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의 히든 퀘스트-29화 (29/112)

29화.

13.18

보스 룸 앞까지 가는 길은 험난했다.

세아는 물론이고, 협회와 함께 시스템 속성 몬스터를 연구해 온 이준도 처음 보는 몬스터가 마구 쏟아졌다. 곽남주 연구원이 함께 왔다면, 조사할 게 늘었다며 좋아했을까, 아니면 사색이 되어 도망 다니느라 바빴을까.

“호출 오진 않았죠?”

“응. 조용해.”

말은 안 해도, 이준도 카일리와 곽남주 쪽을 신경 쓰고 있는 듯했다. 어떤 의미에서 신경을 기울이고 있는 것인지 세아는 알 수 없었다.

협회의 협력자라서 곽남주를 걱정하는 것일까. 아니면 과거를 모두 기억하기에 변수나 마찬가지인 카일리와 곽남주를 경계하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물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저건 또 뭐야.”

세아가 한숨을 내쉬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층 보스 몬스터였다. 평범한 사람 크기에 팔다리가 두 개씩 달린 것도 사람과 비슷했다. 눈도 두 개, 귀도 두 개. 그러나 외피가 전혀 없어서 근육과 힘줄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눈꺼풀이 없으니, 비정상으로 보일 정도로 큰 안구도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안을 파헤치면 촘촘하게 연결된 신경까지 다 살필 수 있을 듯했다. 세아는 역겨움에 얼굴을 찡그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저것도 시스템 속성이겠지?”

“아마도요.”

평범한 속성이면 세아가 가진 광역 스킬로 바로 박살낼 텐데, 그게 아니라 쉽지 않았다. 여기까지 쉬지도 않고 오느라 기력도 많이 떨어졌다. 세아는 한숨을 참으며 중얼거렸다.

“지겹다. 정이준, 링크.”

링크를 마친 후에는 곧장 거대한 활을 만들어 냈다.

공격할 때는 총이 훨씬 빠르다. 하지만 이렇게 멀리 있으면 세아에게는 활이 더 유리했다. 화살을 유도탄처럼 만들 수 있는 스킬을 보유한 덕이었다. 이번에는 화살촉에 이준의 정화 스킬을 입힐 작정이었다.

그때, 몬스터가 손을 들더니 그대로 손가락을 자기 뼈와 안구 사이로 쑤셔 넣었다. 그 장면을 본 세아와 이준이 동시에 얼굴을 찡그렸다.

푸슉,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안구가 쑥 뽑혀 나왔다. 고통도 없는지 몬스터는 자기 눈알을 한동안 손바닥에서 빙글빙글 돌리며 바라만 보았다. 구슬이라도 가지고 노는 듯한 태도였다.

저 몬스터가 무통이라는 건 확실히 알겠군. 혼자 생각한 세아는 이준이 정화 스킬을 사용할 수 있도록 천천히 숫자를 헤아렸다. 동시에 몬스터도 눈알을 높이 치켜들었다.

“하나, 둘…….”

“누나!”

이준이 세아의 허리를 감싸고 바닥을 굴렀다. 쾅! 폭음이 귀를 찢었고, 세아는 방금까지 자기가 서 있던 자리가 움푹 들어간 걸 보았다. 시꺼멓게 탄 자리에는 정체 모를 끈끈한 액체까지 묻어 있었다.

“이게 뭐야?”

“저기 봐요!”

몬스터가 남은 눈을 가차 없이 뽑았다. 이번에는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세아와 이준 쪽으로 내던졌다. 세아는 벌떡 일어나며 이준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쾅! 본능적으로 실드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분명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이건 또 뭐야. 눈알 폭탄이야?”

세아는 기가 막혀 중얼거렸다. 이준은 신중하게 몬스터를 주시했고, 세아도 고개를 털고 다시 활을 들었다. 두 눈을 모두 잃은 몬스터는 주위를 두리번거리지도 않고 장승처럼 서 있었다. 지금이 기회다.

그러나 바로 그때, 몬스터가 네 발로 엎드리더니 지네처럼 재빨리 기기 시작했다. 긴다기보다는 거의 총알처럼 몸을 날렸다. 세아는 급히 활을 거두며 옆으로 몸을 피했고, 마지막 순간, 이준이 그녀의 몸을 거세게 밀어 버렸다.

콰쾅! 굉음과 함께 끈적끈적한 액체가 뺨과 목에 잔뜩 튀었다. 따뜻한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나서, 세아는 구역질을 하며 소매로 얼굴을 닦았다. 뻘겋고 누런 액체가 옷에 잔뜩 묻었다.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쪽을 보니, 마치 폭탄이 터진 듯 근육 조각이 붉게 흩어져 있었다. 자폭 몬스터다. 세아는 다시 얼굴을 닦고 침을 뱉었다. 입에 잔해가 들어간 것 같아 불쾌했다.

옆에 있는 이준은 창백한 낯으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세아와 몬스터 사이를 막아선 그의 몸에는 훨씬 더 많은 액체가 튀어 있었다.

세아는 그가 역겨움 때문에 굳어 버렸다 여기고 가방을 뒤져 닦을 것을 꺼냈다. 마른 손수건으로 이준의 얼굴을 닦자, 그가 입술을 세게 깨물며 신음을 억눌렀다.

“정이준, 너 왜…….”

그때, 보았다. 팔꿈치 아래로 반쯤 잘려 나간 이준의 오른팔을. 반 이상 잘려, 팔을 잡고 흔들면 손 부분이 힘없이 흔들릴 듯했다.

세아가 흡, 숨을 들이켜며 입을 막았다. 이보다 더 끔찍한 꼴을 많이 보았지만, 피가 바닥을 적시며 끝없이 흘러내리는 걸 보고서 태연할 수는 없었다. 이준은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아픔 때문에 식은땀에 푹 젖었는데도.

세아는 더듬더듬 중얼거렸다.

“너…… 너…… 기다려. 포션 꺼낼게.”

“괜찮아요. 저 스킬 있으니까…….”

이준은 바닥을 짚고 있던 왼팔을 움직였다. 심호흡을 한 후 손을 상처 부위에 댄 순간, 이준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그러나 그는 침착하게 발동어를 외웠다.

“치유.”

끊어진 근육과 힘줄, 핏줄이 마치 뿌리가 자라나듯 서로를 향해 뻗어가더니 엉키듯 단단히 묶였다. 근육이 처음부터 다시 생겨나는 것처럼 차오르고 살이 매끈하게 올랐다. 이준의 손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왔고, 그는 상처가 다 나을 때까지 손을 떼지 않았다.

세아는 이만한 치유력을 처음 보았다. 이제까지 수많은 힐러를 만났지만, 이 정도 상처를 단숨에……. 세아는 멍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뒤늦게 떠오른 듯 이준의 얼굴을 마저 닦았다.

“넌 치유 스킬 위주잖아. 아까 나 밀지 말고 물러나 있지.”

고맙다는 말 대신 타박이 나갔다. 이준이 핏기 없는 얼굴로 살짝 웃었다. 통증이 가시니 웃을 여유도 생긴 모양이었다.

“누나보단 제가 다치는 게 낫죠.”

어차피 이준이 치유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데 누가 다치든 무슨 상관인가. 세아는 어이가 없어서 내뱉었다.

“앞으론 그냥 네 몸이나 잘 챙겨.”

“무슨 소리예요?”

이준은 비틀거리지도 않고 곧장 몸을 일으켰다. 치유 스킬을 사용해 상처를 낫게 해도 피가 모자라 고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준의 스킬은 그것마저 상쇄할 정도로 강력한 듯했다.

세아는 똑바로 선 그를 보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이전 생에서는 자신을 죽게 내버려두더니, 이번에는 또 왜 몸을 던져 자신을 구한 것인가. 돌이켜 보면 그는 자신을 지키다가 목이 잘려 죽은 적도 있었다.

배반하는 이준과 희생하는 이준. 행동을 종잡을 수가 없다. 그가 당연히 자신을 배신하리라 여겼는데, 그래서 그걸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정보와 판단이 어지럽게 뒤엉켰다.

세아의 생각을 까맣게 모르는 이준은 손을 들어 멀지 않은 곳에 열린 구멍을 가리켰다.

“가요, 누나. 멀지 않은 것 같아요.”

13.19

결국 여기 다시 도달했다.

세아는 최종 보스 룸 앞에 서서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가슴이 부풀도록 숨을 들이쉬고, 또 내쉬기를 반복한다. 그래도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손바닥 두 개를 댈 수 있는 홈이 보였다. 하나는 세아의 손, 다른 하나는 이준의 손. 세아는 이준과 나란히 서서 이 문을 연 순간을 여러 번 떠올릴 수 있었다.

“누나.”

이준이 여기 서서 자신을 부른 순간도.

“물어볼 게 있어요.”

바라보니, 그는 웃고 있었다.

세아는 이미 다짐했다. 무조건 거짓말을 하자. 그가 전과 같은 것을 물으면 널 사랑한다고, 널 원한다고, 시스템이 사라져도 영원히 너와 함께할 거라고 하자. 그가 원한다면 이 자리에서 곧장 입이라도 맞출 것이다. 그런 다음,

정이준은 버린다.

“물어봐.”

“누나는 왜 시스템을 죽이고 싶어요?”

뜻밖의 질문이었다.

여기서 회귀 때문이라고 말해도 될까, 당연히 안 된다. 아직 이준을 그렇게까지 신뢰할 수는 없었다.

“너 이 세상이 정상 같아?”

“…….”

“그 전에도 물론 죽는 사람 많았어. 사고 나서 죽고, 지구 반대편에선 못 먹어서 죽고, 전쟁 나서 죽고.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 언제 어디서 던전이 나타날지 모르고, 언제 어떤 몬스터가 나올지 몰라.”

이준은 잠잠한 표정으로 세아의 말을 들었다. 속을 읽을 수 없는 무표정이었지만 세아는 그리 불안하지 않았다. 될 대로 돼라, 차라리 그런 심정이었다.

“안 죽어도 될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었어. 지금까지 살아남은 우리나 그 사람들이 다른 점이 뭐야? 제때 각성을 했냐 못 했냐, 그게 다야. 그리고 앞으로도 똑같을 거야. 게임에선 사람 죽으면 다시 살아나지, 여긴 달라.”

이런 정의로운 생각 같은 건 해 본 적도 없다.

이전의 세상도 유토피아는 아니었다. 변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 남을지만 생각했고, 주어진 것을 누렸고, 익숙해졌다. 히든 퀘스트만 아니었다면 이런 말을 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준아,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네 도움이 필요해. 네가 내 생각에 동의하든 안 하든, 난 너한테 부탁할 거야.”

이준은 잠시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세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쐐기와도 같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넌 좋은 사람이니까. 난 그걸 알아.”

“누나.”

이준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가 손을 뻗어 세아의 머리카락을 살짝 매만졌다. 무척 조심스러운 손길이라 세아는 피하지 않았다.

“누나는 모를 거예요. 내가 얼마나 한심한 사람인지. 시스템이 사라지면 내가 지금 누리는 것도 다 포기해야 해요. 그건 다 버릴 수 있어요. 변한 세상에서 또 적응하면 되니까. 내가 진짜 두려운 건…….”

세아는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가 처음으로 B급이 아닌 S급으로 각성하던 순간, 자기를 대신해 죽은 순간이 차례로 떠올랐다.

“누나를 잃을 것 같아요. 누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를 버릴 것 같아요.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까, 나는 누나 인생에서 조금도 중요한 사람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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