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스마일맨이 근처에 있으면 울리는 경보기야.”
“그래? 범위가 어느 정도야?”
세아가 관심 있게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 올리버는 또박또박 대답했다.
“20미터 정도. 아직 완벽하지는 않아. 시험해 보지 못했거든. 그 던전에서 돌아온 다음에 만든 거니까…….”
사실 올리버가 이 아이템을 만든 데는 이유가 있었다.
언니에 대한 오해를 푼 스테파니는 꽤 가깝게 지낸 올리버에게 자기 사연을 말해 주었다. 올리버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몬스터 하나 때문에 이런 오해가 생길 수 있을까?
그는 부모도 형제도 없지만, 만일 있다면 정말로 소중히 여길 것이다. 몬스터에게 당해 가족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특히 세아와 세아의 파티원도 안전하기를 바랐다.
올리버는 이 이야기를 구구절절 털어놓진 않았다. 너무 어릴 때부터 혼자였던 그는 그런 방법을 몰랐으므로.
그때, 세아가 올리버를 보며 살짝 웃었다.
“우리 위험할까 봐 만들어 줬구나. 고마워.”
잘 만들었다고, 어떻게 하루 만에 이런 걸 만들었냐고, 역시 천재라고, 영국 협회에서 듣던 칭찬보다 세아의 한마디가 더 기뻤다. 고마워. 올리버는 눈을 깜빡이며 세아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음이 저려, 울어서 시원해지고 싶었다. 무슨 마음인지도 모르는 채로.
그때, 카일리가 고개를 쑥 빼 아이템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어떻게 작동하는 거야?”
“아, 이 스위치를 누르면…….”
올리버는 경보기 가운데 동그란 버튼을 달칵 눌렀다.
삐삐삐―
사이렌보다 더 다급한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올리버는 귀가 찢어질 듯한 소리를 내는 아이템을 들어 보이며 자랑스럽게 선언했다.
“이러면 근처에 스마일맨이 있다는 뜻이야!”
그리고 그 순간, 세아를 비롯한 모두가 마법에 걸린 듯 굳어 버렸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세아였다. 반경 20미터 안. 100미터도 50미터도 아니고 고작 20미터. 시야에 환히 들어오는 거리다. 그러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 소란에 관심 없는 듯 멍한 이준, 세아처럼 주위를 경계하는 리웨이, 사색이 된 카일리, 놀란 짐승처럼 펄쩍 뛰어오른 스테파니.
카일리가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럼 지금 우리 중 하나가……?”
카일리는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카일리는 리웨이를, 리웨이는 스테파니를, 스테파니는 이준을 바라보았다.
당황한 올리버는 아이템 작동을 멈추었다. 날카로운 경고음이 뚝 멎은 후 그는 놀란 듯 세아를 바라보았다.
“자, 잘못 만들었나 봐.”
“확실해, 올리버? 중요한 문제야.”
“모르겠어……. 시험해 본 건 처음이라…….”
올리버는 한참 아이템을 만지작거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사실 이건 시험 삼아 만들어 본 거야. 그러니까 틀렸을지도 몰라. 나, 나라고 늘 완벽하게 제작하는 건 아니야.”
카일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사람을 둘러보았다.
“틈이 없었잖아. 우리 중 하나가 스마일맨이려면 바로 직전 던전부터 따라왔어야 해. 그런데 보이는 스마일맨은 내가 임시로 처리했고 그 뒤로 곧장 나왔으니, 아마 아이템이 오작동 했을 거야.”
“근데 왜 넌 나 쳐다봤어?”
리웨이가 덤덤한 어조로 물었다. 카일리는 머쓱한 듯 자기 머리를 만지며 중얼거렸다.
“아니, 마지막까지 그 던전에 있었으니까…….”
“세아도 마찬가지잖아.”
“세아는 왠지 그런 거에 안 당할 것 같거든요.”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리웨이가 픽 웃었다. 의심했다고 기분이 상한 것 같진 않아 다행이었다.
세아는 이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무언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올리버가 만든 아이템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가 내내 조용하자 다른 사람들도 하나씩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시선을 돌렸다. 심지어 이준마저 세아의 입술에 눈을 고정했다.
카일리가 가만히 물었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그래? 그럼, 한 명씩 여기서 멀리 떨어져 볼까?”
세아는 깊고 검은 눈으로 카일리를 잠시 바라보았다. 세아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스쳤고, 그녀는 곧 가벼운 몸짓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필요까진 없을 것 같아. 아이템이 잘못 만들어질 때도 있지. 사실 스마일맨이랑 사람이랑 구분하기 힘드니까, 만약 네 말대로 했다가 괜한 사람을 죽이게 될 수도 있잖아.”
그렇게 되면 파티는 완전히 끝장이다. 모두 세아의 말에 동의했다.
분위기가 다시 느긋하게 풀어진 후 모두 음식을 먹기 시작했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화가 찾아왔다. 올리버만 자기가 만든 아이템을 분해해 보며 어디가 잘못되었을까 고민하느라 바빴다. 카일리가 그런 소년 쪽으로 목을 빼며 격려했다.
“너무 실망하지 마. 그런 아이템 만들겠다고 생각한 것만으로도 엄청 대단해. 난 그런 게 아이템으로 가능할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실망 안 해.”
올리버가 아이답지 않은 덤덤한 투로 대답했다. 고개까지 저으면서.
“그냥 궁금해서. 뭘 잘못한 건지.”
“올리버, 혹시 내 스킬은 아이템으로 어떻게 못 해?”
카일리 옆에 붙어 있던 스테파니가 슬쩍 물었다. 아닌 척하지만, 카일리도 내심 기대를 품고 올리버의 대답만 기다렸다. 올리버는 난처한 얼굴로 그들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더 친밀한 스테파니 쪽을 보고 말했다.
“그건…… 잘 모르겠어.”
모르겠다고는 했지만 안 된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스테파니는 실망을 감추며 애써 활기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하긴, 내가 노력해야겠지?”
“도와줄게, 스테파니.”
카일리는 다정한 언니처럼 동생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스테파니는 장난스럽게 코웃음을 쳤다.
“제작 스킬도 없으면서 뭘 도와줘? 엄청 기본인 채집 스킬 랭크도 낮으면서.”
“뭐? 에잇!”
카일리가 와락 스테파니에게 달려들어 간지럼을 태웠다. 스테파니가 벌렁 뒤로 넘어지며 데굴데굴 굴러 언니를 피했다. 둘은 돗자리 밖의 잔디밭까지 굴러 가며 장난을 쳤다. 맑은 웃음소리가 먼 하늘까지 번져가고, 그 모습을 부러운 듯 바라보던 올리버는 다시 아이템에 몰두했다.
세아는 태연하게 이준과 앉아 있었다. 일상의 감각을 늘려 주라는 조언은 효과가 있었다. 거의 잠을 자지 않던 이준이 처음으로 한낮에 누워 낮잠에 빠진 것이다. 세아는 물론이고 리웨이와 카일리도 깜짝 놀랐다.
시간이 지나 짐을 챙겨 돌아갈 때쯤, 세아가 올리버에게 말을 걸었다.
“올리버, 혹시 그거 나 줄 수 있어? 기념으로.”
“고장 난 건데?”
“그래도 네가 우리 파티 된 다음에 만든 첫 아이템이잖아. 영국 협회 밖에서 만든 첫 아이템.”
세아가 빙긋 웃으며 말하자 올리버는 새삼 감동한 표정이 되었다. 그는 아이템을 다시 조립해, 아무 의심 없이 세아에게 건네주었다. 세아는 고맙다고 인사한 후 이준에게도 아이템을 구경시켜 주었다. 리웨이는 내내 그런 세아를 주시했다.
그때, 올리버가 세아 옆으로 다가와 불쑥 말했다.
“저번에 그 아이템 있잖아. 이 헌터한테 귀속된 아이템.”
“아, 그거.”
“아직 내가 가지고 있는데……. 지금 줘 볼까?”
어린 올리버가 보기에도 이준의 상태가 많이 나아진 모양이었다. 그의 호기심은 이해했지만 세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중요한 아이템이니까 완전히 나은 다음에 주자. 어때?”
“그래, 그럼 내가 좀 더 볼게.”
그러라고 한 후, 세아는 올리버가 만든 스마일맨 감지기를 슬쩍 가방에 넣었다. 이쪽을 유심히 보던 리웨이와 눈이 마주쳤지만 부러 시선을 모르는 척했다. 곧 세아가 명랑하게 말했다.
“이제 슬슬 갈까?”
13.71
방으로 들어온 후, 세아는 한참 아이템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가 대충 침대 어디쯤 던져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누나, 괜찮아요?”
“어? 응. 괜찮지.”
사실 이준이 갑자기 말을 걸어 놀랐다. 요즘은 종종 대화가 가능하지만 그래도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바라보니 이준은 맞은편 바닥에 앉아 세아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표정이 안 좋아서요.”
“아아.”
세아는 손을 더듬어 팽개친 아이템을 다시 들었다.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모든 일이 어렵다. 히든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해 애쓰는 동안, 어려운 일만 늘어 간다. 전에는 그냥 내키는 대로 살고 적당히 지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시스템 보스 던전을 공략하는 것만 해도 쉽지 않고…….
그러고 보니 이준의 정화 스킬 강화 방법도 확인해야 한다. 그때 정화 스킬 강화 방법이 새로 나타났는데, 글자가 외계어처럼 깨져서 나왔다고 했다. 시스템 개입 때문이었다면 지금은 확인할 수 있을 텐데.
슬쩍 이준을 보았으나 지금은 묻기 좋을 때가 아닌 듯했다. 급한 일도 아니고. 세아는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털어 버렸다.
그때, 밖에서 누군가 노크했다. 세아는 상체를 일으키며 말했다.
“누구세요?”
“나야.”
문이 빠끔 열리고 리웨이가 얼굴을 보였다. 세아는 그녀가 찾아올 걸 짐작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리를 침대 아래로 내렸다. 그런 다음 스마일맨 감지기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이거 때문에 온 거죠?”
“그래.”
안으로 들어온 리웨이가 등 뒤로 문을 닫았다. 이준을 흘끗 본 리웨이는 약간 놀란 듯 굳어 버렸다.
“눈이 멀쩡하네?”
“요즘은 상태가 괜찮아요. 오늘 나갔던 것도 효과가 있는 것 같고요.”
그래도 이 상태를 오래 유지하진 못할 것이다. 이준은 곧 다시 멍하고 맹목적인 디버그 헌터로 돌아갔다. 세아는 자기 옆에 앉는 리웨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리웨이, 의심 가는 사람 있죠?”
“그래. 아이템이 고장 난 건지 아닌지는 지금 시험해 봐도 되니까.”
세아는 질질 끌지 않고 곧장 버튼을 눌렀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방은 마치 아무도 없는 듯 고요했다. 세아가 다시 버튼을 누르자 달칵, 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아이템을 내려놓은 세아는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발치만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