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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5화 (5/450)

5. 1골드만 주십쇼

5. 1골드만 주십쇼

“후유~”

열차에서 내린 루산은 사흘 동안 굳은 몸을 풀기 위해 품위 있게 기지개를 켰다.

잠시 후 클라크가 왼손에 가방을, 오른손에는 처음 보는 짐 보퉁이를 들고 낑낑대며 내렸다.

소년이 들기에는 무거워 보였지만, 루산은 들어 주는 대신 한마디 했다.

“체력 훈련이 좀 필요하겠구나.”

“네?”

“일단 가자.”

“···네.”

루산이 앞장서고 클라크가 짐을 들고 헐떡이며 뒤따라왔다.

역사 밖까지만 들고 가면 돼서 다행이었다. 먼저 밖으로 나간 루산이 마부들과 흥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델타 기지까지 갑시다.”

“어이구, 거긴 너무 먼뎁쇼?

“멀면 더 내면 되지 않겠소?”

“어이구, 멀기만 하면 다행이게? 괴수가 나타나면 걍 죽은 목숨인데?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그건 좀······.”

빛바랜 모자를 쓰고 있는 마부들이 서로서로 쳐다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루산의 이마에 주름이 파였다.

변경의 전진 기지는 말 그대로 원시의 땅 가장 깊숙이 들어가 있어서 위험한 곳이 맞았다. 그러나 돈을 더 준다고 해도 거부할 줄은 몰랐다.

라돔 시까지 자주 나오지도 않았고, 나온다 해도 일 때문에 델타 기지의 말이나 마차를 타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온 탓에 이 땅에 4년을 살았으면서도 승차 거부를 처음 겪어 본 것이다.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변경 군단 본부로 가서 델타 기지까지 데려다 달라고 요청하거나 델타 기지로 통신을 넣어 사람을 보내 달라고 하면 된다.

그러나 편도 두세 시간 걸리는 위험한 길이라 부탁하기가 부담스러웠다. 그것도 빚은 빚인 것이다.

그래서 수입이 괜찮은 파일럿들은 말이나 탐탐 같은 탈것을 보유하고 있기도 했다.

‘어떡하지?’

루산이 본부에 부탁할지 델타 기지에 부탁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손님을 기다리며 늘어서 있는 마차들 끄트머리에서 젊은 마부가 큰 소리로 외쳤다.

“얼마 줄 건데요?”

“응?”

“아니, 거기! 델타 기지로 간다는 손님! 얼마 줄 건데요?”

“얼마면 갈 겁니까?”

루산이 그를 향해 되물었다.

아무리 간다는 마부가 없다 해도 다른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바가지를 쓸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다른 마부들에 비해 훨씬 젊은 그 마부는 얼굴을 찡그리고 뭔가를 생각하더니 다시 물었다.

“근데 뭐 하는 분인데 델타 기지까지 갑니까?”

고작 마차 한번 타는 데 마부한테 자신이 누구인지까지 밝혀야 하나 싶어 루산이 다시 인상을 쓰고 있을 때 낑낑대며 도착한 클라크가 분위기를 살피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 기사님은 멕 나이트 파일럿이에요! 델타 기지에서 최고로 강한, 아니 8군단에서 가장 강할걸요?”

그러자 마부들은 물론 지나가던 행인들마저 루산을 쳐다보고 한마디씩 했다.

“오!”

“어쩐지 겁 없이 델타 기지까지 간다 했다니께.”

루산은 민망함에 얼굴이 붉어지려는 것을 꾹 참고 태연한 척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아무래도 집에 돌아가면 교육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젊은 마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리쳤다.

“그렇다면 1골드만 주십쇼!”

“음?”

비싸다고 말하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싸다고 말하기도 뭐한, 애매한 금액이었다.

괴수라는 위험 요소가 없다면 비싼 금액이지만, 죽음의 위험 때문에 아무도 안 가려고 하는 길을 가는 것 치고는 싼 금액인 것이다.

이 절묘함!

루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부 청년은 씩 웃으며 끄트머리에 있던 마차를 앞으로 몰아 루산과 클라크 앞에서 멈추더니 딱히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클라크의 짐을 번쩍 들어 마차에 실어 주었다.

“고맙습니다.”

클라크가 인사하자 그는 모자챙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살짝 까딱하는 것으로 답례했다.

루산과 클라크를 태운 마차는 먼지를 일으키며 전진 기지가 있는 서쪽으로 달려갔다.

***

젊은 마부의 이름은 렌커.

클라크와 죽이 잘 맞았다.

클라크는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안정감 때문인지 아니면 지난 며칠 장거리 여행을 하고 제국의 수도라는 큰물을 경험해 본 자신감 때문인지 몰라도 다른 때와는 다르게 편하게 질문을 던졌다.

렌커 역시 친근하게 대답해 주었다.

어차피 두세 시간 동안 할 일도 없었다.

“다른 마부들이 아무도 안 간다는 길을 가겠다고 나선 이유가 뭔가요?”

“뒤에서 하염없이 손가락 빨고 기다리느니 아무도 안 하겠다는 일을 당장 맡는 것이 나으니까.”

“하지만,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위험하니까 큰돈을 벌 수 있지. 라돔에서 1골드를 벌려면 쉬지 않고 4일을 일해야 해. 지금처럼 일거리가 없으면 더 오래 걸리겠지. 다른 마부들은 자식이 있으니 몸을 사릴 수밖에 없지만, 난 책임질 자식도 없는걸. 그리고 델타 기지로 가는 손님이면 군단 사람일 테니 믿는 구석이 있겠거니 했지. 히히히!”

“아! 우리 기사님께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본 것도 그럼······?”

“그래. 멕 나이트 파일럿하고 함께 가는 길인데 어지간한 괴수가 나오지 않는 한 무슨 일 있겠어? 혼자 돌아오는 길이 문제인데, 그때는 어쨌든 위험 지역에서 점점 멀어지잖아. 운 나쁘게 괴수가 쫓아오면 죽어라 달리면 되지. 마차에는 기다란 삼지창도 있고 쇠뇌도 한 벌 있다고. 까짓, 죽기 살기지 뭐. 돈 버는데. 안 그래?”

루산은 안 듣는 척하면서 두 사람의 대화를 다 듣고 있었다.

그 역시 딱히 할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렌커는 그저 무모한 것이 아니라 용감하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청년이었다.

다른 마부들은 막연히 전진 기지니까 위험하다고 생각해 거절했는데 렌커는 짧은 시간에 여러 가지를 고려해 위험도가 생각보다 높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남들이 여러 날 걸려야 벌 수 있는 수입을 반나절 만에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다른 마부들이 옳았는지 렌커가 옳았는지는 시간이 지나 괴수가 나오는지에 따라 판가름이 나겠지만, 그의 남다른 판단력과 실행력은 루산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중간중간 개척촌들이 보였다. 그리고 딱 한 번 란드라트라는 소형 괴수가 나타났다.

소형이라는 말에 속으면 큰 낭패를 당하기 십상인데 다 자라면 송아지만큼이나 큰 녀석이었다.

쥐를 닮은 이 괴수는 개척촌의 가축과 사람들에게 가장 큰 피해를 주기 때문에 군단 차원에서 정기적으로 소탕에 나서고는 했다.

다행히 다 자란 녀석은 아니어서 크기가 늑대만 했다.

루산은 말을 노리고 달려드는 녀석에게 쇠뇌를 쏘아 관심을 끌었다. 그러고는 곧장 마차에 실려 있던 삼지창을 들었다.

란드라트가 루산을 노리고 마차로 방향을 틀어 풀쩍 뛰었다.

녀석이 입을 크게 벌렸다.

독이 묻어 있는 날카로운 이빨이 섬뜩했다.

그러나 루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벌린 입으로 삼지창을 정확히 찔러 넣었다.

푹!

창날에 입안이 찢어지고 창끝이 입천장에 강하게 틀어박혔다.

쿠롸쿠롸!

격렬하게 요동치던 란드라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이내 잠잠해져 창에 꿰인 채 축 늘어졌다.

창끝이 입천장을 뚫고 뇌에 박힌 것이다.

렌커는 물론 클라크도 입을 떡 벌렸다.

흔들리는 마차 위에서 늑대 크기 정도 되는 괴수를 단 일격에 죽인 것도 놀라운데 긴 창대의 반대쪽 끝을 잡고 들고 있는 힘도 무시무시했던 것이다.

루산은 그대로 창대를 당겨 란드라트를 마차 한쪽에 내려놓았다.

“이거 가지고 가세요.”

“그래도 되겠습니까?”

“아무도 안 가려는 길을 나서 준 데 대한 감사 표시라고 생각하세요.”

“감사 표시라니요? 제가 감사하죠!”

렌커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큰돈은 안 되더라도 하루 일당 벌이 정도는 한 셈이었다.

그것도 콧대가 하늘을 찔러 평소 말도 섞을 수 없는 기사님이 선물로 준다 하니, 기분이 너무 좋았던 것이다.

“도착할 때까지 창을 뽑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피가 많이 빠지면 가치가 떨어지니까.”

“알겠습니다, 기사님! 정말 고맙습니다!”

환한 얼굴로 기뻐하고 고마워하는 렌커를 보니 루산도 기분이 좋아졌다.

변경 군단에서는 어차피 이런 소형 괴수는 잘 수거하지 않았다.

대량으로 몰이사냥을 하는 경우에는 수거해서 작업을 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중대형 괴수에 비해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인건비를 생각하면 차라리 버리는 게 나았다.

휴가를 마치고 기지로 돌아가는 길에 이것을 들고 갔다가는 수거 팀 요원들이 인상을 쓸 것이다.

변경에는 군단 소속이 아닌 민간 사냥꾼들도 활동하고 있었는데, 그들 중에는 종류와 수량을 가리지 않고 걸리는 대로 사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들이 사냥한 괴수 부산물을 취급하는 상인들도 많았다.

판매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란드라트를 잡은 뒤에도 마차는 쉬지 않고 달려 튼튼한 목책으로 둘러싸여 있는 개척촌을 여러 개 지나 마침내 델타 기지에 도착했다.

요금으로 1골드를 받은 렌커가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안녕히 계십시오, 기사님! 그리고 집사 양반!”

“조심해서 가세요.”

말없이 손을 가볍게 들었다 내린 루산과 달리 그 사이 친해진 클라크는 팔을 크게 흔들며 인사했다.

마차가 떠나가고 두 사람은 숙소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후유, 집이구나!”

“네!”

마음이 푸근해진 루산은 클라크의 짐 보퉁이를 기꺼이 들어 주었다.

주위에 보는 사람이 없어 집사의 짐을 들어 준다고 해서 품위를 잃을 염려가 없었던 것이다.

“제가 해도 되는데······.”

“공부 열심히 해. 시험도 볼 거야.”

짐 보퉁이는 노바에서 구입한 책들이었다.

가까운 곳에 학교가 없기 때문에 이 방법밖에 없었다.

시험이라는 말에 클라크는 잠깐 긴장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어떤 주인님이 심부름하는 아이를 위해 책을 이렇게나 많이 사 주겠는가?

기사님의 가족들도 만나고 남들이 모르는 비밀도 알게 되었다.

이번 여행으로 부쩍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뭐 해? 들어오지 않고.”

“네! 들어가요!”

루산이 문을 연 채 기다리고 있자 클라크는 얼른 달려 안으로 쪼르르 들어갔다.

루산은 문을 닫았다.

마침내 여행을 끝내고 변경의 일상으로 복귀한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크나큰 변화가 생겼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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