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의 히든 퀘스트-23화 (23/112)

23화.

“S급 헌터가 만만해? 이거 이대로 둬도 되는 거야?”

“이대로 안 두면 어쩌려고? 협회 상대로 고소라도 하려고? 헌터는 전부 협회 통제를 받는 게 맞긴 하잖아.”

“S급 중에 누가 그걸 신경 쓰는데?”

“어쨌든 고소하거나 공개적으로 항의할 순 없다는 얘기야. 요즘 여론 뒤숭숭한 거 알잖아.”

세아의 분석은 정확했다.

분위기가 좋지 않다. 최초의 버그, 시스템의 불안정성, 뉴스를 본 사람들이 정부와 협회에 힘을 실어주기 시작했다. 사회 안정을 위협하는 ‘최초의 버그’를 없앨 수만 있다면 극단적인 수사도 용납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그래도 우리한테 이래도 돼? 던전 새로 열릴 때마다 제일 먼저 달려가는 게 누군데?”

현호는 억울한 듯 호소했다. 세아는 인터넷 창을 닫으며 픽 웃었다. 힘을 잃기 싫어서 살인도 자행하는 주제에 시민의 수호자인 척하는 김현호가 우스웠다.

사실 사람은 원래 그런 것이다. 결국에는 자기 이익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세아는 현호를 증오하지 않았다. 그녀는 탁, 노트북을 닫으며 충고했다.

“어쨌든 당분간은 몸 좀 사려. 최초의 버근지 뭔지 잡을 때까지는 분위기 계속 이럴 거야. 특별법 제정할 수도 있다더라.”

“누가?”

“이준이가.”

“…….”

세아는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노트북과 옷을 대충 정리했다. 침대에 널어 두었던 옷을 의자에 척척 걸치는 동안에도 김현호는 조용했다. 세아가 끊긴 줄 알고 화면을 확인할 정도였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현호가 천천히 되물었다.

“정이준이 너한테 그랬다고?”

“응.”

“되게 친한가 봐?”

“뭐? 그건 아닌데.”

지난 며칠, 가끔 이준과 통화하긴 했지만 특별히 친밀한 관계가 된 건 아니었다. 이준은 그저 협회와 관련된 정보 몇 개를 일러주며 당분간 조심하라는 말을 해 주었을 뿐이다.

밤마다 전화를 굴어 다정하게 굴기에 밥이라도 한번 먹자고 하려나 했는데, 협회와 S급 헌터들 검사하러 다니느라 바빴던 모양이다.

“근데 특별법이 어쩌고 하는 얘기까지 해 줬어?”

“응. 아, 넌 못 들었어?”

“못 들었냐고? 야, 걔 무슨 영화에나 나오는 이단 심문관처럼 굴었다고! 새파랗게 어린 게 재수 없게.”

“그래?”

세아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이준 성격이 한결같지 않은 건 안다. 그래도 ‘이단 심문관’처럼 구는 이준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김현호의 엄살이 언제 이렇게 심해졌지, 세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른 건 제쳐두고 슬슬 현호의 애인 서아정에 대해 물을 시점이었다. 세아는 대강이나마 정리한 침대에 털썩 주저앉아 창밖을 내다보며 타이밍을 계산했다. 현호가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는 걸 안 이상, 신중해야 한다.

“그건 그렇고 너 요새 연애 잘 돼 가?”

“연애? 무슨 연애?”

현호는 정말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 세아는 객실 창밖의 익숙한 야경을 바라보며 지나가는 소리처럼 물었다.

“너 연애하는 거 아니었어? 아, 그분 성함이 뭐였지? 서…… 서 뭐였는데.”

일부러 모르는 척 중얼거리니 핸드폰 건너편이 조용해졌다. 세아는 보채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 먼저 재촉하면 의심을 살지도 모른다.

잠시 후 현호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

“아정이 말하는 거야?”

“아, 그래. 아정 씨.”

“이세아, 너 왜 그래? 약했어?”

“뭐?”

연애 잘되어 가느냐고 물은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인가. 약이라곤 구경도 해 본 적 없는 세아가 억울한 투로 대꾸했다. 그러나 현호는 세아의 억울함에 관심이 없었다.

“아정이 죽었잖아.”

뚝, 세아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녀는 순간 자기 귀를 의심했다. 현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음울했다.

“5년 전에…… 재앙 발발 때 휩쓸려서.”

“아.”

한동안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이세아?”

“아, 응?”

“너 진짜 약했어?”

“미안, 내가 잠깐 헷갈렸어.”

“약 끊어.”

약 같은 거 안 했다니까!

전화를 끊은 후 세아는 미친 듯이 기사를 검색해 보았다. S급 헌터 김현호의 연인, 서아정에 대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모두 5년 전 기사였다.

[S급 헌터 김현호는 이번 인터뷰에서 죽은 연인 이야기를 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학생 때부터 교제한 연인의 이름은 ‘서아정’으로, 재앙 발발 당시 사망했습니다. 헌터 김현호는 이 아픔을 새기고 앞으로 더욱 사회의 안정을 위해 힘쓸 것을…….]

세아는 핸드폰을 침대에 내려놓았다. 상황을 정리해야 한다.

첫째, 이번에 세아는 인터뷰 하루 전날로 돌아왔다. 둘째, 정이준은 5년 전에 이미 S급 헌터로 각성했다고 한다. 셋째, 의심스럽던 서아정은 5년 전에 이미 죽었다.

세아가 멍하게 중얼거렸다.

“이게 말이 돼?”

모든 게 너무 많이 달라졌다.

바로 그때 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세아는 액정에 표시된 글자를 보고 잠시 심호흡을 했다.

“여보세요.”

“누나. 지금 통화할 수 있어요?”

“어.”

솔직히 말하면 끊고 싶었지만, 하지만 한편으로는 계속 통화하고 싶기도 했다.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저 오늘 밤에 한국 들어가서요.”

“그래, 카일리 만났다며.”

“아……. 네.”

“김현호도 만나고. 협회 지시야?”

이준은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네, 하고 얌전히 대답했다. 세아는 그가 볼 수 없는 걸 알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창가에 서서 유리창에 이마를 기댔다. 폭발할 듯 뜨거운 머리가 조금이나마 식는 느낌이 좋았다.

“살살 좀 해.”

왜 이런 충고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세아는 그렇게 말했다.

“S급 헌터랑 전부 척질 필요는 없잖아.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말고 요령껏 해, 좀.”

“예의 바르게 했어요.”

세아가 다른 사람 편을 드는 게 서운한 듯 이준의 대답이 불퉁했다. 어린애. 세아는 속이 빤히 보이는 음성에 약간 웃었다.

“S급들 다 좀 이상하지만 가까워져서 나쁠 건 없을 거야. 너도 언젠간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있을 거 아니야.”

“그때 누나한테 도와 달라고 해도 돼요?”

세아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한강 너머로 흐르는 불빛을 응시했다. 그녀의 검은 눈에 아롱아롱 불빛이 맺혔다.

“넌? 넌 어쩔 건데. 내가 도와 달라고 하면 도와 줄 거야?”

“네.”

대답에 망설임이 없다. 세아는 그 말을 그리 믿진 않았지만,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도와줄게.”

“네, 누나. 아, 저 내일 부모님만 잠깐 뵙고 나면 바쁜 일 없는데……. 같이 밥 먹으면 안 돼요?”

“저녁? 내일…….”

세아는 책상 쪽으로 걸어가 탁상 달력을 들어 올렸다. 아무래도 이준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을 듯하니 약속을 잡을 작정이었다. 그러다 그녀의 행동이 뚝 멎었다.

“잠깐만, 부모님?”

“네.”

“혹시 양부모님?”

“네? 양부모님이요?”

세아는 핏기가 싹 가신 얼굴로 달력만 들고 서 있었다.

정이준의 부모가 살아 있다. 김현호의 여자 친구는 죽었다.

“잠깐 끊어 봐.”

절로 목소리가 떨렸다. 정이준에게 여러 번 배신당했을 때도, 김현호에게 찔려 죽었을 때도 이러지는 않았다. 또 뭐가 바뀐 거야. 또 뭐가 잘못된 거야. 뭐가 달라진 거야, 뭐가…….

세아는 제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식은땀이 흘러 등 뒤가 서늘했다. 그녀는 핸드폰을 꽉 쥔 채, 다른 손을 심장 위에 대고 꾹 눌렀다. 배 속이 꽉 조이며 가슴이 미친 듯 뛰기 시작했다.

‘우리 부모님은?’

손을 떨며 엄마 번호를 눌렀다. 통화 버튼을 누르기가 무섭게 핸드폰을 귀로 가져갔다. 건조한 기계음이 귓속으로 흘러들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번호를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거신 번호는…….”

13.6

이준은 잠잠한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한참을 기다렸다. 점심을 먹고 식탁에 그대로 앉아 있으니, 어머니가 맞은편에 자리를 잡으며 물었다.

“왜 그래? 문자 왔어?”

“아뇨, 그냥.”

잠깐 끊어 보라고 한 후 세아는 다시 연락을 주지 않았다. 핸드폰을 머리맡에 두고 자고, 깨어나자마자 연락 온 게 있나 확인했지만 협회 쪽 문자만 가득했다.

[이세아 헌터 제대로 확인한 거 맞습니까? 협회원이 동행해서 다시 확인하지 않아도 될까요?]

이준은 굳이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오후 내내 초조하게 안을 서성이던 이준은 결국 기다리지 못하고 핸드폰에 세아의 번호를 꾹꾹 입력했다. 번호를 교환할 때 딱 한 번 들었는데 바로 외워 버렸다. 마치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지금 전화를 걸어 볼까? 성가시게 여기진 않을까?

이준은 자기 방 침대에 걸터앉아서 세아를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면 세아를 기다리는 자기 자신을 생각했다.

이상한 일이다. 세아 역시 그저 S급 헌터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준은 자기가 그녀를 안다고, 오래 알아 왔다고 느꼈다. 번호를 받은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닐 것이다. 밤에 전화 통화를 한 것도. 자신을 빤히 바라보던 한 쌍의 검은 눈…….

용기를 내 통화 버튼을 눌렀지만 세아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이준은 핸드폰을 든 채 그대로 멈춰 기다렸다. 그러다 문득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헌터 협회는 여전히 세아를 의심하고 있다. 설마?

그는 허둥지둥 겉옷을 챙겨 입고 집 밖으로 나갔다. 기사를 부르면 이동하기 편했겠지만 그는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13.7

세아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하게 침대에 누워 있었다.

밤새도록 고민했다. 그냥 창밖으로 뛰어내릴까. 다시 돌아가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와 있진 않을까.

부모님이 멀쩡히 살아 있는 세상. 두 분 다, 바뀐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미각성자로 살아가다가 가끔 딸과 통화하는 세상. 세아가 조금은 권태롭게 누렸던 세상.

그러나 도저히 뛰어내릴 수가 없었다. 몇 번을 죽어도 다시 이 세상으로 추락할까 두려웠다. 눈물도 나지 않았고 그냥 몸이 점점 차가워지는 것만 느낄 수 있었다.

딩동―

객실 벨이 울리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도. 세아의 정신을 일깨운 건 문이 부서지는 굉음이었다. 쾅! 세아는 깜짝 놀라 확 상체를 일으켰다. 즉시 침대 아래로 내려가 전투할 준비를 했는데, 안으로 뛰어 들어온 건 다름 아닌 정이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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