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FC 변경 군단의 기사-11화 (11/450)

11. 큰 그림을 봐야지

***

전진 기지 병력의 주된 임무는 순찰과 정찰.

전진 기지와 인근 개척촌 일대를 순찰하고 괴수와 맹수를 제거한다.

또한 주변 지역을 정찰하여 앞으로 닥칠 위험을 사전에 대비하고 새로운 개척지를 물색한다.

이 과정에서 사냥한 맹수와 괴수는 전진 기지의 수입이 된다.

본부 병력의 주요 임무는 소탕.

웨이브 시즌에는 전진 기지 병력만으로 감당이 안 되기 때문에 밀려오는 웨이브를 소탕하기 위해 본부 병력이 투입된다.

또한 전진 기지에서 괴수의 소굴을 발견하거나 새로운 개척지로 적합한 지역을 찾아내면 해당 지역을 개척하기 위해 본부 병력이 투입된다.

말하자면 전진 기지와 본부는 상호 보완적 관계에 있는 것이다.

전진 기지가 소규모 병력으로 순찰과 정찰을 수행하다 감당하기 어려운 괴수를 만나면 본부의 대규모 병력이 출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임무 분담 범위에 겹치는 부분이 있고 각자의 수입과 직결되다 보니 종종 충돌이 일어났다.

“우리가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도 아닌데, 본부에서 출동할 이유가 없잖아요.”

“뭘 그리 깐깐하게 따지고 그래? 어차피 다 군단 일인데. 우리가 남이야?”

트리어가 유들유들하게 받아넘겼다.

그러나 루산은 투견처럼 으르렁거렸다.

“아니, 그럼 안 따지게 됐어요? 두 달 넘게 우리가 잠도 못 자고 공들여서 여기에 방벽 쌓고, 무너진 방벽 보수하고, 웨이브 적당히 흘려가며 막아왔기 때문에 개척촌에서도 사고 안 나고 기동 전단에서도 꽤 수입을 올리지 않았어요? 이번 웨이브에 우리가 여기서 제대로 못 막았으면 개척촌 여러 개 터졌어요.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다고요! 그렇게 애써서 신중하게 관리를 해 왔는데, 이제 와서 나눠 먹자고 하면 좋은 소리가 나오겠어요?”

뒤에서 ‘그렇지!’ 하고 맞장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겐의 목소리였다.

하겐뿐 아니라 두 달 넘게 고생한 멕 나이트 파일럿, 멕 워커 파일럿, 정찰병들이 모두 루산을 응원하고 있었다.

루산은 자신의 욕심에 더해 동료들의 기대를 떠안고 캡틴으로서 항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트리어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일단 시선을 돌리고 딴소리를 했다.

“왐마! 이것들이 멕이야 괴수야? 알아보지를 못하겠네.”

델타 기지의 멕들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괴수의 침과 피가 무수히 뒤덮이며 굳어 더럽고 기괴한 모습이었다.

“다들 이번만 일하고 은퇴하려고? 적당히 쉬어 가며 해야지.”

“누가 계속한대요? 이미 웨이브는 끝났고 지금은 웅덩이 안에 들어온 물고기들이 한 마리씩 나오는 상황이라 우리도 이제 교대해 가면서 충분히 여유롭게 처리할 수 있다고요. 이걸 인계하라고 하면 누가 받아들이겠어요?”

루산이 계속 항의하자 트리어도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

“나랑 말 좀 하자.”

“여기서 하세요.”

“쓰읍! 나도 위에서 시켜서 이러는 거야. 너도 적당히 해. 상황 파악을 해야지. 골목대장 놀이 하는 게 캡틴인 줄 알아?”

트리어가 진심으로 화를 내자 루산은 살짝 주눅이 들었다.

할 수 없이 트리어가 이끄는 대로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는 강변으로 갔다.

둘만 있게 되자 트리어는 다시 표정을 풀었다. 사람들이 모두 지켜보는 앞에서 면박을 주어 미안했던 것이다.

“야, 우리가 변경에 돈 벌러 들어왔지 무슨 숭고한 사명감이나 의무감 때문에 봉사하러 들어온 건 아니잖아?”

“······.”

“그런데 돈을 번다는 게 나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 같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신경 쓸 게 많잖아. 혼자 먹으면 탈이 난단 말이야.”

“시기, 질투 따위는······.”

“너!”

트리어가 루산의 말을 끊었다.

“너 정말 잘못 생각하고 있구나.”

“네?”

“이 문제를 그저 시기, 질투의 문제로 생각한다면 넌 정말 애송이야. 이건 그런 감정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루산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자 트리어가 한숨을 쉬며 설명해 주었다.

“호른 영감이 이 땅을 선점하려 해. 그건 알겠지?”

“그 정도는 알죠.”

“너도 알고 나도 아는데 위에서 모르겠냐? 당연히 알지.”

“음!”

“그런데 그게 문제는 아니야. 전진 기지 대장이 새로운 개척지를 물색하는 것은 임무이자 권한이니까.”

“그렇죠.”

“문제는 너무 돌출했다는 거지. 델타 기지도 이미 다른 전진 기지들보다 깊이 들어와 있는데 만약 반달 호수까지 진출하게 된다면 그 먼 거리와 이동로의 안전을 과연 델타 기지 병력만으로 책임질 수 있겠어?”

루산은 고개를 저었다.

괴수는 평지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다. 웨이브가 지나다니는 길에만 출몰하는 것도 아니다.

산에도 살고 늪에도 살고 숲에도 살고 물속에도 산다.

그래서 꾸준히 순찰하고 정찰하는 것이다.

만약 반달 호수 지역에 새로운 전진 기지를 건설하게 된다면 델타 기지와 새로운 전진 기지를 잇는 길뿐 아니라 두 기지 사이의 광활한 지역을 순찰해야 한다.

델타 기지 요원들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본부 병력이 동원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야. 그런데 이익은 델타 기지가 보는 거지. 그 좋은 땅을 차지하고 개척민을 받아 세금을 걷으면 누구 주머니로 들어가느냐고? 그렇다고 다른 전진 기지들은 빼 놓고 델타 기지에만 병력을 증원시키기도 어렵지. 좋은 땅이라 해도 워낙 깊이 들어가기 때문에 개척에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거든.”

“그건 그렇죠.”

산에서 내려온 괴수 하나만 개척촌에 들어가도 끝장이었다.

“멕 나이트 파일럿 입장에서 생각하지 말고 네가 변경 8구역 통치자나 8군단 사령관이라고 생각해 봐. 안전과 수익성, 이 두 가지가 없으면 개척은 실패해. 그리고 안전과 수익성은 밀접한 관계가 있지.”

“안전과 수익성!”

안전해야 사람들이 온다.

그 사람들이 정착해서 생산을 해야 세금 수입을 거둘 수 있다.

그 세금 수입으로 병력을 늘리고 괴수를 더 많이 때려잡아 안전한 개척지를 더욱 넓혀 나간다.

그러면 사람들이 더 많이 들어올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지역은 아직 개척할 단계가 아니야. 델타 기지도 아직 안심 지역이 아니잖아.”

“···그렇죠.”

루산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라돔 시의 마부들이 승차를 거부하는 곳이 아닌가.

그런데 트리어의 말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본부에서 이 지역을 개척 불가 지역으로 판단했다면 본부 기동 전단을 동원할 이유가 없잖아요?”

결국 남의 밥그릇 빼앗은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쯧쯧쯧, 들어 봐. 얘기가 아직 안 끝났잖아.”

“···네.”

“안전과 수익성의 관계에서 안전이 1차 고려 대상인 것은 아니야.”

“······?”

“수익이 날 만한 땅에 안전을 확보해야지. 모래땅이나 늪지대에 안전을 확보했다고 개척민들이 오겠냐고? 반대로 수익이 클 것 같은 땅이면 무리를 해서라도 안전을 확보해야 하고 말이야.”

“아! 그렇죠!”

“반달 호수 지역은 좋은 땅이야. 본부에서도 당연히 눈여겨보고 있었지. 하지만, 아직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호른 영감이 욕심을 내는 기미를 알아챈 거지. 웨이브를 여기까지 와서 막는 건 사실 무모한 짓이거든. 결과적으로 개척지의 안전 보장에 더 유리했다 해도 말이야. 멕 나이트 여섯 대 중에서 네 대가 멀리 나가 버리면 무책임하다고 볼 수 있지 않겠어? 이건 본부 기동 전단에 델타 기지의 역할을 떠넘기는 거잖아?”

“쩝!”

루산은 입맛을 쓰게 다셨다.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조금은 부끄러웠다.

“널 탓하는 건 아니야. 여기에 1차 저지선을 펼친 건 확실히 웨이브를 별 피해 없이 막는 데 도움이 됐으니까. 어쨌든 호른 영감이 무모한 짓을 하려는 것을 알아챘을 때 바깥세상에서도 큰 사건이 터졌어.”

“무슨 사건이오?”

“아라드 왕국에서 피란민이 대거 들어왔거든. 국경 지방에 난리가 났지. 그런데 우리 위대한 황제께서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 생각을 하신 거야.”

“개척민으로?”

“맞아. 우리 8구역 통치자께서는 황제 폐하께 잘 보이고 싶으셨고. 또한 욕심도 나셨겠지. 초기 지원이 어렵지 정착하기만 하면 두고두고 세금 수입 아니겠어?”

“으음!”

루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금 수입하고 괴수 부산물 수입 중에서 통치자들이 좋아하는 건 세금 수입이야. 안정적이거든. 우리 같은 말단들이나 괴수 부산물을 신경 쓰지 윗사람들에게는 플러스알파 같은 거야.”

“쩝!”

오늘따라 자꾸 입맛이 썼다.

“윗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바깥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게 중요해. 닭이나 키우고 하는 일 없어 보이는 호른 영감이 얼마나 버는지 알아? 너랑 나랑 델타 기지 파일럿들 다 합쳐도 안 돼. 큰돈은 위로 가야 버는 거야. 큰 그림을 볼 줄 알아야지. 밑에서 오물 뒤집어쓰며 박박 기어 봐야 늘 거기서 기는 거야.”

“후유~”

“그러니 이런 일로 밥그릇 싸움 할 생각 말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하고 협조할 일이면 과감히 협조해. 그래야 위에서 예쁘게 보고 끌어 주지. 나니까 이렇게 차근차근 설명해 주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너는······.”

루산의 목이 쑥 들어갔다.

“알았냐?”

“···네.”

“그리고 이 지역은 우리가 접수하는 게 아니야. 반달 호수 지역을 최대한 빨리 정리하라는 명령이야. 본부 전단은 물론이고 여유가 되는 다른 전진 기지 파일럿들도 동원될 거야. 너는 돌아가서 며칠 쉬었다가 돌아와.”

“아!”

루산의 얼굴이 환해졌다.

본부 기동 전단에 빼앗기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 이 지역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호른 영감한테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거야. 전진 기지 하나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크거든. 그리고 난민도 받아야 하고. 아직 정확한 건 모르겠고 어쨌든 특별 관리 지역이 될 거야.”

루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정말 부끄러우면서도 많은 것을 배운 날이었다.

눈앞의 이익에 눈이 돌아가서 드잡이할 생각 말고 안전과 수익성이라는 변방 개척의 원리와 바깥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 그리고 윗사람들의 생각에 늘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위로 올라갈 수 있고 큰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다.

내 밥그릇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밥그릇 문제가 걸려 있을 때조차 품위를 지켜야 한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트리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상종 못할 녀석으로 낙인 찍혀 위로 올라갈 기회가 봉쇄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 켐니츠에게 기회를 주자.’

실수 한 번 했다고 기회를 박탈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최소한 이야기는 나눠 보기로 했다.

트리어가 실수한 자신에게 차근차근 이야기를 해 준 것처럼.

“루산, 트리어가 뭐래?”

하겐, 에센, 제프 그리고 다른 요원들이 강변에서 나오는 루산에게 다가와 물었다.

루산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안심시켰다.

“이 지역을 아예 넘겨받으려고 온 건 아니래요. 일단 기지로 돌아가서 며칠 쉬었다가 다시 오면 된다고 하네요. 본부 방침으로 반달 호수 구역 전체를 소탕하기로 했대요.”

“난 또······. 그래도 다행이네.”

“아함~ 잠 좀 푹 자고 다시 오지 뭐.”

동료들의 안도하는 모습에 루산도 마음이 편해졌다.

그때 제프가 소포를 건네며 말했다.

“집사가 전해 주라고 하던데? 급한 거라고.”

“아! 고마워요.”

본부 기동 전단 2전대 멕 나이트들이 썩어서 악취를 풍기는 괴수 사체를 멀리 옮기는 소리를 들으며 루산은 나무에 기대 앉아 소포를 뜯었다.

별장 안내 책자 한 부와 열 장이 넘는 편지지.

내용을 읽어 보니 재미있었다.

열정이 느껴지고 울분도 느껴지고 각오도 느껴지고.

편지를 읽는 내내 루산은 미소를 지었다.

마음속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바덴을 응원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런데 뭐야? 세 달이나 지났는데 손님이 들어왔다는 이야기는 없네. 돈만 쓰고 있었단 거야? 누구는 괴수의 피와 침을 뒤집어써 가며 목숨 걸고 돈 벌고 있는데, 편한 데서 돈만 써?”

루산은 델타 기지 숙소로 돌아가자마자 현재 느끼는 기분을 잊지 않기 위해 서둘러 답장을 썼다.

<조만간 이윤을 창출하여 당신의 열정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입니다.>

루산은 너무 다그치지 않고 품위를 지켜 문장을 완성해 낸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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