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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의 히든 퀘스트-67화 (67/112)

67화.

세아는 오스카를 유심히 살폈다. 제대로 싸울 줄도 모르고, 남의 정신을 조종해 대타로 내세우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헌터는 어떤 카드를 더 가져왔을까. 아마 그의 능력 특성상…….

오스카가 한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그 순간, 끽끽거리는 울음소리와 함께 하늘이 까맣게 뒤덮였다. 머리 위로 그림자가 덮였고, 새떼가 지나가는 듯 요란한 날갯짓 소리가 지상으로 떨어졌다. 세아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백 마리는 될 법한 새 몬스터가 갈고리 같은 발톱에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늘어나는 칼을 지닌 몬스터, 눈알 폭탄을 던지고 자폭하는 인간형 몬스터, 그리고 얼굴이 검은 스마일맨까지.

“시스템 속성 몬스터를, 정이준 없이 해결할 수 없을까?”

오스카가 빈정거리는 투로 멀리서 물었다.

“정이준은 이제껏 잘 버텼지만, 내가 다가가 손만 대면 성냥개비로 만든 집처럼 무너질 텐데.”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보던 세아가 빙긋 웃었다. 그는 다시 오스카를 똑바로 바라보며 외쳤다.

“야, 고맙다!”

“뭐?”

“이제 마음 놓고 널 죽여도 되겠어!”

몬스터를 길들여 같은 헌터를 공격하다니, 오스카야말로 최종 보스 아닌가. 하늘을 뒤덮은 몬스터 떼를 바라보고 있자니 안도감이 가득 차올랐다.

사실 내내 고민했다. 세아도 막무가내로 사람 목을 자르는 망나니 이미지는 싫었다. 오스카를 죽이긴 하겠지만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내심 고민이 깊었는데, 오스카가 스스로 명분을 만들어 준 것이다. 여기서 오스카를 죽이면 무조건 정당방위다!

세아는 카일리와 리웨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결계로 버틸 수 있죠? 난 오스카 목 좀 자르고 올게요.”

“뭐? 이렇게 바로?”

“그럼 뭘 기다려요?”

놀란 듯 묻는 리웨이도 내버려 두고 세아는 바로 땅을 박찼다. 빠르게 움직이는 데 방해가 되니 결계도 두르지 않았다. 하늘에서 몬스터 비가 내리고 몇 번은 늘어나는 칼에 발목이 잘려 나갈 뻔했지만 그때마다 빠져나갔다.

야차처럼 웃으며 달려오는 세아를 본 오스카가 재빨리 새 몬스터 하나를 잡아탔다. 그의 몸이 하늘로 올라가 버렸지만 세아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몬스터의 울음소리, 바람, 가볍게 움직이는 몸, 모든 게 완벽했다. 세아는 자기의 승리를 확신했다.

뒤에 있는 카일리와 리웨이도 잠시 잊어버렸다. 세아는 그대로 중력 상쇄 스킬을 사용해 땅을 차고 하늘로 솟구쳤다.

“오스카!”

신이 나서 자기도 모르게 환호처럼 외쳤다. 와이어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런 아쉬움이 일었다. 그러나 세아는 계속 아쉬워하는 대신 하늘을 메운 새 몬스터 중 하나에 확 올라탔다.

몬스터는 세아를 떨어뜨리려 미친 듯이 몸부림쳤지만, 세아도 거기 계속 타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그대로 일어나 균형을 잡고 서서, 마치 징검다리를 건너듯 가볍게 몬스터의 등을 밟고 훌쩍훌쩍 이동했다. 이거 되게 신나는데?

세아는 오래 기다리는 동안 겪어야 했던 지루함을 다 털어내기 위해 명랑하게 움직여 오스카를 추격했다. 한 번도 세아와 싸워 본 적 없는 그는 사냥감을 쫓는 듯 맹렬한 기세에 놀라 급히 달아났다.

지상에서 칼이 올라오고, 새들이 공격하고, 시야가 까맣게 가려졌다 다시 밝아지기를 반복했다. 오스카를 따라잡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지만 순간 세아는 묘수를 떠올렸다. 그녀는 목소리를 증폭하여 힘껏 외쳤다.

“카일리, 암흑 스킬 좀 부탁해!”

카일리의 주 속성은 어둠. 카일리와 카일리의 파티를 제외한 이가 모두 어둠이 묻힌다. 마치 눈을 잃은 듯 한 치 앞도 볼 수 없다.

카일리는 세아의 말을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정 구획이 암흑에 파묻혔다. 그러나 세아는 마치 대낮처럼 앞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몬스터의 등을 밟고 펄쩍 뛰어올라 오스카의 등을 덮쳤다.

“아아악!”

갑자기 습격당한 오스카가 비명을 지르며 균형을 잃었다. 그의 몸이 기우뚱하더니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세아는 그의 어깨를 움켜쥔 채 한참을 같이 떨어졌다. 바닥에 닿기 직전에 중력을 상쇄하자 둘의 몸이 사뿐히 풀밭에 닿았다.

세아는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퍽! 퍽! 퍽!

“아, 속 시원해.”

개운하게 중얼거린 세아가 오스카의 멱살을 잡았다. 그녀는 무어라 말을 뱉으려다 생각이 바뀐 듯 다시 주먹질을 했다. 퍽, 퍽, 뼈가 부러지는 감각이 기분 좋았다. 손은 무지하게 아팠지만 그마저도 지금은 시원한 고통이었다.

“새끼야, 뭘 믿고 몬스터만 끌고 와. 나나 정이준이 네 손바닥에서 놀아날 것 같든?”

쾌감이 머리 꼭대기까지 번졌다. 그래도 새로운 전투 경험이었다. 나는 새들의 등을 밟고 오스카를 낚아채다니, 신나긴 했다. 세아는 오스카의 목을 자르기 위해 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바로 그 순간.

“결정 잘 해.”

얼굴이 부어 어눌해진 투로 오스카가 뱉었다. 세아가 되묻기도 전에 그가 말을 이었다.

“날 죽이면 정이준이 원래대로 돌아올까?”

세아의 몸이 딱 굳었다. 오스카는 암흑 속에서도 그녀의 동요를 알아차린 듯, 터져서 피가 흐르는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지금 나 죽으면, 평생 저렇게 살게 될 걸.”

13.81

카일리와 리웨이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둘은 절대 오래 버틸 수 없었다. 시스템 몬스터가 떼로 몰려왔고, 세아는 생각보다 긴 시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암흑 스킬을 사용했는데도 몇몇 몬스터는 방해받지 않고 결계를 향해 돌진했다. 혼자 결계를 유지하던 리웨이가 식은땀을 닦으며 소리쳤다.

“카일리! 암흑 스킬 그만하고 결계 좀 도와줘!”

그 말을 듣자마자 카일리가 기력의 방향을 바꾸었다. 둘의 힘으로 결계는 더욱 단단해졌지만, 늘어나는 칼 수백 개가 몇 번이고 반구형 결계의 표면을 내리쳤다. 리웨이는 아예 결계에 손을 대고 피를 토할 기세로 견뎠다.

“젠장, 오스카 새끼, 이딴 무식한 짓을 왜 해!”

리웨이의 입에서 중국어가 터져 나왔고 카일리는 대답 대신 몸에 더욱 힘을 주었다.

리웨이가 결계 밖에 소환수를 만들어 봤지만 다 소용없는 짓거리였다. 형태가 완성되기도 전에 고깃덩이처럼 으깨져 버렸다. 리웨이는 이를 갈며 소환수 만들기를 포기했다.

세아는 강하고 날렵한 데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마저 없어서 손쉽게 몬스터 떼를 뚫고 나갔지만, 두 사람의 사정은 달랐다. 둘의 실력이 모자라서라기보다는 상대의 머릿수가 너무 많았다. 게다가 쉽게 죽일 수 없는 시스템 속성이다. 둘은 그야말로 고립되어 버렸다.

“정이준은? 걘 괜찮고?”

리웨이가 식은땀을 흘리며 고함치듯 물었다. 반대편에서 결계에 힘을 보태던 카일리도 버럭버럭 외치듯 답했다.

“몰라요! 오스카가 생각이 있으면 걘 공격하지 말라고 했겠죠!”

“세아는 언제 오는 거야. 이러다 결계 깨지면 끝장이야!”

“이 미친놈이 잘못되면 어쩌려고 이렇게…….”

불평을 쏟던 카일리의 입술이 딱 굳었다.

리웨이는 갑자기 결계로 들어오는 힘이 약해지는 걸 느꼈다. 왜 그러냐고, 벌써 기운 빠졌냐고 외치며 돌아보니 카일리는 결계에서 손을 떼고 멍하게 한 지점을 보고 있었다. 리웨이는 목소리를 높여 그녀를 불렀다.

“야, 카일리!”

대체 어딜 보는 거야? 리웨이가 입술을 물며 카일리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 순간, 리웨이 역시 보았다. 작은 키에 왜소한 체구, 몬스터 틈으로 보이는 건 다름 아닌 스테파니였다. 리웨이는 경악하여 카일리를 향해 외쳤다.

“가지 마!”

다음 순간, 카일리가 결계 밖으로 몸을 날렸다. 방어 스킬을 사용했는지 몸 전체가 푸른 기체로 뒤덮였다. 리웨이가 입을 다물기도 전에 카일리의 모습이 몬스터 틈으로 사라져 버렸다.

“카일리!”

카일리는 리웨이의 부름을 듣지 못했다. 그녀는 앞뒤 가리지 않고 앞으로 질주했다. 몬스터의 무기에 팔뚝이 베이고 청바지가 찢어지는데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방어 스킬이 그녀의 머리를 지켜 주었다.

“스테파니! 스테파니, 여기야!”

그녀의 눈에는 작은 동생이 몬스터 사이에 홀로 선 것처럼 보였다. 왜 여기까지 왔을까. 안전한 곳에 있을 줄 알았는데. 카일리는 까맣게 몰려오는 몬스터를 밀고 베며 필사적으로 달려갔다.

스테파니와 눈이 마주쳤다. 스테파니 역시 허둥지둥 카일리를 향해 뛰어왔다. 카일리가 와락, 스테파니의 몸을 안았다. 그런 다음 본능처럼 결계를 둘러 주위 몬스터를 밀어냈다.

“스테파니!”

결계를 마구 두드리는 수십의 몬스터를 무시한 채 카일리가 외쳤다. 방어 스킬도 완벽하진 않은지라, 어깨까지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카일리는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고 동생을 다그쳤다.

“여긴 왜 왔어? 위험하게 여길 왜! 결계도 오래 못 버틴다고!”

“걱정돼서…….”

스테파니는 시체처럼 창백한 얼굴로 겨우 대답했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는 듯해 카일리는 더욱 마음이 아팠다.

“집에 있었어야지. 지금 몬스터가 이렇게 몰려왔는데 대체 왜…….”

“카일리!”

스테파니가 갑자기 버럭 외치듯 언니를 불렀다. 당황 탓에 카일리의 말이 뚝 끊어졌다. 스테파니는 꾹 참던 말을 뱉으려는 듯 눈과 입술에 힘을 주고 카일리를 바라보았고, 카일리는 놀란 얼굴로 물었다.

“왜 그래?”

“나, 나, 할 말 있어.”

“할 말? 꼭 지금…….”

해야 하냐고, 말을 맺기도 전에 쩌적 갈라지는 소리가 귀에 꽂혔다. 스테파니와 카일리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돌아보기를 기다렸다는 듯 칼날이 결계를 쳤다. 거대한 돌에 금이 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결계에 균열이 생겼다.

“스테파니.”

카일리는 본능적으로 동생의 팔을 잡았다.

오래 버틸 수 없다. 원래 결계는 카일리의 특기가 아니다. 몬스터 속에 고립된 상황. 세아는 오스카를 상대하고 있을 테고, 이대로 결계가 깨지고 저 많은 몬스터가 들이닥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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