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의 히든 퀘스트-57화 (57/112)

57화.

“같이 가 주면 당연히 더 안전하고 좋지만…….”

“그럼 말이나 해 봐. 같이 가자고.”

리웨이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고, 카일리도 세아의 얼굴만 바라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세아는 기력을 가장 많이 소진하는 스킬을 쓸 때보다 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어…… 괜찮으면 같이 가 줄래요? 아무래도 정이준은 지금 방해만 안 되면 다행인 상황이고, 둘이서만 여기 남으면 변수가 많을 거예요.”

“그래. 난 가겠어.”

“나도 갈게.”

리웨이와 카일리가 차례로 대답했다. 세아는 아주 어려운 일을 해냈을 때처럼 식은땀을 흘리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그녀는 어색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고마워요.”

그렇게 말한 후 세아는 낯간지러운 분위기를 깨고자 농담을 던졌다.

“하하, 이랬는데 둘 다 스마일맨이면 소름끼치겠다. 그렇죠?”

“…….”

“…….”

두 사람은 일제히 침묵했다. 오싹한 한기가 순식간에 등줄기를 타고 뒤통수까지 기어올랐다. 세아는 뒤로 물러날 준비를 하며 정이준을 끌어당겼다.

무표정한 얼굴로 세아를 바라보던 카일리와 리웨이가 서로 눈을 맞추었다. 곧 두 사람이 소리를 내어 웃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야, 진짜 소름끼치게.”

“놀랐잖아.”

세아는 눈물까지 흘리며 웃는 카일리에게 한마디 쏘아붙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도 스마일맨에게 당하다 보니 이제 순간순간 의심이 솟는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어쩌면 이 던전에는 스마일맨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앞으로 갈까요?”

세아는 나누려던 짐을 다시 챙기고 제대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장난기 어린 얼굴로 웃던 카일리와 리웨이도 다시 몸 상태를 점검하고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준은 아무 생각도 없는 얼굴로 따라 일어섰다.

그때, 다시 한번 벽에서 물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번에 세아는 당황하지 않고 이준의 몸을 확 끌어당겼다. 이준은 중심을 잃고 나동그라졌지만, 물줄기는 그가 방금까지 서 있던 자리로 쏟아졌다. 세아는 그를 일으키며 한마디 했다.

“조심해.”

움찔, 이준의 손이 경련하듯 떨렸다. 세아는 그가 다시 자기에게 달려들려고 했다는 걸, 그리고 그걸 필사적으로 참아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부러 다정하게 이준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래, 이준아. 잘 참네.”

그렇게 파티는 한 걸음, 한 걸음 계속 전진했다. 다행히 심각한 위험은 없었다. 리웨이는 소환수를 미리 보내 앞의 트랩이나 몬스터를 감지했고, 세아와 카일리는 합을 맞추어 나타나는 적을 처리했다.

“저기 있다.”

마침내, 맨 앞의 세아가 중얼거렸다.

백 미터쯤 떨어진 곳에 리웨이가 말한 책상이 놓여 있었다.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물건이라 세아는 바로 그게 책상임을 알아보았다. 지친 카일리와 리웨이의 얼굴에도 미소가 감돌았다. 세아는 들떠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아마 히든 퀘스트에 필요한 보상일 거예요. 왠지 느낌이 그래요.”

“그래, 그럼 빨리…….”

말을 하다 말고 카일리가 휙 뒤를 돌아보았다. 리웨이가 왜 그러느냐고 물으려는 순간, 그녀가 손을 들어 리웨이의 말을 막았다. 뒤를 돌아보는 카일리의 얼굴이 의혹에 젖어 컴컴했다.

“못 들었어요? 세아, 못 들었어?”

“뭘…….”

되묻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리가 귀에 꽂혔다.

“아아아악!”

높고 날카로운 비명이었다. 카일리는 믿을 수 없는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세아를 돌아보며 외쳤다.

“스테파니 목소리야!”

카일리는 그대로 왔던 길을 되짚어 혼자 뛰어가 버렸다. 그녀를 혼자 보낼 수 없으니 리웨이도 일단 따라 뛰었다. 그제야 세아는 던전 입구에서 보았던 메시지를 떠올렸다.

[일반 퀘스트 ‘던전 공략 부탁드…’를 수락한 다른 헌터가 있습니다. 던전이 공동 참여 던전으로 변경됩니다.]

젠장, 그게 스테파니였다니!

세아는 조금만 뛰면 다다를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보상과 뛰어가는 카일리의 뒷모습을 번갈아 바라본 후 욕을 짓씹었다. 그런 다음 몸을 돌려 카일리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13.63

스테파니와 올리버는 시스템 속성에 대해 무지했다. 스테파니는 3년 동안 약초 던전에 갇혀 있었고, 올리버는 영국 협회 지하에서 살았다. 시스템 속성을 자세히 알 리 없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몬스터와 마주쳤다. 세아 일행은 만나지 못한 시스템 속성 회색 슬라임이었다.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올리버는 자신만만하게 앞으로 나서며 슬라임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코어 채집!”

코어 채집은 살아 있는 몬스터에게서 바로 중요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스킬로, 아이템을 얻고 나면 대체로 몬스터는 사망했다. 올리버가 혼자 던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한 것도 이 스킬을 믿어서였다.

그러나 올리버의 믿음을 배반하듯, 슬라임은 몸 한번 꿈틀하지 않고 조용했다. 뒤에 있던 스테파니가 긴장한 음성으로 물었다.

“된 거야? 죽진 않은 것 같은데?”

“이상하네. 코어 채집!”

다시 외치자 이번에는 확실한 변화가 나타났다. 슬라임이 바닥에 떨어진 젤리처럼 심하게 꿀렁거리며 올리버의 팔을 빨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올리버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팔을 잡아 빼려 했고, 스테파니가 재빨리 그의 몸을 잡았다.

“올리버, 뒤로 와. 뒤로!”

스테파니가 필사적으로 올리버의 몸을 잡아 뺐지만 소용없었다. 슬라임 안에 푹 잠긴 올리버의 팔이 마치 미라의 것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검게 그을리며 근육이 뼈에 달라붙듯 수축하자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아아악! 으아악!”

올리버가 핏기 가신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스테파니는 이를 악물고 패닉에 빠진 올리버의 몸을 끌었다.

어느 순간 올리버의 팔이 확 빠지며 두 사람은 함께 뒤로 넘어졌다. 하지만 스테파니가 잘해서가 아니었다. 올리버의 팔에서 진액을 먹을 만큼 먹어치운 슬라임이 그를 놓아 준 것이다.

올리버의 팔은 죽은 지 오래된 시체의 팔이라 해도 될 정도로 앙상하고 흉측하게 변했다. 불에 바싹 탄 듯 쭈글쭈글 검게 변한 팔에서 불길한 연기가 올랐다.

“아, 아파, 흑, 아파…….”

스테파니는 일단 올리버의 몸을 뒤로 질질 끌어 슬라임으로부터 떨어뜨렸다. 그런 다음 짐을 뒤져 그의 팔에 무작정 포션을 쏟았다.

다행히 팔은 회복되었다. 그을음이 벗겨지고 새 근육과 힘줄이 뻘겋게 돋아나더니 새살이 덮이고, 손톱까지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러나 반 리터짜리 포션 한 통을 전부 써야 했다.

올리버는 고통의 여운이 덜 가신 목소리로 인사했다.

“고마워.”

“지금 그럴 때가 아니야. 아무래도 여기 이상해. 코어 채집 스킬이 안 통하잖아.”

올리버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자기 앞에 있는 슬라임을, 던전을 둘러보았다.

각성하자마자 협회로 끌려가 내내 아이템만 만들었다. 던전에 대해서는 대강 주워들어 알았지만, 안으로 들어온 건 처음이었다. 상상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무서운 곳이었다.

문득 세아의 말이 떠올랐다.

‘시스템 속성 던전이라 위험한 몬스터가 너무 많고, 분명 스마일맨도 우글거릴 거야. 널 지켜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소리야.’

그때는 귀찮아서 그러는 줄 알았다. 데려가기 싫으니 대충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세아 말이 옳았던 것이다.

“나가자.”

스테파니가 다시 말하자, 올리버도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고통은 사라졌지만 몸은 식은땀에 젖어 눅진했고, 다리가 가늘게 떨려 제대로 걸을 수도 없었다. 그래도 들어온 곳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뒤를 돌아본 순간, 올리버와 스테파니의 입이 똑같이 벌어졌다.

언제 나타났는지 슬라임이 가득했다. 열 마리가 넘는 회색 슬라임이 꿈틀거리며 아이들 쪽으로 다가왔다. 스테파니는 패닉에 빠진 올리버의 손을 낚아채듯 잡고 반대 방향, 던전의 깊은 곳으로 달렸다.

“저길 뚫고는 못 가! 차라리 앞으로 가서 다른 사람들이랑 합류하자!”

올리버는 대답할 틈도 없이 스테파니를 따라 달렸다. 저 많은 슬라임 사이를 뚫고 갈 수는 없다. 앞이 얼마나 위험할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도움이 필요하다.

“카일리! 세아! 도와줘!”

스테파니는 올리버의 손을 꼭 잡고 달리면서 정면에 대고 소리쳤다. 그러나 던전은 너무 깊고, 사람들은 너무 멀리 갔는지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슬라임은 구르며 쫓아오고, 벽에서는 계속 정체 모를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아악!”

올리버가 다리에 화상을 입고 고통 어린 비명을 질렀다. 그대로 바닥에 나뒹군 올리버를 일으키며 스테파니는 그의 상처를 살폈다. 다행히 스친 정도라 옷과 살갗이 조금 벗겨진 정도였다. 올리버도 아파서라기보다는 놀라서 넘어진 듯했다.

“일어나. 갈 수 있어, 빨리! 여기서 죽지 마!”

절대 이렇게 개처럼 죽을 수는 없다.

정체 모를 던전 지하에서 3년을 버텼다. 자신을 이리로 떠민 카일리를 증오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자길 데리러 올 사람은 그녀뿐이라는 사실에 좌절하면서. 어떻게 먹고 자며 지냈는지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한 건 두 가지, 스마일맨을 두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진실이 무엇이라 해도 여기서 죽기는 싫다는 것.

던전 자체가 처음인 올리버는 쉽게 일어나지 못하고 바닥에서 버둥거렸다. 발이 푹푹 빠져 제대로 뛰기도 힘들었다. 스테파니는 더 기다리지 못하고 그를 번쩍 업었다.

어디에 이런 힘이 숨겨져 있었나. 스테파니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생각을 그치고 전력으로 달렸다. 몬스터는 더 나타나지 않았고 액체를 뿜던 벽도 잠시 잠잠해졌다.

주위가 무섭도록 고요해졌을 때, 스테파니는 천천히 뛰는 걸 멈추었다.

“스테파니.”

그녀의 등에 매달린 올리버가 속삭이듯 불렀다. 스테파니는 일단 그를 바닥에 내려주고 신중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없다. 몬스터도, 사람도. 안전한 구역으로 온 것 같기도 한데 기괴할 정도로 조용해서 안심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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