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의 히든 퀘스트-68화 (68/112)

68화.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는 몬스터가 보였다. 뼈 위에 가죽만 덮인 듯 자글자글 주름이 간 피부. 다 빠지고 한두 개 남은 이빨. 심장이 펄떡펄떡 뛰는 모양이 얇은 거죽 위로 그대로 드러났다. 뱀처럼 늘어나 결계를 치고 또 치는 칼이 어둠 속에서도 선명히 빛났다.

그때, 기적처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야, 카일리!”

리웨이가 거의 구르다시피 하여 카일리의 결계 안으로 들어왔다. 카일리는 구원이라도 받은 양 눈을 번쩍 떴으나, 무리해서 여기까지 오느라 리웨이의 몸도 엉망이었다. 리웨이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피 흐르는 이마를 닦았다.

“너 미쳤어? 갑자기 혼자 나가면 어떡해? 말을 하든가!”

“미안해요. 스테파니가 보여서.”

“어차피 저건!”

리웨이가 욱하는 마음에 소리치다 스테파니와 눈이 마주치고 입을 다물었다. 지금 말하면 카일리의 힘만 빠질 테니 신중해야 한다. 리웨이는 이를 부득부득 갈다가 결계에 힘을 보탰다. 다행히 카일리는 뭐라고 말하려 했느냐고 되묻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스테파니를 어떻게 살려 보내지? 세아만 제때 와 준다면…….’

아니, 아니야. 카일리가 고개를 저었다.

스테파니를 구한 사람도 세아다. 그녀가 트랩을 발견하고, 달아난 스테파니를 찾아 데려오고, 설득해 안전한 곳에 머물게 했다. 이번에는 자신이 언니 역할을 제대로 할 차례였다.

암흑 스킬을 사용해도 움직임에 제약이 없는 몬스터도 많다. 그렇다면 무기를 만들어 차례로 상대하고 스테파니가 지나갈 수 있게 길을 뚫어야 한다.

카일리는 몸에 힘을 주어 지난번에 썼던 검을 만들어 냈다. 어둠으로 이루어져, 근육과 힘줄을 손쉽게 끊을 수 있는 무기였다.

“스테파니, 잘 들어.”

카일리는 동생의 차가운 손을 잡으며 당부했다.

“이제 곧 결계가 깨질 거야. 그럼 내가 저 몬스터들을 상대해서 일자로 길을 낼 테니까 넌 무조건 뛰어가. 뒤도 돌아보지 말고.”

“하지만…….”

“내 말 들어. 난 살 수 있지만 넌 도망가야 해. 왜 여기까지 왔는지는 나중에 말해 줘.”

단호하게 말한 카일리는 리웨이 쪽을 확인했다. 리웨이도 어차피 깨질 결계에 헛되이 힘을 쓸 필요 없다고 느꼈는지,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카일리는 속으로 숫자를 헤아렸다.

결계가 깨지게 두는 것보다는 스스로 거두는 게 낫다.

하나, 둘, 셋. 카일리의 눈앞에서 결계가 파편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몬스터 떼가 우르르 밀려왔고, 카일리는 스테파니의 손을 잡은 채 정면으로 돌진했다. 리웨이도 뒤에서 덮치는 것들을 막기 위해 소환수를 떼로 불렀다.

“으아아아!”

힘을 주어 검을 밀자, 카일리 입에서 저절로 고함이 터졌다. 온 힘을 쏟아부어 만든 검은 끝없이 길어지고 강해지며 앞을 막아서는 몬스터를 베었다. 허리가 두 동강 나고, 머리가 떨어지고, 발목이 잘려 엎어진다. 카일리는 팔을 휘두르며 죽이고 또 죽였다. 진땀에 몸이 절어갔다.

그러나 몬스터는 끝도 없이 밀려왔다. 가장 큰 문제는 공중에 있는 것들이었다. 힘껏 쇄도하여 머리카락을 쥐어 잡고, 갈고리처럼 날카로운 발톱으로 두피에 상처를 내고, 어깨를 찢어버렸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는지 눈앞이 가물가물해지기 시작했다. 포션 하나 마실 틈도 없었다. 그래도 카일리는 스테파니의 손을 제 생명줄인 양 꽉 움켜쥐고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갔다. 기력이 떨어지는지 방어 스킬도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카일리!”

리웨이가 정신 차리라는 듯 외쳤다.

그들 셋은 여전히 포위되어 있었다. 몬스터는 몇 미터 거리를 두고 둥글게 그들을 둘러쌌다. 아직도 수가 많았다. 분명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리웨이는 아득한 심정으로 허공을 올려다본 후, 잠시 세아를 찾고, 다시 적들을 노려보았다.

“리웨이, 스테파니만이라도 소환수에 태워 보낼 수 없어요?”

카일리가 절박한 어조로 매달렸다. 리웨이는 고개를 저었다.

“하늘도 지금 난리가 났어. 뭘 불러내도 저 틈을 뚫고 가지 못할 거야. 수가 너무 많아.”

그 말은 사실이었다. 공중에 몬스터가 얼마나 많은지 하늘이 새까맣게 뒤덮일 정도였으니, 소환수를 타고 날아갈 수 없다. 리웨이는 이를 갈며 생각했다.

‘이러다 다 죽겠어. 몬스터를 이만큼 끌고 올 줄이야.’

이만한 몬스터 무리는 본 적도 없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몇 백이다. 아무리 이세아가 강한 헌터라도, 이런 무식한 짓까지 해 가며 죽이려 하다니. 협회가 단단히 작정한 게 분명하다.

진땀을 흘리며 돌아보니, 카일리는 거의 패닉 상태였다.

“어, 어쩌지. 스테파니, 걱정 마. 넌 꼭 살려서 보내 줄게. 내가 하늘에 어둠으로 길을 만들 건데, 넌 그 길을 타고 쭉 달려서 돌아가야 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몬스터가 공격해도 무조건 뛰면 되는 거야. 알겠어?”

리웨이 입장에서는 속이 터질 노릇이었다. 저건 진짜 동생도 아닌데, 그냥 몬스터 하나일 뿐인데, 저렇게 얼굴까지 창백해져서 정신을 못 차리다니.

그때, 스테파니가 고개를 쳐들고 카일리와 눈을 맞추었다.

“아니, 안 가.”

“뭐?”

“안 간다고. 난 할 일이 있어서, 할 말이 있어서 여기 온 거야.”

“지금 그런 게 뭐가 중요해! 일단 살아야지!”

카일리가 견디지 못하고 울부짖듯 소리쳤다. 그녀는 절대, 절대 동생을 다시 잃을 수 없었다. 다시는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세 사람을 둘러싼 몬스터가 스멀스멀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카일리도 리웨이도 무기를 꽉 움켜쥐며 그들을 경계했다. 그러나 둘 모두 알고 있었다, 한계는 금세 찾아오리라는 걸.

카일리는 뒤로 손을 뻗어 스테파니의 손을 세게 잡아 주었다.

“언니 여기 있어.”

스테파니는 카일리의 축축한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온기를 느낄 뿐, 멍한 얼굴로 답이 없었다.

“겁내지 마.”

카일리는 결의를 다지며 검을 고쳐 쥐었다.

스테파니를 되찾았을 때 다짐했다. 앞으로 동생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동생과 함께하기 위해서라면 뭐든 하겠다고. 세아를 도와 시스템을 살해하겠다고 결정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카일리는 정말 목숨까지 바쳐 동생을 지킬 작정이었다.

그 다짐대로만 하면 된다. 어려울 게 하나도 없다.

카일리는 스테파니의 손을 놓고 정면을 노려보았다. 헌터로서의 모든 감각이 예민하게 깨어났다. 후, 숨을 내뱉자 온몸에 기력이 도는 게 느껴졌다.

마지막 불꽃일지라도 힘을 내어 싸울 수 있다. 동생을 구할 수 있다.

“카일리.”

몬스터가 웃고 이를 갈고 무기를 휘두르며 일으키는 소음 사이로, 선명히 전해지는 동생의 목소리.

“미안해.”

“아니야, 내가 미안해. 걱정하지 마. 내가 여기…….”

“카일리!”

리웨이가 찢어지는 소리로 외쳤다. 카일리는 화들짝 놀라 그제야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마자 보았다. 스테파니의 입, 점점 찢어지며 웃는 모양으로 변하는 컴컴한 입.

카일리는 그걸 보고서도 스테파니의 손을 놓지 못했다. 입꼬리가 눈 아래까지 찢어지도록, 몬스터의 작고 흰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곧 카일리의 입술이 경련하듯 힘겹게 벌어졌다.

“스테파니?”

눈이 마주쳤다. 스마일맨이 찢어진 입을 움직여 인간의 목소리를 토했다.

“카일리.”

분명한 스테파니의 음성이었다.

입은 점점 커지고, 삽시간에 머리통을 먹어치웠다. 머리 자체가 컴컴한 구멍으로 변했다. 카일리는 바람의 흐름을 느꼈다. 느리게 흔들리던 머리카락이 스마일맨의 구멍 쪽으로 빨려 들어가려 했다. 달려온 리웨이가 홱 카일리의 팔을 낚아채 끌어당겼다.

“떨어져!”

카일리가 스마일맨 뒤쪽 바닥에 나뒹굴자마자 공기의 흐름이 사나워졌다. 스마일맨은 자기의 작은 구멍 속으로 모든 몬스터를 다 빨아들이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늘어나는 칼이, 나는 새 몬스터가, 불을 쏘는 괴물이, 심지어 다른 스마일맨까지, 하나하나 스마일맨의 얼굴로 빨려 들어갔다. 마치 블랙홀을 만난 듯, 거센 폭풍에 휘말려 중심으로 끌려가듯, 너무도 빠르고 확실하게.

카일리와 리웨이는 스마일맨 뒤에서 멍하게 그 광경을 지켜볼 뿐이었다.

하늘과 땅이 말끔해진다. 몬스터는 끈질기게 저항한다. 발톱과 무기로 스마일맨의 몸을 할퀴고, 목과 어깨에 상처를 낸다.

몬스터끼리도 서로 죽일 수 있었어. 리웨이는 놀라움에 얼어붙어 버렸다.

카일리의 상황은 그와 전혀 달랐다.

“스, 스테파니. 그럼, 그럼 진짜 스테파니는 어디……?”

몬스터의 비명과 그들을 빨아들이는 거센 바람 소리가 귀를 찢어 놓는다. 카일리는 아득하게 하늘과 땅을, 스마일맨의 뒷모습을, 옆에서 자기 팔을 꽉 잡은 리웨이를 바라보았다.

이게 뭐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제 살았어.”

리웨이가 안도하며 중얼거리는 소리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카일리, 충격이 크겠지만…….”

어깨를 짚으며 위로하는 손도 느끼지 못했다. 스마일맨이 모든 몬스터를 빨아들이고, 천천히 뒤로 돌아설 때까지.

우습게도 그 작은 몸은 겁에 질린 듯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몬스터 주제에. 카일리는 구역질을 참으며 간신히 생각했다.

카일리와 리웨이는 보았다. 스마일맨의 얼굴이 서서히 다시 사람의 형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머리카락, 눈, 코까지 모두 스테파니의 것이다. 마치 검은 복면을 벗듯 구멍이 사라지고 얼굴이 드러났다. 눈꼬리까지 찢어졌던 입술도 서서히 인간의 것으로 변했다.

카일리는 축축한 잔디 위에 주저앉은 채 숨을 헐떡였다.

몸에 붙은 풀과 흙, 먼지, 피로 엉망이 된 동생의 얼굴이 보인다.

“다 내 안에 있어. 이제 괜찮아.”

스테파니는 상황을 모면하고 싶은 듯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카일리와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도 못하고 있었다. 리웨이는 둘의 분위기를 살피다가 조심히 사이를 막아서며 물었다.

“다 죽은 거야?”

스테파니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살아 있는 것들도 있어. 하지만 곧 소화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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