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유한한 인생에 무한 책임이라니
***
정비부 요원들에게는 지옥 같은 날들이었다.
두 달 넘게 괴수의 체액과 타액을 뒤집어쓴 멕들을 청소해야 했기 때문이다.
강력 분사기로 물을 뿌려도 떨어지지 않는 피딱지를 철선솔로 빡빡 닦다 보면 몸에 젖은 것이 물인지 땀인지 괴수의 체액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후유~”
잠시 쉬려고 밖으로 나온 정비부장 바르통은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여! 부장님!”
루산이 손을 흔들며 바르통을 불렀다.
바르통은 흠뻑 젖은 머리와 얼굴에서 물기를 훔치고 루산을 쳐다보았다.
“어? 캡틴, 무슨 일이에요? 다 되려면 멀었는데? 청소만 사나흘은 걸릴 테고, 점검하고 필요한 거 교체하고 하려면 한참 남았는데?”
“알죠. 워낙 고생하시니까 간식 좀 준비해 왔어요. 다들 시원할 때 한잔씩 하라고. 여기 고기빵도 좀 먹고.”
루산이 가리킨 정비소 나무 그늘 밑에 작은 맥주 통과 빵이 가득 들어 있는 바구니가 보였다.
‘저 짠돌이가 웬일이야?’
바르통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공을 알아주는 것은 어쨌든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는 다시 정비소 안 세척실로 들어가 피와 오물을 씻어내고 있는 정비부 요원들을 불렀다.
“얘들아, 간식 먹고 해라!”
“아싸!”
“갑자기 웬 간식?”
흠뻑 젖은 정비부 요원들이 밖으로 나와 루산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정비부 요원들은 여러 날 힘들고 더러운 일을 하게 되었다 해서 파일럿을 탓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들의 일이고 파일럿이 괴수를 많이 잡으면 그들에게 돌아가는 성과 보상금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게 많이 잡았다면서 통 크게 쏘시지. 이게 뭐에요?”
“새삼스럽게. 우리 캡틴께서 이 정도 쓴 거면 엄청난 일이라고!”
몇몇 정비 요원들이 농담을 걸어왔다.
루산도 농담으로 받아넘겼다.
“에이, 아직 입금이 안 됐잖아. 입금 되고 나면 생각해 볼게.”
“우와! 잔뜩 기대해 버릴까보다.”
“기대하라고!”
“헤헤헤!”
정비 요원들이 편하게 맥주 한 잔씩 하면서 간식을 먹으라고 바르통은 다른 나무 그늘로 가서 루산을 상대했다.
두 사람도 맥주를 한 모금씩 했다.
날이 더워 그리 시원하지는 않았지만, 기분 좋은 알콜 향이 입안에 감돌았다.
“부장님, 고생 많았죠?”
“고생은요. 고생은 파일럿들이 다 했지.”
“그래도 우리가 없는 사이에 본부 기동 전단 멕 관리하느라 피곤하셨겠어요.”
“우리 일인데요, 뭐.”
시원한 바람이 무더위를 잠시 식혀 주었다.
“근데 부장님,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일단 우리끼리 비밀로 하고.”
“비밀? 벌써 겁이 나는데? 뭔데요?”
바르통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루산을 쳐다보았다.
“괜히 말 나오는 게 싫어서 그러는 거지. 비밀이랄 건 아니고······.”
“말해 봐요. 비밀로 해 드릴게.”
“다름이 아니라 군단 멕을 안 쓰고 내가 멕을 구입한다고 치면, 유지 보수 관리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오호라! 놀라운 사건이구먼! 멕 한 대 사시려고?”
바르통이 놀리듯이 묻자 루산은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만약에 그렇다고 하면 말이에요, 만약에. 파일럿이 자기 멕을 소유하고 있으면 군단 정비 설비와 인력을 전혀 이용하지 못하고 따로 정비 팀을 꾸려야 하는지 궁금해서 말이에요.”
“에이! 멕 한 대 관리하려고 정비 팀을 꾸리는 건 오버지. 배보다 배꼽이 더 크죠. 이런 설비를 개인이 어떻게 운용해? 못하지. 특별한 기체라 특별 관리를 위해 그렇게 한다면 몰라도.”
“그럼?”
“규정에 있어요. 똑같이 정비부의 관리를 받을 수 있죠. 단, 비용을 내야죠.”
루산은 파일럿이 멕을 직접 소유한다고 해서 따로 정비 팀을 꾸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겐이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비용은 얼마나······?”
“정확한 건 찾아봐야겠지만, 상식적인 선이지 절대 그걸로 폭리를 취하지 않아요. 그럴 이유가 없지 않겠어요? 군단 멕이든 파일럿 멕이든 괴수 퇴치하고 개척촌 안전에 기여하는데, 왜 차별을 해? 군단 입장에서는 오히려 값비싼 멕을 구입하는 비용을 줄일 수 있어서 좋지. 멕 대여해 주고 장사하려는 게 아니에요. 물론 손해는 안 보려고 하지.”
“음······.”
“여하튼 유지 보수 관리에 비용은 들겠지만, 캡틴 정도면 사실 자기 멕이 있는 게 수입 면에서는 월등히 낫지. 하겐, 그 양반은 절대 안 돼! 너무 부수잖아! 수리비 감당 못해서 파산하지.”
루산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는 다시 물었다.
“근데 요새 멕 가격은 얼마나 해요?”
“글쎄요, 그것도 천차만별이라서. 제조사에 따라 다르지만 새것은 15만 골드에서 25만 골드 정도 할 테고, 중고는 그야말로 대중없죠. 신품 가격에 버금가는 것도 있고 그야말로 고철 값만 내고 가져가라는 것도 있을 테고.”
“그래도 변경 군단에서 구입하는 가격대가 있을 것 아니에요?”
“저가 신품의 3분의 1에서 2분의 1 정도 생각하면 될 거에요.”
“5만에서 8만 사이?”
“뭐, 대충.”
“후유······!”
루산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정도의 빚을 지는 것은 정말 당숙에게 물려받은 장원을 통째로 날려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작나무숲 장원은 이미 팔지 않기로 결정하고 자금을 투자해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멕을 구입한다고 최소 5만 골드의 자금을 융통하기는 어려웠다.
루산이 워낙 크게 실망하자 지켜보는 바르통이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캡틴, 만약에 2, 3만 골드 정도 된다면 구입할 생각 있어요?”
“2, 3만 골드요? 움직이기는 해요? 괜히 다 썩은 거 구입했다가 쓰지도 못하고 버리는 거 아니에요? 사냥하다 멈추기라도 하면······.”
대형 괴수까지 상대하려면 어느 정도 성능은 내야 하는 것이다.
“에헤이! 내가 그런 걸 권했을라고?”
“그럼?”
“왜 그 멕 나이트 초기 모델 있잖아?”
“300년 전 모델 말이에요? 둔하고 무식하게 생긴.”
“응. 캡틴이 멕 타고 전쟁할 건 아니잖아? 변경에서 괴수 잡으려는 거지.”
“그건 그렇지만······.”
“그게 골격이 아주 튼튼하거든. 몸체도 단단하고.”
“흐음······.”
제국 기사 아카데미 출신인 루산이 멕 나이트에 대해 모를 리 없었다.
멕 나이트는 원래 변경 괴수 퇴치용으로 개발된 무기였다.
그러던 것이 국가 간 전쟁용으로 점차 발전하게 된 것이다.
괴수가 아닌, 인간이 탑승한 멕 나이트를 상대하게 되면서 멕 나이트는 더 정교해지고 세련된 형태로 변해 갔다.
파일럿이 사용하는 고급 검술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도록 몸체가 인간의 몸과 가까워진 것이다.
최신 모델이 강하고 빠르고 정교하다면 초기 모델은 무겁고 단단하고 둔했다.
이제 초기 모델은 변경 괴수 퇴치용으로도 나오지 않았다. 기사들이 자신의 검술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을 정도로 둔했기 때문에 점점 사장된 것이다.
루산 역시 마뜩지 않았다.
중고이기는 해도 세련된 인간형 멕 나이트를 타던 자신이 바위 골렘 같이 둔한 멕을 탄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얼굴이 붉어지는 일이었다.
모든 파일럿들의 놀림을 받을 일인 것이다.
루산의 마음을 모르는 바르통은 자신의 아이디어에 신이 나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골격과 몸체는 초기 모델을 쓰고 내장 부품은 싹 다 바꾸면 되지. 중고 부품 시장에서 잘 찾아보면 싸게 구할 수 있거든. 엔진은 최고 출력 엔진으로 - 물론 중고긴 하겠지만 - 해 줄게. 조종실도 최신형으로 편안한 탑승감을 느끼도록 해 줄게. 운동 전달도 깔끔하게 전혀 시간차가 나지 않도록 조정해 줄게. 익숙하던 인간형 멕에서 둔한 오거형 멕을 타면 적응하는 데 약간 시간이 걸리겠지만, 어차피 괴수 상대할 건데 무슨 상관이야. 안 그래요?”
루산은 살짝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300년 전 모델이 아직 있어요?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한데?”
“그럼! 세상은 넓고 오래된 중고 시장에는 별 해괴한 물건이 다 있는 법이지. 변경 7구역이나 5구역 가면 다 있을 거야.”
“조립은요? 직접 하신다고요?”
“내가 우리 애들하고 하면 되지.”
바르통이 눈을 반짝였다.
그 역시 변경에 돈을 벌기 위해 왔다.
루산은 속으로 끙 하고 신음을 흘리며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얼마에 해 주실 건데요?”
“우리 사이에 뭐 얼마나 받겠어? 그래도 공임조로 부품 값의 20퍼센트 정도는 받아야지.”
“10퍼센트.”
“에헤이! 그건 아니지. 17퍼센트.”
“발품 팔아서 부품을 최대한 저렴하게 구입해 주신다면 15. 더는 안 돼요. 그리고 조립에 하자가 있으면 무한 책임.”
“어이쿠. 유한한 인생에 무한 책임이 어디 있어?”
“그럼 둘 중에 한 사람 죽을 때까지.”
“허허허! 죽거나 여기 뜰 때까지. 그럼 20퍼센트. 끝!”
“오케이! 20퍼센트에 조립 하자 무한 책임! 끝!”
“좋아! 3만 골드 안쪽으로 내가 한번 맞춰 줘 볼게요.”
루산은 바르통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 과연 자신이 잘한 짓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반달 호수 지역을 정리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려. 빨라야 반년, 적어도 1년은 생각해야 돼. 대형 괴수도 아직 많이 남아 있을 테고. 거기서 최대한 많이 잡는다고 치면 이번 시즌 수익하고 해서······.’
장기적으로 보면 손해는 아닐 것 같았다.
그러나 당장 3만 골드는 빚을 져야 했다.
“당숙 장원을 물려받은 뒤로 이렇게 많은 빚을 지다니, 복덩어리가 아니라 애물단지가 들어온 거 아니야?”
루산은 만 골드 단위로 빚을 스스럼없이 지는 자신이 놀라웠다.
은행 대출 4만 골드에 상속세 미납분 3만 2천 골드. 7만 2천 골드의 빚을 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작나무숲 장원은 최소 10만 골드로 추정되기 때문에 배짱을 부릴 수 있었다.
그 덕에 장차 더 많은 수입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것이다.
바닥에서 아무리 박박 기고 노력해 봐야 땅바닥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려면 발판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후아!”
루산은 배에 힘을 주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무더운 여름, 맑은 하늘에 떠 있는 뭉게구름을 보니 괜히 바덴의 얼굴이 떠올랐다.
루산은 곧바로 숙소로 돌아가 바덴에게 편지를 썼다.
<3만 골드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필요한 서류를 좀 갖춰 주세요.>
***
멕 조립은 단기간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바르통은 휴일마다 변경 제5구역과 제7구역으로 가서 멕 중고 시장을 뒤졌다.
제8구역은 말하자면 신흥 구역이라 아직 많은 것이 부족했다.
어쨌든 루산은 새로운 멕을 조립할 때까지 기존의 멕을 타고 근무해야 했다.
“자, 전에 말한 대로 반달 호수 지역은 8군단 거의 모든 전력이 투입되기로 했어요. 하지만, 개척지 주위에 웨이브의 여파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델타 기지에서는 반달 호수 지역으로 네 대를 투입하고 델타 기지에 두 대를 남겨 주위를 순찰하고 떠돌이 괴수를 퇴치할 겁니다.”
루산이 파일럿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트리어 대신 새로 들어온 멕 나이트 파일럿 케르펜이 루산과 눈을 마주치자 긴장한 표정으로 흠칫했다.
루산은 무시했다. 신입 파일럿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트리어가 그리 했었던 것이다.
“자, 이번에 갈 사람은··· 하겐.”
“예쓰!”
“제프.”
“고마워.”
“에센.”
“음.”
“그리고······.”
사람들은 루산이 당연히 본인을 배정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웨이브가 고여 있는 지역. 엄청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케르펜.”
“오!”
“정말?”
“신입, 땡잡았네.”
하겐, 제프, 에센뿐 아니라 케르펜과 켐니츠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루산을 쳐다보았다.
“5일마다 교대하는 거니까 좋아할 것도 없고 실망할 것도 없어요. 네 명 중 하겐이 조장을 맡아요. 멕 손상 없이 다치지 말고 5일 후에 봅시다.”
“예스, 캡틴!”
“알았어. 나중에 보자고!”
파일럿들이 일어나려다 말고 루산과 켐니츠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루산이 켐니츠를 반달 호수 지역에 배정하지 않은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자신까지 배정하지 않으면 델타 기지에서 함께 순찰을 돈다는 뜻이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궁금한 것이다.
“안 갈 거예요?”
“가야지!”
“가자, 신입.”
“네!”
사람들이 먼저 떠나고 사무실에는 루산과 켐니츠만 남았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루산이 입을 열었다.
“갑시다, 순찰하러.”
켐니츠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 역시 무척 궁금한 표정이었다.
왜 이렇게 근무를 짰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