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의 히든 퀘스트-75화 (75/112)

75화.

그때, 혜진이 조심스러운 투로 질문을 건넸다.

“이런 거 물어도 될지 모르겠는데, 두 분이 혹시…… 만나요?”

“네?”

세아는 당혹한 듯 되묻더니 슬쩍 이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만난다고 해도 거짓말이다. 그래서 세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사이 아니에요.”

혜진은 슬쩍 눈을 굴려 이준의 표정을 살폈다. 몇 마디 섞는 내내 똑같은 얼굴이어서 표정관리를 잘하는 사람이다 싶었는데, 지금은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요. 그러고 보니 세아 씨는 스캔들도 없네요.”

“연애할 시간도 없어요.”

농담조로 대답한 세아는 이준에게 공을 넘겼다.

“너도 그렇지?”

순간 이준은, 난 남는 건 시간뿐이라고 대답해 버릴까 하다가 혜진의 눈을 생각해 참았다. 세아에게 덤빌 생각도 없고, 다른 사람 앞에서 그럴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네, 누나.”

혜진과 헤어진 후, 세아와 이준은 차를 타고 나란히 돌아왔다. 세아는 내내 창밖을 바라보다가 픽 웃더니 말을 걸었다.

“재밌지 않아? 혜진 씨 말이야.”

“그래요?”

“난 밥 그렇게 깨끗하게 먹는 사람 처음 봐. 아까 오픈 샌드위치 먹을 때도, 어떻게 입에 묻히지도 않고 그렇게 잘 먹지? 허겁지겁 먹는 것도 아닌데 보고 있으면 나까지 배고파져. 자주 만나진 않는데 만날 때마다 꼭 뭘 먹이게 된단 말이야.”

이준은 즐거운 어조로 떠드는 세아를 보고 있다가 불쑥 물었다.

“그거 알아요? 그분이 나 엄청 관찰한 거.”

“아, 그래? 그냥 S급 헌터니까 신기해서 본 거 아니고?”

“누나랑 이렇게 잘 아는 사이인데 새삼 S급 헌터가 뭐 신기하겠어요.”

세아는 멈칫하더니 이준에게로 완전히 고개를 돌렸다. 그런 다음 웃음기가 덜 가신 목소리로 가볍게 물었다.

“왜 그래, 너 혜진 씨 마음에 안 들어?”

“그게 아니라…….”

마음에 들고 안 들고 할 게 없다. 오늘 처음 본 데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니까. 그렇지만 혜진은 분명 경계와 탐색의 눈초리로 자신을 보았다. 마치 세아 옆에 이상한 사람이 붙은 건 아닌가 확인이라도 하듯.

“그 사람 누나 팬이에요?”

“뭐? 아니야. 그냥 회사 같이 다녔는데, 재앙 때 내가 얼결에 구해 줘서 지금 나 도와주는 거야. 그게 되게 감동이었나 봐.”

이준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세아만 보다가, 살짝 그녀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세아는 밀어내지 않고 가만히 있어 주었고, 이준은 그에 용기를 얻어 살며시 투정을 부렸다.

“누나는 너무 인기가 많아요.”

세아가 픽 웃는 게 느껴졌다. 세아는 그를 달래듯 손을 들어 머리를 약간 쓰다듬어 주었다.

“질투하지 마, 정이준.”

사귀는 사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한 건 서운하지만, 사실이니까…….

이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시 세아의 온기를 누렸다. 지금은 세아와 단둘이었고, 머리를 쓰는 세아의 손은 무심한 듯 다정스러워 안심이 되었다.

13.91

혜진의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세아 일행은 느긋한 정비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오스카가 끌고 온 몬스터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던 카일리와 리웨이는 각자 강화할 수 있는 스킬이 있는지, 쓸 만한 무기는 없는지 알아보았다. 스킬 강화를 위해 각자 퀘스트를 수행하러 가기도 했다.

세아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부모님과 이야기를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지냈다.

“누나, 심심하지 않아요?”

“당연히 심심하지.”

소파에 다리를 뻗고 앉아 이준이 사온 아이스크림을 퍼먹던 세아가 무료하게 대답했다.

스테파니를 잃은 카일리의 회복과 세뇌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이준의 정양을 위해 쉬자고 제안하긴 했지만, 지루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혜진의 연락을 기다리는 상황이니 쉬는 게 최선임을 알면서도 그랬다.

바닥에 앉아 소파에 등을 기댄 이준은 슬며시 세아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지나가는 어조로 물었다.

“그럼 우리 물놀이 갈까요? 이제 날도 더워지는데.”

“사람 몰리잖아. 지금은 나다니기 좋을 땐 아니지.”

미성년 S급 헌터 올리버 구출, 몬스터를 세뇌해 끌고 온 오스카 저지까지. 세아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치솟는 중이었다. 협회가 함부로 나서지 못하게 되었으니 세아로선 나쁠 게 없는 일이지만, 사람 많은 곳에 가긴 싫었다.

“저 개인 수영장도 있어요.”

이준은 가벼운 제안인 척하면서 슬쩍 말을 보태 보았다. 머리를 움직여, 세아의 다리를 가볍게 건드리기도 했다. 조르는 것처럼.

흥미 없는 얼굴로 예능 프로그램을 보던 세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자랑해? S급 헌터니까 그 정도는 있겠지. 그냥 내가 물을 별로 안 좋아해서 그래. 어릴 때 수영장에 빠져 죽을 뻔한 적 있어서.”

수영장에서 빠져 죽을 뻔했다니, 신기했다. 이준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무서워요?”

“무서운 정도는 아니고, 수영도 할 줄은 알아. 생활하는 데도 문제없어서 가끔 내가 물 싫어하는 것도 잊어버린다니까. 대신 찾아가서 놀지도 않지.”

“아쉽다.”

“뭐가?”

“누나랑 물놀이하고 싶었거든요.”

세아는 문득 고개를 숙여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세아의 무릎에 턱을 얹고, 미소 띤 얼굴로 그녀와 눈을 맞추었다. 입에 물었던 스푼을 빼며 세아가 다시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준아.”

“네?”

“너 아무것도 생각 안 나? 혹시 단서가 될 만한 거라든지.”

스킬 강화로 말을 돌린다. 이준은 세아가 의도적으로 화제를 틀었다는 걸 눈치챘지만 굳이 짚고 넘어가진 않았다.

“네, 전혀 기억 안 나요. 세뇌 없었으면 정말 아무것도 몰랐을 거예요.”

“그럼, 너 내가 한식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았어?”

“한식이요? 아, 그거.”

내내 마음에 걸려 찜찜했는데, 이준의 답은 너무 쉽게 나왔다.

“어머니가 세세 1기잖아요. 인터뷰 보는 거 옆에서 같이 봤었거든요.”

“내가 인터뷰에서 그런 얘기도 했어?”

“무슨 음식 좋아하냐고 물었는데, 한식이 좋고 그 안에서 특별히 가리는 건 없다고 했거든요.”

“자세히도 기억하네.”

고작 인터뷰 대답을 듣고 알았다니, 김이 샜다. 혹시 그의 머릿속에 지난 생의 기억이 무의식으로 축적된 건 아닌가 싶었는데.

잡담을 이어 가는 중에 갑자기 올리버가 거실로 나왔다. 그는 세아 쪽으로 종종 다가오더니 인사도 전에 불쑥 말을 꺼냈다.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뭔데? 아이스크림 먹을래?”

“응, 나중에. 나 아이템 몇 개만 구해다 줘.”

“아이템?”

세아는 음소거 버튼을 눌러 산발적인 웃음소리를 제거한 후, 올리버를 향해 되물었다.

S급 제작자인 올리버가 하는 부탁이니 시시한 아이템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올리버는 최근 이준의 귀속 아이템을 연구하고 있다. 어쩌면 그게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

올리버는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종이를 꺼내 읽어 주었다.

“재생 슬라임의 눈알 스무 개, 인어의 뒤집힌 비늘 두 개, 최상급 던전 사금…….”

세아는 종이를 앗아 목록을 살펴보았다. 확실히 쉽게 구할 수 있는 아이템은 아니었다. 온라인 상점에도 몇 개 올라오지 않았을 것이다. 세아는 종이를 살피다가 물었다.

“이건 왜 필요해?”

올리버는 그 질문에 신이 난 듯 눈을 빛냈다. 곧 그의 입에서 말이 줄줄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귀속 아이템 말이야, 일회성 아이템이라 다시 작동하지 않는 것 같거든. 근데 내가 좀 살펴봤더니 다시 활성화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아이템 활성화가 무슨 뜻이냐면, 재작동하게 만들 수는 없지만 작동 전의 상태처럼 되돌려서 모든 기능과 구조를 상세히 파악할 수 있는 건데, 그럼 아이템의 용도와 제작 시기와 지금은 볼 수 없는 다양한 정보까지 알 수 있거든! 예를 들어 지금은 그냥 평범한 돌멩이나 다름없어서 제작자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오, 정말? 신기하다!”

세아는 일부러 손뼉을 치며 말해 올리버의 말을 끊었다. 이준의 귀속 아이템을 연구 중이라는 것만 알면 됐다. 제작은 세아의 영역이 아니었으니까.

“그럼 이거 구해다 주면 되는 거지?”

“응! 그걸로 귀속 아이템을 활성화할 거야.”

“좋아.”

세아는 올리버에게 새 아이스크림이 냉동실에 있다고 말한 후 덧붙여 물었다.

“혹시 오는 길에 뭐 사다 줄까?”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어린 시절 많은 걸 누리지 못하고 감금되어 지낸 올리버는 아주 소박하고 일상적인 것을 좋아했다. 혼자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밖에서 비를 맞는 것처럼, 대단찮은 일들을.

“아니, 그냥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기다릴게.”

“그래, 그럼.”

세아는 이준에게 눈짓으로 인사하고 먼저 떠나려 했다. 그 순간 이준이 벌떡 일어나 세아의 뒤를 따랐는데, 놀란 듯 눈이 동그랬다.

“같이 가는 거 아니었어요?”

“왜? 쉬고 있어.”

“안 쉬어도 돼요. 같이 가고 싶어요.”

세아는 새삼 이준을 돌아보았다. 아이템을 구하는 데 도움 같은 건 필요 없다. 시스템 던전에 가야 얻을 수 있는 아이템도 아니라 혼자서도 충분히 하루 안에 구해 올 수 있을 듯했다. 이준을 데려가면 오히려 시간만 늦어질지도 모른다.

‘뭐, 그래도 산책 갈 겸 나가는 거니까.’

세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럼 같이 가자고 대답했다. 밝은 얼굴로 짐을 챙기겠다며 사라지는 이준의 뒷모습에 대고 세아가 외쳤다.

“내 것도 간단하게 챙겨!”

세아는 혹시 모르니 비상 탈출 스크롤과 수영복 정도만 가져갈 생각이었다. 포션이야 힐러인 이준이 차고 넘치도록 챙길 것이다.

13.92

세아는 슬라임 던전에서 나오며 목록을 확인했다.

“이제 인어 비늘 두 개만 있으면 되나? 이준아, 던전 사금은 거래창에 올라 왔어?”

“네. 근데 시세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비싸네요.”

“그냥 사버려.”

던전 사금은 구하기 어려운 아이템이 아니지만, 얻는 과정이 복잡하고 성가셨다. 특정 던전 지하까지 내려가 사금이 나오는 곳을 찾아야 하고, 앞서 다른 헌터가 다녀갔다면 리젠될 때까지 기다리거나 다른 장소로 이동해야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