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FC 변경 군단의 기사-10화 (10/450)

10. 그건 좀

***

“준비 됐나요?”

“네, 아가씨.”

“그럼 시작해 볼까요?”

낡은 치마와 빛바랜 할머니 블라우스.

바덴은 막일하기에 적합한 옷을 입고 자작나무숲 장원 고용인들과 함께 저택 대청소를 시작했다.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려 했으나 예산의 한계로 어쩔 수 없었다.

짠돌이 새 주인 - 그의 과거를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이 1만 골드만 내 주었기 때문이다.

비록 1만 골드가 큰돈이기는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평민들 기준이었다. 귀족들, 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별장 사업에 가구 하나만 고급스럽게 해도 그냥 없어질 돈이었다.

그래도 투덜거릴 시간이 없었다.

자신이 필사적으로 잡은, 인생에 둘도 없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 사업은 성공한다!’

그날, 머릿속에 번개가 치는 것처럼 번쩍하고 느낌이 왔다.

법조계는, 안타깝지만 아직까지 여자가 성공할 수 없는 세상이었다. 여자 자체가 없었다.

그러나 경치 좋고 평화로운 휴식처를 원하는 사람들은 그 장소를 좋아하는 것이지 그곳 주인의 성별을 따지지 않는다.

“아가씨, 이 소파는 어떡할까요?”

“버리세요.”

“이 의자는요?”

“음···, 놔두세요. 탁자도 함께. 배치는 나중에 바꿀 거예요.”

“이 벽시계는요?”

“애매한데······, 창고에 넣어 두세요. 아! 먼저 창고에 있는 물건 싹 빼고 창고 청소부터 하세요.”

“알겠습니다, 아가씨!”

저택을 치우는 일만 해도 하루 이틀로 해결되지 않았다.

어쨌든 저택을 다 치운 뒤에 안팎을 깨끗이 청소했다.

루산의 당숙이 남긴 집안의 모습은 그야말로 평범했었다. 퀴퀴하고 어둑어둑한 공간에 물건이 잔뜩 쌓여 있었다. 필요한 물건이 가까이 있기만 하면 된다는 느낌이었다.

귀족적이라거나 우아하다거나 세련되었다거나 예술적이라고 볼 만한 구석이 전혀 없었다.

다행히 싹 다 드러내고 깨끗이 청소하고 나니 저택 자체는 매우 귀족적이었다.

잘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정교하고 꼼꼼하게 지은 덕에 낡기는 했어도 그로 인해 고아한 향취를 풍겼다.

“벽돌 깨진 곳은 그냥 두세요. 나무가 보기 싫게 쪼개진 부분은 확인해서 보수하고 그냥 좀 눌리고 빛바랜 곳은 놔두세요.”

“알겠습니다.”

저택 수리업자가 꼼꼼하게 체크하고 기록했다.

“강변 산책로를 걸어 보니 들떠서 흔들리는 석판이 많던데, 비가 내리면 물이 찍찍 튀지 않겠어요?”

“회반죽에 둥근 자갈을 촘촘하게 깔면 해결 될 겁니다.”

“그렇게 해 주세요.”

조경업자의 조언대로 산책로를 손봤다.

숲길 산책로, 강변 산책로, 정원 산책로를 다 다르게 만들도록 했다.

가구는 기존에 쓰던 것들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싼 티 나지 않는 것들을 적당히 추가하고, 그 대신 가구를 가리고 덮을 수 있는 침구, 식탁보, 커튼 같은 것은 고급스러운 제품으로 구입했다.

그렇게 집안을 꾸며 놓은 뒤에도 무언가가 허전했다.

“그림이 없어.”

루산의 짠돌이 당숙은 그림과 장식품에 눈곱만큼도 투자하지 않은 실용주의자였다.

예술품의 가격은 이름값에 따라 천차만별이라 골치가 아팠다.

바덴은 머리를 쥐어짰다.

‘무명 화가를 고용하자!’

1만 골드로 예술품까지 충족시킬 수는 없었다.

어차피 홍보 책자에 쓸 그림도 필요했다.

바덴은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이는 살롱에 전시된 그림들 중에 마음에 드는 것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그린 작가 몇 명을 섭외했다.

“저택에 걸 그림하고 우리 자작나무숲 장원의 아름다운 풍경을 알릴 수 있는 홍보 책자용 그림이 필요해요. 그림은 계속 그려서 저택에 전시하고 판매 금액은 전액 작가 지급. 급여는 한 달에 7골드. 그리고 숙식 제공. 어때요?”

“좋습니다!”

당장 집세 낼 돈도 없는 가난한 작가들은 기꺼이 바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바덴은 그들이 그린 그림에 홍보 문구를 넣어 안내 책자를 만들었다.

자작나무숲이 그려진 표지에는 멋진 글씨로 이런 문구를 넣었다.

<머무는 동안 이 장원의 영주는 바로 귀하입니다.

바쁘게 살아온 귀하를 위해 평화와 정화의 시간을 선물합니다.>

“됐어!”

바덴은 고급스러운 홍보 책자를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동안 저택, 정원, 산책로, 가구, 식기, 장식, 예술품··· 그 무엇 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고 꼼꼼하게 살폈다.

많이 자면 하루에 두세 시간, 준비를 마치는 데 세 달을 갈아 넣었다.

이 홍보 책자가 자신을 성공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바덴은 이미 책자를 뿌릴 대상도 정해 놓았다.

법원의 판사와 주위의 성공한 변호사들이었다.

바덴은 성공하지는 못했어도 유명인이었다.

필센 제국에서 유일한 여자 변호사였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판사님, 여기 이거······.”

“이게 뭔가요?”

“별장을 좀 소개해 드리려고요.”

“오? 어째 최근에 안 보인다 했더니 부동산 업자로 전업했나요? 허허허!”

바덴은 부끄러웠지만, 여기에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기에 후회하지 않았다.

이 별장의 특징과 주위의 아름다운 풍경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음~ 생각 좀 해 봐도 되지요?”

“그럼요!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바덴은 홍보 책자를 들고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녔다.

인생을 걸었다!

실패하면 멕 나이트 파일럿에게 죽는다!

이제 변호사 때려치우고 별장 세일즈를 하는가? 사는 게 그렇게 힘들면 차라리 자기 자신을 세일즈 하는 게 어떻겠는가? 밤에는 특별히 비싸게 사 주겠노라.

온갖 조롱과 모욕에도 굴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자작나무숲 장원 별장의 장점을 소개해 나갔다.

그렇게 열심히 하다 보니 그 정성을 알고 몇몇 판사와 변호사들이 자신이 아는 사업가를 소개해 주기도 했다.

집에 돌아온 바덴은 낮에 겪었던 모욕적인 일에 눈물을 흘리다 문득 자신의 노력을 인정받고 위로받고 싶어 그동안 준비해 온 과정과 노력들을 모두 적어 홍보 책자 한 부와 함께 루산에게 보냈다.

원래 꾸준히 보고해야 했는데 그동안은 준비 과정이 너무 바빠 이제야 생각이 났던 것이다.

두툼한 편지가 담긴 소포는 마나 열차를 타고 변경 8구역에 도착해 8군단 우편병에 의해 델타 기지에 있는 루산의 숙소에 전해졌다.

루산은 웨이브 시즌이 오래 가는 바람에 벌써 두 달 넘게 집을 비우고 있었다.

바덴이 보낸 소포를 받은 클라크는 사업상 중요한 내용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보급품을 가져오기 위해 잠시 기지에 들른 멕 나이트 파일럿 제프에게 부탁했다.

“기사님, 우리 기사님한테 중요한 우편물이 온 것 같아요. 부탁 좀 드릴게요.”

멕 나이트 파일럿들은 기사님이라는 호칭을 무척 좋아했다.

“그럼! 뭐 어려운 일이라고. 알았다. 걱정 마라.”

산적처럼 수염이 덥수룩해진 제프가 껄껄 웃으며 소포를 가져갔다.

***

쿠와아!

“버텨!”

[젠장! 밀리는 걸 어떡하라고!]

하겐이 빽 소리를 지르며 안간힘을 썼다.

대형 괴수 타르보 한 마리를 상대하느라 방벽이 엉망이 돼 버렸다.

타르보가 두 발로 서서 이리저리 부딪칠 때마다 방패를 들어 막는 멕 나이트들이 맥없이 밀렸다.

굵고 긴 꼬리에 정통으로 맞으면 강철로 만든 장갑이 깨질 정도로 위력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어중간하게 거리를 주느니 붙는 것이 안전했다.

죽이려면 죽일 수 있지만, 이렇게 고생스럽게 상대하는 이유는 타르보가 값비싼 괴수이기 때문이었다.

최대한 손상을 줄이고 온전한 부산물을 많이 획득하려고 이렇게 고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피 한 방울도 허투루 버릴 수 없었다.

“멕 워커, 포획 고리 걸어!”

- 알겠습니다!

멕 워커들이 굵고 긴 철봉을 들고 조심스럽게 타르보에게 접근했다. 철봉 끝에는 쇠사슬로 만들어진 올가미가 달려 있었다.

“지금이야! 방패!”

[간다!]

하겐과 에센이 양쪽에서 동시에 타르보를 압박하자 순간적으로 녀석이 움직이지 못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멕 워커 세 대가 타르보의 목에 얼른 쇠사슬 올가미를 걸었다.

- 걸었다!

쿠와아!

타르보가 요동치자 다시 하겐과 에센의 멕 나이트가 뒤로 크게 밀렸다.

그 사이 멕 워커들이 가까운 아름드리나무에 쇠사슬을 친친 감았다.

굵은 쇠사슬 세 줄이 목을 조이자 타르보는 더욱 날뛰었다.

크아아아!

[후유, 정말 진땀난다.]

[그러게 말이야.]

“고생 많았어요. 내가 마무리할게요.”

루산의 멕 나이트가 타르보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그때 타르보가 발로 바닥을 긁으며 힘껏 기운을 몰아 썼다.

쿠와아아아아!

원시림을 뒤흔드는 엄청난 굉음에 소름이 끼치고 온몸에 힘이 좍 빠졌다.

문제는 소리에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쇠사슬을 감아 놓은 아름드리나무가 우지끈 부러지고 말았다.

“말도 안 돼!”

나무 위에서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던 정찰병 하나가 그 광경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쇠사슬 하나가 풀리자 그만큼의 자유를 얻은 타르보가 가까이 있던 하겐의 멕 나이트 머리를 물고 흔들었다.

포획이 끝났다고 살짝 방심하고 있었던 하겐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아악! 이 자식, 뭐 하는 거야!]

쿠와아!

하겐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루산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타르보와 하겐의 멕 나이트 사이로 들어가 노란 빛이 일렁이는 대검으로 타르보의 질긴 피부를 뚫고 목 한가운데를 정확히 찌른 뒤 밑으로 죽 그어 내렸다.

금 같은 피가 루산과 하겐의 멕 나이트 위로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잠시 후 거대한 타르보가 축 늘어지더니 쿵 하고 쓰러졌다.

그 광경을 보고 에센이 중얼거렸다.

[아! 아까운 피······!]

[야! 내가 죽을 뻔했는데, 타르보의 피가 문제야!]

[안 죽었잖아!]

“쩝! 그만해요.”

다행히 쇠사슬 두 줄은 떨어지지 않고 나무에 고정돼 있었기에 망정이지 타르보가 완전히 자유로웠거나 자신이 조금만 늦었다면 멕 나이트의 목이 떨어지고 몸체가 으스러져 하겐이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고생고생해서 포획했는데 아쉬웠다. 생명 구슬을 획득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타르보를 마지막으로 얼마 동안 괴수는 다가오지 않았다.

- 정찰병들은 서쪽 감시 잘하고, 괴수가 나타나면 즉시 알리세요.

루산이 외부 확성기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루산은 잠시 멕에서 내려 찌뿌드드한 몸을 풀었다. 얼굴에 두 달 동안 자르지 못한 수염이 한가득했다.

웨이브 시즌이 시작되고 두 달을 이곳 반달 호수 저지선에서 보내고 있었다.

초반에 잡았던 괴수의 사체가 썩어 악취가 장난이 아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멀리 끌어다 옮겼지만, 사실 그리 현명한 방법이 아니었다.

시간이 날 때는 쉬어야 한다.

어쨌든 그동안 잡은 괴수가 어마어마하게 많았고, 획득한 생명 구슬과 각종 부산물이 산처럼 쌓여 군단 본부 수거 팀에서 몇 차례 수거해 갔다.

- 모르긴 몰라도 어쨌든 이번 시즌에는 우리가 가장 많이 벌었겠지?

“그렇겠죠.”

루산은 외부 확성기로 들려오는 에센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압도적으로 많이 벌었을 것이다.

사실 이번 웨이브는 이미 끝났다.

정찰병들의 보고에 의하면 반달 호수 지역으로 밀려들어 오는 웨이브는 한 달 전에 끝났다.

한 달짜리 웨이브였던 것이다.

웨이브가 끝난 다음 한 달은 반달 호수 지역 남쪽 평원으로 들어와 있는 괴수들이 유일한 평지 통로인 이곳으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홍수에 밀려온 물고기가 연못에 모여 있다가 한쪽 수로로 조금씩 빠져나오고 있는 형국이었다.

어중간한 수의 멕 나이트로 섣불리 들어갈 수는 없고 여기서 길목을 지키고 있으면 짭짤한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곳도 안전한 것은 아니어서 대형 괴수 여러 마리가 이곳에 동시에 나타난다면 위험할 수 있었다.

‘조심해야지, 뭐.’

어쨌든 지속적으로 수입을 안겨 줄 황금 사냥터 입구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때 하겐이 루산에게 다가왔다.

자신의 멕 나이트에서 나와 타르보에게 뜯긴 부위를 살펴보고는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다.

“제길! 벌금 좀 세게 맞겠네.”

“많이 상했어요?”

“이번에 들어가면 여러 날 걸리겠어.”

군단 소속 멕 나이트를 탄다고 해서 수리비를 아예 부담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심각한 파손이 잦은 파일럿에게는 벌금으로 책임을 물었다. 그러다 더 심해지면 잘리는 것이다.

하겐이 조금 방심하기는 했지만, 잘릴 정도로 실력이 없지는 않았다.

“뭐, 이번에 고생했으니 휴가 쓰는 셈 치세요.”

“그래야지. 그나저나 아직도 안 부를 거야?”

“무슨 말이에요?”

“켐니츠 말이야. 그 정도 했으면 됐잖아.”

델타 기지 주변의 괴수 소탕 작업은 본부 소속 기동 전단의 도움으로 거의 다 마무리 되었다고 들었다.

기동 전단이야 주위를 돌아다니며 웨이브 때 흘러들어 와 배회하는 괴수를 잡고 있겠지만, 켐니츠와 아직 얼굴도 모르는 신입 파일럿은 지금 손가락 빨고 있는 것이다.

루산은 켐니츠가 먼저 태도의 변화를 보이지 않는 한 풀어 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하겐의 멕이 손상을 입었다.

당장 움직이는 것은 가능하더라도 대형 괴수를 상대하면 손상이 더 커질지도 모른다.

‘부를까? 트리어라면 어떻게 했을까?’

절대 먼저 풀어 주지 않았을 것이다.

루산이 그런 결론을 내렸을 때 에센이 외부 확성기로 소리쳤다.

- 캡틴, 통신이 들어왔어!

“무슨 통신이오?”

- 지원 부대가 오고 있대!

“지원 부대라고요? 요청한 적이 없는데? 필요도 없고.”

그때 이미 동쪽에서 지축을 흔드는 익숙한 발소리가 들렸다.

쿵쿵!

쿵쿵!

여러 대의 멕 나이트가 다가오는 소리였다.

선두는 보급 물자를 가지러 갔던 제프의 멕 나이트.

그 뒤로 긴 대열을 이루고 따라오는 멕 나이트들은,

“젠장, 본부 기동 전단 놈들이군! 뺏어 먹으려고 왔네. 하이에나 같은 놈들 같으니!”

하겐의 입에서 욕부터 나왔다.

루산도 인상을 찌푸렸다.

연못에 들어 있는 물고기들을 한 마리씩 천천히 잡아먹으면 되는데, 한꺼번에 싹 다 잡겠다고 본부 기동 전단이 출동한 것이다.

잠시 후 본부 기동 전단 멕 나이트들이 루산 앞에 멈추었다.

이윽고 한 사람이 멕에서 나왔다.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었다.

“트리어!”

본부 기동 전단에는 두 개의 전대가 있었다. 그중 2전대장으로 갔던 트리어가 온 것이다.

“후훗, 오랜만이야. 인상 풀라고, 애송이 캡틴! 좀 나눠 먹자.”

“그건 좀······.”

이런 일에는 품위를 따지는 게 아니다.

루산은 팔짱을 끼고 짝다리를 짚은 채 트리어를 불량스럽게 노려보았다.

제 밥그릇을 노리고 달려드는 옆집 사나운 개를 상대하는 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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