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의 히든 퀘스트-93화 (93/112)

93화.

“누나. 왜 그래요, 아파요?”

애도 아니고 피 좀 난다고 울 리가 없지 않은가. 네가 너무 멍청해서 운다, 그렇게 말해 주고 싶었다. 네가 자꾸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니까, 네가 자꾸 나를 지키겠답시고 다치니까, 그게 서러워서 운다.

정이준은 말해도 모를 것이다. 사실 세아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정이준이 피 흘리는데 왜 자신이 서글픈가.

“몰라.”

비명과 울음 때문에 잔뜩 쉰 목소리였다. 뒤늦게 한마디가 덧붙었다.

“나 말고 너나 치유해.”

“왜 울어요. 아파서 그런 거 아니에요?”

이준은 정신없이 세아의 모습을 살폈다. 세아의 이마는 처참할 정도로 찢어졌고, 상처 틈으로 흐르던 붉은 피는 찐득하게 굳어 갔다. 땀에 흠뻑 젖은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었고, 눈은 무덤에서 살아 돌아온 시체의 눈구멍 같았다. 잔뜩 짓무른 눈가가 너무 시뻘게서 얼굴 전체에 발진이 일어난 듯 보였다.

이준은 떨리는 손을 세아의 뺨에 갖다 댔다. 아까는 손대기도 사나울 정도로 뜨겁던 얼굴이, 이젠 얼어붙은 듯 차가웠다. 세아는 빛이 사라진 눈으로 이준을 보다가 자기 손으로 그의 손을 감싸 쥐었다. 괜찮을 리가 없어, 이준은 깨달았다.

치유 스킬을 사용하려는데 세아가 좀 더 빨랐다.

“이준아.”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을 벌렸던 세아가 다시 침묵했다.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준이 땀에 젖어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내며 어깨를 쓸어 줄 때, 그녀는 제 뺨에 손을 대고 어디 다친 거냐고 묻는 이준을 말없이 응시했다.

세아는 스스로 젖은 뺨을 닦았다. 그러더니 작게 웃어서 이준을 놀라게 했다.

“정이준, 울지 마.”

그제야 이준은 자기 얼굴이 눈물로 축축한 걸 깨달았다. 언제부터 울고 있었나. 뺨을 닦을 틈도 없이 세아의 몸이 앉은 채로 무너졌다. 그 몸을 허둥지둥 받아 안은 이준이 다시 세아를 불렀다.

“누나. 누나?”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그때, 세아가 이준의 가슴에 머리를 기댄 채로 중얼거렸다.

“어지러워.”

“눈 감고 있어요.”

“미안. 너 다치게 해서.”

“…….”

이준은 말을 잃고 세아만 바라보았다. 사과해야 할 사람은 자신이었다. 세아는 이준의 표정을 보고 그의 생각을 읽었다. 그녀도 이게 이상한 소리라는 걸 알았다. 그런데도 마음이 아팠다. 정말로 아파서, 차라리 세상이 서둘러 스러졌으면 싶었다.

그러면 이 슬픔도 세상의 마지막 태양처럼 저물까.

“다음 세상에서 보자, 이준아.”

그렇게 멸망이 닥쳐 왔다.

10장. 승자 없는 종말

14.1

이세아는 번쩍 눈을 떴다.

자기 앞에 놓인 책상과 펜이 보였다. 이세아, 정이준, 카일리, 리웨이, 올리버, 스테파니. 파티원의 이름이 가지런히 적힌 종이 앞으로 되돌아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장소는 기억과 똑같았다. 마치 짐승의 내장으로 들어온 듯 바닥이 물컹거렸고, 사방이 쭈글쭈글한 살처럼 주름져 있었다. 세아는 긴 숨을 내쉬며 멀쩡한 자기 사지를 살폈다.

눈도 제자리에 있고, 갈비뼈도 무사하다. 머리가 터져 버리거나 무릎이 으깨지지도 않았다. 그때의 감각은 선명히 마음에 새겨져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메스꺼웠다. 세아는 마지막 상황을 되짚어 보았다.

이준이 자신을 안아 진정시켰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가 죽다 살아난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피에 젖은 얼굴이 아름답고 가여웠다.

정말 죽다 살아난 건 자신인데 어린애처럼 우는 쪽은 이준이어서, 자기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울긴 왜 울어, 마음 약해지게. 그런 생각을 하다 자신도 조금 울었던 것 같다.

정신없이 폭주한 탓에 이준의 스킬이 제대로 강화되었는지도 확인하지 못했다. 그가 모든 기억을 찾았는지도 아직 모르고. ‘대가’를 치렀으니 소원이 이루어졌으리라 믿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확인을 받아야 한다.

아마 다른 파티원 모두 집에 있을 테니 돌아가자.

그렇게 생각하며 뒤를 돈 순간, 눈앞에 아득히 펼쳐진 길 앞에서 세아는 굳어 버렸다.

갑자기 기도가 좁아진 것처럼 숨이 가빴다. 공기가 폐까지 이르지 못하고 코까지만 들락거리는 듯 답답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면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세아는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정신 차려. 이제 다 끝났어.’

대가는 끝났다. 앞으로 두 번 다시 그런 일은 없다. 심지어 실제로 몸이 으깨진 것도 아니고, 시간의 틈을 빠져나오는 동안 겪은 환각일 뿐이다. 다 아는데도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 순간, 공간이 좁아지며 자기의 몸을 으스러뜨릴 듯했다.

‘숨이 모자라.’

의식적으로 크게 숨을 들이쉬었는데, 마치 체한 듯 기침이 터져 나왔다. 세아는 허리를 굽힌 채 격렬한 기침을 토했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고, 돌아다니는 칼을 품은 듯 가슴 쪽에 날카로운 통증이 전해졌다.

움직이자. 걸어서 나가자. 그 간단한 일이 지금은 너무도 무겁게 느껴졌다. 세아는 온몸을 떨면서 자기 자신과 싸웠다. 이러다가 죽는 건 아닐까 하는 공포가 치밀었다. 살면서 이런 증상을 겪은 적 없는 세아는 자기가 정말 미쳐 버린 건가 의심하며 그대로 얼어 있었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를 붙잡았다.

“누나!”

멀리서 달려오는 이준의 모습이 보였다.

소원 던전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울던 이준이 아니었다. 현재의 정이준, 자신을 향해 오는 정이준이었다. 긁힌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비로소 발이 떨어졌다. 세아는 물에 빠진 사람이 구명줄을 잡듯 절박하게 그쪽으로 달려갔다. 바닥이 딱딱하지 않아 제대로 뛸 수도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이준을 잡자, 잡아서 여기서 데리고 나가 달라고 하자, 일단 이 공간에서 벗어나자…….

달리던 세아가 그대로 고꾸라지는 순간, 이준이 그녀의 팔을 잡아채 붙들었다.

세아는 숨을 몰아쉬며 몸을 떨었다.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죽다 살아난 양 숨이 찼다. 좋지 않은 증상이다. 세아는 입술을 짓씹으며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나가자, 이준아.”

“누나, 왜 이렇게 땀이…….”

“일단 나가자고!”

세아는 거의 소리치듯 재촉하며 머리를 털었다. 온 세상이 빙빙 도는 듯 어지러웠다. 이겨 낼 수 있을까, 처음으로 약한 생각이 스몄다. 이 두려움과 연약함을 이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때, 이준이 세아 앞에 몸을 낮췄다.

“업혀요. 누나 지금 바로 쓰러질 것 같아요.”

웃기지 마, 내가 왜 쓰러져. 평소라면 바로 그렇게 대꾸하고 기가 차서 웃었을 텐데 지금은 제 발로 걸어 나갈 용기가 없었다. 당장 의식을 놓칠 것 같았다. 아니, 조금만 방심하면 전처럼 또 폭주할 것 같았다.

세아는 그대로 이준의 등에 제 몸을 맡겼다. 그의 온기를 느끼는 순간, 기묘한 안도와 탈력감이 세아를 감쌌다. 그녀를 단단히 업은 이준이 던전 밖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14.2

“세아 너 무슨 일이야!”

카일리는 업혀 돌아온 세아를 보고 놀라서 소리쳤다. 거실에 함께 앉아 있던 리웨이도 눈을 크게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준은 곧장 세아의 방으로 가려고 했으나 세아가 업힌 채로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여기 내려 줘. 거실에 있을래.”

거실은 천장이 높고 앞으로 창이 뚫려 개방감이 있었다. 이준은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린 듯 조심스럽게 몸을 낮추었다. 어지러움을 참고 억지로 소파에 앉으며 세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다가온 리웨이가 세아의 이마를 짚으며 물었다.

“왜 다 죽어 가? 공격이라도 받았어?”

“괜찮아요.”

세아는 정말 괜찮은 사람처럼 리웨이의 손을 치웠지만, 핏기가 하나도 없는 얼굴 때문에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크게 다친 사람처럼 기운을 차리지 못하는 세아를 본 카일리가 이준을 책망했다.

“치유 스킬이라도 빨리 쓰지 그랬어? 이러다 죽겠어.”

“다친 게 아니야.”

그렇게 대답한 건 세아가 아니라 리웨이였다. 그녀는 세아의 몸을 살피더니 신중한 어조로 확인했다.

“상처 입은 게 아니지? 세이브 하러 갔다가 무슨 일 있었어?”

“미안한데 나 좀 쉴게요. 지금은 설명 못 하겠어요.”

세아는 최대한 덤덤하게 말하려고 애쓰며 자기 마음을 전했다. 사실 옆에서 한 마디씩 할 때마다 골이 징징 울려 머리가 아팠다.

세아의 말을 알아들은 카일리와 리웨이는 모두 조금 떨어져서 그녀가 쉴 수 있게 해 주었다. 리웨이는 슬쩍 이준 옆으로 다가가 속삭이듯 물었다.

“무슨 일이야, 몬스터라도 나왔어? 넌 왜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뛰쳐나갔고. 뭐 알아서 그런 거 아냐?”

“지금은 말고요. 누나 물이라도 한잔 마셔야겠어요.”

그렇게 답한 이준이 서둘러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카일리와 리웨이는 모두 당황한 표정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세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누가 봐도 그녀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파티원 둘과 눈이 마주친 세아는 조금 웃었다. 안심시키려고 억지로 웃은 게 아니라, 자기보다 훨씬 약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 걱정 어린 표정을 짓는 게 재미있어서 웃은 건데 카일리의 눈이 젖어들었다.

“세아……!”

유언 남기는 할머니 보는 듯한 모습에 세아는 재빨리 손을 저었다.

“아니, 진짜 괜찮아. 잠깐 어지러워서 그래.”

시원하게 뚫린 창을 보니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아까는 던전 안이기도 했고 눈앞에 보이는 게 외길이라 잠시 힘들었을 뿐이다. 앉아서 조금 쉬다가 한숨 자고 나면 두통도 어지럼증도 씻은 듯 사라질 듯했다.

그때, 이준이 컵을 들고 다가왔다. 미지근한 물을 건네며 그가 염려 섞인 어조로 말했다.

“누나, 마셔요. 땀 너무 많이 흘렸어요.”

세아가 컵을 쥐었다가 고개를 돌려 이준을 보았다. 시선이 마주치니, 이준이 다 죽어 가는 사람을 안심시키듯 억지로 미소를 보였다. 긴장과 걱정으로 떨리는 입가가 귀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 진짜 다들 왜 이래, 나 멀쩡하다니까. 그걸 알려 주고 싶어서 세아는 괜히 다른 소리를 했다.

“시원한 물이 더 좋은데. 이거 너무 미지근해.”

“아, 그럼 다시 갖다줄까요?”

농담인 줄도 모르고 다시 컵을 받으려는 이준을 향해 손을 저어 보이고 그녀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슨 큰일이 났다고 호들갑이에요. 그만해, 다들 아팠던 적도 없어?”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모두, 말하는 시체를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세아는 어깨를 으쓱하고 물을 마시기 위해 컵을 기울였다.

그 순간, 손에서 그대로 컵이 빠져나갔다. 컵에 든 물이 옷에 모두 쏟아졌는데, 그걸 느끼기도 전에 세아의 몸이 한쪽으로 휘청 기울었다. 그녀는 완전히 의식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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