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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의 히든 퀘스트-48화 (48/112)

48화.

“그럴 필요 없어요, 지금 영국 협회 앞이니까! 사람들한테 좀 도우라고 해요! 으아악, 살려 줘!”

“뭐라고요, 협회…….”

“지하에 대피소 있죠? 헉, 헉, 안 돼, 나 죽이지 마!”

“지하?”

아이작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걷는 것도 잊고 우뚝 멈춰 서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하는 안 됩니다! 거긴 절대 안 돼!”

“왜 안 되는데요?”

방금까지만 해도 살려 달라고 아우성치더니, 목소리가 갑자기 서늘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세아는 금방 다시 호들갑을 떨며 살려 달라고 소리쳤다.

완전히 당했다. 빌어먹을, 미국 협회가 보낸 헌터가 어쩌고도 다 핑계일 뿐이다. 아이작은 전화를 끊어 버리고 커피도 바닥에 팽개쳤다. 멀리 보이는 협회 건물로 전력 질주하는 내내, 이미 늦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13.48

올리버는 거의 검은색처럼 보이는 푸른 눈을 가지고 태어났다. 결 좋은 갈색 머리카락은 햇빛을 받으면 금빛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어릴 때부터 얼굴에 아이 특유의 귀여움과 총명함이 깃들어 있었다.

아마 부모를 일찍 잃지만 않았다면 모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재앙이 발발하지만 않았다면 평범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아니, S급 헌터로 각성하지만 않았다면 불행하지는 않았을 터다.

5년 전, 던전이 열렸고 몬스터에게 쫓기던 올리버는 S급 헌터로 각성했다. 전투 능력은 거의 없었지만, 손에 잡힌 잡초를 날카로운 칼로 만들어 몬스터의 목을 꿰뚫었다. 그러고도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몰랐다.

그때 마침 시민의 안전과 헌터 관리를 기치로 내세운 헌터 협회가 출범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협회원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이렇게 외쳤다.

“모든 시민은 협조하십시오. 각성 검사에 응하십시오.”

올리버가 머물던 보육 시설로도 협회원이 찾아왔다. 아이들을 한 줄로 세워 놓고 무감한 얼굴로 검사를 이어 가던 협회원의 표정이 올리버 차례에 완전히 바뀌었다. 그는 눈을 몇 번이나 깜빡이며 올리버를 바라보았다.

“협회로 같이 가자. 너 이름이 뭐니?”

“올리버요…….”

“그래, 올리버. 넌 이제 영국의 S급 헌터야. 자랑스럽게 여겨라.”

당연히 올리버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협회원을 따라가면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도 몰랐다.

협회는 올리버의 능력을 철저히 조사하고 분석했다. 어린 올리버는 묻는 말에 모두 솔직히 대답했다. 대부분의 제작 계열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 스킬 등급도 대체로 S라는 것, 공격 스킬은 거의 없다는 것까지.

협회의 실망은 컸다. 다른 국가의 S급 헌터는 거의 다 공격형이었다. 던전을 공략하여 안정화하고 몬스터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에 적격인 자들이 많았다. 그런데 영국에서 나온 S급 헌터는 어린애인 데다 힘도 없었다.

당시 소년 협회원이었던 아이작은 늙은 협회장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S급 아이템을 독점해야 합니다. 올리버에게 제작을 시키고, 그 무기를 소량만 외국에 판매하는 건 어떨까요. 물론 레어 무기는 영국 A급 헌터에게 우선 지급하고요.”

그날부터 올리버는 이유도 모르는 채로 제작에 착수했다. 그때 그는 여덟 살이었다.

처음에 협회는 그에게 돈도 주었고, 머물 수 있는 집도 제공했으며 돌봐 줄 사람까지 붙여 주었다. 무척 호화롭고 안락한 생활이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협회로 가서 아이템을 제작해야 한다는 것만 제외하면.

그런 생활이 몇 달쯤 이어지자, 여덟 살에 불과한 올리버에게도 의문이 생겼다. 그는 감시 겸 독려를 위해 찾아온 아이작을 올려다보며 무구하게 물었다.

“다른 S급 헌터들은 서로 만난다는데, 왜 나는 못 가요?”

S급 아이템을 한 나라가 독점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올리버는 몰랐다. 자기가 만드는 아이템으로 영국 협회가 어떤 이득을 취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친구들 보러 가고 싶어요. 다른 사람도 만나고 싶고…….”

올리버가 다른 나라의 성인 S급 헌터처럼 자의로 행동하게 된다면, 협회의 통제를 벗어난다면, 영국 협회는 아주 곤란해진다. 아이작은 물론이고 당시 협회장도 하나뿐인 S급 헌터에 대한 지배력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작은 협회장에게 두 번째 제안을 했다.

“다른 나라들 하는 걸 보십시오. 젊은 S급 헌터한테도 쩔쩔매며 비위 맞춰 주기 바쁩니다. 그 S급들은 협회를 위해 일하지도 않고 여기저기 외국을 돌아다니죠. 올리버는 그래선 안 됩니다. 싹을 잘라야 해요.”

너무도 간단하게, 올리버는 협회 지하 작업실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영리한 올리버는 반항하고 싸우고 탈출할 방법을 모색했다. 그러나 주위에는 영국의 A급 헌터가 진을 치고 있었다. 전투 능력이 전혀 없는 올리버는 그들과 맞설 수 없었다.

아이템을 만들어 탈출하려 해도 번번이 감시자에게 발각되었다. 그들은 올리버가 새로운 아이템, 용도를 짐작할 수 없는 아이템을 만들려고 하면 즉시 제지했다.

아이작은 다정한 형처럼 와서 올리버의 어깨를 짚었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돼.”

작업실은 더없이 쾌적했다. 흰 책상, 말끔한 미색 벽, 필요한 만큼 지급되는 재료. 심지어 공기청정기에 마음을 위로해 줄 식물까지 있었다. 그러나 올리버는 점점 지쳐만 갔고 무기력에 잠겼다.

아무리 먹이려 해도 앙상해지는 손가락, 빛이 사라진 퀭한 눈……. 지하에서 일하는 올리버의 모습을 본 협회장은 찜찜한 투로 아이작에게 말했다.

“이래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군.”

“흔들리지 마세요. 한국이 S급 헌터 셋을 보유한 후, 그들의 국제적 위상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올리버 하나뿐이니 끝까지 통제 아래 둬야 합니다.”

“하지만 만드는 아이템이 점점 더 평범해지고 있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유롭게 살며 창의성을 마구 발휘하던 시절과는 당연히 다르다. 깜짝 놀랄 정도로 독특하고 특별한 아이템을 만들어 내던 올리버는 이제 움푹 꺼진 눈으로 총이나 검 같은 평범한 무기를 만들 뿐이었다.

아이작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여전히 전부 S급 아이템입니다. 고가고, 저 아이템을 얻기 위해 외국 헌터들까지 줄을 서고요.”

그 상태로 1년이 더 지났다. 총명하고 똑똑하다 해도 올리버는 어린아이였고, 어른들의 감시 앞에서 무력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명랑하고 환하던 마음은 보이지 않는 폭력 속에서 서서히 죽어 갔다.

계절도 밤낮도 모르고 일하다가 1년이 지났음을 알게 된 날, 올리버는 깨달았다. 앞으로 절대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걸. 자기에게 주어진 세상, 허락된 세상은 여기가 전부라는 걸.

그 뒤로 올리버는 반항하지도, 달아나려 하지도 않고 묵묵히 협회의 지시에 따랐다. 그러자 달콤한 사탕처럼 몇 가지 보상이 주어졌다. 전보다 훨씬 더 다정해진 아이작, 실내 정원 산책 시간…….

“이제 여기서 쉬면 돼.”

실내 정원에 처음 간 날, 아이작은 그렇게 말했다. 전처럼 어깨를 다독이면서 마치 친형처럼.

하지만 그 실내 정원 역시 지하에 있었다. 땅을 파고, 그 위로 유리 천장을 얹었다. 컴컴한 지하에서 그곳에만 햇빛이 환하게 쏟아졌다.

바람 한 줄기 없이 빛만 보고 자라니, 실내 정원의 식물은 자주 병에 걸리고 비실비실했다. 올리버는 흰 점이 징그럽게 돋아난 이파리를 뚝뚝 뜯으며 멍하게 정신을 놓고 쉬었다.

1년이 더 지났다. 다시 1년. 시간은 막힘없이 흘렀다.

올리버의 키는 거의 그대로였다. 생각도 어느 지점에서 멈추고 더는 자라지 않았다. 올리버는 가끔 자기 나이도 잊었다. 나이 같은 게 의미 없는 세상에서 살았으므로.

그래도 계절이 지나가는 걸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빗방울 떨어지는 유리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주 잠시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비가 오지 않아 아쉬운 날.

햇볕이 따뜻하게 몸을 감쌌다. 올리버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자신이 이 정원에서 자라는 식물이 된 느낌이 들었다. 계속 서 있으면 발에서 뿌리가 생기고 어깨와 머리에서는 얇은 가지가 자라나 하늘로 뻗어갈 듯했다. 그렇게 되자. 그렇게 되어 버리자.

바로 그때, 엄청난 고함이 들렸다.

“으아아악, 살려 줘! 구해 줘요!”

올리버는 모르는 언어였다. 그러나 소리만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쾅, 쾅,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주위를 지키던 A급 헌터들의 비명, 들어오지 말라는 외침, 아까 들린 여자 목소리.

올리버는 엉거주춤하게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마자 한 여자가 통로에서 튀어나왔다. 길게 날리는 검은 머리카락, 검은 눈, 동양인의 얼굴.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온 여자가 그대로 올리버의 몸을 휙 안아 들었다. 올리버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여자는 다시 움직였다. 유리로 막힌 천장을 올려다보던 그녀는 품의 올리버를 보며 물었다.

“안녕, 올리버. 너 올리버 맞지? 여기서 나가고 싶어?”

다행히 이번에는 영어였다. 분명 말뜻은 이해했는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 모르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들어오지 않던 지하에 어떻게 들어왔을까. 쫓기는 듯 들어와 놓고 왜 한가하게 이런 걸 묻는 것일까.

“올리버, 여기서 나갈 거야?”

수십 번의 탈출 시도, 수십 번의 좌절, 수십 명의 A급 헌터. 올리버는 망연히 세아를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못 나가.”

그 말을 듣자마자 여자가 싱긋 웃었다. 여자의 다음 말은 또렷하게 올리버의 귀에 꽂혔다.

“아니, 우린 나가.”

여자가 올리버를 안지 않은 다른 손을 위로 치켜들었다. 손끝에서 형태 없는 총알이라도 발사된 듯 으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 천장에 금이 갔다. 올리버가 하늘을 올려다보자마자 날카로운 파편이 찬란한 비처럼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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