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침대칸을 받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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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산은 첫 계약 때 기본급으로 월 90골드를 받기로 했다.
변경의 모든 멕 나이트 파일럿이 이렇게 받는 것은 아니다.
구역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은퇴 직전의 나이 많은 파일럿이나 변경의 특성상 이력을 제출하지 않아 실력이 의심스러운 파일럿은 20골드로 시작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어차피 기본급보다 괴수 사냥으로 벌어들이는 성과 보상금이 더 많기 때문에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루산이 월 90골드라는 높은 급여를 받고 시작한 이유는, 순전히 제국 기사 아카데미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어디 보자. 1년 차, 2년 차에는 괴수 사냥으로 받은 성과 보상금이 거의 없다가 2년 차 후반부터 확 늘어나기 시작하는군요. 그러다 5년 차에 캡틴을 달고 나서 찾아온 웨이브 때 최고점을 찍었네요. 8군단 전체에서 압도적인 탑이에요. 1년 차, 2년 차를 제외하고 3년 차부터 평균으로 따지면 늘 8군단 탑 5에 드는 성과 보상금을 받았어요.”
본부 회계부장이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자료를 읽어 나갔다.
“기체 손상으로 인한 수리비 부분도 1년 차, 2년 차 중반까지는 상당히 나왔는데 그 이후로는 마모된 부품 교체 외에는 파손 수리가 전혀 없군요.”
쉽게 말해 괴수 사냥은 많이 하고 멕 수리비는 거의 안 들어 8군단에 괴수 부산물 수입을 많이 벌어다 준, 기특한 파일럿이라는 이야기였다.
“이번 반달 호수 지역 개척민 수용 인원을 보니 레인보우 시티가 본부 개척 기지와 계속 격차를 벌리고 있네요. 게다가 개척민 괴수 사고 0건. 참 좋아요.”
본부 개척부장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루산은 살짝 긴장했지만, 겉으로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자신에 대한 지난 5년 간의 평가를 듣고 있었다.
같은 이야기를 듣고 있던 기동 전단장이 루산에게 호의적인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캡틴, 혹시 생각해 온 조건 있습니까? 어차피 편하게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니까 말해 보세요.”
루산은 모두에게 이런 호의적인 계약 협상 자리가 마련되지 않는다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실적이 떨어지거나 사고를 많이 쳐 손해를 끼치면 가차 없이 급여를 깎고 여러 제약 조건을 붙인다.
자신이 8군단에 이로움을 주는, 탐나는 인물이라는 뜻이었다.
“사실 재계약이 이번이 처음이고, 임무를 막 끝내고 돌아와 급하게 연락을 받고 온 거라서 딱히 생각해 본 게 없습니다. 혹시 본부에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먼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루산은 경험을 통해 배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칼리슈와 협상할 때 먼저 말해서 손해를 본 것 같아 품위 있게 공을 상대방에게 넘겼다.
본부에서 생각하는 자신의 가치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전단장, 회계부장, 개척부장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더니 잠시 고개를 모으고 속삭였다.
미리 생각해 둔 조건이 없을 리 없었다. 그것을 확인해 본 것이다.
회계부장이 말했다.
“기간은 전과 같이 5년, 급여는 월 기본급 150골드, 어떤가요? 캡틴 수당 10골드를 포함하면 변경에서는 최고 수준의 대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음······.”
루산은 괜히 생각해 보는 척했다.
이 세상에는 한 달에 10골드를 못 버는 사람이 허다한데, 기본급으로만 매달 160골드를 받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인 기준이었다.
군단 멕을 타고 있을 때에도 3년 차부터는 성과 보상금으로 기본급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고, 자신의 멕을 보유한 지금은 군단 멕을 타던 시절보다 최소 10배 이상 벌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이러한 조건은 중요하지 않았다.
최고 대우를 해 준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울 뿐.
“혹시 민간 사냥 팀에서 영입 제의 받았나요? 아니면 다른 군단에서? 캡틴의 출신과 실력이면 충분히 그럴 만하지요.”
루산이 대답 없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기동 전단장이 물었다.
흔하지는 않아도 전혀 없는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변경으로 온 파일럿들은 명예보다 돈이 목적이었다.
이곳에서는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곧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많은 금액을 제시하는 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 아닙니다. 그런 제의가 들어온다 해도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요?”
“금액적인 부분 말고 좀 더 8군단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돈이야, 제가 얼마 전부터 조립 멕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것은 아실 테니까, 군단 멕을 타는 파일럿들보다 월등히 많이 벌게 될 겁니다.”
“음!”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특이한 일이 본부에 알려지지 않았을 리 없었다.
“저의 능력으로 제국과 8군단에 좀 더 기여하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 겁니다.”
“오호~ 그래서 어떤 생각을 해 봤습니까?”
“제국과 8군단이 바라는 일은, 이 땅을 안전하게 개척하여 더 많은 이주민을 정착시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와중에 개척지 건설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도록 괴수 부산물 수입을 많이 얻으면 좋은 것이고 말입니다.”
“그렇지요.”
“그러기에는 현재의 전진 기지 방식이 조금 소극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방식도 괜찮기는 한데 너무 느리죠. 안전을 확보하기까지 5년에서 10년 정도가 걸린다면 새로운 정착지 건설이 그만큼 늦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특히 이번 피란민 건처럼 갑자기 많은 이주민을 받아야 할 때 특히 아쉬움이 있다는 겁니다.”
재계약 협상 자리가 갑자기 변경 개척 방식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 제기 자리로 변했다.
그럼에도 본부 높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빠른 시간 안에 많은 개척민을 받는 것이 그들의 성과 보상금을 높여 주는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두 가지나?”
“네. 첫 번째는 기동 전대급 전투력을 후방에 배치해 전진 기지를 서포트해 주는 역할에 그치지 말고 오히려 최전방에 배치해 처음부터 개척 예정지를 대규모로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본부 기동 전단이 선제적으로 투입되는 임무가 따로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변경 군단의 꽃은 전진 기지이고 본부는 지원해 주는 역할을 했다.
루산은 이것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대규모 피란민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변경으로 오는 이주민이 얼마나 될지 아무도 몰라요. 많은 비용을 들여 대규모 개발을 해 놓았는데 아무도 안 들어오면 어떡하겠습니까? 그렇게 해서는 수지를 맞출 수가 없기 때문에 다소 소극적으로 보이는 현재의 전진 기지 방식을 택한 거예요.”
기동 전단장이 의욕 넘치는 젊은 캡틴에게 마치 자상한 삼촌처럼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그 정도는 루산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두 번째 말씀을 드리려는 겁니다.”
“두 번째?”
“네. 변경은 더 이상 갈 곳 없는 사람들이나 가는 곳으로 인식이 박혀 있죠. 그래서 도시 빈민들이나 집안이 망해 회복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지원해 오고는 합니다.”
“그렇죠.”
“그런데 사실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제국은 지원이 엄청납니다. 집도 주고 직업도 주고, 물론 나중에 장기 분할로 갚아야 하기는 하지만, 머리를 잘 쓰면 단기간에 많은 돈을 벌 수도 있습니다. 위험이 있기는 해도 기회의 땅인 거죠.”
“그것도 맞죠.”
“위험도 우리가 거의 다 제거해 주기 때문에 사실 도시에 살며 마차에 깔려 죽을 위험이나 강도를 당해 죽을 위험보다 높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괴수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 불안감, 공포심이 매우 큰 정도죠.”
“흐음······.”
“변경은 인생의 막다른 길에 다다른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는 인식을 걷어 내야 합니다. 다소의 위험이 있기는 해도 기회가 넘치는 땅, 가진 것은 없지만 야망이 큰 사람들이 충분히 도전해 볼 수 있는 땅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면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지원할 것입니다.”
루산의 이야기를 들은 세 사람은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그럴싸한 것 같으면서도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과 충돌해 쉽게 수긍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가진 것은 많고 인생이 지루한 사람들에게 이곳은 엄청난 스릴과 모험을 경험할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안전을 보장해 준다면 그들은 기꺼이 많은 돈을 내고 모험과 긴장감을 즐기러 이곳에 올 겁니다.”
“그런 정신 나간 사람들이 있을까요?”
회계부장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귀족 출신인 기동 전단장과 개척부장은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루산은 이 아이디어를 바덴의 별장 사업을 보고 얻었다.
내용이 똑같지는 않지만, 사람을 끄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장원은 기본적으로 땅을 경작해 수입을 올리는 곳인데, 귀족들은 그곳에서 며칠 즐기면서 경작으로 얻을 수 있는 수입의 수십 배, 수백 배를 지불하고 간다.
만족만 시키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귀족들은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다.
이곳이 괜찮은 곳이라는 인식이 퍼지면 딱히 광고를 하지 않아도 알아서 찾아온다.
변경에서도 가능할 것 같았다.
“음······.”
25년 동안 파일럿으로 일하다 현역에서 은퇴한 기동 전단장은 루산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실력도 좋고 머리도 좋고, 무엇보다 욕심이 대단하구나!’
그저 돈 욕심이 아니었다.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큰 욕심이었다.
판을 완전히 뒤집어엎고 새로 짜겠다는 욕심.
‘트리어가 극찬을 하는 이유가 있었군.’
변경에 사기꾼은 많아도 인재를 구하기는 어려웠다.
이런 인재를 놓치면 안 된다.
회계부장과 개척부장도 전단장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루산이 기존에 봐 왔던 변경의 멕 나이트 파일럿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캡틴도 알겠지만, 변경 개척의 역사는 무척 오래되었어요. 멕 나이트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어쩌면 인간의 생존기 그 자체일 겁니다.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만들어진 이 시스템은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그래서 캡틴의 말 한마디에 이 방식을 바꿀 수는 없어요.”
“···네.”
루산은 살짝 실망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해 봅시다. 캡틴에게 어떤 권한과 직책을 주는 것이 좋을지 고민해 보겠습니다. 캡틴도 기존 시스템의 각 부서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보고 겪어 보세요.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5년 갱신, 기본급 180골드, 캡틴 수당은 10골드, 아직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특별 직책 수당은 별도로 책정. 계약, 하시겠습니까?”
회계부장과 개척부장이 깜짝 놀라는 가운데 루산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러나 루산은 기동 전단장의 조건을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나만 추가하고 싶습니다.”
“뭡니까?”
“휴가 때 침대칸을 끊어 주세요. 동승자 1인 포함. 오늘부터.”
한 달에 기본급만 200골드 안팎을 받게 될 멕 나이트 파일럿이 내건 소박한 조건에 기동 전단장은 피식 웃었다.
회계부장은 인상을 썼지만, 전단장의 표정을 보니 이미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저항의 투덜거림.
“이런 계약은 처음입니다.”
루산이 역대급 계약을 체결하고 나오니 가방을 꼭 안고 로비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클라크가 벌떡 일어나 다가왔다.
“기사님, 계약은 잘 하셨어요?”
“그럼! 침대칸을 받아 냈다.”
“네?”
“어때? 잘했지?”
“네!”
라돔 역으로 가는 두 사람의 발걸음이 무척 가벼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