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의 히든 퀘스트-13화 (13/112)

13화.

12.14

세아는 정이준을 찾아 낼 자신이 있었다.

그녀는 S급 헌터로, 계급 없는 척 가장한 사회의 최상위 계급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포식자나 다름없었다. 인간 사회를 보호할 S급 헌터는 너무나 귀중해, 정부나 길드에 무슨 요구를 해도 대부분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죄송하지만 다른 헌터의 정보는 저희가 제공할 수 없는지라…….”

“개인정보라 GPS 위치는 조금…….”

“이메일 주소도 요즘은 민감한 정보가 된 걸 아실 테니…….”

각성자 센터, 세계의 유력한 길드, 정부가 모조리 이세아의 요청을 거절했다. 세아는 정부와의 통화를 끝내며 이유를 깨달았다.

정이준, 그 역시 현재 S급 헌터다. 이제 세계의 S급 헌터는 총 열세 명. 정이준은 이제 세아가 돈으로, 또 권력으로 좌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미리 받아 두었던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걸 때마다 자동 메시지만 흘러나왔다. 세아는 몇 개의 메시지를 남겼다.

“정이준, 너 진짜 죽고 싶어?”

“내가 너한테 뭐 실수했어? 아니면 내 돈이 부족할까 봐 그래?”

“너 메시지 확인은 하고 있는 거야?”

결국 세아는 샌프란시스코에 며칠 머무르며 시간을 흘려보내야 했다. 이준과는 연락이 되지 않았고, 그가 지금 미국에 있는지 한국에 있는지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지도 모른다. 답답해서 심장이 터질 듯했다.

이틀 후 아침, 세아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켰다가 아무 연락도 없는 걸 보고 실망을 금치 못했다. 기운이 쭉 빠져 인터넷을 확인하는데 뉴스 헤드라인이 눈을 사로잡았다.

[열세 번째 S급 헌터, 정이준… 한국, 헌터 부자]

“미친.”

세아가 벌떡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녀는 핸드폰으로 빨려 들어갈 듯 허리를 숙이고 기사를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한국이 또다시 S급 헌터를 배출했다. 전일 각성자 센터에서 비밀리에 등록을 마친 정이준은 공식적인 열세 번째 S급 헌터다.

올해 스물네 살인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생계유지에 힘써 왔으나, 얼마 전 샌프란시스코 던전에서 돌연 각성했다. 미각성 상태로 어떻게 던전에 들어갔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정황상…….]

세아는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침대 아래로 내려왔다. 제대로 풀지도 않은 캐리어를 대강 정리해 허둥지둥 밖으로 나가며 그녀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이세아입니다. 네, 지금 한국으로 갈 거예요. 준비해 주세요.”

정이준, 진짜 가만 안 둬.

12.15

이준과 함께 탔던 전용기에 홀로 오르며, 세아는 정이준을 만나면 뺨부터 한 대 갈겨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건 의미 없는 짓이었다. 어쨌든 히든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해선 이준이 필요하다. 그의 마음을 얻어도 모자랄 판에 뺨을 때릴 수는 없다.

‘대체 왜 날 거기 두고 갔지?’

세아는 답이 안 나오는 문제를 두고 오래 고민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녀는 다리를 앞으로 쭉 뻗고 편안하게 호흡하려 애써 보았다.

일단 한국에 가자. 한국에 가서 정이준을 만나자. 물론 그가 한국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머리가 지끈거린다. 인생 최대의 수수께끼를 만난 기분이다.

화목한 부모님, 윤택한 가정 경제, 명문대 입학, 스트레이트 졸업, 대기업 입사, S급 헌터 각성. 탄탄대로였던 인생 행로가 어쩌다 이렇게 어그러졌을까.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세아는 이준을 만나지 못했다.

세아가 찾아올 걸 염려해서인지 아니면 본래 성격 탓인지, 이준은 인터뷰나 대외 행사 요청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몇 장의 도촬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왔으나 장소가 매일 바뀌어 그의 행동 범위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며칠이 더 지나는 사이, 세아는 새로운 습관을 얻었다.

드르륵―

“여보세요!”

“야, 이세아. 잘 사냐?”

“…….”

핸드폰이 울리기만 하면 번호도 확인하지 못하고 전화를 받았다. 거짓 진동까지 느껴져 자다가도 번쩍번쩍 깨어났다. 혹시 이준일까, 마음이 바뀌었을까, 그런 생각에 입안까지 바짝바짝 말랐다.

“아니. 죽지 못해 산다.”

전화 너머로 들리는 김현호의 목소리에 맥이 쭉 빠진 세아가 힘없이 대답했다. 그녀는 객실 창에 이마를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의 야경이 잔에 고인 와인처럼 은은하게 흐르는 게 보였다.

“너, 내일 오는 거지?”

“내일?”

“나랑 아정이랑 같이 놀기로 했잖아. 아정이도 소개해 줄 겸.”

아정이?

세아가 희미하게 인상을 썼다. 그녀가 알아듣지 못해 침묵하자 현호가 답답한 듯 외쳤다.

“아, 그때 얘기했잖아! 너랑 네 파트너랑 우리랑 넷이 만나자고. 이미 아정이한테 다 얘기해 놨단 말이야. 마침 네 파트너 각성했더라?”

“그래, 그게 문제야. 그 잘난 파트너랑 지금 연락이 안 돼.”

“어?”

안 그래도 짜증나는데 왜 얘는 말귀도 못 알아들어. 세아는 한숨을 감출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대답했다.

“정이준이랑 연락 안 된다고. 지금 일주일 가까이 전화 한 통…….”

“엥, 무슨 소리야? 나랑은 전화했는데?”

“뭐?”

세아가 창에 기댔던 몸을 번쩍 일으켜 세웠다. 자기도 모르게 핸드폰을 귀 가까이 가져다 댔다. 현호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을 이어 갔다.

“정이준 씨랑 오늘 낮에 통화했다고. 내일 너랑 같이 온다던데?”

12.16

다음 날 열두 시, 세아가 도착한 곳은 약초 던전이었다.

던전에도 종류가 있다. 처음에 나타난 건 몬스터만 쏟아지는 던전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형태의 던전이 나타났다. 약초 던전도 그중 하나였다.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귀중한 약초가 자라는 던전으로, 약초를 뿌리째 채집해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생겨났다. 의학과 과학에 엄청난 번영을 가져다준 약초 던전은 이색 관광지로도 유명했다.

약속은 한 시인데, 눈이 벌겋게 되도록 이 순간만 기다린지라 너무 일찍 도착하고 말았다. 세아는 혹시 이준이 오지 않나 초조한 심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 언니? 세아 언니?”

갑자기 들리는 소리에 세아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교복을 입은 앳된 얼굴의 학생이 두 손을 맞잡고 세아를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짧게 환호했다. 그러더니 쭈뼛쭈뼛 망설이는 친구를 끌고 세아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

“저, 저희 언니 팬이에요. 팬클럽 1기부터 활동했어요! 사인 좀…… 아니,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될까요?”

발그레하게 붉어진 뺨. 어쩐지 이준과 비슷했다. 세아는 이런 요청을 잘 받아 주는 편이었지만 지금은 마음이 불편해 사진을 찍고 싶지 않았다. 옷도 아무렇게나 주워 입고 나온 까만 셔츠에 블랙진이라, 전반적으로 너무 어두컴컴했다.

그래도 두 학생의 빛나는 눈을 보고 고개를 저을 수는 없었다.

“사진은 좀 그렇고 사인 해 줄게.”

“와, 감사합니다! 저 언니 화보집도 샀어요!”

“화보집?”

“아, 도촬 화보집 말고요. 인터뷰랑 기사 사진 모은 거요! 저희는 도촬 화보집 안 사요.”

“그래, 고마워.”

두 학생은 약속이라도 한 듯 가방에서 두툼한 화보집을 꺼냈다. 펜도 함께 주기에 세아는 첫 장을 펼쳐 멋들어지게 사인을 갈겼다. 화려한 사인은 아니었지만 학생의 얼굴이 단번에 환해졌다.

“그것도 이리 줘.”

세아는 두 번째 학생의 화보집을 받았다. 첫 장을 펼쳐 막 볼펜 끝을 대는 순간, 멀지 않은 곳에 선 이준을 발견했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살며시 웃었다. 눈매가 휘며 인상이 맑아지는 어여쁜 미소였다.

우득, 세아의 손에서 그대로 펜이 부러졌다.

“어, 언니?”

“미안. 사인은 나중에. 대신 이거 가져.”

세아는 노란 클러치 백에서 펜을 꺼내, 화보집과 함께 학생에게 돌려주었다. 두 학생이 기쁨의 비명을 지르는 걸 뒤로 하고 그대로 이준에게 걸어갔다. 그가 다정하게 불렀다.

“누나.”

“정이준, 너…….”

“저 보고 싶어서 일찍 왔죠?”

세아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웃음보다는 탄식에 가까운 소리가 튀어나갔지만. 날카롭고 위험한 말을 내뱉기 위해 그를 보았는데, 평소와는 느낌이 좀 달랐다.

어디가 달라졌지?

이준은 어느 모로 봐도 잔뜩 신경을 쓴 게 티가 나는 옷차림이었다. 새하얀 셔츠를 받쳐 입고 검은 티까지 입었는데, 세아도 아는 브랜드였다. 끈이 옆으로 달린 캐주얼한 가죽 구두까지 신고 있으니 과연 부유하고 유능한 S급 헌터처럼 보였다.

물론 그가 S급이든 B급이든 세아는 상관없었다. 그녀는 보기 좋게 웃고 있는 얼굴을 갈기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물었다.

“너 죽고 싶어?”

“아니요. 누나랑 살고 싶어요.”

말장난에 세아는 정말 이준의 얼굴을 뭉갤 뻔했다. 그러나 이준의 말이 좀 더 빨랐다.

“누나가 저한테 원하는 게 뭔지 알아요. 근데 저도 원하는 게 있거든요.”

“그게 대체 뭔데?”

돈? 명예?

이준이 환하게 웃었다. 수면을 두드리는 첫 빗방울처럼 청량한 미소였다.

“오늘 재미있게 노는 거요.”

세아는 느리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숨을 내쉬며 이준을 보니 그는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그대로 침을 뱉어 주고 싶은 마음이 치밀었다.

“너, 장난해?”

“아니요.”

“넌 모든 걸 다 알고 있으면서 날 속이고 시험했어. 근데 지금 와서 하는 말이 재미있게 놀자고?”

“누나가 저한테 할 말은 아니지 않나요?”

“…….”

이러면 또 할 말이 없다. 속이고 시험한 것은 세아 자신이다. 그러나 세아는 억울했다.

‘아니, 내가 성격이 나빠서 그랬어? 이유가 있으니까 그랬지!’

몇 번이나 그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보스에게 머리가 씹혀 죽었던 순간들을 떠올리면 아직도 뒤통수가 얼얼하다. 그런데 여기 서서 그 배신자에게 비난받고 있자니 기분이 오묘했다.

“탓하는 게 아니에요. 너무 혼내지 말라는 거죠.”

그러더니 이준이 어리광 부리는 강아지처럼 그녀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세아는 뻣뻣하게 서서 그대로 굳어 버렸다. 얘 대체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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