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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13화 (13/450)

13. 크게 봅시다

***

탐탐-

탐탐-

탐탐에 올라탄 정찰병들이 거치대에 세워져 있는 긴 삼지창을 들고 기지 밖으로 나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멕 나이트 두 대로 이 넓은 지역을 순찰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찰병들이 눈과 귀가 되어 주는 것이다. 소형 괴수들은 직접 처리하기도 했다.

루산과 켐니츠의 멕 나이트는 좀 더 위험한 델타 기지 외곽 숲 지대를 순찰해 나갔다.

평소 다니던 정찰로 대신 덤불숲을 들쑤셔 숨어 있던 괴수들을 나오게 하려는 것이었다.

쏴아아-

잡목의 가지와 높게 자란 풀들에 멕의 몸체가 쓸렸다.

청량한 빗소리처럼 듣기에는 좋았지만 시끄러운 그 소리에 괴수의 움직임을 놓칠까 봐 루산과 켐니츠는 신경을 집중하느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 다 일에 집중한다는 핑계로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생각하느라 머릿속은 시끄러웠다.

그때 멕이 밟고 지나가는 덤불숲에서 소형 괴수 란드라트 두 마리가 뛰쳐나왔다.

[잡아!]

“어? 어!”

루산이 갑자기 소리치며 란드라트 한 마리를 추격하자 켐니츠는 엉겁결에 대답하고는 다른 란드라트를 쫓기 시작했다.

원시의 나무들이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숲속에서 높이 7미터짜리 멕 나이트가 빽빽하게 자란 덤불을 헤치며 소형 괴수를 추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불가능했다.

평소라면 절대 추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돈도 안 되는 란드라트, 숲 밖으로 나와 돌아다녀도 개척촌 가까이가 아니면 굳이 귀찮게 잡으려 하지 않는데 숲속에서 원시림의 거대한 나무들을 피해 란드라트를 잡으러 달리는 것은 어리석인 짓이었다.

그러나 켐니츠는 집중력을 발휘해 거대한 나무를 피하고 덤불숲을 뚫으며 끝까지 란드라트를 추격했다.

[잡았다!]

기뻐하는 루산의 목소리가 마나 통신기로 들려왔다.

그렇다면 더더욱 질 수 없었다.

쿵쾅쿵쾅 한참을 달린 끝에 마침내 켐니츠는 란드라트를 좁은 벼랑 아래로 몰아 대검으로 쳐 죽이고는 만족스럽게 외쳤다.

“잡았다~!”

멕 나이트를 타고 이렇게나 미친 듯이 달려본 것이 언제인가 싶었다.

“후우- 하아- 후우- 하아-”

한참동안 호흡을 고른 뒤에야 거칠게 뛰던 심장이 잠잠해졌다.

켐니츠는 피에 젖어 있는 란드라트를 들고 루산이 있는 곳까지 갔다.

평소라면 아무 데나 던져 버리고 말았겠지만, 왠지 보여 줘야 할 것 같았다.

루산은 조종실에서 나와 멕 나이트의 손바닥 위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 역시 오랜만에 숲속에서 장애물을 피하며 전력 질주를 한 탓에 냉방 시스템이 작동되는 조종실 안에 있었음에도 온몸이 땀에 젖어 흥건했다.

켐니츠는 루산의 멕 나이트 앞에 자신의 멕을 멈추고 루산처럼 조종실에서 나와 멕의 손바닥 위에 앉았다.

허공에서 루산과 켐니츠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원시림의 거대한 그늘 아래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두 사람의 땀을 식혀 주었다.

켐니츠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야깃거리가 생겨 다행이었다.

“아니, 갑자기 왜 란드라트를 잡는다고 야단이야?”

“최근에 깨달은 게 있어서 말이에요.”

루산이 바람에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대답했다.

“뭔 깨달음?”

“우리 변경에 돈 벌러 왔잖아요.”

“새삼스럽게······.”

“근데 우리는 민간 사냥꾼이 아니잖아요.”

“누가 뭐래?”

켐니츠는 괜히 툴툴거렸지만, 그 어느 때보다 루산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지난 두 달 동안 그 역시 많은 고민을 해 왔던 것이다.

미친놈처럼 끝까지 들이받을지, 아니면 못 이기는 척 숙이고 들어갈지, 그것도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을지······.

“민간 사냥꾼들처럼 우리도 괴수 많이 잡으면 많이 벌죠. 어찌 보면 여건도 더 좋고. 지원이 더 잘 되니까.”

“그런데?”

“그런데 우리는 사냥꾼이 아니라 변경 개척 군단 소속이란 말이죠. 변경의 안전을 책임지는 게 우리의 1차 임무고 괴수 사냥은 그에 딸린 부수적인 일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괴수 사냥 안 해도 급료를 받잖아요.”

“그래도 괴수 사냥으로 버는 돈이 더 많잖아.”

“그러니까요. 앞으로도 사냥 열심히 할 건데, 새롭게 깨달은 게 있단 말이에요.”

켐니츠는 고개를 갸웃했다.

“윗사람들은 사냥 수입보다 안정적인 세금 수입을 더 좋아해요. 이 땅을 안전하게 만들고 개척민 더 많이 받아 정착시키고 세금 더 걷는 걸 원한다고요. 우리가 돈 되는 괴수를 한 마리라도 더 사냥하려고 경쟁하는 거, 별로 관심도 없단 말이에요. 그저 괴수가 나타나지 않는, 안전한 개척촌이라는 소문이 나서 개척민들이 안심하고 많이 들어오기를 바랄 뿐이죠.”

“그래서?”

“그래서 윗사람들이 각별히 신경 쓰는 안전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 보려고요. 돈 되는 괴수를 안 잡겠다는 게 아니라 돈 안 되는 괴수도 열심히 잡아 안전한 개척촌을 만들어 볼까 해요. 이게 바로 변경 개척 군단의 1차 임무니까요.”

“파일럿들이 싫어할 텐데? 수거 팀도 탐탁지 않아 할 테고.”

“그들이 나한테 돈 주는 게 아니잖아요? 군단 본부에서 주는 거지.”

“······!”

“앞으로 개척촌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요. 괴수 사냥과 안전, 이 두 가지가 충돌할 때는 안전을 택할 거예요. 난 변경 군단의 목적에 충실한 캡틴이 될 겁니다. 그렇게 해서 변경 군단에 필요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위로 올라갈 거예요. 개척촌 안전을 신경 쓰는 파일럿, 윗사람들이 좋아하겠어요 안 좋아하겠어요?”

“흐음!”

“위로 가야 돈도 더 벌어요. 호른 영감이 멕 나이트 파일럿 출신이기를 해요, 고위 귀족 출신이기를 해요, 무슨 대단한 연줄이 있어요?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거, 그거 하나로 전진 기지 대장을 하면서 우리보다 훨씬 많이 벌잖아요. 우리도 크게 봅시다, 켐니츠!”

그 말이 켐니츠의 뇌리에 벼락같이 꽂혔다.

루산이 트리어의 말을 듣고 깨달은 것처럼 켐니츠 역시 루산의 말을 듣고 깨달았다.

전진 기지의 캡틴이라는 작은 자리를 놓고 다투는 것은 정말 옹졸한 짓이었다.

돈 벌려고 변경까지 왔으면 정말 큰돈을 벌어야 한다.

그러려면 위로 올라가야 했다.

‘트리어가 왜 내가 아닌 루산을 캡틴으로 올렸는지 알겠군.’

가문이 좋아서? 그런 것은 변경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다.

멕 나이트 파일럿으로서의 실력이 뛰어나서? 루산의 실력이 뛰어난 것은 인정하지만, 미세한 차이로 적 파일럿과의 승부가 결정되는 전선도 아니고 변경에서 괴수를 상대할 때 실력은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위로 올라가려는 욕심이 있는 트리어가 자신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사람을 고른 것이다.

말귀를 알아먹고, 욕심은 있지만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지 않고 멀리 볼 줄 아는 사람.

변경에도 사람은 많지만 그런 사람은 흔치 않았다.

‘루산이 내민 손을 잡아야 해!’

켐니츠는 그날그날 괴수를 많이 사냥하면 좋아하고 번 돈을 탕진해 버리는 변경의 많은 파일럿들과 달랐다.

단순히 돈을 버는 데 만족하지 못했다.

성공하기를 원했다. 성공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해 온 것이다.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캡틴이 되지 못한 좌절감에 유치한 짓을 했다.

그런데 성공의 방향을 루산이 처음으로 제시해 주었다.

루산의 말을 충분히 알아들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망설이는가?

“조금 민망하지만······.”

켐니츠가 어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미안해. 내가 옹졸했어.”

루산은 당황하여 볼을 긁었다. 켐니츠가 갑자기 사과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아니, 그 얘기가 왜 나와요? 사람 민망하게.”

“아니야. 사과할 건 해야지. 그래야 앞날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지. 그러자고 이런 자리를 마련한 거 아니야?”

“그렇기는 한데······.”

“나 그렇게 쪼잔한 놈 아니야. 잘못한 거 인정할 줄 알아. 크게 보자는 말, 이해했어. 크게 보고 이 변경 땅, 우리가 씹어 먹자고!”

루산은 켐니츠의 과도한 열정이 살짝 부담스러웠다. 이런 반응을 보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쁘지 않았다.

켐니츠가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루산은 자리에서 일어나 멕 나이트 손바닥 끝으로 가 위태롭게 서서 손을 내밀었다.

“잘 지내봐요, 우리.”

켐니츠도 멕 나이트 손바닥 끝으로 걸어와서 루산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잘 부탁해.”

켐니츠의 얼굴이 수줍은 소녀처럼 붉어지더니 한마디 말을 어렵사리 추가했다.

“···캡틴.”

그 모습에 루산은 씩 웃었다.

***

“다들 긴장하지 말고 편안하게 손님을 맞이하세요.”

“네, 아가씨.”

“서로 옷매무새를 점검해 주고 편안한 미소, 잊지 말아요.”

바덴은 산뜻하고 단정한 유니폼을 입고 있는 고용인들을 죽 훑어보며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그러나 누가 봐도 가장 긴장한 사람은 바덴 본인이었다.

오늘이 바로 자작나무숲 장원에 첫 번째 손님이 오는 날이었던 것이다.

그동안 오늘을 얼마나 고대했는지 모른다.

이 중요한 사업에 고작 1만 골드만 지원해 주고 자기는 3만 골드나 되는 거금을 아무렇지 않게 써 버리는, 낭비벽 심한 주인에게 본때를 보여 주기 위해서라도 첫 손님을 성공적으로 맞이해야 했다.

“주로 외국을 오가며 일을 하느라 가족들과 함께 보낼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마침 노바 인근에 좋은 곳이 있다는 소개를 받았지요.”

해운업을 한다는 사업가 아인베크 남작이 찾아와 여름휴가로 무려 9박 10일을 예약하고 대금도 그 자리에서 수표로 지급했을 때 바덴은 심장이 터질 뻔했다.

마침내 손님이 탄 마차가 도착했다.

아인베크 남작, 부인, 세 아이, 가정교사 세 명, 그리고 집사와 시녀 둘. 총 열한 명이 세 대의 마차에서 내렸다. 짐만 실은 마차가 그 뒤에 따로 도착했다.

바덴은 친절하게 남작과 그의 부인을 안으로 안내하며 저택의 연혁을 설명했다.

물론 상당 부분 과장된 것이었지만, 남작 부부는 흥미롭게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바덴은 황홀했다. 교양 있는 귀족 사업가 가족을 시작으로 탄탄대로를 걸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기분은 이틀 만에 깨지고 말았다.

아인베크 남작 가족은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아침에 마차를 대고 짐을 실었다.

바덴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니, 왜 벌써······?”

아인베크 남작이 품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말했다.

“아이들이 심심하다고 해서 어쩔 수가 없군요. 거리는 좀 멀지만 우리 별장으로 가야겠어요.”

“······!”

가족들을 다 태우고 나서 가장 나중에 마차에 오르던 아인베크 남작은 도저히 이대로 갈 수 없다는 듯 인상을 굳히고 바덴에게 다가왔다.

“그냥 가려다 지크프리트 판사님께서 워낙 말씀을 좋게 해 주셔서 도움이 되시라고 몇 마디 하겠습니다.”

바덴은 이미 덜덜 떨고 있어 말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사실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죠. 경치가 아무리 좋아도 열흘 내내 산책만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승마도 하고, 낚시도 하고, 사냥도 하고, 활쏘기도 하고, 보트도 타고··· 뭔가 이런 게 필요하지 않겠어요? 사람이 밥 먹고 차 마시고 산책만 합니까?”

“아······!”

“이 별장도 그래요. 바깥에 즐길 것이 없으면 안에라도 뭔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3층 건물에 방도 많은데 침실 말고 뭐가 있습니까? 유령의 집이에요?”

바덴은 마른침만 꿀꺽 삼켰다.

“놀아 보지 않고 공부만 해 오신 분이라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 그런 분에게는 이런 분위기가 휴식이겠지요. 책 몇 권만 있어도 잘 보낼 수 있겠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재밌게 놀면서 쉽니다. 제대로 사업을 하려면 준비를 더 하셔야겠어요, 미스 고슬라.”

바덴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몸을 돌려 마차로 걸어가는 아인베크 남작을 보면서 다리가 풀려 쓰러질 것 같았다.

그러나 바덴은 쓰러질 수 없었다.

아인베크 남작이 마차 문을 잡고 오르려는 순간, 입술을 깨물고 소리쳤다.

“남작님!”

아인베크 남작이 고개를 돌렸다.

마차 안에 타고 있던 부인과 아이들, 가정교사와 고용인들도 바덴을 바라보았다.

“한 번만 더 모실 기회를 주세요! 다음에 꼭 한 번만 더! 떠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즐거움과 행복이 가득한 곳으로 만들어 놓을 테니까요!”

그 절절한 외침을 본 부인이 남편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자 아인베크 남작이 바덴을 향해 말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바덴은 마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인사를 했다.

그날 밤 바덴은 펑펑 울었다.

그냥 울기만 한 것이 아니라 더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메모하면서 울었다.

눈물과 콧물이 쉴 새 없이 흘렀지만, 메모를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어떤 결론에 도달한 바덴은 눈물을 닦고 비장한 얼굴로 편지를 썼다.

<···열정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열정이 응답을 받으려면 그에 걸맞은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체득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소 2만 골드가 더 필요해요. 자작나무숲 장원에 필요한 것들 목록입니다. 승마장, 말 다섯 필, 사냥터, 보트 네 척, 도서관, 음악 감상실, 공부방, 놀이방, 박물관······.>

이미 1만 골드를 투자한 뒤였다. 여기서 멈추면 1만 골드를 날리는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추가 투자를 해야 한다.

자! 변경의 짠돌이 주인이여! 응답하라!

바덴은 이미 뒤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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