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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29화 (29/450)

29. 그것은 안 된다

***

루산이 노바에 머물 수 있는 마지막 밤.

스텐커가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었다.

“최근 10년 간 이런 사건이 하나가 아니더군요. 보름스 가문만큼 엄청난 재산은 아니어도 상당한 규모의 장원이나 저택, 사업체들이 제국 각지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날아갔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확인한 것만 여섯 건이니 자세히 파 보면 더 나올지도 모릅니다.”

“여섯 건!”

짧은 기간에 알아본 것이 여섯 건이라면 실제로 훨씬 더 많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비슷한 방식이라면······?”

“사업 제안, 담보 대출, 보증, 압류로 이어지는 식이죠.”

루산이 고개를 갸웃했다.

“잘은 몰라도 그런 사기는 많지 않나요?”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드린 사건들은 재산이 많은 귀족들을 상대로 했다는 것과 마법 연구소가 개입했다는 점에서 유사성 있습니다.”

“으음!”

사기 사건은 많지만, 마법 연구소를 끼고 귀족들을 대상으로 사기를 치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 말이었다.

“마법 연구소에서 새로운 공정을 만들어 냈다는 식으로 피해자들의 적극적인 투자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마법사가 사기를 친다는 말은 왠지 어색했다.

마법사 한 사람이 아니라 마법 연구소가 사기를 쳤다는 말은 더 이상했다.

마법사는 정적이고 깊이 연구하며 별개의 세상에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이 강했고, 마법 연구소는 사회를 떠받드는 기둥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

마법사, 마법 연구소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인식을 이용한 것이다.

‘아버지도 마법 연구소 세미나에 초대받았다고 기뻐하셨지.’

루산은 소년처럼 기뻐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찡했다.

“하지만, 같은 마법 연구소나 오베론 가문이 엮여 있지 않다면 결국 별개의 사건들 아닌가요?”

“맞습니다. 확인해 봐야죠. 그런데 제국 각지를 돌아다녀야 하니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겁니다. 그래도 결국 필요한 일이지요. 피해자들 가운데 단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사람을 더 쓰는 건 어떤가요?”

“일단 직원 두 명을 쓰고 있으니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이대로가 나을 것 같습니다. 비밀 유지가 핵심이라고 하셨으니까요.”

현재 파악한 내용은 오베론 가문, 공업 은행이 관련돼 있다는 것이다.

비밀을 유지하지 못하면 루산과 조사 팀은 사람 발에 밟히는 개미 신세가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루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5년 넘게 해결하지 못한 일이었다.

단서를 얻고 나서 조사 팀을 꾸린 지 이제 겨우 며칠 지났을 뿐이다.

변경으로 돌아가기 전에 무언가를 확실히 알아내고 싶은 마음에 조급증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공업 은행 쪽은 어떤가요?”

“신문 기사에서 찾아볼 수 없어서 결국 5년 전 은행 인사 기록이나 내부자와 접촉해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오베론 공작의 둘째 아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빠르겠지만, 그건 최후의 방법이죠.”

스텐커 나름의 유머였으나 루산은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러자 스텐커는 루산이 혹시나 정말로 오베론 공작의 둘째 아들을 납치하기라도 할까 봐 얼른 말했다.

“설령 보름스 가문의 장원을 현재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오베론 공작가의 고용인들이라 해도 그것이 법적으로 불법의 증거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요.”

루산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단서가 더 필요합니다. 이대로는 의심만 있을 뿐 증거가 하나도 없으니까요. 어려운 사건이니 만큼 인내심을 가지고 증거를 확보해야 합니다. 확실히 꼬리를 물어야죠. 그러니 기다려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루산은 지난 며칠 동안 자신이 직접 알아본 보름스 가문의 고용인들과 아버지의 측근들에 대한 동향 관찰 결과를 스텐커에게 넘겨주었다.

사실 별 내용은 없었다.

주소가 바뀌어 행방을 알 수 없는 사람, 직장이 바뀐 사람을 확인한 정도였다.

들키지 않고 누군가를 조사한다는 것은 이처럼 어려운 일이었다.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돌아가 봐야 할 시간이었다.

“두 분께 활동비 포함, 한 달에 30골드씩 드리겠습니다. 특별 활동비가 필요하시면 미스 고슬라에게 말씀하세요. 그리고 이 일이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럼에도 가문의 재산을 되찾는다면 두 분께 각각 5만 골드의 성과 보상금을 드리겠습니다.”

“······!”

평범한 사람은 죽었다 깨도 만질 수 없는 거금이었다.

아무리 난이도가 높아도 도전 의식이 생길 만했다.

“새로 알아낸 것들이 있으면 편지로 알려주세요.”

“알겠습니다, 기사님!”

“그렇게 하죠!”

루산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의욕이 넘쳐 보이는 스텐커, 포렌시스와 인사를 나누고 스텐커의 사무실을 나왔다.

***

봄이지만 밤공기는 아직 차가웠다.

사무실을 나온 루산은 가로등을 따라 걸었다.

지난 며칠 드나들었다고 여기서 바덴의 집으로 가는 길이 이미 눈에 익었다.

노바 태생이라 이 도시가 익숙해서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이번 휴가 기간에 시원하게 해결된 것은 없지만, 그래도 원흉이 오베론 공작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과 그들의 손에 망한 가문이 보름스 가문만이 아닌 것 같다는 정황을 확인했다.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였다.

증거와 증인은 전문가들이 찾아내도록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내일은 돌아가서 현재를 충실히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체 왜지?’

루산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땅을 더 가지고 싶어서?

보름스 가문의 땅이 노바 근교에서 꽤 큰 장원이라지만, 필센 제국 영토의 8분의 1에 해당하는 오베론 지방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보름스 가문을 몰락시키려고?

보름스 가문이 오베론 가문과 원한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고 확실히 마무리할 방법을 마련해 놓았다지만, 혹시라도 제국에서 큰 권세를 누리고 있는 공작 가문이 다른 귀족 가문의 재산을 빼앗고 멸문시킨 것을 들키기라도 하면 수백 년 동안 쌓아 올린 명성과 지위가 몽땅 날아갈 텐데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그 이유를 아는 것이 이번 사건의 포인트라는 뜻이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한다면 미친 것이거나 남들이 예상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노린다는 뜻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루산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채로 내일 돌아가려니 답답했다.

“후으으으읍~”

루산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마차를 끄는 말들이 길에 싸질러 놓은 똥 냄새와 함께 가로수에 활짝 피어 있는 봄꽃의 향기가 동시에 느껴졌다.

도시의 봄 냄새.

루산은 가슴에 가득 들어 찬 답답함을 공기와 함께 내뱉었다.

“하아아아~”

조금은 시원했다.

바덴의 집에 거의 도착할 때쯤 루산은 작은 마차 한 대가 골목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발견했다.

바덴이었다.

마차를 몰던 바덴도 루산을 발견하고 속도를 줄였다.

“워워~”

루산이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아니, 지금 오는 거예요?”

“네.”

“근교는 가로등도 없어 어둡고 무섭다면서 왜 무리를 해요?”

“내일 가시잖아요. 또 언제 뵐지 모르는데 배웅은 해야죠.”

루산은 똥 냄새로 가득 차 있는 자신의 마음에 봄꽃 향기가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 향기는 금세 사라졌다.

루산은 갑자기 외로워졌다.

“후으읍~”

숨을 크게 들이마셔 봤지만, 꽃 냄새는 나지 않았다.

할 말을 잃은 루산은 바덴의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바덴이 루산의 걸음에 보조를 맞춰 마차를 몰았다.

따각따각 말발굽 소리가 경쾌했다.

한참 후에 루산이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위험한 짓은 하지 말아요. 빚 갚고 성공할 때까지.”

“···네.”

“내일 시간 되는 대로 자동 마차 알아봐요. 요새는 많이 보급돼서 가격도 많이 떨어졌다고 하던데.”

도르르르르-

다니는 사람이 없어 마차 바퀴가 포장도로 위를 구르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래도 아직 비싸요.”

“지난번에 내가 다시 보내라고 했던 1만 골드, 그거 헐어서 써도 돼요. 큰돈을 아꼈거든.”

아트라스 대검 수리비를 아낀 것을 말하는 것이다.

“기사님 상속세 분할분 내야 해요. 8천 골드.”

“아!”

‘젠장! 그러고 보니 우르사 몸체 주문 제작비랑 부품 값은 또 얼마나 나올까? 이놈의 돈! 도대체 얼마를 벌어야 해?’

루산은 품위를 잃지 않기 위해 속으로만 욕을 했다.

그러다 생각난 김에 자신의 변경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기로 했다.

그동안 서로 얼굴을 볼 시간이 없어 못 했지만, 어차피 해야 하는 이야기였다.

“내가 본부에 제안한 내용이 통과될 거예요.”

“네?”

“변경 군단의 수입 구조는 크게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어요. 괴수 사냥, 개척민 유입.”

“네.”

바덴은 루산을 만난 뒤 변경에 대해 약간 공부를 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는 체는 하지 않았다.

“개척촌 이주민으로 주로 도시 빈민들을 모집해 왔는데, 오랫동안 이 방식을 사용하다 보니 개척촌 이주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굳어 있어요. 다른 선택지가 하나도 남지 않아 마지못해 간다고 생각하죠.”

“네.”

“그런데 변경 이주민에 대한 지원 대책이 상당히 괜찮거든요. 제국 정부와 변경 군단에서 팍팍 밀어 주죠. 가진 건 없지만, 용기와 열정만 있으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인상을 심어 주고 싶어요. 그러면 더 많은 사람들이 변경으로 오지 않겠어요?”

바덴은 뭔가 아쉬웠다.

아닌 척하면서도 자신을 걱정해 주는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일 얘기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편하기도 했다.

“변경에 대한, 변경 이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싶다는 거네요.”

“그렇죠.”

“음······.”

바덴은 몇 가지 아이디어가 곧바로 떠올랐다.

최근 기획 회의를 많이 하다 보니 거기서 나온 수많은 이야기들이 루산의 의도와 어우러져 새로운 청사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장기적으로는 신문 연재소설을 뚫어 보는 게 좋겠어요.”

“신문 연재소설?”

“네. 변경 군단이나 개척민 이야기를 멋지게 그리면 사람들이 동경심을 품게 될 테니까요. 신문은 가장 많은 사람이 접하는, 영향력이 큰 매체고 신문에 연재되는 소설은 많은 팬을 거느리죠.”

“······!”

루산이 우뚝 멈춰 서서 마부석에 앉아 있는 바덴을 바라보았다.

바덴도 얼른 마차를 멈추었다.

“왜요?”

“정말 멋진 생각이네요!”

루산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러자 바덴의 볼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기획 회의에서 나온 이야기를 얼른 변용한 것뿐이라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루산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다.

바덴은 다시 마차를 천천히 몰았다. 그 옆에서 루산이 나란히 걸었다.

“근데 단기적으로는 다른 방법을 써야죠. 단기적으로 효과를 내려면 상금을 걸고 사람을 모집해 보는 건 어때요?”

“상금?”

“네. 100명이면 100명, 50명이면 50명, 사람을 모집해서 일정한 기간 동안 개척촌을 잘 꾸미고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사람에게 상금을 주는 거죠. 1등, 2등, 3등. 1등한테는 파격적으로 500골드를 준다거나, 소를 몇 마리 준다거나 하는 거예요. 신문에 공고를 내면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올 것 같은데요?”

“아!”

이 아이디어도 느낌이 팍 왔다.

성공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루산의 머리에서 바덴의 아이디어 두 가지가 빠르게 섞였다.

“개척 경쟁을 연재소설에 실으면······?”

“와!”

이번에는 바덴이 입을 떡 벌렸다.

무궁무진한 소재, 현실감 있는 이야기, 독자들이 열광할 것 같았다.

빵집 앞에 도착한 뒤에도 두 사람은 집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이디어를 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즐거워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부자들의 변경 모험 여행.

부자들을 유혹할 개척 사업 아이템.

변경에서의 실제 삶에 대한 이야기.

그러다 서로 살아온 이야기가 조금씩 섞이고,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다가, 불에 덴 듯 놀라 입을 다물고, 다시 사업 이야기로 옮겨 가서 신나게 대화를 나누었다.

“누가 한밤중에 이렇게 남의 집 앞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거야?”

잠자리에 들었던 바덴의 아버지가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일어났다.

“신경 끄고 잠이나 자.”

아내가 말렸지만, 손님도 아직 오지 않고 딸도 들어오지 않아 쉬이 잠이 들지 못했던 그는 조심스럽게 방을 나와 중정을 지나서 빵집으로 들어가는 문 말고 대문 틈으로 살짝 밖을 내다보았다.

마차 위에 앉아 있는 딸과 마차 옆에 서 있는 손님이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똑같은 눈높이로 서로 마주 보고 웃으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굼머스는 가슴이 철렁했다.

‘딸아, 그것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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