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의 히든 퀘스트-65화 (65/112)

65화.

그녀는 느리게 고개를 움직여 스마일맨을 보았다. 갑자기 이 괴기스러운 몬스터에 대한 공포가 씻은 듯 사라졌다. 뇌가 깨끗하게 빈 듯 멍했다. 그녀는 딱 한 마디밖에 낼 수 없었다.

“뭐라고?”

“다. 잡아먹어. 전부!”

스마일맨은 즐거운 듯 하하 웃더니 더없이 가벼운 몸짓으로 등을 돌렸다. 이제 할 말이 없다는 듯. 따라가려면 따라갈 수 있었다. 뛰어가서 어깨를 잡아채고 그게 무슨 소리냐고 따져 물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스테파니는 돌이 된 듯 굳어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눈도 깜빡일 수 없었다.

‘어서 나가서 다 잡아먹어!’

흥에 취한 스마일맨의 재촉.

언젠가 저것과 똑같은 생각을 한 적이…….

스테파니는 천천히 두 손을 들어 자기 뺨에 댔다. 만질만질한 살결, 인간의 피부가 느껴져야 하는데 손끝이 축축해졌다. 스테파니는 자기가 입속에 손을 집어넣었다는 걸 알았다.

그녀의 입이 눈꼬리 아래까지 쭉 찢어져 있었다.

“…….”

순식간에 눈이 뜨거워졌고 목구멍이 좁아지는 듯 답답해졌다. 스테파니는 으, 어, 어억, 기괴한 소리를 토막토막 쏟으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런 다음 미친 듯이 자기 얼굴을 더듬기 시작했다.

부인할 수 없다. 분명히 입이다. 입이 자꾸 커지려 했다, 자꾸 커져서 얼굴을 씹어 삼키려 했다.

“아, 안 돼. 안 돼, 안 돼, 싫어, 싫어…….”

눈물이 후드득 쏟아졌다. 스테파니는 계속 벌어지는 입을 닫으려 두 손을 급히 움직였다. 그러나 턱이 고정된 양 도저히 입을 다물 수 없었고, 초승달 모양이던 입은 점점 차오르는 달처럼 크기를 키울 뿐이었다.

“싫어, 싫어! 난 스테파니야! 난 스테파니야, 스마일맨이 아니야!”

마구 비명을 지르자 입에서 침이 튀었다. 이것도 입이라고, 침도 있고 혀도 있다. 얼굴을 씹어 삼키기 위한 이빨도 있다. 스테파니는 미친 것처럼 방방 뛰다가 다른 이름을 입에 담았다.

“카일리, 카일리! 카일리! 카일리, 카일리!”

언니의, 언니라고 생각한 사람의 이름 말고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도와달라고 할 것인가. 버리지 말라고, 당신 동생의 기억이 모두 남아 있으니 쭉 지금처럼 지내자고 할 것인가.

스마일맨이면서.

몬스터면서.

스테파니를 잡아먹고 그 형상을 취한…….

“스테파니!”

먼 데서 외침이 들렸다. 잔인한 구원처럼.

그 순간, 입이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걸 느끼자마자 스테파니는 가슴이 무너지도록 안도했다. 귀에서 거센 이명이 울리며 몸이 휘청했다. 그대로 무릎이 꺾이고 바닥으로 쓰러졌는데, 그러자마자 앞에 카일리가 나타났다.

“스테파니, 여긴 또 왜 왔어. 여긴 왜!”

카일리가 와락 자신의 몸을 안았다. 스테파니는 눈물과 침에 젖은 얼굴을 언니의 어깨에 묻었다.

착각하고 말았다. 이 기억을 가지고 너무 오래 지내서, 정말 자신이 스테파니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도 그 믿음을 버리지 못하겠다. 스테파니의 기억, 스테파니의 감정이 모두 이 가슴 안에 있다.

이게 어떻게 거짓이란 말인가. 이게 왜 거짓이란 말인가.

카일리의 어깨 너머로 세아와 리웨이의 얼굴이 보였다. 세아의 눈은 벼린 칼처럼 서늘했다. 스테파니는 떨면서 고개를 틀어 그 시선을 피했다.

13.76

다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스테파니는 간단한 말로 상황을 정리했다.

“뭐 잃어버린 게 있어서 혹시 던전에 떨어뜨렸나 하고 갔어.”

세아도 리웨이도 참 말도 안 되는 핑계라고 생각했지만, 카일리는 동생의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대신 동생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그럼 같이 가자고 하면 되지. 여기가 얼마나 위험한데 혼자 와. 아무리 공략이 끝났어도 던전은 던전이란 말이야.”

“카일리.”

스테파니가 갑자기 카일리의 이름을 부르더니,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런 다음 우뚝 멈춰 섰다. 카일리는 세아와 리웨이에게 먼저 가라고 손짓한 후 스테파니와 둘이 남았다.

“응.”

“나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안 궁금해?”

“저 던전에서? 진짜 위험했어. 그래도 제때 도착해서 다행이야.”

스테파니는 울음을 참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꾹꾹 눌러 담듯 또박또박 느리게 말했다.

“저기 말고…… 약초 던전에서.”

그 시절의 기억이 하나씩 돌아온다. 지금까지는, 스스로 던전 생태계를 이용해 살아남았다고 믿었다. 거긴 나름대로 먹을 만한 것도 있고 자신은 제작 스킬도 능란하게 다루니까. 충격으로 잘 생각은 안 나지만 분명 그렇게 생존했을 거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그저 망상에 불과했다.

카일리는 잠시 스테파니를 바라보다가 무구하게 답했다.

“그런 게 뭐가 중요해.”

“…….”

“네가 지금 여기 살아 있다는 거, 그게 제일 중요하지. 난 그거면 됐어.”

스테파니의 몸이 잠깐 떨렸다. 순간 카일리는 그녀가 자신의 품에 안길 거라고 생각했다. 분명 그런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스테파니는 온 힘을 다해 스스로를 억제하고, 마치 쓴 약을 삼키듯 속삭였다.

“미안해.”

카일리는 대답하지 않고 동생만 살폈다. 그러자 스테파니가 반복했다.

“미안해, 카일리.”

13.77

스테파니는 더 이상 밤에 정원으로 나오지 않았다. 세아를 두려워하는 게 분명했다. 물론 그런다고 세아가 스테파니를 만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모두가 잠든 밤, 세아는 직접 스테파니의 방으로 올라갔다. 문은 단단히 잠겨 있었다. 세아는 침착하게 타일렀다.

“문 열어, 스테파니. 부수고 들어가기 전에.”

큰 소리를 내겠다는 협박에 스테파니는 문을 열어 주었다.

스테파니는 주눅이 든 얼굴로 문을 연 후, 세아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 침대로 가서 웅크리고 앉았다. 세아는 자리에 앉지도 않고 선 채로 몬스터를 내려다보았다.

“던전엔 왜 갔어. 스마일맨 만나려고?”

“…….”

“그래서 도움이 됐어?”

스테파니는 입을 꼭 다물고 답하지 않았다. 여전히 자기가 인간이라고 생각한다면, 이쯤에서 항변이 나왔어야 한다. 세아는 스테파니 역시 자기 정체를 알게 됐음을 눈치챘다. 세아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중국으로 가. 거긴 크고 사람도 많고, 리웨이가 지낼 곳을 마련하겠다고 했어.”

“부모님은?”

그렇게 묻는 스테파니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세아는 잠시 그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 침묵하다가, 기가 찬 듯 웃었다.

“미치겠네. 너희 부모님도 아니잖아. 몬스터한테 부모가 어딨어.”

냉혹한 말에 스테파니가 고개를 들어 세아를 올려다보았다. 물기 어린 눈동자. 몬스터도 울 수 있구나, 그런 뜬금없는 생각이 세아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원망 어린 표정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하긴 했다.

스테파니가 울음에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물었다.

“부모님 얼굴 한 번만 보면 안 돼?”

“정신 차려. 넌 스테파니가 아니야. 지금 네가 느끼는 감정? 그거 다 스테파니 거야. 근데 웬 부모님을 보겠대?”

“그래도 지금은 내 감정이잖아.”

스테파니의 눈에서 결국 굵은 눈물이 쏟아졌다. 가냘픈 여자아이가 웅크리고 앉아 소리도 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니 가련해 보였다. 세아는 현혹되지 않으려고 일부러 더 모질게 내뱉었다.

“넌 스테파니를 죽였어. 안 그래? 지하에서 혼자 헤매는 스테파니를 발견하고 먹이로 삼았겠지. 그런데 크레바스가 닫히자 올라올 길이 사라진 거야. 내 말이 틀려?”

“…….”

“거기 너무 오래 혼자 있다 보니 헷갈리는 건 알겠는데, 스테파니를 죽인 건 너라고. 근데 뻔뻔스럽게 부모님 얼굴은 왜 봐?”

“하지만 지금은 내가 스테파니야.”

스테파니는 눈을 치뜨고 맹랑하게 받아쳤다. 세아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비웃었다.

“그래? 그럼 지금 가서 카일리한테 말해 봐. 네가 사실은 스마일맨이고, 스테파니를 죽였지만, 지금은 스테파니의 기억과 감정을 다 갖고 있다고. 그러니까 네가 진짜 스테파니라고 주장해 봐, 어디.”

스테파니는 파르르 떨었으나 무어라 대꾸하지 못하고 고개를 무릎 사이에 묻었다. 세아는 그런 그녀에게 중국으로 가는 걸 생각해 보라고, 카일리에게 뭐라고 둘러대면 좋을지도 고민하라고 말한 후 밖으로 나왔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몬스터를 떨쳐 버리는 일인데, 하나도 개운하지 못했다.

지금 스테파니를 죽이지 않는 건 오직 카일리 때문이다. 카일리는 절대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잃어버린 동생을 찾은 줄 알았는데, 사실 동생은 이미 오래전에 죽었다니. 게다가 이제껏 동생인 줄 알고 지낸 건 동생을 죽인 몬스터였다니.

머리 아파……. 세아는 얼굴을 찡그리며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돌처럼 굳어 앉은 이준이 보였다. 이준도 그렇고 스테파니도 그렇고, 힘으로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았다.

13.78

이후 며칠, 스테파니를 지켜보던 리웨이는 떨떠름한 어조로 세아에게 속삭였다.

“저거 저대로 둬도 괜찮아?”

세아는 카일리 옆에 딱 붙어 앉은 스테파니를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점심 식사 시간, 스테파니는 카일리 옆에 틈 없이 달라붙어 밥을 먹었다. 쉴 때도, 놀 때도, 심지어 잠을 잘 때도 카일리 옆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카일리에게 이야기해 자는 방까지 합쳤다. 아무것도 모르는 카일리는 세아와 리웨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저번에 혼자 던전에 갔다 온 후부터 좀 무서운 모양이야. 아직 애라니까, 참.”

흐뭇하게 웃는 카일리에게 차마 진실을 말할 수 없는 두 사람은 그렇구나,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저렇게 언제까지 버틸 수 있다고 믿는 것인지. 이미 무의식에 잠겨 있던 자기 정체를 깨달았으니, 상황이 변하면 언제든 몬스터의 본모습이 튀어나올 것이다. 최악의 경우 카일리까지 잡아먹을지도 모른다.

진짜 어떻게 처리하지. 복잡하게 생각 말고 확 카일리한테 말해 버릴까. 아무것도 모르고 밥만 열심히 먹는 올리버가 부러울 지경이었다.

달걀부침을 먹던 올리버가 세아의 시선을 느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세아, 왜?”

“아무것도 아니야.”

쉬운 거 하나 없군. 세아는 스테파니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는 리웨이에게 진한 동지애를 느끼며 식사를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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