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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의 히든 퀘스트-76화 (76/112)

76화.

그것만 직업으로 삼아 하는 사람도 있으니 운이 없다면 던전 몇 군데를 돌고도 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세아는 성가신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던전 사금보단 좀 더 중요한 아이템이 있으니까.

인어의 뒤집힌 비늘 두 개.

“수중 던전으로 가야겠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세아가 시스템 창에 던전 위치를 검색했다. 멀지 않은 곳이니 금방 갈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수중 던전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수중 던전은 내부가 전부 물로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특이하게 헌터라면 호흡이 가능했다. 그래도 움직이는 건 불편하고 정말 물 안에 있는 것처럼 쉽게 지쳐서, 세아는 그리 선호하지 않는 던전이었다.

잠시 고민하는데 이준이 옆으로 다가왔다.

“괜찮을까요? 던전 관리인이 우리 이름을 적었으니, 협회도 우리 경로를 알게 될 텐데.”

“상관없어. 지금은 우릴 어쩌지 못하니까. 일단 이동하자.”

출발하기 전, 세아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이준에게 말을 걸었다.

“너 물놀이 가고 싶어 했잖아.”

이준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는 듯했다. 그는 약간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대꾸했다.

“수중 던전이 물놀이장이에요?”

“그거나 그거나.”

“맞아요, 어쨌든 누나랑 같이 가잖아요.”

얌전히 대답한 이준이 살며시 세아의 손을 쥐었다가 금세 놓아 주었다. 그러는 바람에 세아는 수중 던전에 대해 경고하는 걸 잊어버렸다. 어차피 이준도 S급 헌터니 알 만큼 알겠지, 그렇게 넘긴 후 세아는 걸음을 옮겼다.

13.93

수중 던전 입구로 들어서니 긴 통로가 보였다. 던전 관리인, 수영복 대여소, 탈의실까지 준비되어 있어서 완전히 물놀이장처럼 보였다.

수중 던전으로 들어가려면 수영복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세아도 이준도 가져온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는데, 탈의실 밖으로 나와 만날 때는 둘 다 질려 버린 표정이었다.

“사람 진짜 너무 많아.”

여름이고, 헌터들 중에는 수중 던전에서 피서하려는 사람도 너무 많았다. 공략이 끝난 던전이니 안전한 데다 물도 샘처럼 계속 솟아 깨끗하고, 인어처럼 위험한 몬스터는 깊은 곳까지 들어가야 나오니 던전을 수영장처럼 쓰는 것이다. 덕분에 탈의실은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사인해 달라고 해서 밖으로 못 나올 뻔했어. 넌 괜찮았어?”

머리를 털며 물었는데 이준은 멍하게 눈을 깜빡일 뿐 대답이 없었다. 세아는 얘가 왜 이러나 싶어 물었다.

“너 왜 그래?”

그 순간 이준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고개를 돌려 세아를 외면하는 그의 귀가 뿌리까지 타는 듯 붉었다. 세아는 더 의아해서 그를 바라보다가 상의까지 잘 챙겨 입은 모습을 보고 아차 싶었다.

세아는 지퍼 달린 수영복 상의에 팔을 꿰며 어이가 없어 픽 웃었다. 안에서 상의까지 다 입고 나오려고 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도망치듯 탈출하고 말았다. 비키니만 입고 있어 이준이 놀란 모양이었다.

“애야? 왜 얼굴이 빨개져.”

이준이 무어라 항변하려는 듯 입을 벌렸다가 포기하고 입을 다물었다. 세아는 이준의 벌어진 어깨를 슬쩍 곁눈질한 후 먼저 걸음을 옮겼다. 이준이 아무 소리도 없이 뒤따르는 게 느껴져 조금 재미있었다. 지퍼를 쭉 올리며 주위를 살폈다.

통로 끝에 평범한 문이 하나 있었다. 옆에 주의사항 팻말까지 있어서, 세아는 방수 비상 탈출 스크롤을 챙기라는 문구에 시선을 주었다. 옆에서 기다리던 던전 관리인이 문을 열어 주며 웃음기 어린 얼굴로 말했다.

“두 분 물놀이 오셨나 봐요?”

세아는 대답 대신 살짝 눈짓만 해 인사하고, 열린 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안은 물로 가득한데, 투명한 막이 던전 안과 밖을 가로막은 듯했다. 물은 문 안에 갇혀 나오지 못한 채 그저 일렁이기만 했다. 세아는 느리게 팔을 뻗어 손끝을 살짝 물에 담가 보았다. 차가웠지만 여름이라 그런지 추울 정도는 아니었다.

좁은 문을 통해서 보는 건데 사람이 정말 많았다. 물, 많은 사람. 세아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이준을 돌아보며 준비가 끝났는지 확인하고, 맨발로 성큼 나아갔다.

수모까지 제대로 갖춰 쓴 세아와 이준이 안으로 들어가니, 입구 쪽 사람들부터 흘끗흘끗 그들을 곁눈질했다. 대중에게 얼굴이 훨씬 더 많이 알려진 건 세아라, 사람들은 그쪽으로 몰렸다. 보글보글, 입을 벙긋거리며 뭐라고 말을 거는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세아는 의례적인 미소로 답례한 후 재빠르게 등을 돌렸다.

올리버를 구한 것과 오스카를 막은 일들이 전부 기사화되어 밖으로 쏟아졌다. 세아의 영향력이 커지는 걸 원치 않는 한국 협회는 모든 일을 조용히 묻으려 했지만 기사를 죄다 통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덕분에 세아의 유명세와 인기는 근래 더욱 하늘을 찔렀다.

‘물에선 말을 못 하니 다행이야.’

모두에게 하나하나 인사할 필요 없는 걸 다행으로 여기며 세아가 휙 방향을 틀었다.

이 던전은 인어 몬스터가 나오는 걸로도 유명하지만, 그보다는 천연 수영장에 가깝다. 다들 차가운 물을 즐기느라 바쁠 때 세아와 이준은 던전 깊은 곳으로 내려가야 했다.

세아는 앞서 헤엄치는 이준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저쪽.’

손가락으로 컴컴하고 깊은 곳을 가리키며 입술을 움직였다. 이준은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 후 힘차게 발을 저어 앞서갔다. 자신은 수영에 취미가 없으니, 확실히 이준이 의지가 되기는 했다. 데려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세아도 뒤를 따랐다.

던전 내부를 관리하는 사람이 깊은 곳으로 통하는 통로를 막고 있었다. 원래 던전 안까지 관리인을 두지는 않는데, 사람들이 피서 오는 장소다 보니 지키는 사람이 많은 듯했다. 세아는 얼굴을 확인시켜 준 후 자연스럽게 그를 지나쳤다.

마치 바다처럼, 바닥은 산호색으로 반짝거리고 물은 투명하게 일렁인다. 던전 생태계를 이루는 작은 물고기 떼, 지구의 생물은 아니지만 무해하고 아름다운 생명이었다. 세아는 물고기 떼로 살짝 손을 뻗었다. 부드러운 꼬리지느러미가 손끝을 스쳤다.

더 깊이, 깊이 헤엄칠수록 주위는 캄캄해지고 광원이 적어진다. 그러나 인어는 어두운 곳에 벌레처럼 숨어 살지 않는다. 곧 밝아질 것을 알기에 세아와 이준은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갔다.

좁고 컴컴한 통로를 지나, 마침내 빛이 보였다. 갑자기 공간이 확 넓어지며 햇빛 아래 선 듯 주위가 환해졌다. 머리 위를 올려다보니 전부 물이었는데, 어디서 빛이 들어오는지 모를 일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바다 속 광장이었다. 넓고 둥근 공간, 가운데 평평하게 솟은 지반, 오색으로 반짝이는 산호, 물풀 사이를 하늘하늘 헤엄치는 크고 작은 물고기…….

세아가 소리 없이 탄성을 토하자 물방울이 보글보글 태어나 높은 곳으로 사라졌다.

사실 수중 던전은 흔한 형태의 던전도 아니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아서 와 볼 일이 거의 없었다. 수중 던전에서만 구할 수 있는 아이템이 필요하면 웃돈을 얹어서라도 거래로 구했다. 실제로 이렇게 깊이까지 들어온 건 처음이라 세아는 아주 잠시 넋을 잃었다.

마법의 세계에 온 듯 신비롭고 고요했다. 바깥과 완전히 차단된 듯 아늑하기까지 하다. 이렇게까지 감정이 움직이는 건 오랜만이었다.

그때, 이준이 세아의 어깨를 살짝 감쌌다. 고개를 돌려 이준을 보니, 그가 손으로 한 지점을 살짝 가리켰다. 멀지 않은 곳에 기둥처럼 우뚝 솟은 돌이 보였다. 마치 창날인 듯 끝으로 갈수록 얇아지는 돌이었다. 그곳에 인어 두 마리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자기들끼리 이마를 맞대고 무어라 대화를 나누는 듯했는데, 피어오르는 물거품만 보일 뿐 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살피니, 쇄골 부분에 뒤집어진 은빛 비늘이 박혀 있었다.

한가로이 늘어뜨린 꼬리는 황홀한 물빛. 빛을 반사하는 꼬리는 비단처럼 부드러워 보일 뿐, 수산시장에 전시된 물고기의 일부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반신 끝에서 두 갈래로 갈라진 꼬리는 펄럭이는 치맛자락처럼 장난스럽고도 우아했다. 과연 사람을 홀리는 생김이었다.

‘단숨에 다가가서 낚아채자.’

그렇게 생각한 세아가 몸을 낮춘 순간.

두 인어가 동시에 고개를 돌려 세아와 이준을 바라보았다. 사람과 똑같은 얼굴인데, 귀만 지느러미 날개처럼 보였다. 눈꺼풀 없는 눈은 물고기의 것처럼 동그랗고 징그러웠다.

하나는 여성형, 다른 하나는 남성형으로 둘 다 아무것도 위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 살결은 잘 익은 과일처럼 희고 곱게 빛났다. 두 인어는 헌터들을 향해 씩 웃더니 돌에서 펄쩍 뛰어내려 각기 다른 방향으로 사라져 버렸다.

세아는 이준에게 오른편을 가리키고 자신은 왼편으로 헤엄쳤다. 인어들은 건너편의 통로로 사라졌다. 사람 하나가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통로로 쑥 들어가며 세아는 제발 이 추격전이 길어지지 않길 바랐다.

‘어디로 갔지?’

좁고 어두운 통로 안에서 또 길이 갈라졌다. 세아는 잠시 바닥에 발을 딛고 서서 좌우를 살폈다. 그때, 바닥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게 보였다. 허리를 굽혀 집어 드니, 그리 길지 않은 검은 머리카락이었다. 평범한 검은색인데 물속에서 은실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왼쪽이다.’

이렇게 쉽게 추적할 수 있을 리 없다. 분명 일부러 흔적을 남겨 유인하는 것이다. 인어를 상대한 적은 몇 번 없지만, 세아는 그 몬스터의 생태를 대강 알았다. 분명 이렇게 홀리듯 끌어들여서…….

어쨌든 그건 나중 일이었다. 세아는 잠시 생각을 접고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던 방향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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