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의 히든 퀘스트-61화 (61/112)

61화.

13.68

혜진은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세아 씨! 무슨 일 있나 했어요.”

“네? 왜요?”

갑작스러운 혜진의 말이 의아했다. 가운을 입은 채 침대에 앉아 있던 세아는 흘끗 거울 속을 살폈다. 덜 마른 머리카락과 물방울이 흘러내리는 목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를 말리고 전화할 걸 그랬나, 태평한 생각이 스쳤다.

“사실 한국 헌터 협회에서 한국 길드에 연락을 돌렸거든요.”

“아. 그래요? 뭐래요?”

“세아 씨한테 협력하지 말라고요.”

“뭐, 다른 말은 없었고요?”

최초의 버그니 뭐니 하는 소리까진 하지 않은 모양이다. 하긴, 거기까지 알렸다면 지금 이렇게 조용할 리 없다.

‘최초의 버그’에 대해 대외적으로 알려진 건, 그 존재 때문에 시스템 속성 변종 몬스터가 출현한다는 것. 진실은, ‘최초의 버그’로 추정되는 세아가 시스템 살해 퀘스트를 받았다는 것. 전자만 알려지면 세아는 공공의 사냥감이 되고, 후자가 알려지면…….

세아는 픽 웃었다. 어느 쪽이든 크게 다르지 않을 듯했다.

“그냥 거기까지만 얘기하더라고요. 비협력 헌터라고, 세아 씨가 도움을 요청하면 협조하지 말라고…….”

“그래서 협조 안 해 줄 거예요? 나 부탁 있어서 전화했는데.”

세아는 장난스럽게 물었다. 옆에 앉은 이준을 흘끗 보니 표정이 더없이 덤덤했다. 자기 때문에 이런다는 걸 알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이 혜진이 답을 주었다.

“당연히 도와드리죠. 그리고 높은 등급 헌터들은 협회 말에 신경 안 써요. 다들 협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뭐, 낮은 등급이야 협회가 중요하지만 등급 높아질수록 각자 살 수 있으니까요. 음, 그건 그렇고, 사실 오늘은 세뇌 스킬에 대해서 좀 물어보려고요. 아는 사람이 세뇌 스킬에 걸렸거든요.”

핸드폰 너머에서 혜진이 숨을 들이켜는 게 느껴졌다. 곧 혜진이 차분하게 물었다.

“약이 필요해요? 세뇌 상태를 깨는 약이 있긴 한데.”

“아, 이거 S급 스킬이라 약으론 안 될 거예요.”

“S급 세뇌 스킬이라니……. 그럼 설마…….”

“맞아요, 오스카 짓이죠.”

혜진은 들릴락 말락 한숨을 내쉬었다.

“악질한테 걸렸네요. 오스카 워낙 유명하잖아요.”

“그래요?”

금시초문이다. 10년씩 반복해서 살 때도 오스카에 관한 소문은 거의 듣지 못했는데. 딱히 친분도 없었고, 공식 석상에서 만날 일도 드물어서 얼굴마저 가물가물한 상대였다. 그런 그가 ‘악질’로 유명했다니.

혜진이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 갔다.

“세뇌 스킬이 사실, 잘못 사용하면 범죄잖아요. 아니, 어떻게 사용해도 범죄죠. 보통은 몬스터를 길들이는 데 쓰는데…… 오스카 헌터는 자꾸 사람한테 그 스킬을 사용했어요. S급 헌터만 아니었다면 진작 감옥에 갔을 거예요.”

“아아. 전혀 몰랐네요.”

“카일리 헌터랑도 그래서 멀어진 걸로 알고 있어요.”

세아는 음,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일리와 오스카가 각별한 사이였던 건 알고 있다. 그와 가까워지고 싶어 카일리가 독일어까지 배웠다는 것도 세아는 알고 있었다. ‘국경을 초월한 우정’, 대강 그런 헤드라인의 기사를 몇 번 본 듯도 했다.

“언젠가부터 그 두 사람에 대한 기사가 안 났거든요. 관심 없는 사람들은 모르지만 우리는 길드라서 S급들 정보를 계속 수집하니까요.”

확실히 이 세상은 정상이 아니다. S급 헌터는 사람을 세뇌해도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는다. 하긴, S급 헌터에 한해 과실치사도 무죄로 처리할 때가 대부분이니 세뇌야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잡념을 떨치며 세아가 물었다.

“그럼 지금까지 오스카가 세뇌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됐어요?”

“실종됐어요.”

시선을 옆에 앉은 이준에게로 돌렸다. 핸드폰을 타고 혜진의 목소리가 들릴 것이다. 세아는 통화 음량을 조금 낮췄다.

“왜요?”

“그것까진 몰라요. 그냥 다들 사라졌어요.”

죽었을 가능성이 크다. 혜진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세뇌’라는 건 사실 끔찍한 능력이다. 원래는 혜진의 말대로 몬스터를 길들이는 용도로 주로 사용했다. 사람 역시 세뇌할 수 있다는 게 알려진 뒤부터는 악용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혜진은 곧 오스카 이야기를 그치고 차분히 이야기했다.

“일단 세뇌 스킬 사용 가능한 헌터한테 물어볼게요. 그리고 그 세뇌된 사람…… 친한 사람이에요?”

“그건 왜요?”

친하다고 하기도, 친하지 않다고 하기도 애매해 세아는 되묻기를 택했다.

“걱정돼서요. 세뇌 스킬에 당하면 보통은 엄청 고통스럽거든요. 약을 먹고 원래대로 돌아와도 정상 생활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좀 오래 세뇌 상태였으면 재활은 필수고요.”

“그 정도예요?”

재활이 필요할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준은 그리 심각해 보이지 않는데, 수면 아래서는 어떤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래도 오스카가 멀리 있다니 다행이에요. 스킬 시전자와 가까이 있을수록 강한 영향을 받거든요.”

“그래요……. 아마 오스카가 곧 찾아오겠네요.”

세아는 오히려 그걸 기다리고 있었다. 혜진은 잠시 침묵하더니 부드러운 어조로 대답했다.

“일단 세뇌 관련된 건 알아본 다음에 연락드릴게요. 몸조심하고요.”

전화가 끊어졌다. 세아는 핸드폰만 멍하게 내려다보다가 이준을 살폈다. 가끔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나아졌지만 뭘 더 도와줄 수 있는지는 정말 모르겠다. 일단은 혜진의 연락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듯했다.

13.69

[재활 센터 지침 – 세뇌 및 세뇌 후유증 환자

1. ‘평범한 일상’을 자주 경험하게 한다. 세뇌에 걸린 사람은 내내 전쟁 중이다. 평온한 일상을 반복적으로 겪으면 회복할 수 있다.

2. 음식과 물을 자주 먹인다. 세뇌에 걸리면 보통 자기 스스로를 위한 행위를 많이 하지 않는다. 먹고 마시라는 세뇌에 걸린 게 아니라면 영양분과 수분을 충분히 공급해 줘야 한다. 몸이 지치지 않아야 정신도 힘을 낸다.

3. 자주 말을 건다. 혼자 가만히 있으면 자기 생각에 집중하게 되는 것처럼, 세뇌에 걸린 사람도 혼자 조용히 있을 때 더 큰 고통을 느낀다.]

13.70

일반 퀘스트 보상, 감자가 우편으로 도착했다.

세아 일행은 그 감자를 찌고, 볶고, 튀겨서 도시락을 만들었다. 요리하는 걸 제대로 본 적이 없는 올리버는 신기한 얼굴로 내내 주방을 구경했다. 오해를 푼 스테파니도 제법 의욕이 생긴 듯 올리버와 함께 앉아 있었다.

도시락을 싼 그들은 아이들까지 데리고 소풍을 나갔다. 말이 좋아 소풍이지, 정이준 회복 프로젝트나 마찬가지였다. 혜진이 보내 준 재활 센터 지침을 본 세아가 함께 나들이를 가자고 제안한 것이다.

파란 하늘, 끝을 모르고 펼쳐진 잔디밭, 시원한 나무 그늘. 올리버는 이 모든 게 즐거운 듯 혼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세아 옆으로 돌아왔다. 조용히 음식을 먹는 소년을 보며 세아는 나오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카일리 또한 무척 만족한 듯했다. 돗자리에 누워 기지개를 켠 후, 카일리가 혼잣말을 했다.

“오랜만에 진짜 느긋하다.”

힘겹게 던전을 공략하고 났더니 이런 순간도 온다. 카일리는 스테파니와 나란히 누워 깜빡깜빡 졸기 시작했다. 잠시 그녀를 보던 세아가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카일리, 너 예전엔 오스카랑 친하지 않았어?”

“응? 그건 왜?”

카일리는 잠이 확 깬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누운 채로 눈만 굴려 앉은 세아를 올려다보았는데, 얼굴에 깔린 긴장감이 보였다. 이준을 세뇌시킨 오스카, 세아를 죽이려 하는 오스카와 한패라고 의심 받는다고 여긴 듯했다.

세아는 진정시키듯 두 손을 저었다. 그저 잡담처럼 물은 것이라 분위기가 심각해지는 건 바라지 않았다.

“아니, 그냥 예전에 그런 기사 몇 번 봤던 것 같아서.”

“친했었지. 근데 얼마 못 갔어. 그래도 독일어는 배웠으니까.”

“왜 멀어졌어?”

이 말에 답한 건 카일리가 아니라 리웨이였다.

“그런 걸 왜 물어 봐.”

“아니야, 물어 봐도 돼. 같이 던전 갔는데 파티원 중 하나한테 세뇌 스킬 걸려고 하더라고. 그냥 재미로 간 던전이었는데.”

그래서 왠지 무서워서 멀리했어, 그렇게 덧붙인 카일리가 흘끗 이준의 옆얼굴을 살폈다. 그는 꽤 평화로운 표정으로 세아 옆에 앉아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잔디를 내려다보는 모습은 우수에 잠긴 듯 애처롭기까지 했다.

카일리는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괜찮은 거야? 이런 게 진짜 효과가 있을까?”

“그래도 확실히 요즘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 이준아, 감자 구운 거 먹어.”

세아는 싸 온 음식을 먹이고 물도 마시게 했다. 세아로부터 몇 가지 행동 지침을 들은 카일리와 리웨이도 어색하게나마 그에게 말을 붙였다. 그 덕인지 이준의 얼굴도 한결 편안해 보였다. 세아는 이준이 음식을 다 씹어 삼키는 걸 확인한 후 리웨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이번엔 운이 좋았어요. 정화 스킬 없이도 시스템 던전을 돌파했으니까.”

“맞아, 이런 보상도 받고.”

카일리는 감자튀김을 씹으며 맞장구를 쳤다. 보상은 이게 전부가 아니지만, 세아와 리웨이는 약속한 대로 입을 다물었다.

“스마일맨은 카일리가 처리했지만 사실 완전히 죽지는 않았을 거예요. 정화 스킬로만 완전히 없앨 수 있다니 골치 아프긴 하죠. 물론 예전에는 톱니바퀴 사이에 끼워서 으깨 버린 적도 있긴 한데…… 늘 그럴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문제긴 문제야. 그런 몬스터가 하나 나타나면 너무 위험하니까.”

리웨이는 한탄하듯 말을 받았다. 그때 옆에서 조용히 앉아 음식을 먹던 올리버가 고개를 들었다.

“나, 아이템 만들었어.”

뜬금없는 소리라 모두 잠시 조용해졌다. 뭘 만들었느냐고 묻기도 전에 올리버가 주머니에서 동그란 아이템을 꺼냈다. 화재 감지기 모양이라 그리 특별한 아이템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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