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FC 변경 군단의 기사-16화 (16/450)

16. 그러게 포석은 왜 밟아?

***

“곧 추워질 거야. 서둘러야 해.”

이미 수차례 개척 기지와 개척촌을 건설해 본 경험이 있는 개척 건설 요원들은 계획이 다 서 있었다.

루산이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빨리 잘 지어서 개척민을 많이 수용할수록 많이 받게 되는 인센티브와 이 도시를 자신이 짓는다는 자부심 - 인센티브가 더 크게 작용하지만 자부심도 영향이 있었다 - 으로 인해 알아서 척척 움직였다.

가장 먼저 개척 건설 인력이 머물 임시 숙소로 천막을 가지런히 세웠다.

그 다음에는 가져온 자재를 이용해 제재소와 벽돌 공장을 지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데, 이 두 시설이 없으면 단기간에 많은 개척민을 받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개척 건설 요원들은 멕 워커 파일럿과 건설 인력들을 부리는 데에도 이골이 나 있었다.

“거, 참! 슈타인 씨, 농땡이 작작 부려! 공사 한두 번 하나? 다음부터 안 쓸 거야! 농한기에 손가락 빨고 있으면 집에서 좋아하시겠어!”

“갑니다, 가요! 농땡이가 아니라 소피가 마려워서 그런 걸 가지고 서운하게 그러신다.”

“소피를 하루 죙일 보나?”

그들은 설계사일 뿐 아니라 유능한 현장 소장 겸 십장이었다.

제재소와 벽돌 공장에 담당 인력을 배치한 뒤에는 여기서 나온 목재와 벽돌로 커다란 창고를 여러 동 지었다.

멕 나이트의 호위 아래 붐붐 수레와 짐마차들이 델타 기지에서 식량과 물자를 계속 실어 나르고 있었기 때문에 보관할 장소가 필요했던 것이다.

목재와 벽돌의 생산이 일정 궤도에 오르자 창고와 함께 드디어 주택과 각종 건물들을 짓기 시작했다.

회의실로 사용할 커다란 사무실도 이때 지어졌다.

덤불숲과 초원, 야산이었던 곳에 설계대로 집들과 기지 건물들이 착착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 루산은 솔직히 감탄했다. 개척 건설 요원들과 인부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러나 이제 겨우 시작 단계에 불과했기 때문에 표정 관리를 했다.

아직 개척 건설 요원들의 기를 살려줄 때가 아니었다.

멕 워커가 나무를 베어 제재소로 끌고 가고, 목재와 벽돌을 실은 짐수레들이 건설 현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다른 쪽에서는 농경지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멕 워커와 인부들이 나무를 베고 큰 바위를 뽑아내고 농로를 만들어 구획을 나누었다.

이 경지 구획을 나누는 데도 원칙이 있었다.

“원칙이 뭔데요?”

“자영농이 스스로 농사지을 수 있는 경지 면적보다 다소 작게 만듭니다.”

“왜요?”

“개척촌에는 공사가 많거든요. 방벽 공사, 도로 공사, 다리 공사, 신규 개척촌 공사··· 인력이 부족한데 개척민을 동원해야죠.”

“아!”

루산은 이해가 될 때까지 물어봤다.

파일럿으로 지낼 때 별 생각 없이 지나쳤던 일들이 알고 보니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이 새로웠다.

개척촌에서 인부를 동원할 때 모두의 안전을 위한 방벽 공사는 의무적으로 동참해야 하지만, 나머지 공사는 공짜로 부리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대가를 지급했다.

공짜로 부리면 당장은 좋아 보여도 개척민의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고 의욕이 떨어지고 정착이 늦어져 장기적으로 손해라는 결론이 났던 것이다.

“집과 농경지도 공짜로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알고 있어요. 장기 분할 상환 하는 거잖아요.”

“맞습니다. 그래서 빚을 빨리 갚으려면 자기 생업 말고도 각종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돈을 벌어야죠. 여기 온 인부들처럼요.”

집과 농지의 가격은 보통 20년 일하면 상환할 수 있는 수준으로 책정했다.

악착같이 일해서 7, 8년 만에 상환하고 자기 농토를 늘리는 경우도 있었다.

개척지의 직업 선택 폭이 넓지는 않지만 농사가 아닌 다른 일을 선택하여 더 빨리 상환하고 부자 소리를 듣는 사람도 있었고, 병이 나거나 사기를 당해 20년이 지나도록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쨌거나 막다른 인생에 몰린 사람들이 나라에서 제공하는 기회를 잡아 재기에 성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변경 개척은 국가와 백성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었다.

괴수의 난입으로 집과 농경지가 하루아침에 쑥대밭이 되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가 간간이 생긴다는 점만 빼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로 루산의 일이었다.

***

루산은 도시와 마을, 경지와 도로를 건설하는 일에 거의 개입하지 않지만, 방어와 안전에 관련되는 부분에서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관철시켰다.

“가까운 숲을 너무 벌목하지 말아요. 숲은 괴수와 맹수에게 은신처를 제공해 주지만, 덩치 큰 괴수에게는 장애물 역할도 합니다. 앞으로 벌목할 숲과 나무를 지정해 주겠습니다. 불편해도 따르세요.”

거대한 나무를 밖에서부터 차례대로 베지 않고 듬성듬성 베는 것은 몹시 비효율적이고 불편한 일이었지만, 레인보우 시티에서는 루산의 말이 곧 법이었다.

루산은 레인보우 시티의 방벽을 높고 튼튼하게 지을 생각이 없었다.

이 개척 기지가 얼마나 확장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고정 방벽을 쌓아 버리면 확장이 필요할 때마다 방벽을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하는데, 그것은 무척 낭비적인 일이었다.

“제프, 지난번 웨이브 때 우리가 숲에서 만든 저지선 기억나죠?”

“기억나지. 큰 나무를 쓰러뜨려 괴수를 일정한 방향으로 모이게 만드는 방식을 말하는 거잖아?”

“맞아요. 레인보우 시티 부지 주위의 숲들을 그런 식으로 만들 거예요. 괴수가 출몰하는 길을 미리 정해 놓는 거죠. 멕 워커 두 대 붙여줄 테니까 작업 좀 해 줘요.”

“뭐, 하는 건 어렵지 않은데 그 정도로 충분할까?”

“이미 본부 기동 전단이 반달 호수 지역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갔잖아요. 이 지역은 소탕 작업이 대강 끝났다는 얘기에요. 그리고 거주 지역 안전은 특별히 신경 쓸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캡틴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루산은 하겐과 에센에게도 임무를 부여했다.

“두 사람은 제프가 작업하기 전에 정찰병 절반을 데리고 레인보우 시티 주변 숲을 샅샅이 훑어 줘요. 소형 괴수도 다 때려잡아야 해요.”

“소형도? 그건 귀찮은데······.”

“그래서 특별 인센티브 걸었잖아요.”

정상적인 군대가 아니라서 명령만으로 적극적인 동참을 이끌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루산은 자신에게 떨어지는 몫의 일부를 전투 요원들에게 나눠 주기로 약속했다.

“아 참! 그랬지? 그렇다면 열심히 해야지!”

하겐, 에센이 정찰병들과 함께 레인보우 시티 부지 주변을 샅샅이 소탕하는 동안 루산은 켐니츠, 케르펜과 함께 레인보우 시티 주위를 더 크게 돌며 순찰했다.

멕 나이트 파일럿 여섯 명은 이 일들을 돌아가며 맡았다.

간간이 델타 기지에서 물자를 실어오는 붐붐 수레를 호위해야 했기 때문에 파일럿들은 쉴 틈이 없었다.

그렇게 매일 괴수를 소탕하면서 밤에는 숙소 주위에 소들을 한 마리씩 매어 놓았다.

혹시나 다가올지 모르는 괴수의 먹이로 던져 주려는 것이었다.

“나타날 일은 없겠지만, 나타나더라도 일단 저걸 먹는 동안에는 사람을 잡아먹을 생각은 안 할 테죠. 시간도 벌고.”

전투 요원들은 루산의 말을 이해하고 이 정도 노력이면 충분하다는 반응이었으나 개척 건설 요원들과 인부들은 눈에 보이는 방벽이 없으니 미칠 지경이었다.

“여기서 도저히 일 못 하겠습니다!”

“나, 가정이 있는 사람이에요! 집에 보내 주세요!”

할 수 없이 루산은 개척 건설 인력을 위해 숙소 주위에 커다란 통나무를 3단으로 올린 울타리를 만들어 주었다.

마치 거인이 인간을 키우는 목장처럼 보였지만, 건설 인력은 그제야 안심하고 불안을 가라앉혔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루산은 즐거웠다.

여기서 보낸 한 달이 꿈결 같았다.

제재소와 벽돌 공장이 세워지고 나서부터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집들과 각종 건물들, 잡목 숲과 초원이 순식간에 농경지가 되는 기적, 개척 기지를 보호하기 위해 숲과 나무를 이용해 만들고 있는 중첩 저지선, 숙소를 감싼 3단 통나무 울타리.

사람들의 노력이 모여 그야말로 위험한 자연 그 자체인 땅이 인간의 삶터로 변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그 놀라운 일이 자신의 책임 아래 진행된다는 것이 뿌듯하고 즐거웠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이런 일이라면 언제까지나 행복하게 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더구나 인생의 막다른 곳에 몰린 사람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는 일이 아닌가.

아버지는 가져 보지 못한 기회.

물론 아버지가 변경에 대해 알았다 하더라도 재기가 불가능한 규모의 빚이었지만, 그래도 어려움에 내몰린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보람이 있었다.

루산은 먹고 자고 씻는 모든 것이 불편해도 이곳 레인보우 시티가 좋았다.

아직까지는.

***

덜컹덜컹!

낯선 수레와 사람들이 멕 나이트의 호위를 받으며 레인보우 시티를 지나갔다.

“어디서 오는 거요?”

“알파 기지에서!”

사람들이 피곤한 얼굴로 대답하고 지나갔다.

“알파 기지면 이제 모든 전진 기지에서 개척단을 보낸 거네.”

“그렇죠.”

루산은 멀어지는 알파 기지 개척단에 계속 눈길을 주면서 짧게 대답했다.

그러다 그쪽으로 전력 질주하며 크게 소리쳤다.

“어이, 멕! 도로 밟지 마! 방금 포장했단 말이야!”

- 어이쿠! 미안해서 어쩌나! 몰랐어! 미안, 미안!

알파 기지의 멕 파일럿이 외부 확성기를 통해 능청스럽게 사과하며 다시 포석을 밟았다.

육중한 멕 나이트가 밟으니 순식간에 박살이 났다.

“야! 너 일부러 그랬지? 너 누구야? 당장 내려!”

- 거 참, 빡빡하게 구시네. 알아서 뭐 하게? 다음부터 조심한다니깐. 낄낄낄!

알파 기지 멕 나이트는 발을 헛디딘 척하며 일부러 포석을 또 밟았다.

그런 짓을 두어 번 반복하다 멀어졌다.

“너! 심보 그 따위로 쓰다가는 죽는다!”

루산이 혼내준다며 자신의 멕에 올라타려는 것을 켐니츠가 붙잡아 말렸다.

“냅둬. 괜히 시비 거는 거 뻔히 알면서 그래. 다시 깔면 되지.”

“아니, 할 일도 많고 바쁜데 두 번 일하게 생겼잖아요! 앞으로 알파 기지 놈들은 못 지나가게 해야겠어. 빙 돌아가라고 해!”

루산은 한참 동안 씩씩거렸다.

예전의 루산이라면 상상하지 못할 일이었다. 도로의 포석이 깨지든 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 개척 기지에 애착과 책임감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알파 기지까지 왔으니 8군단 전진 기지 네 개가 전부 들어왔네.”

“그렇죠. 가장 가까운 우리 델타 기지가 맨 먼저 왔고 가장 먼 알파 기지가 맨 나중에 들어왔고.”

단지 거리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의지와 역량의 차이도 확연히 드러났다.

다른 전진 기지들은 멕 나이트 두세 대, 멕 워커 두세 대 정도로 델타 기지의 절반에서 3분의 1 수준의 개척단을 보낸 것이다.

“황제 폐하와 우리 8구역 통치자께서 신경 쓰는 사업이라 생색은 내야겠고 여력은 없고···, 다른 기지 대장들도 미칠 노릇이겠어.”

“우리 기지 영감님만큼 부자가 아닌지도 모르죠.”

“그 말도 맞지.”

켐니츠가 루산의 말에 동의했다.

“그건 그렇고 다른 전진 기지들을 탓할 수는 없지만, 이 정도로 델타 기지와 차이가 나면 본부에서 직접 움직일지도 모르겠네요.”

“이미 본부 기동 전단 들어와 있잖아?”

“개척단 말이에요, 개척단. 전투 부대 말고.”

켐니츠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 정도 규모면 생각보다 개척 속도가 안 붙을 거 아녜요. 그럼 본부가 직접 나서겠죠.”

“본부 직할 개척단이라니, 그럼 이제 본부와 전진 기지의 관할이 애매해지는데······.”

“위에서 알아서 하겠죠.”

“뭐, 그렇지.”

며칠 뒤, 정말로 본부 개척단이 레인보우 시티를 지나갔다.

본부 기동 전단이 이미 반달 호수 지역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멕 나이트 호위가 많이 붙지는 않았지만, 인력과 수레의 규모는 레인보우 시티의 두 배나 되었다.

본부 개척단은 레인보우 시티의 개척 상황을 자세히 훑어본 뒤 서쪽으로 이동했다.

“뭐야? 기분 나쁘게.”

“왠지 경쟁심에 불타는 눈빛이던데?”

“신경 끄고 우리 일이나 합시다. 내일 개척민들이 처음으로 들어온다니까.”

경쟁자들이 가장 신경 쓰인 것은 루산 본인이지만, 그는 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관심을 끄기로 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들어온 첫 소식은 아라드 왕국 피란민으로 이루어진 개척민들이 오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 여기는 기동 전단! 여기는 기동 전단! 2전대장 트리어다! 알파 기지 개척단이 소멸됐다! 다시 한번 말한다! 알파 기지에서 파견된 개척단이 소멸됐다! 반달 호수 지역에 투입된 멕 나이트와 정찰병들은······.]

통신을 들은 루산과 동료들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잠이 확 달아났다.

자신들이 어떤 땅에 들어와 있는지 생생하게 깨달은 것이다.

“그러게 포석은 왜 밟아서······.”

루산은 자신의 저주 때문은 아니기를 바라며 얼른 멕 나이트에 올랐다.

<숲과 나무로 만든 레인보우 시티 외곽 저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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