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의 히든 퀘스트-99화 (99/112)

99화.

리웨이가 곧장 쫓아가려는데 이준이 재빨리 그녀를 붙잡았다.

“리웨이, 기다려요!”

들킬 일을 염려하는지 이준이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그러나 리웨이는 거칠게 그를 뿌리치며 크게 외쳤다.

“기다리긴 뭘 기다려? 세아, 세아, 이리 와!”

리웨이가 호출기를 눌렀고, 가까이 있던 카일리가 먼저 허둥지둥 달려왔다. 그녀는 바닥에 넘어지듯 주저앉은 이준과 그를 노려보는 리웨이를 보고 깜짝 놀라 둘 사이를 막아섰다.

“뭐 하는 거예요? 왜 우리끼리 싸워? 설마 스마일맨?”

“그게 아니야. 비켜, 카일리.”

리웨이는 카일리의 몸을 옆으로 밀어 낸 후 그대로 이준의 멱살을 잡아챘다. 이준은 반항해 일을 키우는 대신 리웨이를 노려보았다.

“놓고 얘기해요. 배신자 취급하지 말고.”

“자기가 수상하다는 건 아네. 누구야. 저 사람 누구냐고!”

“리웨이, 진정해요!”

리웨이는 쉽게 흥분하는 타입이 아니었고, 어떨 때는 신기할 정도로 느긋했다. 그런 그녀가 이성을 잃다시피 해서 이준을 닦아세우는 걸 보고 카일리는 깜짝 놀랐다.

말로 해서 되지 않자 이준이 제 옷을 움켜쥔 리웨이의 손을 억지로 떼어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리웨이를, 그리고 그녀를 붙들고 선 카일리를 바라보았다.

이준에게 파티원은 의미 없다. 세아의 선택만 아니었다면 영영 남으로 지냈을 이들이다. 특별히 소중하다 여긴 적 없고, 카일리와 리웨이 역시 이준과 대단한 유대감을 공유하지 않았다. 그런 이들에게 말해도 될까. 이준은 마른침을 삼켰다.

리웨이는 이미 세아를 불렀다. 이대로라면 리웨이는 세아에게 자기가 본 광경을 전부 얘기할 테고, 그럼 세아는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며 자신을 추궁할 것이다.

“할 말이 있어요. 중요한 얘기니까 잘 들어 주세요.”

“해 봐, 어디.”

그가 무슨 말을 해도 절대 넘어가지 않겠다. 다 함께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왜 갑자기 수상한 뒷공작인가. 리웨이는 차가운 시선으로 이준을 내려다보았다.

머잖아 이준의 입이 열렸다.

14.14

호출기가 울렸을 때 이세아는 차가운 바닥에 뺨을 대고 쓰러져 있었다. 몬스터의 공격에 당하거나 트랩 때문에 다친 건 아니었다. 그저 창문 하나 없는 막힌 공간이 갑자기 두려워졌고, 이겨 내야 한다고 생각한 순간 세상이 캄캄해졌다.

다행히 호출기는 알람처럼 세아를 깨웠다. 세아는 얼어 버릴 듯 차가운 제 뺨을 문지르며 허둥지둥 파티원을 찾아 달려갔다.

“세아, 여기야!”

카일리의 목소리를 들은 세아가 달리기를 멈추었다. 그녀는 커다란 기둥 옆에서 손을 흔드는 카일리 쪽으로 다가가며 남몰래 스마일맨 경보기를 작동시켰다가 껐다. 다행히 경보기는 조용했다. 기둥 쪽으로 다가간 세아가 가벼운 투로 물었다.

“호출기 울려서. 길 찾은 거야?”

“아, 응.”

기둥 너머를 보니 이준과 리웨이도 거기 있었다. 세아는 그쪽에 관심을 두는 대신 좁고 깊은 통로를 들여다보았다. 저 길을 따라가면 위나 아래로 가는 계단이 나타날 것이다. 세아는 가벼운 마음으로 모두를 돌아보았다.

“잘됐네. 그래도 금방 찾아서 다행이야.”

“그러게.”

리웨이의 대꾸는 어쩐지 건성이었다. 그제야 세아는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리웨이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세아와 이준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이준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통로를 살피는 척했지만 그 행동에서 숨길 수 없는 어색함이 전해졌다. 무엇보다도 카일리. 카일리는 슬픈 영화를 본 사람처럼 눈가가 발갰다. 세아가 슬쩍 눈썹을 치켜세웠다.

“다들 뭐야?”

“뭐, 뭐가?”

카일리가 말을 더듬으며 어색하게 손 부채질을 했다. 드러난 맨살이 싸늘해질 정도로 공기가 찬데, 참 부적절한 행동이었다.

“내가 모르는 거 있잖아. 아니야, 정이준?”

만만한 상대를 공략했으나 이준도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리웨이가 한숨처럼 말했다.

“그냥 잠깐 싸운 거야. 쟤가 말을 건방지게 하잖아.”

아무래도 그게 아닌 것 같은데. 그러나 세아는 더 캐묻고 싶지 않았다. 몸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사실 좁은 통로를 본 순간부터 머리가 어지럽고 식은땀이 흘러서 힘겨웠다. 세아는 대강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

“리웨이한테 예의 바르게 해. 이준아, 알겠어?”

“네, 누나. 죄송해요.”

“그럼 가자.”

좁은 통로를 가로지르는 동안, 세아는 의식을 놓치거나 두려움에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가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했다. 그래서 자기 뒤에서 세 파티원이 은밀히 시선을 나누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14.15

통로 끝의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가니 갑자기 칠흑 같은 어둠이 펼쳐졌다.

2층 입구를 경계로 빛과 어둠이 나뉜 듯했다. 입구 너머로 넘실거리는 두꺼운 어둠 속으로 손을 뻗으니, 팔이 잡아먹힌 듯 사라졌다. 세아는 팔을 빼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아예 처음 보는 형태는 아니다. 아마 인위적인 빛으로 안을 밝힐 순 없을 테고, 안쪽의 장치를 찾아 건드려야 할 테다. 세아는 파티원을 돌아보았다. 어둠에 익숙한 카일리의 표정이 자신만만했다.

“들어간다?”

예고하듯 말한 세아가 성큼 나아갔다.

아무도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을 어둠 속에서, 세아는 조용히 이마의 식은땀을 닦았다. 좁은 통로를 지나는 내내 심장이 터질 듯 뛰어서 힘겨웠다. 이러다가 정말 죽는 거 아닌가 하는 비이성적인 생각까지 치밀었다.

모두 자신의 상태를 염려하고 있음을 알기에 힘든 기색을 비치고 싶지 않았는데, 잘되었는지 모르겠다. 세아는 일단 잡념을 거두고 의미 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둠 너머에서 카일리가 속삭였다.

“벽에 붙어 서요. 아마 몬스터는 전부 자고 있을 거예요. 우리가 불을 켜기 전까진…….”

그때, 세아의 발에 무언가 물컹한 물체가 닿았다. 어둠 속이라 감각이 더욱 예민해져서, 세아는 반사적으로 그걸 공격할 뻔했다. 다행히 이준이 옆에서 제 손을 잡아 왔다.

“누나, 이리 와요.”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공연히 감미롭게 느껴졌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소리에 더욱 민감해진 탓일까.

네 사람은 서로서로 손을 맞잡았다. 카일리가 선두에 섰고 그다음이 리웨이, 세아, 이준 순이었다. 카일리는 벽에 등을 대고 게걸음으로 걸으며 남는 손으로 방향을 가늠했다.

이제 필요한 건 인내심과 믿음뿐이다. 어둠에 잠긴 층은 위험하지 않은 대신 지루하다. 암흑 속에서 몬스터의 습격을 받거나 위험한 트랩에 걸리는 일은 없지만, 스위치를 찾을 때까지 벽을 따라 가고 또 가야 한다.

만약 부주의해서 스위치를 놓치고 지나치면? 발견할 때까지 계속 도는 것이다. 세아는 제발 카일리가 단번에 스위치를 찾아내길 빌었다. 아무래도 오래 버틸 수 없을 듯했다. 이미 다리가 후들거렸다.

“누나.”

이준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스몄다.

“괜찮아요?”

“응.”

그가 왜 갑자기 괜찮으냐고 묻는지 알 것 같아서, 세아는 잠시 이준의 손을 놓았다. 그런 다음 허벅지에 손바닥을 슥슥 문질러 닦았다. 다시 이준의 손을 잡으니 그가 남는 손으로 세아의 목덜미를 살짝 쓸어 주었다. 거기도 식은땀으로 엉망이었다.

갇혔다는 느낌과 싸우는 게 힘들어지고 있다.

세아는 숨을 몰아쉬며 그걸 인정했다. 이대로 가다간 파티를 책임지기는커녕 방해만 될지도 모르겠다. 앞이 보이지 않고, 빠져나갈 통로를 찾을 수 없으면 미칠 것 같다.

딱 한 번의 경험이었을 뿐이다. 압사의 기억은 상당 부분 절개되어서, 정확한 통증도 기억할 수 없다. 그런데도 공포는 선명했다. 어떨 때는 무섭다고 느끼기도 전에 너무 무서워 졸도해 버렸다.

그때, 리웨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세아, 왜 그래? 숨 가빠?”

“아, 아뇨. 괜찮아요.”

행렬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세아가 목 졸려 죽어 가는 듯한 소리로 대답했기 때문이다. 앞서 걸으며 스위치를 찾던 카일리는 앞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세아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괜찮아?”

“응.”

“아무래도 양옆으로 갈라져서 찾는 게 낫겠어요.”

이준이 재빠르게 말했다. 카일리나 리웨이가 뭐라고 답하기도 전에 세아는 탁, 리웨이의 손을 놓았다.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요, 나랑 이준이는 반대쪽으로 갈게요. 이준아, 앞장서.”

“잠깐만, 너희들……!”

리웨이의 부름을 무시한 채 세아는 그녀로부터 멀어졌다. 카일리와 리웨이는 벽에 붙어 왼쪽으로 나아가고, 세아와 이준은 오른쪽으로 나아가는 형태였다.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이준이 등을 보이고 몸을 낮췄다.

“누나, 지금 앞으로 걸어와서 나한테 업혀요.”

거절할 수가 없었다. 세아는 당장이라도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눌러 참느라 기절할 지경이었다. 뜨거운 프라이팬에 느리게 손을 가까이하는 느낌이었다. 손을 거두고 싶지만 불가능하고, 차라리 빨리 달군 쇠에 손을 댔다가 떼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세아는 이준에게 업히자마자 의식도 못 한 채로 정신을 놓았다.

이준은 세아의 몸이 갑자기 축 늘어진 걸 확인한 후, 신중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세아를 업고 있으니 벽을 탐색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대강 조사할 순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준의 손끝에 마침내 레버가 걸렸다.

“찾았어요!”

이준은 어딘가에 있을 카일리와 리웨이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목소리는 벽에 부딪쳐 왕왕 울렸다. 세아는 그 소음에도 깨어나지 못했다. 이준은 한 손으로는 세아의 몸을 받치고, 다른 손으로는 있는 힘껏 뻑뻑한 레버를 내렸다.

우우웅― 오래 멈춰 있던 기계 장치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낡은 컴퓨터 전원을 켤 때나 나는 소리였다.

이준은 속으로 시간을 헤아렸다. 하나, 둘, 셋, 넷……. 어디까지 셌을까, 갑자기 전기가 들어온 듯 빛이 눈을 찔렀다. 날카로운 통증에 이준이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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