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의 히든 퀘스트-9화 (9/112)

9화.

“네가 왜 이걸 이해하기 어려운지 알아?”

모르겠다. 김현호는 단숨에 알아차리는 걸 자기는 왜 삶이 거듭되는 동안 몰랐는지. 목전에 닥친 자기 일이라 그랬나, 그게 아니라면?

“넌 돌아갈 데가 있잖아. 부모님 건강하게 살아 계시고, 각성하기 전까진 대기업에서 근무했고, 집이 가난하지도 않고. 각성 전에도 특별히 어려운 일 없이 그럭저럭 살았다며.”

“…….”

“난 돌아갈 데 없어. 그 사람도 마찬가지일 거고.”

정이준, 그 텅 빈 눈을 생각한다.

보스 룸 앞에서 그가 거듭 물었던 말.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갈지, 각성자도 모두 사라질지. 정말 그는 김현호 말대로 돌아갈 곳 없는 현실을 두려워했는가.

“근데 너 진짜 몬스터 멸종시키려는 건 아니지? 불가능하겠지만 가능해도 하지 마. 그냥 적당히 살자.”

세아가 눈을 깜빡였다. 김현호가 덧붙인 말은 거의 듣지도 못했다.

김현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정이준은 과거의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는 게 싫었을지도.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딱 하나 있었다.

‘친구로는 싫어요.’

몇 번째였는지 모를 생, 보스 몬스터에게 죽기 전에 들었던 정이준의 목소리.

그건 대체 무슨 뜻이었지?

12.2

이준이 밤에 어디서 근무하는지 알아냈다.

세아는 ‘크레이지 펍’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홀을 분주하게 오가는 이준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손님이 많지도 않은데 이준은 이상하리만치 바빴다.

그리 크지 않은 맥주 가게였다. 세아는 조용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바지런하게 움직이던 이준이 목소리를 높여 인사했다. 막 다른 테이블에 안주 하나를 내려놓은 참이었다. 세아는 한산한 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주문하실 때 말씀해 주세요.”

“흑맥주 한 잔만 주세요.”

“종류가 다양해서요, 여기, 메뉴판…….”

“아무거나.”

세아는 이준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그냥 추천하는 걸로 주시면 돼요.”

“어, 네……. 잠시만요.”

낮에는 호텔 청소부, 밤에는 바텐더 겸 요리사. 이준이 왜 바쁜지 알 것 같았다. 가게에 일하는 사람은 그 하나였다. 사장은 성실한 아르바이트생 하나 믿고 다른 곳에 있는 모양이었다.

세아는 한참 이준을 지켜보았다. 요리, 서빙, 정리로 바쁜 그를.

정이준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이해할 마음이 없었다. 솔직히 그랬다. 누구나 자기 일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는가. 세아도 이 지긋지긋한 회귀의 굴레를 끊는 게 가장 중요했다.

죽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물어보고 싶다.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게 무서워요? 돌아갈 곳이 없어서?’

그러나 그때의 이준은 여기 없다. 세아는 가게가 좀 한가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준에게 물었다.

“여기서 매일 일해요?”

“아, 네. 주말은 쉬고요.”

바에 앉아 말을 걸어오는 손님이 드물진 않은지, 이준의 대답은 꽤 자연스러웠다. 컴컴한 가게의 바 테이블 너머, 마른행주로 잔을 닦는 그의 모습이 무대에 혼자 선 배우처럼 또렷하게 보였다.

“일 끝나고 집에 가면 뭐 해요?”

“하하, 궁금하세요?”

자연스럽게 질문을 넘겨 버린 이준이 설거지를 시작했다. 물 쏟아지는 소리, 흐르는 노랫소리, 유리컵이 부딪치는 소리.

“언제 끝나요?”

세아가 묻자 이준은 슬쩍 세아의 잔과 얼굴을 번갈아 살폈다.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취했나, 그런 표정이었다. 이런 질문을 어지간히도 많이 받은 모양이었다.

“글쎄요, 아주 늦게 끝나는데요.”

“영업시간은 1시까지라고 적혀 있던데.”

“문 닫고도 정리할 게 좀 많아서요, 손님.”

“좋은 제안을 하고 싶어서 그래요, 이준 씨.”

컵을 정리하던 이준의 손이 뚝 멈추었다. 그는 노란 조명 아래 드러난 세아의 얼굴을 살피고, 살짝 눈을 굴려 그녀의 가슴팍에 꽂힌 배지까지 확인했다. S급 헌터의 배지임을 알아본 이준의 얼굴이 흐려졌다.

“거절하겠습니다.”

“스폰서 제안 같은 거 아니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말고요. 난 돈 주고 사람 사 먹는 짓은 안 해요.”

이준은 손을 들어 자기 뺨을 매만졌다. 그러나 굳은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세아는 품에서 명함을 꺼내 바 테이블 너머로 내밀었다. 개인 핸드폰 번호까지 적힌 명함이었다.

“난 이준 씨가 필요해요. 이준 씨의 능력이.”

이준은 예의상 한다는 태도로 미적미적 명함을 챙겼다. 그런 다음 엉뚱한 걸 물었다.

“제 이름은 어떻게 아셨죠?”

“우리 전에 만난 적 있거든요.”

“…….”

“꽤 여러 번.”

“가게에 오신 적 있나요?”

세아는 대답 대신 픽 웃었다. 말해 뭐 하겠는가. 세아는 현금을 테이블에 올려 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12.3

이준은 ‘이상한 손님’의 명함을 가게 쓰레기통에 버리려 했다.

술을 마신 헌터로부터 불쾌한 짓을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예쁘장한 얼굴을 보고 음담패설을 서슴지 않는 사람도 많았다. 높은 등급의 헌터면 다인가,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야 확실히 알았다. 그게 다라는 걸.

하지만…….

‘난 이준 씨가 필요해요. 이준 씨의 능력이.’

그렇게 이상한 사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준은 명함을 확인했다. 이세아. 얼굴을 알아보진 못했지만 유명한 헌터인 건 알고 있었다.

핸드폰으로 기사를 찾아보니, 또 다른 S급 헌터 김현호와 연인 관계로 추정된다는 기사가 보였다. 인터뷰장에서 그녀가 김현호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는 것이다. 기사 마지막 줄에 시선이 갔다.

[좁은 세미나실에서 두 사람이 어떤 밀담을 나누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소설 조로 휘갈긴 쓰레기 기사였다.

다음 날 저녁까지 고민했지만, 결국 이준은 세아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네, 안녕하세요. 정이준입니다.”

S급 헌터의 제안이라니, 스폰서 제안이 아니라면 뭘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궁금한 건, 그녀의 필요. 이세아 같은 사람이 자신을 왜 필요로 한단 말인가.

“네……. 오늘 괜찮습니다.”

또한 이유 없이, 그녀의 얼굴이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12.4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 레스토랑에서 이준은 세아와 만났다.

서울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마치 서울 지도를 펼쳐놓은 듯 도로가 붉은 선처럼 보였다. 적색등이 들어온 차들이 꼬리를 물고 한강 너머로 흘러가고 있었다.

재앙 발발 후 늦게까지 일하다 보니 야경을 볼 일이 잦았다. 서울의 야경은 빛이 글썽이는 듯 서글프다. 이준은 종종 궁금해했다, 재앙 전에도 이랬을까?

“어서 와요.”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세아가 먼저 인사해 이준도 고개를 숙였다.

“오는 데 불편한 점은 없었나요?”

“네. 차까지 보내 주셔서 편하게 왔습니다.”

“내가 초대한 건데 그 정도는 해야죠.”

주문도 하지 않았는데 음식이 차례대로 나왔다. 전형적인 양식 코스였는데 이준은 생전 처음 보는 요리가 대부분이었다.

식사가 이어지는 동안 세아는 이것저것 질문을 던져 왔다.

“일이 많은가요? 가게는 왜 혼자 봐요?”

“낮에는 어디서 일해요? 아, 거기. 우연이네, 나 며칠 전에 거기 있었거든요.”

“혼자 살아요? 쓸쓸하진 않고요?”

이준은 꼬박꼬박 성실하게 대답하며 식사를 이어 갔다. 어색해서 물도 제대로 못 넘길 줄 알았는데, 그녀와 몇 번이나 만난 듯 익숙했다. 전에 여러 번 만났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실은 이준 씨를 정식으로 고용하고 싶어서요. 너무 길게는 아니고 일주일 정도.”

“저를요?”

“네. 내 퀘스트에 이준 씨가 필요하거든요.”

세아의 설명은 아주 간단했다. 이준과 함께 가야만 하는 던전이 있다. 이준의 도움도 필요하다. 그걸 위해 그를 각성시킬 것이며, 이후에 이준은 헌터로서의 삶을 살아가면 된다.

“던전을 공략한 후, 헌터로 적응하기 어렵다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어요.”

“왜 하필 저죠?”

“그건 시스템 마음이죠. 나도 잘 몰라요.”

급여는 아쉽지 않을 정도로 쳐주겠다고, 세아는 덧붙였다. 헌터로서의 삶도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S급 헌터의 후원이 있으면 지내기 어렵진 않을 거라고.

“제가 거절하면 어떻게 되나요?”

세아가 눈을 들어 이준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강아지처럼 순한 인상이라고 생각했는데, 눈빛이 날카롭다.

그러나 이준은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늘 서글프다 여겼던 야경이 세아 뒤로 펼쳐져 있다. 길게 풀어 내린 검은 머리카락이 빛 때문에 윤곽만 하얗게 반짝거린다. 포크와 나이프를 쥔 두 손. 앙다문 입술.

“어떻게도 되지 않아요. 이준 씨에게 나쁜 거래는 아닐 텐데요. 각성도 할 수 있고, 퀘스트 클리어 후에 헌터로 살 수 있게 내가 도와줄 테니까요.”

이준이 눈을 깜빡였다.

아무래도 속임수 같다. 그는 늘 각성하기를 바라 왔고, 그의 바람을 알고 접근한 사기꾼도 여럿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갑자기 나타난 행운의 꼬리에는 꼭 불행이 매달려 있는 법이다.

“하지만 거절해도 괜찮아요. 그러고 나면 나와 다시 만날 일도 없을 거고요. 끈질기게 따라다니면서 성가시게 굴진 않을 겁니다.”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거라고?

세아가 사라지면 어떨까. 당연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삶은 평소와 똑같이 지루하고, 힘겹고, 희망 없이 이어질 것이다.

다시 세아를 본다.

당신은 너무 반짝거린다. 그렇게 생각한다.

“하겠습니다.”

12.5

세아는 모든 일을 아주 신중하게 처리했다.

생명이 걸린 일처럼 급하게 달려들지도 않았다. 퀘스트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서브 퀘스트 정도라고, 중요한 퀘스트는 아니지만 성격상 시스템 창에 뜬 건 다 클리어해야 해서 그런다고, 그렇게 둘러댔다.

같은 호텔에 객실을 잡아 줬지만 너무 친밀하게 굴지도, 중요한 존재처럼 대해 주지도 않았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했으니까.

달라진 건 또 있었다.

“저,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레스토랑에서 계약서를 쓸 때, 이준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전에는 세아 씨, 하고 쉽게도 부르더니 이번엔 좀 달랐다. 세아는 어깨를 으쓱하고 대답했다.

“그냥 이름 부르세요. 내가 이준 씨 이름으로 부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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