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FC 변경 군단의 기사-24화 (24/450)

24. 맛이 어떠냐

***

늪지대에 사는 대형 괴수 수스마르가 진동을 느끼고 다가왔다.

악어를 닮은 그 녀석은 얕은 물로 올라와 우르사의 다리를 물기 위해 거대한 입을 쩍 벌렸다.

우르사는 다리를 들어 그대로 수스마르의 대가리를 밟아 버렸다.

콰작!

우르사의 엄청난 무게에 눌려 열렸던 입이 얌전히 닫히며 우르사 발바닥에 촘촘히 박혀 있는 미끄럼 방지용 스파이크에 수스마르의 머리뼈가 숭숭 구멍 나 버렸다.

수스마르는 강철 거인 발에 대가리가 깔린 채 온몸을 뒤틀었다.

푸학~

물이 뒤집히고 물방울이 사방으로 흩어져 날렸다.

루산은 발밑에서 요동치는 수스마르의 엄청난 힘을 느끼며 또 다른 수스마르의 대가리를 대형 철퇴로 강하게 내리쳤다.

쩌엉!

수스마르의 단단한 두개골이 함몰되며 남아 있는 생명력이 모인 꼬리가 옅은 물에서 파르르 떨렸다.

촤촤촤촤촤-

사방으로 흩어져 날린 물방울들이 늪지대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반사하여 아름답게 반짝였다.

칼리슈는 우르사가 늪지대 괴수들과 싸우는 광경을 지켜보며 몸을 떨었다.

엄청난 박진감에 흥분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대형 거미를 타고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리고 번개가 몸을 위아래로 훑고 지나가는 것처럼 짜릿했다.

거대한 수스마르가 계속해서 밀려와도 전혀 물러서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발로 녀석들의 대가리를 밟고 키보다 더 큰 대형 철퇴를 휘둘러 대가리를 깨고 손잡이 끝에 달린 날카로운 창날로 찍어 모조리 잡아 죽이는 강철 거인.

튀어 오른 물보라에서 무지개가 피어올랐다.

강철 거인은 마치 신화 속에 등장하는 원시 신 같았다.

그렇게 느끼는 것은 칼리슈만이 아니었다.

- 와! 저 기사 양반, 끝내주네!

- 왐마! 이런 건 또 첨 보네. 지릴 뻔했다니께!

잠시 후 수스마르들이 모두 물에 잠긴 채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끝난 것이다.

우르사가 옅은 물을 첨벙거리며 다가왔다.

- 이번에는 도움이 필요해요.

- 뭘 어떻게 도울까요, 기사님?

루산의 말에 멕 워커 파일럿들이 물었다. 그들은 지극히 공손하고 호의적이었다.

루산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 피 냄새를 맡고 세르펜스가 나타나길 기다릴 겁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은 너무 커요. 적당히 해체해야겠어요. 그렇다고 너무 작게 자르지는 마세요. 상당히 큰 덩어리로, 삼키고 나서 소화가 될 때까지 한참 걸리도록 잘라야 합니다. 그때 때려잡을 거니까요.

- 아하! 알겠습니다.

멕 워커 파일럿들은 루산의 계획을 금방 이해했다.

세르펜스가 커다란 먹이를 삼켜 소화를 시키느라 움직임이 굼뜰 때 때려잡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런 상태가 아니면 잡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 시범을 보일 테니 단검 하나만 빌려 줘요.

멕 워커 하나가 자신의 작업용 마나 진동 단검을 우르사에게 건네주었다.

우르사는 수스마르 사체들로 다가가 마나 진동 단검으로 가장 큰 녀석의 배를 가르기 시작했다.

배를 쩍 갈라 안에 있던 생명 구슬을 챙기고, 피 냄새가 많이 나도록 내장을 꺼내 흩어 놓고 가죽을 벗긴 뒤 몸통을 길게 반으로 갈랐다.

멕 워커들이 우르사를 따라했다.

수스마르의 생명 구슬과 가죽은 당연히 루산의 몫이었다.

원시의 생명력을 듬뿍 함유하고 있어 마나 연료를 추출하는 원료가 되는 괴수의 피가 아깝게 수스마르의 죽은 몸뚱이에서 빠져나와 물을 따라 늪지대 전체로 퍼져 나갔다.

피 비린내가 진동했다.

- 자, 다 했으면 서둘러 벗어납시다!

- 알겠습니다!

우르사는 멕 워커와 대형 거미를 이끌고 늪지대 외곽으로 이동했다.

이 근처에 있으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 이제부터 기다리는 겁니다. 아무 소리도 내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해요.

- 소변이 마려운데요?

- 지금 다들 용변을 보세요. 그리고 내가 말하기 전까지 가만히 있어요.

멕 워커 파일럿들뿐 아니라 칼리슈도 선생님 말을 잘 듣는 모범생처럼 루산의 말에 따라 용변을 보고 대기했다.

늪지대의 물고기들이 파닥 뛰어올랐다가 물속에 첨벙 떨어지는 소리, 이름 모를 새가 깍깍대는 소리, 바람에 나뭇가지들이 서로 비비는 소리가 났다.

파일럿들은 멕 안에서 꾸뻑 잠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루산은 늪지대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촤아악~

배가 물살을 가르는 듯한 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다 멈췄다.

그런데 잠시 후 그 소리들이 여러 개 들려왔다.

‘왔다!’

루산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역시 처음 잡아 보는 괴수, 책으로만 익힌 전설의 괴수를 대면할 순간이 다가오자 살짝 긴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두렵지는 않았다.

그에게 두려움이란 전 재산이 압류되고, 채권자들이 몰려와 악다구니를 하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친구들이 동정과 비웃음을 날리고, 결혼을 약속한 여인의 집안에서 파혼을 통보할 때나 겪는 감정이었다.

그동안 발을 디디고 살아오던 땅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느낌. 그것이 두려움인 것이다.

원시의 땅에서는 자신의 실력과 멕 나이트만 있으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루산은 세르펜스들이 큼지막한 먹이를 삼키고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

수스마르 사체를 뜯어 먹던 물고기, 새, 맹수, 괴수들이 일제히 달아났다.

마나 열차처럼 긴 몸체를 끌고 늪지대를 가르며 나타난 거대한 녀석이 입을 쩍 벌렸기 때문이다.

먹이가 워낙 커서 입을 최대한 벌려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자 세르펜스는 턱 관절까지 빼고 거대한 먹이를 꿀떡 삼켰다.

입안 한가득.

녀석은 그 무거운 수스마르 사체를 머금고 목을 쳐들어 중력을 이용해 먹이를 아래로, 아래로 천천히 끌어내렸다.

먹이를 삼켜 불룩해진 부분이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기를 한참, 배가 세 배는 더 부풀어 올랐다.

어차피 움직이기도 힘들어 세르펜스들은 그대로 축 늘어진 채 눈을 감았다.

찰박찰박~

무언가가 늪지대 외곽 얕은 물을 밟으며 걸어왔다.

세르펜스들은 움찔했지만, 귀찮아서 눈도 뜨지 않았다.

그런데 그 발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첨벙첨벙~

세르펜스 한 마리가 귀찮음을 무릅쓰고 눈을 살짝 떴다.

예전에 먹은 적이 있는 곰과 닮았지만 그보다 훨씬 큰 녀석이 위험해 보이는 장대를 두 손으로 들고 다가왔다.

비몽사몽간에도 세르펜스는 위협의 몸짓을 했다.

슈슈슈~

긴 혀를 날름거리자 독액이 묻은 침방울이 기울어 가는 햇살에 반사해 비눗방울처럼 알록달록한 빛을 뿜어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첨벙첨벙 걸어오던 우르사는 눈을 뜬 세르펜스의 대가리를 철퇴로 강하게 내리쳤다.

콰작!

세르펜스의 대가리가 깨지며 늪지대 진흙에 처박히고 흙탕물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루산은 늪지대 진흙이 완충 작용을 해서 충격이 덜 들어갔을까 봐 대형 철퇴를 높게 들어 올려 다시 힘차게 내리쳤다.

콰직!

이미 깨진 두개골이 완전히 박살 나는 느낌이 확실히 들었다.

생명력이 남아 있는 몸통과 꼬리가 꿈틀거렸지만, 루산은 그것을 감상할 시간이 없었다.

마나 열차 같이 크고 긴 녀석들이 슬슬 깨어나려 했기 때문이다.

루산은 바로 옆에서 힘겹게 눈을 뜨는 세르펜스의 대가리를 강타했다.

쩡!

이번 녀석은 너무 단단해 대가리가 깨지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단, 충격이 엄청났는지 녀석이 몸을 배배 꼬며 뒤틀었다.

그러나 무거운 먹이를 배에 담고 있어 뜻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루산은 녀석의 대가리가 깨질 때까지 두드려 팼다.

퍼썩!

거대한 철퇴가 거대한 뱀의 대가리를 깨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늪지대를 뒤흔들었지만, 크고 무거운 먹이를 소화시키느라 녀석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첨벙첨벙!

우르사는 다른 세르펜스를 향해 달렸다.

루산은 예상치 못한 위험이 발생하기 전에 녀석들을 모두 처지하기 위해 쉬지 않고 늪지대를 뛰어다니며 세르펜스의 대가리를 모조리 깨뜨렸다.

“후유~”

세르펜스 일곱 마리의 대가리를 깨고 한숨 돌리고 있을 때 그의 감각이 위험 신호를 보냈다.

촤아악~

멀리서 늪지대 물살을 가르고 무언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의 접근 속도가 무척 빨랐다.

거대한 세르펜스 한 마리가 뒤늦게 피 냄새를 맡고 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우르사는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첨벙첨벙~

늪에 대가리를 처박고 있는 동족들의 모습을 본 거대한 세르펜스가 이 장면을 만들어 낸 원흉을 향해 매우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떨쳐낼 수 없다! 싸운다!’

순간적으로 판단을 마친 루산은 우르사를 급히 멈춰 세웠다.

우르사는 관성에 의해 늪지대 바닥을 죽 미끄러졌으나 넘어지지는 않았다.

흙탕물을 해일처럼 일으킨 뒤에야 멈춰 선 우르사는 몸을 돌려 세르펜스를 향해 마주 달리면서 대형 철퇴를 머리 위로 한껏 들어올렸다.

그때 세르펜스가 몸을 수축시키더니 곧바로 용수철이 튕겨 나가듯 쭉 뻗었다.

세르펜스의 대가리가 거대한 화살촉처럼 빠르게 날아온 것이다.

그 바람에 우르사는 대형 철퇴로 내리치는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다.

팅!

철퇴는 힘없이 세르펜스의 대가리를 두드렸고, 세르펜스는 재차 용수철처럼 몸을 당겼다 거대한 대가리로 우르사의 가슴에 힘차게 들이받았다.

텅!

강한 충격에 우르사는 한참 뒷걸음질을 한 뒤에야 겨우 쓰러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우르사가 균형을 잃고 뒷걸음질을 하는 사이 세르펜스가 재빨리 우르사를 휘감아 버렸다.

세르펜스가 강하게 힘을 주자 우르사가 몸체가 우그러지는 소리가 났다.

끼이이우우웅-

루산은 소름이 돋았다.

“젠장!”

트트트트!

우르사 몸체 어느 부분인가가 부서지며 볼트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우르사의 몸통을 휘감은 세르펜스가 목을 쳐들고 입을 쩍 벌려 우르사의 머리를 집어삼키려 했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지! 안 그래? 힘내라, 우르사!’

루산의 움직임에 반응하기 위해 우르사의 심장 - 연비 나쁜 아트라스 엔진이 힘차게 움직였다.

후웅- 후웅- 후우우우우우우웅-

마침내 우르사의 두 팔이 세르펜스의 똬리 밖으로 빠져나와 자신을 삼키려는 녀석의 위턱과 아래턱을 붙잡았다.

통째로 삼키려는 세르펜스와 입을 찢으려는 우르사!

후우우우우우우웅-

오래된 엔진에 무리가 가는지 굉음이 들렸지만, 루산은 거기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세르펜스 또한 강하게 저항하는 먹이에 놀라 저도 모르게 똬리를 풀고 턱에 모든 힘을 다 쏟았다.

마침내 조이기가 풀리자 우르사는 두 팔로 붙잡고 있던 세르펜스의 입 안으로 왼 다리를 먼저 집어넣고 오른 다리까지 마저 넣은 다음 두 팔로 입천장을 버티고 앉아 있다 온 힘을 다해 일어났다.

“으라차차!”

후우우우우우우웅-

엔진이 터져 나갈 것처럼 요란한 굉음을 냈다.

투투투투!

볼트인지 리벳인지 모를 것들이 실제로 줄줄이 터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내 우르사가 벌떡 일어서자 안간힘을 다해 버티던 세르펜스의 턱 관절이 빠지고 입이 위아래로 좍 찢어졌다.

“맛이 어떠냐!”

죽음의 강을 건너기 직전에 거둔 짜릿한 역전승에 루산이 흥분하여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루산은 이대로 안심하지 않고 물에 반쯤 잠겨 있던 대형 철퇴를 얼른 주워 들어 날카로운 손잡이 창끝으로 세르펜스의 대가리를 팍팍 찍었다.

“죽어라!”

죽을 때까지 찍었다.

그래서 결국 죽였다.

우르사와 거대한 세르펜스의 생존을 건 험악한 싸움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멕 워커 파일럿들은 몸을 부르르 떨며 울먹였다.

- 아아아! 지렸다.

- 나도!

- 저렇게 입을 찢어 버리다니, 정말··· 최고다!

칼리슈도 소리 없이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대단하다! 루산! 대단하다! 정말, 정말 대단해!’

그때 우르사가 다가왔다.

움직일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나고 다리를 절룩이는 것이 기체 손상이 심각한 것 같았다.

- 빨리 작업하세요. 이제 괴수가 나타나면 우린 끝장이에요.

- 아, 알겠습니다!

멕 워커 파일럿들이 서둘러 뛰어갔다.

[기사님, 괜찮습니까?]

칼리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진심으로 걱정이 돼 물어 본 것이다.

그러자 루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여덟 마린데, 성과 보상금 있나요? 수리비가 많이 나올 것 같아서······.”

‘정비부장에게 무한 책임을 물어 공짜로 고칠 생각이지만······.’

[그건 좀······.]

‘여기까지 오면서 대형 괴수 생명 구슬 엄청나게 모았잖소! 그걸로 수리비 충분히 나오겠구먼.’

[허허허!]

“하하하!”

루산은 기어이 가프 마법 연구소에서 나오는 멕 나이트 윤활유와 부품을 무상으로 제공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 냈다.

단, 조건이 붙었다.

[그럼 다음에 또 부탁드리겠습니다, 루산 보름스 기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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