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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의 히든 퀘스트-58화 (58/112)

58화.

그때, 올리버가 움직였다. 스테파니가 한손에 대강 들고 온 가방을 뒤지기 시작한 것이다. 올리버는 땀에 젖은 얼굴을 닦으며 가방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스테파니, 이것 봐!”

스테파니가 돌아보니 올리버가 손에 든 건 끈이 달린 풍선이었다. 놀이공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물건이어서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지금 이걸 왜 꺼내나 싶은 마음이 반, 저 큰 게 작은 가방에서 어떻게 나왔나 싶은 마음이 반이었다.

올리버는 보라는 듯 끈을 잡고 펄쩍 뛰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작은 풍선 하나에 의지해 올리버의 몸이 붕 떠올랐다. 올리버는 다시 버둥거려 아래로 내려오며 안도가 빛나는 얼굴로 외쳤다.

“몬스터가 나오면 이걸로 통과하자! 내가 한국 와서 심심해서 만든 아이템이야.”

아까는 너무 놀라서 이게 생각이 안 났다고, 묻지도 않은 말을 덧붙이는 올리버의 얼굴이 환했다.

그러나 안도도 잠시, 앞에서 쉭쉭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올리버와 스테파니는 동시에 보았다, 손목만큼 두꺼운 검은 뱀 무리가 그들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그걸 타고 가자!”

스테파니가 얼른 외쳤다. 올리버도 재빨리 끈을 내어 주었고, 둘은 풍선에 매달려 뱀 위로 날아갈 작정으로 펄쩍 뛰어올랐다.

풍선은 아까보다 훨씬 더 힘겹게 허공으로 올라갔다. 얼마 가지도 못해 두 사람은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올리버가 흐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사실 이건 1인용이거든. 그래도 두 사람 무게는 버틸 줄 알았는데…….”

낭패다.

스테파니는 긴 몸을 울렁이며 다가오는 뱀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일단 이거 타고 너 먼저 가.”

“뭐? 안 돼!”

“빨리 가서 사람들 데려와. 우린 이미 깊이 들어왔어. 다들 멀리 있지 않을 거야.”

스테파니는 막무가내로 올리버의 손에 끈을 쥐여 주고 그를 밀어 버렸다. 올리버는 겁에 질린 얼굴로 스테파니를 돌아보며 하늘로 둥실 떠올랐다. 뱀의 머리 위로 유유히 날아가는 올리버를 보다가, 스테파니는 천천히 옆걸음질을 쳐 벽에 붙었다.

운이 좋다면 뱀들은 이대로 지나갈지도 모른다……. 물론 절대 그럴 리 없지만…….

뱀들이 우르르 덮쳐드는 순간, 스테파니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아아아악!”

두 눈을 질끈 감고 팔로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이어지는 통증은 전혀 없었다.

스테파니가 겨우 용기를 내어 눈을 떴을 때, 앞에는 카일리가 우뚝 서 있었다. 스테파니는 구세주라도 만난 듯 외쳤다.

“카일리!”

앞에 선 카일리는 빙긋 웃고 있었다. 아직 의문이 해결되지도 않았는데 반가움에 울컥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스테파니는 자기도 모르게 카일리에게 안기려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카일리가 물었다.

“너 대체 뭐 하는 거야?”

“뭐?”

“뭐하는 거냐고.”

“난…….”

왜 함부로 던전에 들어왔냐고 묻는 걸까. 그러나 그런 어조는 아니었다. 오히려 정말,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궁금해서 묻는 듯한 느낌.

스테파니는 싸늘한 위화감을 느끼며 주저앉은 채 엉덩이를 뒤로 빼 카일리로부터 멀어지려 했다. 카일리는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다. 뱀들도 쉭쉭거리며 주위를 둘러쌀 뿐, 공격할 기미가 없었다. 스테파니가 더듬더듬 중얼거렸다.

“카, 카일리. 왜……. 카일리 맞아?”

“하하, 하하하!”

카일리가 고개를 위로 쳐들더니 미친 듯이 웃어젖혔다. 스테파니는 달아나려고 다리에 힘을 주었으나 몸이 뜻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허공을 보며 마구 웃던 카일리가 다시 스테파니 쪽으로 얼굴을 내렸을 때, 그녀의 입은 이미 눈꼬리까지 쭉 찢어져 있었다. 흡, 스테파니가 공포에 차 숨을 들이켰다.

스마일맨.

“카, 카일리, 도와 줘. 카일리…….”

스마일맨의 입이 점점 커져 머리통 자체를 먹어치우는 걸 보며, 머리통이 하나의 검은 구멍이 되는 걸 보며 스테파니는 줄줄 눈물을 흘렸다. 다시 보지 못할 끔찍한 광경 앞에 몸이 떨렸다. 스테파니는 지금 떠오르는 단 하나의 이름을 외쳤다.

“카일리!”

바로 그 순간, 눈앞에서 스마일맨의 몸이 세로로 쭉 갈라졌다. 양옆으로 천천히 무너지는 스마일맨 사이로, 진짜 카일리가 숨을 헐떡이며 서 있었다. 발치의 뱀 몬스터가 달아나듯 흩어져 버렸다.

“스테파니.”

카일리의 어깨와 가슴팍이 가쁘게 오르내렸다. 스테파니는 땀에 푹 젖은 몸을 떨며 언니를 올려다보았다. 카일리의 손에는 스마일맨을 두 동강 낸 어둠의 검이 들려 있었다. 카일리의 특기는 어둠. 눈에 익은 언니의 검. 스테파니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카일리……. 카일리, 나…….”

“미안해. 미안해, 스테파니. 그때 너 놓쳐서 미안해.”

카일리가 달려들어 그대로 스테파니의 몸을 안았다. 그녀 역시 울고 있었다. 스테파니는 온몸의 긴장을 풀고 그대로 무너지듯 울음을 쏟았다.

“미안해. 다시는 안 놓칠게. 미안해, 미안해…….”

스테파니는 대답 없이 카일리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다시는 놓치지 않을 것처럼, 힘껏.

그리고 그 순간, 카일리의 머릿속으로 뭉텅 잘려 나갔던 기억이 하나씩 돌아왔다. 마치 길게 늘어선 초에 불이 붙듯 차례차례, 느리게, 또 확실하게.

스마일맨이 자신의 모습을 뒤집어쓰고 스테파니 뒤를 따라가는 게 보였다. 뛰다가 지쳐서 걷고, 그러다가 다시 뛰고, 고속 이동 스킬을 사용해 계속 나아갔지만 스테파니와의 거리를 좁힐 수가 없었다.

스마일맨은 가끔 뒤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입이 눈꼬리 아래까지 쫙 찢어지는 웃음이었는데, 스테파니는 그걸 보지 못하고 신이 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바빴다.

그렇게 ‘그 일’이 벌어졌다. 카일리 모습을 한 몬스터가 트랩을 건드렸고, 땅이 쩍 갈라지며 크레바스가 열렸다.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흔들려서, 스테파니가 넘어질 듯 휘청하더니 용케 균형을 잡았다. 그러더니 아무것도 모르고 스마일맨을 향해 말갛게 웃었다. 그리고 이게 대체 뭘까, 하며 균열 쪽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카일리는 스테파니 쪽으로 뻗어가는 스마일맨의 손을 보았다. 안 돼, 하지 마, 조심해. 허겁지겁 쏟은 말은 스테파니에게 닿지 못했다.

스마일맨은 그대로 스테파니의 등을 톡 밀었다. 아주 가볍게, 톡. 마치 도미노 하나를 밀어 넘어뜨리듯이.

크레바스 쪽으로 달려가던 카일리를 스마일맨이 가로막았다. 몬스터의 입이 그대로 머리를 먹어치우더니, 얼굴 전체가 검은 구멍으로 변했다. 흡입구가 둥근 청소기처럼 모든 걸 빨아들이는 구멍이었다.

죽는다, 그렇게 생각하며 버티다가 순간 정신을 잃었다. 아주 잠깐이었던 것 같다.

눈을 떴을 때 카일리는 축축한 흙바닥에 뺨을 댄 채였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이미 크레바스는 닫힌 뒤였고, 스테파니 역시 찾을 수 없었다.

S급 헌터라면서, 동생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고통을 피하기 위해 그녀의 머리는 허겁지겁 기억을 지우고 뭉개 버렸다.

그리고 바로 지금, 모든 상황이 마치 방금 겪은 듯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카일리는 차마 스테파니에게 이런 이야기를 털어 놓을 수 없었다.

“앞으론 내가 꼭 지켜 줄게.”

스테파니는 아마 오래도록 이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카일리는 다시 다짐했다. 반드시, 세아를 도와 시스템을 죽이겠노라고.

13.64

세아와 리웨이는 아이템을 타고 날아온 올리버를 데리고 뛰었다. 함께 뛰는 이준은 덤이었다. 사색이 되어 달려온 올리버 덕분에 카일리가 제때 달려갈 수 있었는데, 세아와 리웨이는 올리버를 챙겨야 해 도착이 늦어졌다.

세아는 부둥켜안은 채 엉엉 울고 있는 자매의 모습을 확인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다른 위험 요소는 없었다. 커다란 뱀도 다 사라졌고, 다른 몬스터가 다가오는 느낌도 전혀 없었다.

세아는 자기 옆에 꼭 달라붙는 올리버의 머리를 대강 쓸어 주며 리웨이에게 물었다.

“별문제 없는 것 같죠?”

“그러네.”

그새 소환수를 불러 가까운 곳을 다 돌아보고 오게 한 리웨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다음 올리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긴 도대체 왜 온 거야?”

영어로 물은지라 당연히 알아들었을 텐데, 올리버는 대답 대신 세아의 품에 고개를 묻었다. 스킬도 못 쓰는 상태의 헌터와 여기까지 온 올리버를 칭찬할 마음은 없었지만, 그래도 세아는 그의 어깨를 다독여 달래 주었다. 올리버가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미안해. 이럴 줄 몰랐어. 미안, 세아.”

“던전 처음이지?”

세아는 괜찮다고 하는 대신 그렇게 물었다. 올리버는 울음을 참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은 네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해. 어른 헌터도 쉽지 않은 곳인데 넌 너무 어려.”

“난…… 나도 세아 파티 하고 싶었어.”

세아는 바로 답하는 대신 잠시 망설였다.

파티에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올리버에게는 그게 참 중요한 문제인 듯했지만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소속감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무조건 안 된다고 하니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 세아는 몸을 낮춰 올리버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럼 우리 파티 하자.”

“정말? 정말이야?”

기가 죽은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올리버는 눈을 빛내며 두 손을 맞잡았다. 옆에 있던 리웨이가 열세 살짜리 애한테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세아는 모르는 척 말을 이었다.

“파티라고 꼭 다 같이 던전에 가는 건 아니야. 뭔지 알아?”

“아니.”

올리버의 얼굴에 조마조마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함께 다닐 생각에 들떴다가 실망한 모양이었다. 세아는 재빨리 설명했다.

“유명한 길드는 던전 공략팀과 후방 지원팀을 같이 운영해. 파티도 마찬가지야. 나나 다른 어른들이 던전 안으로 직접 들어가서 몬스터를 잡는다면, 넌 뒤에서 우리한테 힘을 보태 주면 돼. 아이템도 좋고, 포션을 챙겨 줘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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