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의 히든 퀘스트-46화 (46/112)

46화.

“씹어.”

어떻게 세뇌된 것인지는 몰라도, 이준은 음식을 거부하고 뱉어 버리려 했다. 그러나 오래 굶주린 몸에 음식이 들어가자, 정신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이준은 감자튀김을 씹고, 삼켰다. 세아는 건성으로 그의 뺨을 토닥였다.

“그래, 잘했다. 이것도 먹어.”

이번엔 샌드위치를 들어 이준의 입가에 갖다 댔다. 카일리와 리웨이는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지켜보았다.

이준이 천천히, 스스로 입을 벌렸다. 샌드위치를 조금 베어 먹더니 우물우물 씹으며 세아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세아는 또 선심 쓴다는 투로, “잘했어.” 라고 말했다.

다음에는 이준이 스스로 입을 벌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일리가 어깨를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세아에게 말했다.

“신기하다. 너 알아보나 봐.”

“난 죽여야 할 상대라 알아보는 거고, 지금은 그냥 배가 고픈 거겠지.”

“근데, 이렇게 계속 묶어 놔도 괜찮아?”

세아는 대답하는 대신 이준의 입에 감자튀김을 하나 더 넣어 주었다.

와이어는 탄성 있고 자유자재로 늘어나는 만큼 정말 ‘철사’는 아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을 정도로 억센데다, 사용하지 않을 때는 스스로 수축하는 속성이 있어서 살을 아프게 파고든다.

어깨부터 발목까지 둘둘 말아 묶었으니, 무척 갑갑할 테고 몸에 무리도 많이 갈 게 분명했다. 손목 발목처럼 맨살이 드러난 부분은 이미 와이어 때문에 붉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두면 분명 피가 맺힐 것이다.

리웨이는 신중하게 이준의 몸을 살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러다 손이나 발 괴사 오는 거 아닌가?”

“아마 그럴 거예요. 잘 땐 풀어놓을 테니 걱정할 거 없어요.”

“뭐?”

카일리와 리웨이가 동시에 소리치듯 되물었다. 세아도 이준도 그런 것에 신경을 기울이지 않았다. 먼저 나선 건 카일리였다.

“그러다 도망가면?”

“내가 감시하면 돼.”

“잠들었는데 갑자기 달려들어서 죽이려고 하면?”

“내가 이기니까 걱정 마.”

걱정이 안 될 리가 없다. 카일리와 리웨이는 셋이서 돌아가며 불침번을 서자고 제안했다. 누가 뭐래도 세아는 가장 중요한 전력이었고, 시스템을 없앨 수 있는 유일한 헌터였으니 다치게 둘 수는 없었다.

물론 세아는 딱 잘라 거절했다.

“둘 다 그럴 필요 없어요. 세뇌를 풀려면 정이준이랑 나랑 둘이 있는 게 나아요.”

“하지만, 그런 걸로 어떻게 세뇌를 풀 수 있는데?”

리웨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물었다. 세아는 그쪽을 돌아보며 가볍게 대답했다.

“그나마 정이준이랑 제일 가까운 게 저잖아요. 붙어 있으면서 실마리를 찾아 봐야죠. 오스카의 스킬에 당했으니 다른 헌터를 찾아가 세뇌를 풀어보라고 하는 것도 의미 없고, 우리 스스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어요.”

꽁꽁 묶인 이준은 세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시종일관 세아에게 붙박여 있어서, 카일리는 순간 오싹한 느낌까지 받았다.

카일리가 살며시 세아의 팔에 손을 얹으며 속삭였다.

“느낌이 너무 안 좋아. 그냥 불침번 서자. 가둬 놓으면 달아날 테니까……. 아니면 좀 부드러운 끈으로 묶어 두든지.”

카일리는 아무래도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함께 시스템 던전에 갔을 때도 이준은 세아를 잘 따르긴 했지만, 지금과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그때는 충견처럼 꼬리를 흔들며 세아를 따라갔다면, 지금은 목표물을 정한 저격수 같았다. 아무 감정도 없는 무감한 눈동자.

카일리는 가볍게 몸서리를 쳤다. 정이준이 자신에게 속박 스킬을 사용했을 때보다 지금이 더 기분 나쁘다. 그때, 카일리가 뚝 굳어 버렸다. 속박 스킬!

“쟤 입 막아야 하는 거 아니야?”

“왜?”

“왜냐니, 속박 스킬 말이야!”

“아, 그건 괜찮아.”

“하나도 안 괜찮아. 너 속박 스킬 걸려 본 적 없지?”

세아는 피식 웃더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끝내 카일리와 리웨이의 불침번 제안을 거절했다. 아무리 강해도 자다 기습당하면 어쩌려고 이러나, 카일리는 혹시 모르니 밤새 문 밖에서라도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세아가 아, 하고 손뼉을 치더니 명랑한 어조로 선언했다.

“그리고 내일 영국 협회 건물로 가자. 두 사람이 대충 위치는 알아냈으니까, 내일 올리버 얼굴을 볼 수 있을 거야. 정말 콧대 높은 꼬마가 우릴 거절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 소문이 맞는지 확인하자고.”

“어떻게 하려고?”

입을 다물고 있던 리웨이가 불쑥 물었다. 세아는 속모를 얼굴로 씩 웃더니 대답했다.

“내일 말해 줄게요.”

그렇게 카일리와 리웨이는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카일리는 못내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함께 돌아가던 리웨이가 그녀의 팔을 툭 건드렸다.

“너 왜 그래. 그래도 이세아 이름값이 있지, 허무하게 죽기야 하겠어.”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리웨이는 다시 시작해도 상관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카일리의 입장은 달랐다. 세아는 같은 생을 열 번 넘게 반복했다고 했는데, 그중 딱 한 번만 스테파니를 구해 주었다. 그 전에는 구할 필요가 없었거나 계기가 없었던 것이다.

생이 반복되어도 세아가 스테파니를 구해 줄까? 어쩌면 귀찮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세아와 동료가 되었을 때, 그녀가 스테파니를 구했을 때 상황을 끝내고 싶었다.

“이세아가 알아서 할 거야.”

리웨이는 걱정도 안 되는 듯 하품을 하며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아까는 함께 불침번을 서자고 하더니, 세아의 확언에 마음이 놓인 모양이었다. 카일리는 못내 불안하여 밤새 문앞을 서성였다.

13.44

객실은 오싹하리만치 조용했다.

이준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세아만 바라보았다. 세아는 그를 앉힌 침대 맞은편에 앉아 턱을 괴고 한참 동안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듯 고개를 약간 기울이고,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세아는 걸터앉았던 침대에서 일어나 이준에게 다가갔다.

“그거 알아, 이준아?”

단단히 묶은 와이어를 풀며 세아가 물었다.

“이게 부드러운 끈이라 풀 필요가 없었어도 널 풀어 줬을 거야.”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아래서부터 푸니, 발과 다리부터 자유로워진다. 세아는 이준이 그대로 걷어찰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몸을 긴장시켰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고 세아를 바라볼 뿐이었다.

“너 아직 정신 있는 거잖아.”

속박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다. 속박 스킬이 갑자기 사용 불가하게 되었을 리도 없고, 협회도 그 스킬을 적극 활용하도록 세뇌했을 터다. 그런데도 이준은 내내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켰다.

맞붙었을 때 부러 시간을 끈 것도 그걸 확인해 보고 싶어서였다. 이준이 완전히 지배당했다면 눈이 마주치자마자 속박 스킬을 사용했을 테고, 피할 방법도 없으니 어차피 죽을 운명이다. 그게 운명이라면 맞이하자. 다시 하면 된다, 그런 마음으로 이준과 마주 섰다.

그러나 이준의 입술에는 끝내 침묵뿐이었다. 세아는 그때 확신했다. 오스카가 정이준을 완전히 지배하지 못했다는 것을.

이준의 몸이 완전히 자유로워졌다. 세아는 이준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와이어를 치워 버렸다. 이제부터 버티기에 돌입한다. 이준이 자신을 공격하려 해도, 이 객실에서 달아나려 해도 무조건 눈을 뜰 수 있을 정도로 긴장한 채로 자야 한다.

“난 이제 잘 건데.”

세아가 손을 뻗어 이준의 뺨을 매만졌다. 아무리 봐도 살이 너무 내렸다. 그게 특별히 마음 아픈 건 아니었지만 조금 안타깝긴 했다. 정말 어여쁜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정말 살기등등한 사냥꾼 같다.

“나 잘 동안 잘 참을 수 있겠어?”

이준은 미동조차 없이 앉아 있었다. 자기 앞에 선 세아를 올려다볼 뿐. 세아도 이게 도박이라는 걸 잘 알았다. 그러나 이렇게 이준을 자극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못 참겠으면 깨워도 돼.”

“…….”

“네가 부르면 항상 일어날 테니까.”

세아는 그에게서 손을 떼고 훌쩍 물러나 자기 침대로 돌아갔다. 이준은 눕지 않았고, 세아는 환한 불빛을 바라보며 똑바로 누웠다. 가벼운 긴장과 흥분이 밀려와 세아는 손을 한번 쥐었다 폈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꿈도 없이, 아주 잠시 잠든 것 같았다. 방금 잠들었다, 그렇게 느꼈는데 번쩍 눈이 뜨였다.

“누나.”

어느새 자신의 위에 올라탄 정이준. 두 손을 뻗어 목을 조르는 정이준. 세아는 덤덤하게 그의 손목을 잡았다. 이준이 덜덜 떨면서 속삭였다.

“못 참겠어요.”

“그래.”

이준이 있는 힘껏 손을 조여 대답하기도 힘들었다. 세아는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준의 손목을 꽉 쥐었다. 스킬이라도 사용해 손을 뗄 참이었다. 그때, 이준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나 죽여야 돼요.”

세아가 눈을 깜빡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주 잠시, 모든 감각이 사라지고 이준의 고통이 또렷하게 보였다. 그가 이를 악물며 덧붙였다.

“내가 누나를 죽이기 전에.”

거기까지가 정이준의 한계였다. 그의 검은 눈에서 이지가 사라지는 걸 세아는 똑똑히 보았다. 사람의 눈빛을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본 건 정말 처음이었다.

세아는 그대로 이준의 손목을 놓고, 오른손을 멀리 뻗었다가 크게 휘둘렀다. 짧은 포물선을 그린 주먹이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이준의 뺨에 꽂혔다.

충격이 상당했을 텐데, 그래도 헌터라고 이준은 넘어지지도 않았다. 목을 조이는 힘도 여전해서, 세아는 이제 정말 위기감을 느꼈다.

눌리는 목의 고통을 참으며 세아는 오른손에 무기를 만들었다. 날카로운 무기는 위험할 테니, 둔중한 손망치였다. 그리 크지 않아 조준하기도 쉬웠다.

아플 거야,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니 그렇게 경고해 줄 수는 없었다. 세아는 팔에 힘을 주어 망치로 이준의 옆구리를 세게 후려쳤다. 퍽, 이준의 몸이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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