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FC 변경 군단의 기사-2화 (2/450)

2. 식당 칸이 어느 쪽이지?

2. 식당 칸이 어느 쪽이지?

“휴가를 달라고?”

“네.”

“갑자기?”

루산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자 트리어는 팔짱을 끼고 등을 의자에 완전히 기댄 채로 루산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마치 휴가의 이유가 얼굴에 쓰여 있지는 않은지 찾아보려는 듯이.

트리어 지겐.

전진 기지 델타에 배치된 멕 나이트 여섯 대의 근무를 짜고 지휘하는 캡틴으로 그 자신도 파일럿이면서 기지 대장이 자리를 비울 때 기지를 통솔하는 델타 기지의 넘버 투였다.

말하자면 루산의 직속상관인 것이다.

변경 군단의 특성상 정식 군대처럼 상명하복의 엄격한 위계질서를 요구하지는 않지만, 마음만 먹으면 근무 배정 권한으로 파일럿의 성과 보상금을 조정할 수 있고 잠을 못 자게 괴롭힐 수 있으며 심지어 목숨을 잃게 만들 수도 있었다.

4년 전 루산이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그를 가장 괴롭힌 사람이 바로 트리어였다.

세 대가 함께 나가는 것이 기본인 멕 나이트 정찰 임무를 혼자 내보내는 것은 기본이요 1년 차 파일럿에게 맡기지 않는 야간 정찰, 괴수 본거지 추적, 미개척지 정찰 임무를 맡겼다.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죽음의 위기를 겪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위기를 딛고 살아남은 덕에 루산은 델타 기지의 에이스로 성장했다.

살아남기 위해 변경의 지리, 각 지역의 특성, 괴수의 생태, 멕 나이트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 공부했다.

임무를 수행할 때 매 순간 집중했고, 지치지 않기 위해 힘을 뺄 때와 폭발시킬 때를 구분했다.

이제 루산은 자신이 4년 전에 비해 얼마나 강해졌는지 알고 있었다.

어느 순간 지옥의 사자 같던 트리어가 무섭지 않았다.

트리어도 언제부터인가 무리한 임무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물어본 적이 있었다.

“왜 그렇게 괴롭혔어요?”

“재수 없어서.”

“헐! 그게 이유에요?”

“재수 없는 놈 옆에 있으면 죽기 딱 좋거든. 일단 나부터 살고 봐야지.”

“하아······!”

“어쨌든 어깨에 힘은 좀 빠졌잖아? 네가 어디에 있는지 명심해.”

“······.”

루산은 트리어가 자신을 위해 귀족 물을 빼 주려고 일부러 고난을 부여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재수가 없어서 죽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괴롭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를 이해하고 존중했다.

갑자기 튀어나온 괴수 하나가 개척 도시를 송두리째 소멸시킬 수 있는 변경에서 귀족 출신이랍시고 재수 없이 무게를 잡고 지내는 것은 죄악이 맞았다.

괴수 앞에서는 귀족이고 뭐고 없었다. 모두가 평등한 것이다.

루산이 어깨에 힘을 빼고 다른 동료들과 어울릴 수 있게 되면서부터 트리어는 루산을 도움이 되는 동료로 생각하고 진심으로 아꼈다.

그 사실을 알지만 루산은 이번에 휴가를 신청하는 이유를 비밀로 할 생각이었다.

트리어도 더 캐묻지 않고 휴가증을 발급해 주었다.

“계약이 1년 남았지만, 뭐 그동안 쌓인 빚도 없고 무단이탈이나 지각도 없으니 휴가를 못 쓸 이유는 없지.”

루산은 휴가증을 받고 몸을 돌리려 했다.

그러나 트리어가 손가락에 힘을 꽉 주고 휴가증을 놓지 않았다.

잠시 남자들의 무의미한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종이가 찢어지기 직전, 트리어가 말했다.

“조만간 나는 군단 본부로 간다. 전대장을 맡게 될 것 같아.”

“와우!”

루산이 눈썹을 추켜올리며 감탄했다. 그러나 휴가증을 놓지는 않았다.

“내 후임으로 너를 추천할 생각이야.”

그러나 이 말에는 휴가증을 놓고 진지하게 트리어의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거기 말이야. 너도 알겠지만, 바실리스크가 나올 곳이 아니잖아.”

“그렇기는 하죠.”

“본부에서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어.”

“웨이브?”

“응, 갑작스럽기는 하지만. 너 돈 필요하잖아. 돈 벌어야지.”

“정말 웨이브라면 돈벌이 시즌이 맞긴 하죠. 죽기도 좋아서 그렇지.”

“훗!”

트리어가 웃으며 다시 휴가증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손가락에 힘을 주지 않아 루산의 손에 쉽게 들어왔다.

“갈게요.”

루산이 몸을 돌려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때 뒤에서 트리어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꼭 돌아와요, 캡틴.”

루산은 픽 웃으며 몸을 돌리지 않고 그대로 손을 한번 드는 것으로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

***

라돔 시.

필센 제국 변경 제8구역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인 이곳은 제7구역에서 떨어져 나온 제8구역의 변경 군단이 개척한 가장 오래된 도시였다.

변경 군단의 본부와 통치자의 궁전 - 필센 제국에서는 승계 순위에서 크게 멀어진 황족이 변경의 개척과 수호 임무를 맡는 것이 보통이었다 - 이 바로 이곳에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부설된 마나 열차의 종착역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처음이니?”

루산이 묻자 가방을 꼭 안은 채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클라크가 깜짝 놀라 대답했다.

“아! 네.”

클라크는 개척촌에서 태어났던 것이다.

“조심해. 눈 감으면 코 베 간다.”

농담이었지만, 클라크는 오른손을 들어 코를 가리고 루산을 따라갔다.

“열차표로 바꿔 줘요.”

루산은 군단 본부로 가서 자신의 신분증과 휴가증을 내밀었다.

근무자가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멕 나이트 파일럿이나 되는 양반이 굳이 열차표를 교환하러 휴가증 들고 여기까지 왔느냐는 표정이었다.

루산은 그 시선을 낯 두껍게 받아넘기고 열차표를 받았다.

열차표가 비싸다 해도 구입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집안이 망했을 때의 충격이 너무 강렬해 아무리 작은 돈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클라크는 군단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따로 표를 구입해야 했다.

루산이 아무리 짠돌이라지만, 네 표는 네가 알아서 하라고 할 정도로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많은 인파가 북적거리는 역으로 가서 열차를 탔다.

“나는 눈 좀 붙일 테니 너도 쉬렴.”

“네, 기사님.”

클라크가 순순히 대답했지만, 루산은 알고 있었다.

이 순진하고 호기심 많은 개척촌의 소년은 유리창에 딱 붙어 휘둥그레진 눈으로 열차가 움직이고 온 세상이 뒤로 지나가는 마법을 경이롭게 바라보느라 잠을 자지 않으리라는 것을.

마침내 열차가 움직이고 클라크는 청개구리처럼 유리창에 딱 붙었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루산은 정말로 잠이 들었다.

***

“어디 보자. 신분증명서가··· 여기 있고, 신원 보증서는··· 아! 여기 있군. 그리고 오! 제국 기사 아카데미 졸업증에 멕 나이트 파일럿 자격증까지! 환영합니다, 기사님!”

변경 군단 모병관은 친절했다.

멕 나이트 파일럿, 그것도 제국 기사 아카데미 출신의 정통 멕 나이트 파일럿이라면 어디서든 명예로운 대접을 받았다. 변경까지 올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실력 있는 파일럿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전혀 가식이 아니었다.

루산이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순전히 돈. 돈 때문이었다.

위험하지만 그만큼 돈이 된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이다.

돈!

돈!

기사답게 명예로운 삶을 살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투자한 회사가 망해 버렸다.

투자금만 날렸으면 모르겠는데 평소 남한테 싫은 소리 못하고 안타까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아버지는 친절하게 보증까지 서 주었다.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부르사 왕국의 철광을 수입해 그레노블 마법 연구소에서 개발한 신개념 제철 공정에 투입하면 기존 생산비의 50퍼센트를 절감할 수 있다나?

아버지는 약삭빠른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부르사 왕국까지 직접 가서 현지 실사라는 것도 하고 왔다.

그레노블 마법 연구소의 세미나에 초대한다는 특별 초청장을 받고 기뻐하던 아버지의 모습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루산, 이게 뭔지 아니?”

“뭔데요?”

“마법사들만 가는 곳에 초대받은 거란다!”

아카데미 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의 들뜬 모습을 보고 어른이 돼도 저렇게 좋아할 수 있구나 하고 신기해했다.

그때까지는 아버지가 무슨 일을 했는지 잘 몰랐기 때문에 그 정도 반응을 보이고 넘어갔다.

지금 같으면, 후우······!

아버지를 꼬드긴 놈들을 찾아, 멕 나이트로 사람을 밟는 행위는 명예롭지 못하며 전쟁법에 의거 엄격히 처벌된다는 아카데미에서의 가르침 따위는 가뿐히 무시하고, 땅과 하나가 되게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자신에 차 있었다.

성공한 남자, 아니 성공을 눈앞에 두었다고 확신하는 남자의 자신감이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어! 앞으로는 돈이 세상을 움직일 것이다!”

아버지의 말씀이 맞았다.

돈 앞에서는 귀족이고 뭐고 없었다.

돈은 누대에 걸쳐 내려온 보름스 가문의 장원을 날려 버리고 아름답기로 소문난 수도의 저택을 압류하고 유명한 그림과 조각을 떼어 갔다.

돈은 보름스 가문을 순식간에 알거지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버지가 과연 알고 있었을까?

법 없이도 산다는 말을 듣던 아버지는 소송을 걸었다.

그러나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다른 말로 “잘 알아보고 하지 그랬어요?”라는 핀잔을 판사로부터 들은 아버지는 패소하고 몸져누웠다가 찬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허름한 토담집에서 돌아가셨다.

하아······, 인생!

***

“기사님, 기사님!”

클라크가 조심스럽게 루산을 흔들어 깨웠다.

“으음!”

잠에서 깨어난 루산은 아무렇지 않은 척 품위 있게 기지개를 켜고는 클라크를 바라보았다.

“왜?”

“괴로워하셔서 어디 편찮으신 줄 알고······”

“어? 그래? 아니야. 꿈을 꿨나 봐.”

“후유, 다행이다. 저는 또······.”

루산은 자신을 걱정해 주는 클라크가 기특하고 고마웠다.

“배고프지? 열차에 먹을 걸 팔 거야. 식당 칸이 어느 쪽이지?”

“저는 괜찮아요.”

“가자. 조금 비싸지만, 재밌는 곳이야.”

루산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클라크는 못 이기는 척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을 하고 따라나섰다.

“어서 가자.”

“네, 기사님!”

충직한 소년은 누가 훔쳐가지 않도록 가방을 품에 꼭 품는 것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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