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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28화 (28/450)

28. 가만 안 두겠어

***

바덴은 늘 이용하는 마차가 있었다.

집에서 안내 사무소, 자작나무숲 장원, 다시 집으로 출퇴근하려면 필요했기 때문에 한 대 구입했다.

편지로 이미 보고를 받아 루산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작은 마차일 줄은, 게다가 직접 마차를 몰 줄은 몰랐다.

말 한 마리가 끄는 소형 마차였다.

“필요해서 구입한 거지 사치하려는 게 아니잖아요. 내 돈도 아닌데 아껴 써야죠.”

루산은 살짝 감동했다.

그런데 문제는 두 사람이 앉을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었다.

마부석과 뒷좌석 간격이 좁아 루산이 무릎을 쩍 벌려야 겨우 앉을 수 있었다.

그 때문에 클라크가 앉을 자리도 비좁았다.

품위 없는 자세로 앉아 있느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루산을 보고 바덴은 웃음이 터질 뻔했지만, 애써 누르며 말했다.

“여기서 멀지 않으니까 조금만 참으세요. 이랴!”

바덴이 마부석에 올라 말을 몰고 마차 보관소를 나섰다.

바덴은 작은 마차로 속도도 잘 내고 커브도 잘 돌았다.

그때마다 쿠션감 없는 뒷좌석은 죽을 맛이었지만.

“어어어어어!”

“왜 이렇게 과격해요?”

코너를 돌 때 크게 쏠리는 클라크를 잡아 주다 루산이 기어이 한 소리 했다.

“미안해요. 습관이 돼서······. 안내 사무소에서 자작나무숲 장원까지 가려면 시간이 많이 걸려서요.”

루산은 할 말이 없었다.

한참 동안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밤에는 어떡해요? 혼자 마차를 타고 와요?”

“아뇨. 날이 저물면 앞이 안 보여서 못 와요. 교외에 가로등이 설치돼 있는 것도 아니고, 무섭잖아요. 자작나무숲 장원에서 자고 오죠. 사실 집에 들어가는 날이 많지 않아요.”

손님들을 응대하고 직원들을 관리하면 날이 저물어 마차를 타고 돌아오기 어려웠다.

여자의 몸으로 거의 매일 마차를 장시간 모는 것도 힘든 일인데, 안내소 운영도 하고 장원 관리도 해야 하는 것이다.

바덴이 지난 1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을 루산은 작은 마차 뒷좌석에 꼭 끼어 타고 가면서 몸으로 깨달았다.

고맙고 미안했다.

“마차 좀 더 큰 거 사고, 마부 고용하세요. 아니면 전조등 밝게 켜지는 자동 마차를 알아보든가. 그러다 쓰러지면 어떡해요? 투자한 돈이 얼만데······.”

등 뒤에서 들려오는 루산의 말에 바덴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말투와 달리 걱정해 주는 마음이 느껴진 것이다.

“그렇잖아도 이대로 계속하는 건 무리라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어요. 나중에 보고 드릴게요.”

“그래요, 그럼.”

마차는 대로를 달리다 평민들이 사는 주택가로 접어들었다.

루산은 바덴이 시키는 대로 꽃다발을 하나 사고, 포도주 한 병을 구입하고, 쿠키 두 봉지를 골랐다.

“한 봉지 더 사세요.”

바덴이 진열된 쿠키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클라크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나직이 속삭였다.

“아!”

루산은 한 봉지 더 사서 클라크에게 무심하게 내밀었다.

“자.”

“정말요? 기사님, 감사합니다! 동생들이 좋아할 거예요!”

클라크가 환한 표정으로 쿠키를 받아 가방에 넣었다.

동생들한테 사 주고 싶어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으휴~ 그냥 먹어. 갈 때 또 사면 되잖아.”

“그, 그래도 될까요?”

“누가 보면 내가 짠돌이, 구두쇤 줄 알겠다.”

루산은 스스로 뱉은 말이 민망하여 선물을 들고 앞장서서 걸어갔다.

“사 달라는 말이 아니었는데······. 내 돈으로 사도 되는데.”

어쨌든 클라크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무거운 가방을 들었지만, 가벼운 걸음으로 얼른 루산과 바덴의 뒤를 따라갔다.

바덴은 두 사람을 동네 빵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내 보스야. 노바에서 마땅히 머무실 곳이 없어 며칠 지내시라고 했어. 난 늦어서 이만······.”

바덴이 떠나고, 빵집을 하는 바덴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딸이 데리고 온 어려운 손님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눈만 깜박였다.

과년한 딸이 처음 집으로 데려온 젊은 남자 손님이라는 점도 부모를 당황하게 만드는 데 큰 몫을 했다.

루산 역시 이런 상황이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꽃다발과 포도주와 쿠키 두 봉지가 왜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는지 몰랐다.

그 상황에서 클라크가 예의 바르게 먼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미스 고슬라의 아버님, 어머님! 이분은 미스 고슬라의 사업 파트너이며 투자자이신 루산 보름스 기사님입니다. 저는 집사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클라크라고 불러 주세요.”

그제야 숨통이 트인 바덴의 아버지가 인사를 했다.

“아! 그렇군요. 반갑습니다, 루산 보름스 기사님. 바덴의 아비 되는 굼머스 고슬라입니다.”

“반갑습니다. 호텔에서 지내도 되는데, 미스 고슬라의 권유에 이렇게 실례를 하게 되었습니다.”

“실례라니요, 그런 말씀 마십시오. 불편하시겠지만, 편히 지내십시오.”

땀이 삐질삐질 나오는 어색한 인사가 끝나고 바덴의 어머니가 빵집 뒤에 붙어 있는 살림집으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얼마 뒤 학교에 갔다 돌아온 바덴의 쌍둥이 동생들이 언니와 누나가 데려온 첫 남자에 대한 호기심에 방을 기웃거리다 엄마한테 귀를 붙들려 끌려 나갔다.

“후유,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저는 좋은데요, 기사님.”

“뭐가?”

“빵 냄새가요.”

그 말에 루산은 피식 웃었다.

빵 냄새가 좋기는 참 좋았다.

***

“갑자기 서류들은 왜 찾니?”

“실마리를 찾았어요. 하지만,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아요. 외숙, 누나, 아무한테도!”

“···알았다.”

루산은 어머니에게서 자료를 받아왔다.

커다란 나무 상자 세 개 분량이었다.

저택이 넘어가고 마땅히 갈 곳이 없을 때에도 이것들을 모아 놓고 재판에서 지고 나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까지 버리지 않은 것을 보고 루산은 어머니 가슴에 쌓인 한이 자신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한편 바덴은 루산이 가져온 자료의 양을 보고 자신이 혼자 검토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도 잠잘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쁜데 자작나무숲 장원을 팽개치고 이 일을 할 수는 없었다.

“우리의 현재를 무너뜨리지 않아야 해!”

시간이 날 때마다 살펴보겠지만, 이 일에 집중할 사람이 필요했다.

대학 2년 선배인 변호사 포렌시스가 떠올랐다.

똑똑한 사람이지만, 자신과 마찬가지로 신분이 높지 않아 아직까지 자리를 잡지 못했고 자신이 변호사 일을 그만둔 것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다.

믿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스텐커.

경찰로 일하다가 부인이 죽고 나서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없어 경찰을 그만둔 탐정 겸 해결사.

그 아이들이 벌써 다 커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실력과 책임감이 남다른 사람으로 이 업계에서 정평이 나 있었다.

“이 일은 절대적인 비밀 유지가 핵심입니다.”

못 박지 않아도 의뢰인의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말할 사람들이 아니지만, 바덴이 한 번, 루산이 또 한 번 강조했다.

그렇게 보름스 가문 재산 사기 사건(400만 골드 사기 사건) 조사 팀이 만들어졌다.

스텐커는 조사와 추적의 전문가라 루산이 따로 무언가를 조언하고 당부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이런 일을 할 때 주의할 점, 주목할 점을 루산이 배웠다.

“확실히 의심스러운 구석이 많은 사건이군요. 이런 말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 규모의 재산이 순식간에 사라질 때는 외부의 힘뿐 아니라 내부에 조력자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음!”

기차를 타고 오는 길에 루산도 이 점을 생각해 보았다.

5년 전에는 전혀 가져 보지 않은 생각이지만, 변경에서의 삶으로 인해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다. 겉으로 충직해 보여도 딴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도무지 의심할 만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닐 수도 있죠. 그러나 설마? 하는 그 사람이 범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말씀하신 대로 유일한 단서를 추적해 보겠습니다. 오베론 가문, 공업 은행, 마법 연구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기사님은 보름스 가문의 사람들, 돌아가신 아버님의 측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멀리서 확인만 해 보세요. 너무 다가가진 마세요. 들키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범죄와 연루되었다면 조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자마자 숨을 테니까요. 이상한 점을 발견하면 저에게 바로 알려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루산은 보름스 가문의 고용인들 - 집사와 하인들, 장원과 사업체의 경영을 보좌했던 간부들의 목록을 뽑아 보았다.

“여기 이런 게 있군요.”

변호사 포렌시스가 자료들을 분류하다 찾은 문서 하나를 루산에게 건네주었다.

재산이 날아가고 난 뒤 아버지도 측근들을 의심했는지 인적 사항에 대해 따로 만들어 둔 문서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당분간 바쁠 테니까 얌전히 책을 보거나 아이들하고 놀면서 지내고 있으렴.”

“네, 기사님. 제 걱정은 마세요.”

루산은 클라크를 바덴의 집에 맡긴 뒤 당시 고용인들과 아버지 측근들의 집과 일터를 찾아다녔다.

주소가 아예 바뀌었거나 일을 그만둔 사람은 따로 표시하고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멀리서 관찰했다.

과거 한 지붕 아래에서 지냈던 사람들을 의심하고 관찰한다는 것이 꺼림칙하고 불편했지만, 지난 5년 간 괴수의 오물을 뒤집어쓰며 살아온 터라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여러 날을 보냈다.

그런데 루산이 무언가를 찾아내기 전에 스텐커와 포렌시스가 먼저 특이한 점을 발견해 냈다.

루산이 낮에 보름스 가문의 고용인들과 아버지의 측근들을 조사하다 밤에 조사 팀의 본거지 역할을 하는 스텐커의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스텐커와 포렌시스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포렌시스가 루산에게 말했다.

“노바 남쪽 교외에 있는 과거 보름스 가문의 장원이 누구에게 넘어갔는지 아십니까?”

“모릅니다.”

당시 그런 것을 신경 쓸 정신이 아니었다.

이미 땅은 날아갔고, 루산은 사기꾼을 잡는다는 아버지와 각지를 돌아다니고 있을 때였다.

“장원이 굉장히 넓더군요.”

루산은 대답 대신 쓴웃음을 지었다.

보름스 가문에 대대로 물려 내려온 장원은 자작나무숲 장원과는 규모 자체가 달랐다.

“법원 기록을 보니 덩치가 워낙 커서 연달아 유찰이 되었고, 나중에는 채권자였던 은행들이 채권액 비율로 여러 개로 쪼개 경매를 진행하는 것을 법원이 허락했어요.”

“주인이 여러 명이 됐다는 말인가요?”

“네. 열두 개로 쪼개졌어요. 쪼개진 다음에 경매를 진행했고, 다시 여러 번 유찰이 되다 주인이 정해졌어요.”

“계속 유찰되었다면 새로 주인이 된 사람이 아주 싸게 샀다는 말인가요?”

“그렇죠. 새 주인은 싸게 샀으니 이익, 채권자인 은행은 손해를 본 셈이죠. 그런데 여기서 이 땅이 다시 매매되고 쪼개지고 주인이 몇 차례 바뀝니다. 일명 땅 세탁이 일어난 것이죠.”

“땅 세탁?”

루산은 처음 들어본 말이지만, 무슨 뜻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네. 그런데 새 주인들이 누구인지 살펴보니까 - 시간이 부족해 다 살펴볼 수는 없었습니다만 - 몇 사람이 오베론 공작가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고용인이라는 사실을 스텐커 씨가 확인했습니다.”

“······!”

“물론 사회 개혁 이후 평민들도 땅을 소유할 수 있지만, 확실히 냄새가 나죠. 하필 오베론 가문의 고용인들이 보름스 가문의 쪼개진 장원을 나눠 가졌다니 말이에요.”

“흐음······!”

루산은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코에서 뜨거운 김이 뿜어져 나왔다.

용의자가 특정된 상태에서 전문가들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발휘하는가 하는 생각은 떠올릴 정신이 없었다.

‘오베론! 가만 안 두겠어!’

침착하자, 진정하자 다짐했음에도 루산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놀라운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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