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대중성은 포기 못 해
***
가로등이 환하게 밝혀진 노바의 밤거리에는 아직도 적지 않은 마차와 자동 마차들이 다녔다.
스텐커와 그의 조수가 추격하는 마차는 유흥가에서 대로로 나와 다리를 건너 동쪽으로 달렸다.
“동부 공업 지구로 빠지는데요?”
“아직은 모르지.”
다니는 마차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의심을 살 정도는 아니어서 그들은 거리를 두고 추격을 계속해 나갔다.
간간이 야간 조업을 하고 있는 공장들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으나 밤이 깊어 대부분의 공장은 은은한 보안등만 켜져 있고 캄캄했다.
마법사의 마차는 동부 공업 지구에서 방향을 틀어 북쪽으로 달렸다.
공장 노동자들이 주로 사는 주택가를 지나 상업 지구를 통과하니, 잠시 후 숲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는 공원 같은 곳이 나타났다.
“연구 지구?”
노바 동부 공업 지구 북쪽에는 마법 연구소들이 밀집한 지역이 있었다.
이 마법 연구소들이 공업 지구와 결합해 필센 제국에 어마어마한 부를 창출해 내는 것이다.
그래서 노바 동부를 필센 제국의 심장이라고 불렀다.
‘마법사가 연구 지구로 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지.’
사기꾼이라는 생각에 얼른 떠올리지 못했을 뿐.
‘연구 지구는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말이 정말이었군.’
곳곳에 들어선 크고 작은 연구소들에 모두 불이 켜져 있었다.
그뿐 아니라 잘 가꿔진 숲 사이로 마법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산책을 하거나 벤치에 앉아 사색에 잠겨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이제 이 길을 달리는 마차는 단 두 대 뿐이었다.
스텐커는 추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킬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앞 마차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규모가 상당한 어느 마법 연구소로 들어갔다.
“지나칠까요?”
“당연하지!”
조수는 갈 길을 가는 것처럼 직진해 그 마법 연구소에서 멀어졌다.
“후유~”
스텐커는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 마법사가 들어간 마법 연구소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멀리 가서 마차를 세운 스텐커는 한참 후 마차에서 내려 걸어서 그 마법 연구소 앞을 지나갔다.
고풍스러운 문패가 커다란 대문에 걸려 있었다.
<툴롱 마법 연구소>
***
바덴은 루산이 편지로 지목한 작가들을 직접 접촉했다.
“변경의 역동적인 삶을 써 보시는 건 어떨까요? 현실의 벽에 좌절한 사람들이 새로운 기회를 얻어 성공하는 삶, 분명 많은 독자들이 작가님의 글을 기다리게 될 겁니다. 절망과 희망, 미움과 사랑, 역경과 성공, 거기다 거대 괴수와의 혈투! 작품이 성공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흥미로운 이야기에 작가들이 관심을 가졌다.
“변경 제8구역에서 직접 체험할 기회를 드릴게요. 개척민들의 삶을 생생하게 취재하고 괴수들과의 싸움을 직접 보는 거죠. 8군단에서 전폭적으로 협조해 드릴 겁니다.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8군단에서 답해드리고 자료도 충분히 제공해드린다고 합니다.”
“관심이 가기는 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제안을 하시죠?”
“변경에 대해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 주고, 변경 이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바덴은 솔직히 말했다. 거부하면 다른 작가를 찾으면 되는 것이다.
“흐음······.”
“작품의 내용에 일절 개입하지 않겠지만, 작품 전반에 희망과 성공 같은 밝은 메시지가 들어 있었으면 좋겠어요. 편당 소정의 창작 지원금을 드리겠습니다.”
창작 지원금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닌 경우에는 살림에 상당한 도움이 될 만한 액수였다.
자신의 창작을 모독하는 행위라며 박차고 나간 작가가 일부 있었지만, 나머지 작가들은 현재 연재하는 작품이 끝나면 새로운 작품으로 변경 이야기를 쓰겠다고 약속하고 계약을 했다.
<필센 데일리>에 연재하는 유명 작가 괴체.
<노바 신문>에 연재하는 중견 작가 파우스투.
<파르나 타임스>에 연재하는 중견 작가 에릭.
그리고 루산이 반드시 섭외하라고 강조한, <경마 신문>에서 ‘대물 괴담’을 연재하고 있는 블랑카.
바덴은 루산이 지목한 작가들이 과연 이 프로젝트에 합당한지 알아보기 위해 그들이 쓴 소설을 읽어 보다가 블랑카의 글을 보고 기겁해 신문을 던지고 뒤로 물러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묘하게 다시 주워 읽게 되었다.
<대중성이 강한 작가니까 꼭 섭외하세요.>
‘하아! 대중성이라······, 포기할 수 없지.’
“변경, 야생, 원시, 희망, 사랑! 정말 흥미롭습니다! 벌써부터 많은 장면들이 떠오르는군요! 제목을 뭐로 하지? 야생의 종마? 이건 아니야. 변경에서 하루 세 번? 시시해. 원시의 숲에서 들리는 신음 소리? 이건 너무 길고······. 진짜 괴수는 바로 나야 나! 이거 괜찮지 않아요? 하하하, 여하튼 지금 하고 있는 거 얼른 마무리 짓고 새 작품 들어갈게요.”
자신의 작품 세계에 깊이 몰입해 있는 괴물 작가 블랑카를 상대하느라 정신력을 모두 소진한 바덴은 힘이 빠져 축 늘어졌다.
갑자기 루산이 보고 싶었다.
대물 괴담의 주인공이 루산으로 변해 자신의 몸을 쓰다듬는 장면이 떠올랐다.
‘미쳤나 봐!’
화들짝 놀란 바덴은 자신의 뺨을 때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 강렬한 대중성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일하는 것뿐이었다.
별장 여름 프로그램 기획, 변경 사업 안내 책자 제작, 변경 투어 안내 책자 제작.
할 일이 많았다.
***
“오슬로, 준비 됐나요?”
“준비 됐소이다, 캡틴!”
70대 노인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단 4기 개척병 50여 명은 염소 알람병 활동을 계속하게 두었고 1기, 2기, 3기 개척병 150여 명은 경력과 특성에 따라 병과를 나누었다.
탐탐 기병
발리스타 포병
방패병
삼지창병
석궁병
물론 변경의 특성상 여러 가지 무기를 다 다룰 줄 아는 것이 좋지만, 당장은 변경 군단 정찰병 수준의 숙련도를 기대할 수 없으니 병과를 나눠 특화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럼 시작합시다.”
“알겠소이다, 캡틴! 방패병 전진!”
신호수가 병과별로 색깔을 지정한 신호기를 들고 호루라기를 불었다.
그러자 문짝만 한 방패를 든 개척병들이 대열을 유지하며 전진해 나갔다.
얇은 판금이 덧대져 무거웠지만, 그만큼 방패병들도 덩치가 좋았다.
“삼지창병, 앞으로!”
중갑을 착용하고 삼지창을 든 개척병들이 훈련한 대로 방패병 바로 뒤에 붙었다.
“발리스타 전진!”
수레에 고정된 발리스타 네 대가 그 뒤를 따랐다.
발리스타 수레는 말이 끌게 하는 게 나을지 사람이 끄는 게 나을지 시험 중이었다.
발리스타 포병 옆으로 석궁병이 나란히 전진했다.
그리고 방패병 양쪽으로 탐탐에 탄 개척병들이 정찰병들을 따라 넓게 벌린 채 천천히 걸어갔다.
탐탐에 탄 정찰병과 개척병들은 모두 중갑에 삼지창을 들고 있었다.
개척병들의 일자진 뒤로 멕 나이트 두 대가 천천히 따라갔다.
개척병들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개척병 역시 개척민이었다.
변경에 이주해 온 개척민이 괴수에 의해 죽거나 다치면 그 지역 개척민 전체가 두려움에 휩싸여 개척지 개발에 지장이 생기기 때문에 변경 군단은 괴수 퇴치에 전문 전투 요원을 동원하지 개척민을 군인으로 뽑아 쓰지 않는 것이다.
루산에게는 오늘 실전 테스트가 인명 피해 없이 마무리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대상 지역은 두 강줄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삼각지.
개척병들이 길게 늘어서서 두 강줄기 사이의 괴수들을 꼭짓점 합수머리 쪽으로 완전히 밀어내 소탕하려는 작전이었다.
“몰이를 시작하라!”
호루루루~
몰이 시작 신호가 떨어지자 개척병들이 피리를 불고 금속 악기를 두드렸다.
삘릴릴리~
꽹꽹꽹꽹!
쨍쨍쨍쨍!
탐탐에 탄 정찰병과 개척병들도 안장에 걸려 있는 악기를 요란하게 두드리며 탐탐을 이리저리 몰았다.
풀숲과 덤불숲에 숨어 있던 짐승과 괴수들이 화들짝 놀라 소리 반대 방향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개중에는 잠을 방해한 괘씸한 무리를 향해 돌진하는 괴수도 있었다.
“방패 붙여!”
척! 척!
방패병들이 긴장한 가운데에도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방패를 붙였다.
멧돼지를 닮은 소형 괴수 사이티가 방패벽에 부딪쳤다.
쾅!
직접 충격을 받은 방패병이 뒤로 출렁였지만, 훈련대로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에 넘어지지 않았다.
우르릉~
성난 사이티가 계속 밀어붙였다.
“삼지창!”
중갑을 입은 삼지창병 두 명이 방패와 방패 사이로 긴 삼지창을 내밀고 강하게 찔렀다.
푹!
푹!
우르릉~
사이티는 더욱 화가 나서 엄니로 방패를 뚫으려 했지만, 돌진력을 잃은 상태에서 판금을 덧댄 방패를 뚫을 수는 없었다.
그 사이 삼지창병들이 사이티의 목덜미와 옆구리를 계속해서 찔렀다.
마침내 사이티가 쓰러졌다.
“깃발 꽂아!”
지휘관의 지시에 개척병 하나가 사람 키보다 큰 깃발을 사이티 옆에 꽂혔다.
나중에 회수하기 쉽게 하려는 것이었다.
“전진!”
개척병들은 다시 시끄러운 소음을 내면서 대열을 유지하며 천천히 전진해 나갔다.
무거운 방패를 든 방패병들은 죽을 맛이었다.
중갑을 착용하고 긴 삼지창을 든 삼지창병도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울퉁불퉁한 땅으로 수레를 끌고 가는 발리스타 포병들도 실신하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쓰러지지 않았다.
그동안 오슬로에게 받은 훈련 - 하루 종일 뛰고 포복하기를 버텨 낸 그들에게 이 정도 고통은 참을 만했던 것이다.
그리고 루산의 약속도 있었다.
“오늘 잡은 괴수의 부산물 수입은 전부 개척병들에게 나눠줄 것이다!”
나중에 돌아올 달콤한 성과 보상금의 유혹.
개척병들은 무거운 무장을 하고 대열을 유지하면서 무려 1킬로미터를 전진했다.
몰이의 양쪽 끝을 맡은 탐탐 기병들은 정찰병들이 하는 대로 가장자리로 달아나려는 괴수들을 삼지창으로 찌르고 석궁으로 쏘며 자신의 역할을 익혀 나갔다.
마침내 두 강줄기가 합쳐지는 지점이 보였다.
강줄기 두 개와 방패진으로 이루어진 삼각형 안에 소형 괴수와 이곳에 살던 짐승들이 가득 차 있었다.
쿠와앙~
우르릉~
캬아아~
“긴장을 풀지 마라! 방패병, 모두 바짝 붙이고 조인다!”
“예!”
방패병들이 더 밀어붙이자 물에 빠지기 싫은 괴수들이 방패벽에 부딪쳐 왔다.
콰콰쾅!
방패벽이 거센 물결에 부딪친 배처럼 출렁거렸다. 그럼에도 방패병들은 넘어지지 않고 벽을 유지했다.
소탕은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괴수들의 생명을 끊어야 하는 것이다.
“발리스타!”
“네!”
수레 고정 못이 땅에 박히고 발리스타 포병이 수레 위로 올라가 방패벽 너머로 발리스타를 발사했다.
푸슈!
푸슈!
강력한 장력에 의해 날아간 대형 화살이 소형 괴수의 이마와 몸통을 꿰뚫었다.
꾸에에엑!
생애 최초 괴수를 죽인 짜릿함이 발리스타 포병의 전신을 훑어 내렸다.
“일격필살!”
“알겠습니다!”
발리스타의 대형 화살이 덩치 큰 괴수들을 잡아 나가는 동안, 중갑을 착용한 삼지창병들이 괴수들의 포효를 들으며 심호흡을 했다.
“방패 열어!”
방패가 열리는 찰나의 순간, 삼지창 병들이 정면에 보이는 괴수의 입과 목덜미를 마구 찍으며 들어갔다.
“탐탐!”
“오케이!”
탐탐에 탄 정찰병들이 여유롭게 대답하며 방패병 가장자리에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탐탐 기병들이 벌렁거리는 가슴을 안고 정찰병 뒤를 따랐다.
탐탐에 탄 병사들은 삼지창으로 괴수를 찍으며 탐탐으로 짓밟았다.
방패벽이 삼각형의 한 변을 단단하게 막고 있는 동안 전신을 가리는 중갑을 착용한 삼지창병, 정찰병, 탐탐 기병들이 괴수들의 숨통을 끊어 나갔다.
중갑을 착용한 루산도 삼지창을 들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개척병이 위험할 때 구원하기 위해서였다.
방패벽을 통해 전해지는 괴수의 강한 몸부림.
삼지창으로 전해지는 괴수의 생명력.
괴수의 포효와 비명 소리, 괴수의 피 냄새.
‘이것이 변경이다!’
개척병들은 온몸으로 느꼈다.
그리고 자신은 이제 괴수를 발견하면 염소를 던져 주고 호루라기를 불며 달아나던 나약한 인간이 아니라 괴수와 맞붙어 죽일 수 있는 강한 병사라는 것을 깨달았다.
“죽어라, 이 괴수 새끼야!”
개척병들은 괴수의 피를 뒤집어쓰며 두 손으로 잡은 삼지창을 강하게 내리찍었다.
강변 소탕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인간들의 무시무시한 압박을 견디지 못한 짐승과 괴수들은 강으로 뛰어들었고 물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괴수들은 이 좁은 삼각지 안에서 모조리 죽었다.
소형 괴수들의 피가 강으로 흘러들어 작은 강이 붉게 물들었다.
멕에서 내린 제프가 피 묻은 투구를 벗고 땀을 닦고 있는 루산에게 다가왔다.
“휘유~ 오랜만에 검투사가 되셨구먼.”
루산이 피식 웃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요?”
“뭐, 소탕 지역이 좀 좁기는 해도 이 정도면 훌륭하지. 처음 치고는 말이야.”
“점점 더 나아지겠죠. 참, 통신으로 지원 팀 좀 불러 줘요. 부산물 수거해 가라고.”
“이거 괴수 상태가 험상해서 수거해 봐야 얼마 안 나올 텐데? 지원 팀 애들도 싫어할 테고 말이야.”
소형 괴수는 별로 돈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약속은 지켜야죠. 보상이 있어야 더 열심히 할 테고.”
“캡틴 말이 맞아.”
제프가 통신을 하기 위해 자신의 멕 나이트로 돌아갔다.
“다 끝난 줄 알아? 정렬하지 못해? 오랜만에 포복으로 연병장까지 가 볼까?”
투구를 벗고 방패를 내려놓고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쉬고 있던 개척병들이 오슬로 영감의 불호령에 놀라 부리나케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본 루산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오슬로 영감의 나이를 생각해서 개척병 지휘관은 다른 사람을 뽑아야겠지만, 일단은 이대로가 좋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구독한 신문은 도착했을까?’
대중성의 중독은 무시무시했다.
<개척병을 동원한 소형 괴수 퇴치 작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