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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19화 (19/450)

19. 기여도에 따라 분배 가능

***

정비소의 거대한 문이 좌우로 열리고 처음 보는 형태의 멕이 걸어 나오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

“저 만들다 만 것 같은 녀석은 뭐야?”

“엄청나게 뚱뚱하네!”

보통 사람들의 반응이 이러했다면 파일럿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정말 전진 기지 정비부에서 조립을 해 낸 거야? 사건이네, 사건이야!”

“좀 더 기다려 봐야지. 저 덩치가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르잖아.”

어쨌든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뒤로 한껏 꺾으며 탄성을 터뜨리자 루산은 기분이 좋아졌다.

- 비켜요, 비켜! 다칠 수가 있으니까. 시험 기동 중이니 멀찍이 떨어지세요.

우렁우렁한 멕의 경고에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며 정비소 앞에서 멀어졌다.

루산은 정비소 안뜰을 가볍게 한 바퀴 돌고 나서 델타 기지 방벽을 따라 크게 돌았다.

걸을 때 무릎을 높게 들기도 하고 보폭을 넓게 벌리기도 했다.

옆 걸음도 해 보고 뒷걸음도 걸어 보았다.

운동 능력과 동작 범위를 확인하는 것이다.

사람은 훈련을 통해 몸을 더 유연하게 할 수 있지만, 멕은 만들어진 상태에서 벗어난 운동을 할 수 없다.

어디까지 움직일 수 있는지 아는 것은 파일럿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팔, 허리도 움직여 보았다.

“허리는 전과 똑같이 틀어지는데 팔과 다리는 확실히 동작 범위가 좁아.”

[그래요? 더 늘릴 수 있는지 확인해 볼게요.]

정비부장이 마나 통신기로 대답했다.

“확인해 줘요.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오케이! 알았어요.]

루산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이번에는 달리기!’

우르사가 갑자기 출발했다.

“살짝 미끄러지는데? 스파이크 더 깊은 걸로 달아 줘요.”

[오케이!]

갑자기 출발한 우르사는 또 갑자기 멈췄다. 그러다 갑자기 오른쪽으로 달리고 또 방향을 틀어 왼쪽으로 달렸다.

운동 능력과 함께 관절이 버티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다.

하루 움직여 보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일단 튼튼한 것 같았다.

“동작 범위는 좁지만, 운동 관절은 생각보다 유연한 것 같은데?”

[그럼요! 우르사 뼈와 관절은 괴수 뼈와 관절 위에 타이타늄을 덮은 거거든. 요새처럼 뼛가루만 넣은 양산형들과는 다르지.]

300년 전 인간의 금속 기술로는 무거운 멕을 지탱하고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무거운 몸뚱어리를 버티는 대형 괴수의 뼈와 관절에 주목해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루산은 그때의 기술을 활용한 뼈와 관절이 최신 멕의 뼈와 관절보다 낫다는 식의 말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인간의 기술이 발전한 것이다.

금속 제련 단계에서 대형 괴수의 뼛가루를 넣어 더 강한 금속 뼈를 만드는 것으로.

바르통은 자기가 조립한 우르사의 우수성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었다.

어쨌든 유연하고 단단해서 루산은 마음에 들었다.

사람들이 흩어지고 켐니츠가 레인보우 시티로 돌아간 뒤에도 시험 기동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충돌 시험.

루산은 우르사를 타고 델타 기지 외곽, 하늘 높이 솟은 거대한 나무 앞으로 갔다.

우르사가 장난감 곰처럼 왜소해 보였다.

우르사는 자신보다 훨씬 두꺼운 나무를 향해 돌진했다.

쿵!

나무에 잔 진동이 짜르르 일었다.

정면으로 들이받고, 몸을 더 숙여 들이받고, 등으로 들이받고, 발로 치고, 주먹으로 때리고, 머리로 들이 받고··· 그야말로 발정 난 미친 곰이 커다란 나무를 상대로 몸부림을 치는 것 같았다.

충격 완화 장치와 파일럿 보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외부 충격으로 인한 각 부위의 손상 여부를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이 정도 충돌에는 찌그러지지 않는군.”

[그렇다니까. 초기 모델이 좀 무식하게 만들었어야지.]

멀찍이 서서 망원경으로 지켜보던 바르통이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나무에 이어 바위를 향해 무모한 코뿔소처럼 돌진하고 난리를 치던 우르사는 충돌 시험 이후 무기 시험을 시작했다.

[우르사 전용 무기는 두 가지더군요.]

“대형 철퇴랑 소형 철퇴 아니에요?”

[역시 알고 계셨군요.]

대형 철퇴. 우르사 철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르사의 키보다 큰 길이 8미터의 양손 무기로 끝에 뾰족뾰족한 돌기가 돋아난 쇠공이 달려 있었다.

쇠공 반대편 끝 손잡이 부분에는 뾰족한 날이 창날처럼 붙어 있었다.

그야말로 대형 괴수의 대가리를 깨라고 만든 무식한 무기였다.

철퇴로 두드려 패고 기진맥진한 녀석을 창날로 내리 찍는 식으로 사냥했던 것이다.

대형 철퇴가 아닌 소형 철퇴는 소형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길이 4미터 정도 되는 한 손 무기였다.

이것은 중소형 괴수를 빠르게 때려잡는 무기였다.

이 무기들은 괴수를 최대한 훼손되지 않게 잡는 오늘날의 사냥법과 맞지 않았다.

루산은 오로지 변경의 안전을 위해 밀려오는 괴수를 모조리 때려잡는 원시 전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의 안위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등 뒤의 개척촌을 지키기 위해 괴수의 피로 목욕하며 달려드는 모든 괴수를 홀로 때려잡는 원시 전사!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괴수의 사체 위에서 대형 철퇴를 세워 들고 우르사~! 하며 외칠 것 같았다.

[전용 무기는 모두 훼손되어 남아 있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제작했어요.]

“정말요?”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루산은 그 말을 속으로 삼켰다.

때려잡는 무기는 딱히 끌리지 않았다.

큰 차이는 아니더라도 어쨌든 훼손이 생기면 조금이라도 수입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19년 동안 익혀 온 검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일껏 생각해서 제작까지 했다는데 싫은 소리를 할 필요는 없었다.

우르사는 멕 워커들이 들고 온 대형 철퇴를 먼저 집어 들었다.

묵직한 느낌과 함께 왠지 손에 착 감겼다.

후웅~

쇠기둥 끝에 달린 커다란 쇠공이 바람을 가르며 나무를 패자 밑동이 산산이 부서져 날아가고 거대한 나무가 기우뚱하고는 쓰러졌다.

산더미 같은 바위를 내리치자 파편이 사방으로 튀며 바위가 허물어졌다.

거칠고 강한 손맛이 우르사에 타고 있는 루산에게 짜릿하게 전해졌다.

“캬하!”

루산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거 위험해!’

중독될 것 같았다.

루산은 이 기분을 잊기 위해 얼른 대형 철퇴를 놓고 소형 철퇴도 휘둘러 보았다.

중소형 괴수를 빠르게 때려잡는 용도.

몇 번 휘둘러 보던 루산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다.

“요거 잘하면 괜찮을 수도 있겠는데?”

[뭐가요?]

“뾰족뾰족한 가시 돌기를 제거하고 살짝 울퉁불퉁한 느낌만 남게 만들어 주세요. 아까운 피 안 흘리게. 대가리만 깨면 칼로 잡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겠어.”

[역시 캡틴! 오케이, 그렇게 해 보죠.]

철퇴 뒤에 바르통이 회심의 무기를 공개했다.

[캡틴, 이건 아트라스 전용 대검입니다. 흐흐흐!]

“오오!”

루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손잡이 포함 7미터 정도 되는 무기로 우르사의 키와 비슷한 엄청난 장검이었다.

[일반 멕들은 밸런스 문제로 사용을 못해서 무용지물이고, 그래도 우르사는 아트라스와 몸체 무게가 비슷해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싸게 집어 왔어요. 어때요?]

“마나 진동 기능이 아직도 살아 있어요?”

검으로 쇠를 자르고 돌을 찌르는 것은 마나 진동으로 절삭력을 높여 주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멕 나이트가 기사의 검술을 사용하기에 적합하도록 인간형으로 변한 결정적 계기가 바로 마나 진동 대검의 등장이었다.

마나 진동 기능이 없다면 금속으로 만든 멕이나 단단한 피부를 가진 괴수를 상대할 때 멕 나이트 전용 대검은 조금 날카로운 몽둥이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죽었어요.]

“에이, 그럼 소용없잖아요.”

[사실 이거 수리하면 3만 골드가 넘어가서······. 캡틴이 원하기만 하면 본부 마법사님한테 한번 부탁해 보려고요. 추가 비용은 생각해야 할 거예요.]

마나 진동 대검은 멕 나이트 가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고가의 물건이었다.

“쩝.”

그렇잖아도 우르사가 무게는 일반 멕의 2배 이상 나가고 동작 범위는 좁아서 일반 멕 전용 대검을 사용할 때 위력이 떨어질 것 같아 걱정스러웠는데, 아트라스 전용 대검은 일반 대검보다 무겁고 길어서 그러한 우려를 떨어 줄 것 같았다.

물론 적응하는 데 시간은 걸리겠지만, 보자마자 이거다 싶었다.

탐나는 건 역시 비쌌다.

그때 루산의 머리에 바덴의 편지가 떠올랐다.

‘2만 골드 보냈는데 1만 골드도 안 들었다고 했지?’

왜 하필 그 생각이 떠올랐을까?

“수리··· 해 주세요!”

[잘 생각했어. 캡틴이라면 이 정도는 들어야 폼이 나지!]

루산은 캡틴과 아트라스 대검이 무슨 상관일까 싶었지만, 어쨌든 속이 쓰리면서도 뿌듯한 흥분감이 밀려왔다.

루산은 며칠 더 시험 기동을 하며 기체 미세 조종을 해 나갔다.

전선의 기동 군단에 투입되는 멕이라면 처음 탑승하는 멕을 시험 기동 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을 테지만, 변경에서는 그럴 여유도 없었다.

시간은 돈이고, 부족한 부분은 괴수와 부대끼며 보완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무한 책임, 기억하죠?”

[에이, 또 그러신다. 솔직히 우리도 망신 안 당하려고 나랑 우리 애들이랑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몰라. 그 노력에 이 정도 공임이면 손해라고!]

“알죠. 잘 알죠. 그래도 약속은 약속 아닙니까?”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해 가지고······. 그래! 무한 책임! 끝까지 봐 줄게!]

다시 확답을 받은 루산은 안심하며 우르사를 타고 레인보우 시티로 떠났다.

하지만, 그는 뒤늦게 깨달았다.

우르사는 전용 무기 대형 철퇴를 포함하면 그 전에 타던 멕 나이트보다 2.7배 더 무거웠다. 게다가 아트라스는 출력이 기존 멕보다 2.5배 더 높았지만, 50년 전 모델이라 연료 효율이 극히 떨어졌다.

마나 연료봉이 4배나 더 들어갔다.

예전이라면 연료를 얼마나 소모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됐지만, 이제 군단 멕이 아닌 자신의 멕이라 연료비도 모두 자신이 지불해야 했다.

“아놔! 얼마나 때려잡아야 수지가 맞는 거야?”

루산은 델타 기지에서 멀어지기 전에 정비부장에게 근거리 통신을 넣었다.

[부장님!]

[어? 왜요, 캡틴?]

[마나 연료봉은 원가에 해 주시는 거죠? 그리고 정비비나 세척비는 덩치 크다고 더 받기 없깁니다! 부탁 좀 드릴게요! 그럼 바빠서 이만!]

루산은 정비부장이 뭐라고 말하기 전에 얼른 통신을 끊었다. 그래서 정비부장이 끊어진 통신기에 대고 ‘야, 이 짠돌이야!’ 하고 소리친 것을 알지 못했다.

거대한 곰처럼 생긴 우르사가 뒤뚱뒤뚱 원시의 숲을 뛰어갔다.

오른쪽 어깨에는 대형 철퇴를 걸치고 왼손에는 소형 철퇴를 들고 있었다.

***

변경 제8구역은 겨울에도 눈이 내리지 않았다.

영하로 내려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춥기는 추웠다.

전쟁 통에 고향을 떠난 피란민들에게는 그 추위가 더 사무치게 느껴졌다.

그래서 모닥불 가로 더욱 모여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이, 곁불 좀 작작 쬐고 일 좀 하자고! 아니, 누구는 땅 파서 돈 주는 줄 알아? 어! 싫으면 시집을 가든가! 왜 시집 안 가고 여기로 와서 내 목소리를 쉬게 만들어? 엉? 착한 사람 성질 버리지 말고 싫으면 시집을 가든가 집으로 가쇼! 가서 고리대 써 가며 이 겨울 버텨 보라고! 빚 독촉을 한번 받아 봐야, 아! 내가 정말 착한 현장 소장님 말씀을 들을 걸 그랬구나! 하고 후회할 거야. 응?”

설계사 겸 현장 소장 겸 유능한 십장인 개척 건설 요원이 나타나 한 소리 쏟아붓자 피란민들이 앗 뜨거라! 하고 흩어졌다.

레인보우 시티에 들어온 피란민들은 겨울에도 쉴 틈이 없었다. 아니, 쉬지 않고 일을 해야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식량과 의복을 사서 가족과 함께 생활할 수 있었다.

일은 넘쳤다.

개간, 주택 건설, 도로 건설, 공장 건설···, 늘어난 제재소와 벽돌 공장에 취업도 하고 여자들은 커다란 공장에 모여 외부에서 들어온 봉제 일을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식품점에서 식량과 채소를 사서 돌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그래도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의 불안함이 많이 가셔 있었다.

“이거 정말 대단한 시스템이야. 먼저 들어온 개척민들이 집을 짓고 농지를 개간하면 이후에 들어온 개척민들이 거기 들어가 살면서 또 집과 농지를 늘려 나가고, 다음 개척민이 또 들어오고······. 정착 지원금에 은행 대출에, 일하면 급료를 주지. 정말 대단해.”

루산의 감탄에 행정 요원 아트민이 말했다.

“몇 년 동안 쏟아부을 수 있는 막대한 자금과 안전이 확보돼 있을 때 가능한 일이죠.”

루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필센 제국과 변경 본부의 막강한 자금력에 새삼 놀라는 중이었다. 나중에 다 회수가 된다지만, 몇 년 동안은 계속 쏟아붓기만 해야 하는데, 그것을 감당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호른 영감의 주머니 깊이에도 연신 감탄하고 있었다.

레인보우 시티는 제국과 변경 본부에서 공식적으로 지원되는 금액 외에는 모두 호른 영감의 사재에서 나오는 자금으로 개척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캡틴, 우리는 자금 걱정 없이 일단 최대한 키우면 됩니다. 그게 우리 모두 돈 버는 길이죠. 레인보우 시티가 좀 더 성장하려면 석회석이 필요합니다.”

“석회석?”

“네. 여러 모로 유용한 자원이죠. 레인보우 시티에서 남서쪽으로 3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 석회석 지대가 있습니다.”

“음!”

더 빠른 성장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캡틴, 피란민들 면접을 보니 군 출신들이 제법 되더군요. 앞으로 더 확장할 일을 생각하면 병력 보충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레인보우 시티의 전투 병력은 멕 나이트 파일럿 6명, 정찰병 30명이 전부였다.

하다못해 연락병이나 경계병 노릇을 해 줄 사람이 있으면 무척 요긴하게 쓸 수 있었다.

루산은 아트민이 선별해서 올린 자료를 훑어보았다.

처음에는 이들 중에서 전투 요원을 선발하려다 생각을 바꾸었다.

“굳이 전직들로 한정할 필요가 있나?”

전직 군인이 아니어도 훈련을 통해 더 우수한 군인이 될 자질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루산은 모든 피란민을 대상으로 전투 요원을 모집하기로 했다.

<개척병 모집>

멕 나이트 파일럿과 정찰병을 보조하며 개척촌의 안전에 이바지할 용기 있는 병사를 모집한다.

급여 월 5골드. 경력과 능력에 따라 상향 가능. 괴수 사냥 기여도에 따라 성과 보상금 분배 가능.

공고를 본 사람들이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여들었다. 기본급은 짜지만 성과 보상금에 눈이 돌아간 것이다.

겨울의 레인보우 시티가 후끈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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