해 저렇게 모여 있다.

세아는 눈을 감았다.

‘나쁘지 않았어.’

수명이 끝나 간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좀 억울하기도 하지만, 이미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누렸다. 동료도 무수히 잃었다. 짧은 생이었으나 무척 치열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을 골고루 겪었으니…….

‘아, 그래도 히든 퀘스트 확인 못한 건 아쉽다.’

극소수 헌터만이 히든 퀘스트를 가지고 있다. 상태 창을 열면 확인할 수 있는데, 히든 퀘스트의 상세 내용을 알아내는 조건은 따로 있었다. 세아는 그 조건이 무엇인지조차 몰라 히든 퀘스트 내용을 알아내지 못했다.

마지막 남은 호기심이었다. 그래도 죽는 순간 한 자락 호기심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세아의 눈이 천천히 감겼고 그녀는 따뜻한 물속에 잠기는 듯한 느낌과 함께 긴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생명이 멈추는 순간, 각성의 순간처럼 글자가 나타났다.

[히든 퀘스트 획득. 상세 내용을 확인하십시오.]

이제 죽는데 뭘 확인해. 세아는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그녀는 미소 띤 얼굴로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바로 눈을 떴다.

2.1

플래시 터지는 소리는 주먹질 소리 같다. 누가 바위처럼 단단한 주먹으로 사람 얼굴을 짓뭉갤 때 나는 소리. 세아는 와락 얼굴을 찡그렸다.

빌어먹을 플래시. 원수 같은 플래시. 언젠가 저 끔찍한 플래시를 만드는 공장을 다 불살라 버리고 만다. 세아는 이를 벅벅 갈며 번쩍 눈을 떴다. 도대체 어떤 놈이 평화로운 임종 자리에까지 카메라를 들이대는 거야. S급 헌터한테는 죽음의 존엄성도 없어?

그러나 눈을 뜬 순간 보인 건 화려한 객실도, 고요한 야경도 아니었다.

“재앙이 벌어진 지 5년이 지났습니다! S급 헌터로서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거라고 보십니까?”

“재앙 이후 안정을 찾기 위해 활약하셨는데 이에 대해 소감 한 말씀 해 주시죠!”

“언니, 팬이에요! 여기 좀 봐 주세요!”

그녀는 눈을 깜빡이며 자기 앞의 마이크, 잘 정돈된 책상, 기자와 팬, 카메라를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고개를 돌려 보니 이미 명을 달리했던 S급 헌터들도 여럿 보였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건 세아였다. 모두 그녀의 입술만 쳐다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세아는 그들이 기다리던 대답을 해 줄 수 없었다. 흰 글자가 다시 눈앞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히든 퀘스트 : 시스템 살해

히든 퀘스트 획득 조건 : 죽음

클리어 조건 : ???

클리어 실패 페널티 : 회귀]

세아는 마침내 한마디를 뱉었다.

“씨발, 이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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