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의 히든 퀘스트-26화 (26/112)

26화.

두 사람은 일어나서 악수했다. 세아는 곧장 돌아서서 협회장실을 빠져나왔다. 그때, 문이 바로 다시 열리고 곽남주 연구원이 허둥지둥 달려왔다. 세아는 그를 돌아본 후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같이 타요.”

곽남주는 마치 쫓기는 사람처럼 뒤를 돌아보더니 급히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환한 엘리베이터 안에 나란히 서서 둘은 오래 침묵했다. 말을 걸어야 하나, 협회장의 끄나풀인데 괜찮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곽남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곽남주가 불쑥 핸드폰을 내밀었다.

“저…… 번, 번호 좀 알려 주십시오.”

“번호요? 아, 공항에서 만나야죠. 그래요.”

세아는 번호를 눌러 주었다. 저장하지 않고 그대로 돌려 주니, 곽남주가 핸드폰을 받았다. 잠시 화면을 만지던 그가 핸드폰을 내밀어 보여 주며 물었다.

“이 번호 확실하죠?”

세아는 액정을 내려다보았다. 번호를 확인할 거면 그냥 전화를 걸어보면 되지, 뭐 하러 이렇게 확인시키는지. 무심하게 번호를 확인하는데, 이름 칸에 ‘이세아’ 대신 다른 게 적혀 있었다.

[도청중협회장조심]

세아는 부러 고개를 들지 않았다. 대신 액정을 내려다보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번호 맞아요.”

“고맙습니다.”

“전화 한번 해 주세요. 저도 번호 저장하게.”

“네.”

곽남주가 핸드폰을 가져갔다. 띵, 기계음과 함께 엘리베이터가 1층에 멈추었다.

13.10

세아는 호텔 객실로 돌아오자마자 안을 샅샅이 뒤졌다.

침대 헤드, 서랍장, 스탠드, 와인 냉장고, 심지어 식칼 손잡이까지 살폈다. 세 개의 카메라를 찾아냈는데, 영상을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타입이었다. 세아는 손톱보다 작은 렌즈를 향해 중지를 보여 준 다음 카메라를 부쉈다.

기억을 천천히 되짚어 보았다. 객실에서 나간 일이 많이 없다. 부모님 일 때문에 놀라 온종일 객실에만 있기도 했다. 그렇다면 카메라는 오늘, 협회장을 만나러 간 사이에 설치되었을 확률이 높다.

“진짜 미쳐 돌아가네.”

세아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중얼거렸다.

협회가 S급이 머무는 객실에 카메라를 설치하다니. 심지어 엘리베이터 대화를 도청하려고 시도하다니. 곽남주 연구원이 알려 주지 않았으면 까맣게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왜 자신에게 도청 사실을 귀띔해 주었을까?

이유가 무엇이든 상황 자체는 기가 막혔다. 최두정의 얼굴을 떠올리며 세아가 중얼거렸다.

“주제에 진짜…….”

불평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세아는 일단 간단히 짐을 쌌다. 사람을 부르면 편하긴 하겠지만, 원래 짐 싸는 일을 남의 손에 맡기는 성격이 아닌 데다 지금은 믿을 사람이 없다.

큰 캐리어에 대충 옷을 쓸어 담은 후, 세아는 그대로 체크아웃을 했다. 차에 오른 후에야 이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이준, 나 집으로 갈 거야. 호텔로 오지 말고 내 집으로 와.”

“누나 집이요?”

목소리가 갑자기 밝아진 것 같다. 세아는 지난 생에서 이준과 뭘 했는지 떠올리지 않으려 애썼다. 그건 지나간 일이고 이준도 그때와 같은 사람이 아니다.

“그래. 주소 보내 줄게. 자세한 얘기는 거기서 해.”

적어도 집은 안전하다. 등록되지 않은 카메라나 도청기를 가지고 들어오면 경보가 울리는 데다 관리인이 주기적으로 안을 점검한다. 협회도 아직 거기까지 손을 뻗진 못했을 것이다. 오늘 밤만 자고, 내일 바로 캘리포니아로 출발해야 한다.

시스템 보스 던전만 공략하면 이 모든 일이 끝난다. 세아는 지치지 않기 위해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13.11

집은 늘 그렇듯 깔끔했다.

세아는 캐리어를 적당한 곳에 세우고 침대에 늘어졌다. 최두정, 곽남주, 정이준, 카일리, 김현호……. 온갖 이름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했다.

‘무사히 갈 수 있을까.’

곽남주 연구원도 완전히 신뢰할 순 없다. 협회장도 믿는 구석이 있으니 그를 함께 보내겠다고 한 것이다. 게다가 곽남주 연구원은 ‘최초의 버그’ 가설을 세운 사람이라지 않았나.

딩동―

벨 소리에 세아가 벌떡 일어섰다. 현관으로 가서 문을 여니, 예상대로 정이준이 서 있었다. 그런데 빈손이 아니었다. 그가 양손에 든 장바구니에서 대파가 비죽 튀어나온 게 보였다.

“이게 다 뭐야?”

세아는 들어오라는 말도 잊고 물었다.

“집에 초대해 줬잖아요. 요리해 주려고요.”

이미 설레는 듯 이준이 웃었다. 세아는 그가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비켜섰다. 장바구니를 든 채 안으로 들어선 이준이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누나 호텔 조식보단 한식 좋아하잖아요. 맞죠?”

13.12

‘지금 죽여야 하나?’

세아는 전용기에서 곤히 잠든 이준을 내려다보며 고민했다.

기회가 있다면 바로 지금이다. 그는 아무 걱정 없는 아이처럼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다. 스킬을 사용한다면 쥐도새도 모르게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처리하면 그 다음엔?

세아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정신을 차리려고 고개를 흔들었지만 아무 대책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 몸을 묻었다.

세상에 이렇게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있었다니. 대학 입시도, 회사 합격도 이렇게 어렵진 않았다. S급으로 각성한 후 힘든 일이 많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몬스터에게 죽을 뻔했을 때도 이렇게 막막하진 않았다!

‘누나 한식 좋아하잖아요. 맞죠?’

이준은 정말 과거를 기억하는 걸까.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준이 자백제를 마셨을 때도 그런 낌새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대놓고 자신을 기억하느냐고 물을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이제까지 이준은 지난 생을 기억한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대체 왜 갑자기?

그때, 이준의 자리 쪽에서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막 눈을 떠서 기지개라도 켜는 모양이었다. 세아는 책을 펼쳐 들여다보는 척했다. 심심풀이로 가져온 건데, 내용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누나. 좀 잤어요?”

이준이 다가와 다정스레 말을 걸었다. 세아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를 올려다보며 조금 웃었다.

“난 책 좀 읽고 있었어. 넌 자는 것 같던데.”

일부러 말을 잠시 끊은 후, 세아는 말갛게 웃었다. 이준이 허물어지듯 움찔하는 게 훤히 보였다. 세아는 부러 손을 뻗어 그의 뺨에 살짝 갖다 대며 달콤하게 물었다.

“잘 잤어, 이준아?”

이준의 얼굴이 삽시간에 붉어졌다. 네, 하고 고개를 돌린 그의 귓불이 타는 것처럼 붉었다. 세아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손을 떼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면서 태연한 어조로 말했다.

“이제 두어 시간만 더 가면 도착이야. 캘리포니아로 가서 뭘 할지 얘기 안 해 줬지?”

“네? 아, 네…….”

이준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쩔쩔맸다.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는 그를 바라보던 세아가 또 그의 어깨에 손을 댔다. 이준은 긴장해서 돌처럼 굳어 버렸다.

“나 피곤하다. 옆에 좀 앉을래? 기대서 눈 좀 붙이게.”

원하기만 하면 의자를 뒤로 젖히거나, 전용기 안에 따로 마련된 소파나 침대로 가면 된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세아는 이준을 부추겼다. 이준은 당황한 듯 눈을 깜빡이더니, 세아가 말을 바꿀까 두려운 듯 재빨리 곁에 앉았다.

“많이 피곤해요?”

“그건 아닌데…… 신경을 좀 썼나 봐. 손님도 있고.”

멀지 않은 곳에 앉은 곽남주 쪽을 곁눈질하고, 세아는 스르르 이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이렇게 있으니 이준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게 느껴졌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런 비겁한 방법을 써야 했던 적은 없는데.

그래도 상황이 상황인 만큼 고상한 척 버틸 수만은 없다. 세아는 한숨을 참으며 뒤척이는 척 고개를 조금 움직였다. 이준이 얼른 자신의 고개를 고정해 주고 머리카락을 쓸어 주는 게 느껴졌다.

13.13

눈을 뜨니 옆에 이준이 없었다. 이준만 없는 게 아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곽남주도 보이지 않았다. 도착할 때가 다 되었는데 두 사람 다 보이지 않자, 세아는 몸을 일으켜 전용기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화장실로 가는 통로에서 이준의 목소리를 들은 건 그때였다.

“수작부리지 마. 네가 김송숙 선생님 배신한 거 모를 줄 알아? 협회 사람들 다 알고 있어. 몰라서 널 가만 둔다고 생각하지 마.”

세아는 벽에 등을 기대고 느긋하게 섰다. 그래, 둘이 아는 사이였다 이거지. 안 그래도 정보가 필요했으므로 그녀는 서두르는 대신 귀를 기울였다.

“누나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이젠 누나까지 죽이려고?”

이준이 낮게 위협했다. 멱살이라도 잡혔는지, 곽남주는 헐떡이고 있었다. 가쁜 숨소리를 들으며 세아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가능성은 두 가지. 첫째, 이준이 그저 따라온 곽남주만 보고 의심하여 다그치는 중이다. 둘째, 자기가 자는 동안 곽남주가 뭔가 수상한 짓을 했다.

“왜, 왜 이러십니까, 그만해요. 제, 제발 그만…….”

이야기가 더 나올까 싶어 기다렸지만, 그 뒤로는 뻔한 위협과 애원의 반복이었다. 세아는 피로한 눈가를 문지르며 막 나타난 척 통로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둘이 뭐 하는 거야?”

이준과 곽남주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곽남주를 벽에 밀어붙이고 있던 이준은,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아이처럼 급히 뒤로 물러났다. 곽남주가 뻐근한 가슴팍과 어깨를 만지는 걸 보던 세아는 비딱하게 물었다.

“이준아, 연애하니?”

“네?”

“곧 내릴 거니까 앉아. 연구원님도 앉으세요.”

세아는 친절하게 덧붙이고 등을 돌렸다. 이준이 허둥지둥 그녀를 뒤따랐지만, 세아는 무시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이준이 옆에 앉으며 속삭였다.

“누나. 아까 그건…….”

“벨트 매.”

이준은 일단 그녀의 말대로 벨트를 맸다. 무감한 세아의 어조에 안달이 났는지, 그가 애원하듯 말했다.

“이유가 있었어요. 저 사람이 누나한테 이상한 짓을 하려고 했다고요. 누나 신발이나 옷에 도청기를 달려는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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