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몬스터의 발은 기괴할 정도로 말랐고, 발가락은 손가락만큼이나 길었다. 뼈와 힘줄이 그대로 보이는 다리로 몬스터가 터벅터벅 걸어오더니 코를 킁킁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한 마리, 두 마리, 끝도 없이 기어 나왔다. 퍽! 검으로 바닥을 내리찍는 소리가 났다. 몬스터들은 사람 팔의 반 정도 되는 길이의 검을 들고 있었는데, 휘어진 모양이라 사정거리는 길지 않았다.
세아는 발소리를 내지 않으려 천천히 뒤로 걸어갔다. 곧 이준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녀는 침실로 가는 복도까지 서서히 물러나, 뛰어오려는 이준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검지를 세워 입술에 갖다 대니 이준이 뚝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때, 이준의 손에서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디리링, 디리링―
요란한 기계음과 동시에 세아가 욕을 내뱉었다. 그런 다음 즉시 몸을 돌려 이준 쪽으로 돌진했다. 손을 뒤로 뻗어 미친 듯 흥분하여 달려드는 몬스터 떼를 몰살하려는데 갑자기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치치칭, 쇠붙이가 서로 스치고 부딪치며 나는 소리. 세아가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이준이 그녀를 잡아 자기 뒤로 밀쳤다.
“누나, 검!”
중심을 잃고 바닥에 넘어져, 세아는 보았다.
몬스터가 들고 있던 검이 마치 뱀처럼 길게 늘어났다. 휘어지는 모양을 따라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더니, 그대로 이준의 목을 감싸 똬리를 틀었다.
검이 똬리를 틀다니?
서걱, 목은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머리통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고 핸드폰도 함께 나뒹굴었다. 맑은 피가 복도 가득 흩뿌려졌다.
세아는 주저앉은 채 멍하게 앞을 바라보았다.
정이준이 죽었다.
12.26
침실로 달려와 문을 걸어 잠갔다. 닫힌 문에 등을 대고 서니 두드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이준은 이 집을 ‘예쁘다’고 평했지만, 예쁘기만 한 집은 아니다. S급 헌터의 집인 만큼 몬스터의 습격에 대비해 지어졌다. 전문가가 문고리 하나까지 세심하게 설계한 공간이었다.
쾅! 쾅! 쾅!
세아는 문에서 떨어져 섰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처음 던전에 들어간 이후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방금 진짜로 죽을 뻔했다.
만약 뱀처럼 늘어난 날 사이에 갇힌 게 이준이 아니라 자신이었다면, 지금쯤 자기 목도 바닥을 구르고 있을 것이다. 아니, 그럴 틈도 없이 과거로 돌아갔을까.
손이 덜덜 떨렸다. 사실 공격 방식을 파악했으니, 이제라도 몬스터 무리를 전부 사냥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바닥으로 떨어지던 이준의 목, 구멍 뚫린 봉지에서 새는 물처럼 흐르던 피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세아는 손을 들어 뺨을 문질렀다. 간지러워 그런 것인데 피가 묻어났다. 이준의 피가 여기까지 튀었다. 붉은 피가 묻은 손바닥을 보니 비로소 실감이 났다.
“미친 놈.”
달려들길 왜 달려들어. 어차피 난 죽으면 과거로 돌아가는데. 지금까진 내내 날 죽여 놓고 이제 와서 몸을 날리면 나보고 어쩌라고? 생각이 머리를 마구 찌르고 들어왔다.
진정하고 싶어서 손을 여러 번 쥐었다 폈다. 자신은 여전히 얇은 실내복 차림이다. 일단 옷부터 제대로 입어야 한다.
정이준이 죽었으니 어차피 과거로 돌아가서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겠지만, 지금 당장 죽을 순 없다. 왜 갑자기 거실 한복판에 던전이 열렸는지도 알아야 하고…….
디리링, 디리링, 디리링―
손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문밖이 잠시 조용해졌다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문을 부술 듯 쾅쾅 두드리는 걸 보니, 장치가 된 문이라도 한 시간 내내 굳건히 버티진 못할 듯싶었다.
세아는 홧김에 핸드폰을 집어 던지려다 겨우 참았다.
‘난 그 상황에 핸드폰을 챙긴 거야?’
기가 막혔다. 일단 세아는 액정을 확인했다. 피가 묻어 엉망이었지만, 익숙한 이름 세 글자는 문제없이 눈에 들어왔다.
[김현호. 010-2XXX-XXXX]
세아는 피 때문에 미끈거리는 액정을 만져 전화를 받았다. 던전의 종류와 규모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으니, 일단 지원을 요청해야 했다.
“김현호!”
“이세아, 너 어디야?”
“나 지금 집인데 거실에서 던전 열렸어. 위치 보낼 테니까 헌터들 오게 해. 던전 경보 안 울렸어?”
“안 울렸어. 그보다도 너 그거 정말이야?”
“뭐가?”
세아는 드레스 룸을 뒤져 적당한 옷을 찾아냈다. 움직이기 편한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는 동안 핸드폰은 어깨와 귀 사이에 끼웠다. 옷을 다 입었는데도 핸드폰 너머가 조용했다. 세아는 전화가 끊어지지 않은 걸 확인하고 버럭 소리쳤다.
“뭔데, 김현호! 경보부터 울려, 던전 경보 안 울릴 정도면 이거 또 새로운 유형이니까!”
“몬스터……. 아니다, 일단 기다려. 내가 경보 울리고…….”
전화가 뚝 끊어졌다. 그와 동시에 전파 신호가 나갔다는 메시지가 떴다. 세아는 욕을 읊조리며 핸드폰을 대강 팽개쳤다. 이제부터 한 시간 정도, 핸드폰은 무용지물이다.
던전이 열리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주위의 전파가 차단된다. 새 던전이 나타나면 경보를 울리는 기술도 생겨났지만, 새로운 유형의 던전은 감지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시발.”
그래도 전파가 끊어지기 전에 김현호와 통화해 다행이다. 세아는 다시 방어 스킬을 사용하고 숨을 골랐다. 문은 아직 부서지지 않았지만, 김현호와 다른 헌터들이 올 때까지 버텨 줄까?
‘정이준 시체는 어떡하지…….’
이 와중에 시체 생각이나 하다니, 어이가 없었지만 세아는 그 생각을 떨치기가 어려웠다. 어차피 과거로 돌아가면 그도 살아날 텐데, 괜한 걱정이다. 세아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정신 차려야 돼.’
얼마나 기다렸을까, 밖에서 무언가를 베어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긴장으로 바짝 굳었던 몸이 탁 풀리며 숨이 제대로 쉬어졌다. 헌터가 온 것이다.
바깥의 상황을 모르니 섣불리 문을 열고 나갈 수가 없었다. 잘못하면 헌터의 공격에 함께 휘말릴 것이다.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 접시며 전등이 깨지는 소리, 몬스터의 비명을 들으며 세아는 가만히 기다렸다.
그때, 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이세아!”
김현호다. 세아는 재빠르게 문을 열었다. 현호는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등 뒤로 문을 쾅 닫았다. 현호의 손에는 그의 주 무기인 장검이 들려 있었다. 현호는 땀에 젖은 채 안으로 들어와 문에 기대 섰다.
“저게 다 뭐야? 속성이 제대로 안 먹혀서 하나하나 다 베어 넘겨야 해. 성가셔 죽겠네.”
“지원은 언제 온대? 던전부터 빨리 안정시켜야 해.”
“곧 와.”
“여기 위치는 알아?”
“알지, 그럼!”
그 순간 문이 엄청난 소리를 내며 쩍 부서졌다. 나타난 건 복도에 몰려선 수십 마리의 몬스터와 번뜩이는 검날이었다. 세아는 마른침을 삼키며 허공에서 자기 검을 만들어 냈다. 그런 다음 현호에게 충고했다.
“저 검 조심해. 미친 것처럼 늘어나.”
“바깥에 시체도 그 검 작품이야?”
“…….”
세아는 대답하는 대신 가장 먼저 달려든 놈의 목을 뎅겅 베어 버렸다.
몸이 말라 베기 쉬울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도 않았다. 힘줄이 비정상적으로 질겨, 안 썰리는 스테이크를 썰 때처럼 성가시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야, 이세아, 목 똑바로 잘라!”
현호가 버럭 소리쳐서 돌아보니, 몬스터 하나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반쯤 잘리다 만 목이 괴기스럽게 덜렁거렸다.
“언데드야?”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신성 속성은 안 통해!”
“진짜 개 같네.”
나직하게 읊조린 세아는 이제 몬스터의 머리와 몸을 완전히 분리하기 위해 힘써야 했다. 목을 완전히 떨어뜨리지 않으면 몇 번이고 살아 일어나는 통에, 세아는 정말 고기를 썰 때처럼 칼날을 벅벅 문질렀다.
“이럴 바엔 톱이 낫겠어!”
뱀처럼 늘어난 검날에 몇 번이고 목이 베일 뻔했다. 목 대신 머리카락이 잘려 나갔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세아는 물리 피해를 최소화하는 스킬을 계속 유지하며 미친 듯 뛰어다녔다.
이준이 평화롭게 세아의 속눈썹과 입술을 바라보던 침실은 금세 피로 물들었다. 몬스터의 피도 뜨끈하고 붉었다. 슬리퍼 없이 맨발인 세아는 몇 번이나 미끄러질 뻔했지만, 이준 같은 풋내기 헌터는 아니었으므로 그때마다 균형을 잡았다.
캉, 캉! 세아는 자기 검으로 쉴 틈 없이 몬스터의 검을 튕겨 냈다. 마법도 통하질 않는다. 무조건 근거리에서 머리를 잘라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 현호도 말이 없었다. 그 역시 몬스터를 상대하느라 바쁜 것이다.
열 마리, 스무 마리……. 제아무리 S급 헌터라 해도 기진맥진할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몬스터는 좁은 침실 문으로 꾸역꾸역 계속 밀려왔다.
세아가 목소리를 높여 침실 저쪽에 있는 현호에게 물었다.
“야, 지원 얼마나 걸린댔어?”
“금방 오겠지!”
“벌써 한참 지났다고!”
현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바로 그때, 몬스터의 검이 휙 길어지더니 그대로 세아의 뺨을 스쳤다. 빗나간 검은 바닥에 있던 세아의 핸드폰을 정확히 내리찍었다. 노린 것 같지는 않았다. 세아는 숨을 고르며 흐르는 피를 닦았다.
‘칼로 베는 것만 하는 게 아니라 두들겨 깨는 것도 하네.’
조심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세아는 차가운 얼음물이 머리 위에서부터 확 쏟아진 듯한 느낌에 진저리를 쳤다. 그 바람에 검에 그대로 베일 뻔했다. 목숨을 건진 세아는 방어 자세를 취하는 대신 입을 열어 소리쳤다.
“김현호! 내가 너한테 위치 정보 전송했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현호와 눈이 마주쳤지만 그건 정말 잠시였다. 세아는 달려드는 몬스터의 목을 썰며 다시 외쳤다.
“그 전에 전파 나가서 위치 정보 못 보내 줬는데, 너 신고는 어떻게 했어! 이 집 주소까지 알아?”
대답이 없다.
세아는 어금니가 부서지도록 이를 악물었다. 그런 다음 쏟아지는 공격을 무시하고 현호에게 달려갔다. 손목을 잡아채 열린 드레스 룸 안으로 그를 떠밀고 등 뒤로 문을 닫았다. 끔찍한 소음이 다시 한 겹 멀어졌다.
침실을 벗어나 더 좁은 공간으로 오고 말았다. 더 불리해진 것이다. 그러나 세아는 후회하지 않았다, 당혹하여 잘못된 판단을 내린 것도 아니다.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으니까.
“김현호.”
현호는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침묵했다. 그의 얼굴은 피와 땀으로 엉망이었다. 자기 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세아는 기이한 불안과 막막함을 느끼며 현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신고 안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