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잘라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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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광고는 입소문이었다.
아인베크 남작이 만족하고 돌아간 뒤 자작나무숲 장원 예약 문의가 크게 늘어났다.
특히 남작 부인이 티 모임에서 한 이야기가 깊은 반향을 불러왔다.
“아이들이 어찌나 즐겁게 노는지, 덕분에 애들 신경 끄고 오랜만에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겨울 방학을 맞아 기숙 학교에서 아이들이 돌아오면서 귀부인들의 문의가 폭주했다.
상담 내용을 정리한 바덴은 중요한 포인트를 짚어 냈다.
“이 사업에 성공하려면 엄마들을 잡아야 하고, 엄마들을 잡으려면 아이들로부터 자유를 줘야 해.”
상류층 부인들이 아이들을 직접 건사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에게 만족감과 행복감을 줘야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놀이에만 푹 빠진다면 엄마들이 거부감을 갖기 때문에 엄마들이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섞어야 한다.
어차피 가정 교사를 동반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라 딱딱한 공부 시간을 넣을 필요는 없었다.
미술 교실, 음악 교실을 좀 더 신경 쓰고, 식물과 동물 그리고 곤충 이야기, 별자리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을 만들었다.
직접 숲속을 거닐고 밤하늘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즐거워했다.
바덴은 별장 전체를 빌려주는 방법 외에도 객실별로 대여하는 방식을 도입해 두 방식을 대략 열흘 단위로 번갈아가며 적용했다.
객실별 대여 방식은 별장 전체를 빌리기에는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운 손님들까지 끌어들일 생각으로 도입하는 것이 아니었다.
북적이는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많은 사람을 만나 사업상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유치하여 사교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객실이 꽉 찰 때는 통째로 대여할 때보다 네 배 더 많은 수입이 발생했지만, 바덴은 자작나무숲 저택을 완전히 객실 대여로 바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것은 평범한 숙박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별한 즐거움과 특별한 만족감을 주는 휴식처를 제공하는 사업이었다.
별장 전체를 빌려 쓸 만한 여유가 있다는 자부심과 남들과 다르다는 특권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야 이 사업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비싼 비용을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그들이 있어야 성공하는 사업.
이번 겨울 자작나무숲 장원은 대박이 났다.
<세 달 동안 별장이 완전히 쉰 날이 7일이 안 됩니다. 수입은 약 1만 8천 골드. 특별히 초빙한 강사진들과 겨울철 안전을 위해 고용한 임시 직원들이 많아 비용은 약 7천 골드를 썼습니다.
자세한 수입 지출 명세는 별첨 자료를 참조하세요.
이익의 절반은 장기 계획을 위해 빼 두고, 남은 절반은 대출 상환과 새로운 손님맞이에 쓰려고 합니다.
겨울 방학 시즌이라 자녀와 함께한 가족 단위 투숙객이 많았는데요, 아무래도 개학을 하면 손님의 연령층과 구성에 변화가 생길 것 같습니다.
은퇴한 노부부, 아직 자녀가 없거나 자녀가 어린 부부를 대상으로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새봄이 찾아와 꽃이 만발한 자작나무숲 장원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지 상상하면 가슴이 벅차답니다.
머나먼 그곳에도 새봄이 찾아오고 여기서 볼 수 없는 다양한 꽃들이 피겠죠?
부디 몸 건강히 지내시길 기도할게요.>
***
“내가 없는 동안 켐니츠가 레인보우 시티를 맡아요.”
전투 요원들과 개척 건설 요원, 관리 요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트민이 물었다.
“어디 가십니까, 캡틴?”
“군단 본부에서 명령이 떨어져 모종의 이유로 모종의 장소에 가게 되었어요. 기간도 불확정이라 빠르면 며칠 만에 오겠지만, 늦으면 잘 모르겠군요. 그럼 나중에 봅시다.”
루산은 신비감을 잔뜩 뿌려 두고 홀로 서쪽으로 떠났다.
쿵! 쿵!
대형 철퇴를 어깨에 메고 소형 철퇴를 들고 가는 우르사의 뒷모습이 자못 비장하면서도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켐니츠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현재 레인보우 시티는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었다.
이 도시를 이끌고 있는 루산은 멕 나이트 여섯 대를 지휘하는 캡틴이나 멕 나이트에 정찰병까지 지휘하는 기동대장이 아니라 개척단과 개척민 1,500여 명을 다스리는 대형 전진 기지 대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잘 굴려 왔고 이대로만 굴러가면 커다란 도시가 될 레인보우 시티의 통치자.
빠르면 며칠 만에 돌아온다지만, 그럴 일이었다면 굳이 이렇게 공식적으로 대리를 맡기고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었다.
“자, 자! 각자 하던 일들이 있으니 그대로 해 나가면 됩니다.”
켐니츠는 다른 부서 요원들을 보낸 뒤 루산이 하던 대로 멕 나이트 파일럿들의 근무를 배정하고, 정찰병들의 근무 동선을 확인하고, 개척병들의 훈련과 경계 근무 상황을 살피려 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문제가 생겼다.
“켐니츠, 오늘 하루는 조금 쉬엄쉬엄 가자고. 그동안 근무가 너무 빡빡했잖아. 아함~”
하겐이 늘어지게 기지개를 펴고 하품을 하며 말했다.
다른 파일럿들도 동조했다.
“맞아. 좀 쉬엄쉬엄 해. 솔직히 레인보우 시티 근처에는 괴수도 없잖아. 부수입도 안 생기는데 힘 빼지 말자고. 그냥 정찰병들 근무 돌리고 개척병들 깔때기 길목에 세워 두면 되잖아.”
“하루만 쉬어. 솔직히 레인보우 시티에 온 뒤로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잖아.”
신입 케르펜만 눈치를 보느라 가만히 있었을 뿐 다른 세 명의 파일럿들은 켐니츠가 이미 허락하기라도 한 것처럼 의자에 축 늘어져 느물거렸다.
‘하아!’
켐니츠는 새삼 깨달았다.
그동안 모두가 레인보우 시티 건설에 열심히 동참하고 있었기 때문에 변경으로 흘러들어 온 사람들 중에는 약아 빠진 자들이 매우 많다는 사실을 그동안 잊고 있었다는 것을.
그렇다고 동료인 이들과 척을 질 필요는 없었다.
제대로 휴식을 취한 적이 없다는 동료들의 말이 아예 틀린 것도 아니고, 루산이 없는 동안 임시로 이 자리를 맡은 자신이 굳이 얼굴을 붉히며 다퉈 봐야 손해였다.
“그럼 오전은 쉬고 오후부터 근무합시다.”
“아함~ 쉬는 김에 그냥 하루 죽 빼 주면 좋겠지만, 오케이! 그렇게 해.”
하겐이 선심 쓰듯 말했다.
켐니츠는 머리의 어느 부분에 빠직 하고 금 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으나 참고 넘어갔다.
그런데 이런 일은 첫날, 멕 나이트 파일럿들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루산이 떠나고 나흘째 되던 날, 제재소 가동이 멈추었다.
사실 켐니츠는 그 사실도 보고를 받고 안 것이 아니라 그 앞을 지나가다 우연히 확인했다.
멕 워커 파일럿들이 루산이 떠난 첫날부터 통나무 공급을 하지 않아 나흘 만에 제재소의 통나무 재고가 떨어졌던 것이다.
쉽게 말해 멕 워커 파일럿들이 놀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개척민들 사이에도 큰 사건이 하나 터졌다.
전쟁 통에 남편을 잃고 어린 자식들만 데리고 이곳까지 흘러들어 온 개척민 여성의 집에 들어가 못된 짓을 하려던 녀석이 여성의 고함과 비명 소리를 들은 이웃들에 의해 붙잡혔다.
그런데 경비병이 귀찮아하며 대수롭지 않은 일로 처리하고 풀어 줘 버린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뭘 그런 일로 유난을 떨어? 인마!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 들키지를 말든가, 잡히지를 말든가.”
“예, 예, 나리!”
그 범죄자는 소리를 지른 여인에게 앙심을 품고 풀려난 날 밤에 다시 그 집에 들어갔다가 겁에 질린 채 부엌칼을 품에 안고 있던 여성에게 찔려 피를 흘리며 달아나다 오슬로 영감이 이끄는 개척병 훈련병들에게 붙잡혀 왔다.
“이건 아닌 것 같소이다!”
꼬장꼬장한 오슬로 영감의 말에 켐니츠는 얼굴이 화끈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후우우우우!”
켐니츠는 자신의 삶이 아주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음을 깨달았다.
변경 군단 요원들의 행동이 루산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달라지는 부분은 이해할 수 있었다.
꼭 자신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최고 책임자가 자리를 비우면 늘어지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레인보우 시티는 지난 몇 달 동안 특히 열심히 달려왔기 때문에 일탈에 대한 욕구가 강할 수 있었다.
‘문제는 나야.’
이때 함께 일탈하거나 일탈을 방관함으로써 좋은 이웃이자 편한 동료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위만 바라보고 깐깐하게 갈 것인가?
이 두 가지가 반드시 충돌하는 것은 아닐지 몰라도 지금은 확실히 충돌했다.
‘루산은 푼돈에도 벌벌 떨면서 2만 6천 골드나 되는 개척 장려금을 자기 주머니에 넣지 않고 모조리 뿌렸다. 장래를 보고 위로 올라가려고!’
켐니츠 역시 성공에 대한 염원은 루산 못지않았지만, 과연 개척 장려금을 한 푼도 챙기지 않고 사람과 도시에 투자할 수 있었을지 스스로 장담하기 어려웠다.
‘루산의 손을 잡고 함께 간다! 앞으로 절대 이런 문제로 고민하지 말자!’
그 돈을 받아먹고도 게으름을 부리는 놈들이 나쁜 놈들인 것이다. 그런 놈들과 타협할 필요가 없었다.
루산과 함께 위만 보고 간다!
켐니츠는 요원들을 회의실로 모았다.
“지난 6일 동안 실망스러운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굳이 말하면 입만 아프니 일일이 열거하지 않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캡틴이 약속했던 개척 장려금 분배 포상금 가운데 아직 지급하지 않은 3차 개척 장려금 부분은 지급을 유예하겠습니다.”
“뭐라고?”
“아니, 네가 무슨 권리로?”
분배 비율이 가장 높은 멕 나이트 파일럿들이 가장 큰 목소리로 반발했다.
켐니츠가 하겐을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내가 당신 친구야? 우리끼리 있을 때는 편하게 말해도 상관없지만, 전체 회의에서 너가 뭐야 너가? 내가 네 친구야? 레인보우 시티 통치 대리로 명령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한테 뭐? 네가 무슨 권리로? 돈 받아먹었으면 돈값을 해야지, 무슨 낯짝으로 권리를 찾아? 확, 씨!”
하겐이 깜짝 놀라 주춤 물러났다.
“왜 그래?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켐니츠?”
“닥쳐! 내 조치가 위법하다 싶으면 본부 감찰부에 고발해. 아니꼬우면 위약금 내고 변경 군단에서 나가! 안 나가고 계속 이런 식이면 앞으로 자근자근 밟아 버릴 테니까.”
회의실에 정적이 감돌았다.
누군가가 침 넘기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켐니츠의 기세에 모두들 아무 말도 못하고 눈만 깜박였다.
켐니츠가 톤을 낮추고 다시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원들 중에는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나는 열심히 했다. 맞아요! 그런 사람도 있겠죠. 그런데 우리 일의 성격상 나 혼자 열심히 해서는 돌아가지 않거든요. 나무를 베지 않으면 제재소가 돌아가지 않고 그러면 목재가 없어서 건물이 지어지지 않는단 말이죠. 그런데 나는 열심히 했다? 어디선가 분명 구멍이 났을 텐데 아무도 나한테 보고하지 않더군요. 이게 말이 되는 조직입니까?”
“······.”
“나를 포함하여 각 부서의 장들은 벌금 5골드씩 냅니다. 임무 태만과 감독 소홀, 불만 있습니까?”
불만이 있어도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걷은 벌금으로 훈련 교관 오슬로를 포함한 개척병 3기 훈련병들에게 포상금을 지급하겠습니다. 많지 않지만, 용기 있는 사람들에게 내리는 포상이니 내일 아침 연병장에 모두 모이세요.”
“······.”
“대답 안 해?”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피해 여성, 누구를 가리키는 말인지 다 알죠? 피해 여성에게는 위로금 30골드를 지급합니다. 아트민?”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범죄자 새끼는 좆을 자르고 레인보우 시티 밖으로 내보내세요. 실행은······.”
켐니츠는 요원들을 죽 훑어보다 그 경비병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문제의 경비병이 덜덜 떨었다.
“네가 해.”
“그, 그, 그게······.”
“놀러 온 인간들이 많은 것 같은데, 여기 변경이에요. 장난하면 뒈진다고. 내 말이 장난 같아?”
“아, 아, 아닙니다!”
“네가 해.”
“아, 아, 알겠습니다!”
“개척민 수가 많이 늘었습니다. 조금 있으면 4차가 들어와요. 이제 범죄에 엄격히 대처해야 해요. 알았어요?”
“······네.”
몇 사람이 겨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답 안 해?”
켐니츠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알겠습니다!”
레인보우 개척단 요원들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다음 날, 켐니츠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슬로를 포함한 개척병들에게 포상을 했다.
그 뒤에 곧바로 형벌 의식이 거행되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제, 제발! 제발!”
나무에 사지를 묶인 범죄자가 발버둥을 쳤다.
문제의 경비병은 마치 자신의 물건이 잘려 나가는 것처럼 인상을 잔뜩 쓰다가 이를 악물고 그것을 잘랐다.
“끄아아악!”
소름끼치는 비명.
낭자한 피.
잘린 물건을 들고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서 있는 경비병.
범죄자는 레인보우 시티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출혈 과다로 그 자리에서 사망했기 때문이다.
루산이 없는 동안 켐니츠는 레인보우 시티에 법을 세웠다.
그리고 동료를 잃고 별명을 얻었다.
자르는 켐니츠.
모두가 벌벌 떨었다.
***
6일 전 본부 개척 기지 외곽 숲.
“난 자르지 못해요. 대검 수리가 안 돼서 철퇴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죠.”
“이것 참······.”
“어차피 손상 없이 처치하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해체는 그쪽에서 알아서 하기로 했으니까요.”
“뭐, 그렇죠.”
“가죠.”
“어디로요?”
“세르펜스 잡으러 가자면서요?”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몰라요. 다만, 어떤 곳을 좋아하는지는 알죠.”
“다행이군요.”
우르사에 탄 루산이 앞장을 서자 칼리슈가 데려온 멕 워커 세 대가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마치 수박을 반으로 잘라 엎어 놓은 듯한 커다란 반구 아래 여덟 개의 다리가 달린 기이한 물체가 맨 뒤에 따라왔다.
칼리슈가 타고 있는 8족 반구형 산악 운반차 - 일명, 대형 거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