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FC 변경 군단의 기사-34화 (34/450)

34. 어머니는 변경이 싫다고 하셨어

***

“툴롱 마법 연구소는 역사가 매우 오래된 곳으로 이반 황제의 연구 지구 조성 명령에 따라 현재 위치로 이전했어요. 초기에 이주한 마법 연구소들 가운데 하나지요.”

탐정 스텐커가 포렌시스와 바덴에게 말했다.

“그럼 노바에서만 적어도 50년은 됐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미스 고슬라.”

사회 개혁 실시 이후 황권이 강화되자 그 힘을 바탕으로 이반 황제가 필센 제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유수의 마법 연구소들을 한곳으로 모은 것이다.

이반 황제가 노바 동쪽에 대단위 연구 지구와 공업 지구를 조성한 이후 제국의 산업은 급격히 발전했다.

“그런 오래된 마법 연구소가 사기에 가담했다니, 믿어지지가 않는군요.”

“아직 가담 여부는 모릅니다.”

“하지만, 심증이 굳어진 단계 아닌가요?”

“음···, 그렇기는 하죠. 하필 오베론 공작의 둘째 아들과 공업 은행의 현 은행장을 우연히 만났을 리 없으니까요. 그동안 지속적인 만남을 가져왔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아마 동일한 목적으로 오랫동안 만나 왔겠죠.”

무서운 일이었다.

공작 가문, 공업 은행, 유수의 마법 연구소가 모여 사기를 치다니, 누가 이들이 쳐 놓은 그물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여전히 심증에 불과하기 때문에 물증을 확보해야죠.”

“어떻게요?”

“발로 뛰어서······.”

“······?”

“특별 활동비가 필요합니다.”

“아! 알겠어요.”

루산이었다면 이 일을 계속하라고 했을 것이기 때문에 바덴은 기꺼이 특별 활동비를 지급하기로 했다.

스텐커의 이야기가 끝나자 포렌시스가 종이를 한 장 탁자 위로 내밀며 말했다.

“이 사람이 좀 걸려요.”

바덴과 스텐커가 몸을 앞으로 숙였다.

“루돌프 기센. 우유 공장, 치즈 공장 사장. 대대로 보름스 가문을 섬겨왔으며 당대에 유제품 공장 사장에 임명될 정도로 신임이 두터웠다. 이 사람이 왜요?”

“고 보름스 자작이 남긴 기록에 이 사람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와요. 현장 답사, 사업 설명회 같은 곳을 늘 같이 다녔고 투자, 보증 계약에도 항상 이름을 올렸죠. 보름스 가문의 가업 구조도를 볼 때 직접 조언하거나 보름스 자작의 사업에 개입할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고 서열이 높은 것도 아닌데 이름이 여러 곳에 올라 있다는 게 국외자의 눈에는 이상하다는 거지.”

바덴은 특별히 가까웠을 수도 있지 않나 싶었지만, 남아 있는 서류를 면밀히 살펴본 포렌시스가 그렇게 느꼈다면 그런 것이다.

“거주지도 바뀌었다면서요?”

“그렇더군요.”

스텐커가 대답했다.

전에 루산이 휴가 나와서 조사한 내용이 맞는지 일단 확인은 해 봤으나 적은 인원으로 그 일에만 매달릴 수 없어 주소가 바뀐 사람들의 행방을 모두 알아내지는 못했다.

“시간이 되시는 대로 이 사람을 좀 찾아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인력이 부족해도 어떻게든 이 인원으로 해 나가야 했다.

비밀 유지를 위해서는 이것이 최선이었다.

무언가 냄새가 났다.

아주 위험한 냄새가.

***

붐붐-

“이거, 이거, 경치가 끝내주는군!”

율리안이 탄성을 질렀다.

“붐붐 수레를 개조해서 타는 게 이렇게 신이 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루산이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붐붐이 끄는 대형 8륜 수레를 집처럼 개조해서 지붕 위에 타고 있었다.

어지간한 2층 집 지붕 높이였다.

사방을 둘러봐도 막힌 곳 없이 초여름의 신록으로 물든 변경을 볼 수 있었다.

이 수레는 루산이 본부 제작소에 부탁해 특별히 만든 것이다.

“비싼 돈을 내고 여기까지 왔는데, 처음부터 실망하면 곤란하니까요. 이동할 때에도 특별한 대접을 받는 느낌을 주려고 신경을 써 봤습니다.”

루산의 설명에 율리안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누가 거대한 붐붐이 끄는 집채만 한 수레 위에서 경치를 구경하며 가 보겠어요? 이건 여기 주민들한테도 가끔 구경 시켜 주고 싶을 정도에요. 여기 오래 살았어도 이런 구경은 못 해 봤을 테니까요. 아주 새로울 겁니다.”

붐붐-

세로스가 거대한 관악기 소리를 냈다.

이 일을 앞으로 계속해야 하느냐고 항의하는 것 같았다.

루산은 주민들을 태워 주고 싶다는 율리안의 말이 무척 신선하게 느껴졌다.

모르긴 몰라도 여기 타고 있는 통치자 호위 기사, 본부 부서장들, 실무자들 그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붐붐 수레를 투입하면 투어 비용을 얼마나 잡아야 할지, 몇 명을 태워야 수지가 맞을지, 운반용 붐붐을 새로 구입해야 하는 건지 고민하겠지.’

붐붐은 속도가 빠른 편이 아니었다.

8구역 개척촌들 가운데 경치가 괜찮은 곳들을 들르면서 간다 해도 지루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이동 중에 가이드의 설명을 넣었다.

“저 왼쪽에 보이는 개척촌은 원시의 숲을 옆에 끼고 있습니다. 괴수는 여러 해 전에 이미 퇴치했고 지금도 정기적으로 순찰을 돌기 때문에 안전이 확보된 상태입니다. 목재 공장이나 가구 공장이 들어오기에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른쪽에 보이는 언덕 지대에는 구리가 매장돼 있습니다. 8구역 본부가 지금은 개척민 정착에 집중하느라 직접 개발에 뛰어들지 않고 있지만, 여력이 되는 대로 개발할 생각도 가지고 있죠. 하지만, 만약 직접 개발하기를 원하는 사업가가 나타난다면 적정한 금액에 개발권을 넘겨줄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현재 8구역은 농업 집중도가 높아서 벌써 잉여 농산물을 외부에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달 호수 지역 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농산물 생산량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에 앞으로 식품 공장을 세우면 저렴한 가격에 원료를 공급하여 큰 수익을 낼 수 있을 겁니다.”

그때 회계부장이 사업에 관심이 있는 관광객인 척 질문을 던졌다. 실전 점검 차원이었다.

“이 안에 공장을 지으면 운송은 어떻게 하는 것이오?”

가이드가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반달 호수 지역까지 포장도로, 철도 건설 계획이 이미 수립되어 있습니다.”

“언제 만들어진다는 것이오?”

“그건 관심 있는 분들께 따로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흐음.”

“그리고 사업을 크게 하시는 분들이라 큰 시장을 놓고 생각을 하시겠지만, 이곳 8구역의 인구는 점점 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공장은 개척에 필요한 기초 품목들을 생산하는 정도밖에 없죠. 굳이 바깥 시장을 생각하지 마시고 일단 이곳 주민들을 대상으로 먼저 사업을 시작해 보셔도 좋을 겁니다. 개척촌이라고 소비력이 없을 거라고 오해들을 많이 하시는데요, 변경 정부가 공짜로 부려 먹지 않기 때문에 현금이 아주 잘 도는 곳이거든요. 각종 식품이나 소비재 공장 같은 것들을 작게 시작하시다가 점점 규모를 키우신다면 몇 년 후에 분명히 큰 부자가 되실 겁니다.”

부자가 될 거라는 말에 율리안을 비롯한 본부 간부들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율리안이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여기 주민들을 대상으로 어떤 사업이 적당할지도 알려 줍니까?”

“그럼요! 다 준비돼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세제 혜택, 각종 지원책까지 머리에 쏙쏙 박히도록 설명해드릴 테니, 걱정 말고 즐기세요.”

가이드는 높은 사람들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막힘없이 설명했다.

‘잘했어요!’

루산이 가이드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자 가이드도 이마에 맺혀 있는 땀을 쓱 닦으며 루산에게 미소를 지었다.

‘기사님 덕분이죠.’

가이드는 바로 렌커였던 것이다.

그때 율리안이 루산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대상이 확실하군요. 사업가들을 위한 관광 투어.”

“그렇습니다. 가격이 비싸서 아무나 올 수 없거든요. 애초에 그렇게 설정한 변경 투어입니다.”

“나중에 범위가 더 넓어지나요?”

“그게 쉽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가격을 저렴하게 해서 많은 사람을 끌어모으면 안전을 신경 쓰기가 어렵고, 그렇다고 변경 투어라는 타이틀을 걸어 넣고 안전한 곳만 골라 다니면 밍밍하다고 욕을 먹을 테니까요. 안전을 확실히 보장하면서 변경 특유의 모험을 즐기려면 돈을 많이 내는 소수를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잖아도 변경 군단의 전투 요원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관광 안전 요원으로 빼면 개발과 개척지 안전에 구멍이 생긴다.

율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면을 고려했군요. 철저함, 마음에 들어요.”

율리안의 칭찬에 루산은 목례로 응답했다.

‘이제 시작입니다.’

앞으로 율리안이 보일 반응을 기대하며 루산은 고개를 숙인 채 미소를 지었다.

***

변경 투어와 자작나무숲 장원 별장 사업은 장소, 규모, 활동 면에서 차이가 많았지만, 큰 틀에서 휴양과 즐거움이라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에 이 분야에 1년 이상 치열하게 고민하고 부딪쳐 온 바덴의 조언은 루산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음식, 볼거리, 체험 활동, 휴식.

이와 관련된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었을 뿐 아니라 유념해야 할 점도 짚어 주었다.

<평소 할 수 없는 것을 제공해야 해요. 비쌀 필요는 없지만, 특별해야 해요. 그리고 귀족들은 세심한 부분을 신경 써 줘야 합니다. 디테일이 달라야 명품이에요.>

루산은 변경이 아닌 곳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특별한 것들을 준비했다.

아이디어는 바덴이 보내온 것들을 많이 따 왔지만, 규모에서는 비교할 수 없었다.

붐붐 수레는 반달 호수 지역 입구, 루산이 웨이브를 막아낸 숲에서 멈추었다.

원시의 거대한 나무들이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숲.

그곳에 높은 나무 위로 줄을 매달아 지나가는 케이블카를 만들어 두었다.

거대한 나무 바깥에 계단을 만들어 올라가서 커다란 바구니 안으로 들어가면 바구니 위에 달린 도르래가 줄을 타고 미끄러지는 원래였다.

“캡틴! 부장님! 이거 정말 안전한 거 맞아요?”

나무 위 출발점에서 율리안이 벌벌 떨며 물었다.

다른 부서장들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안전 시험 다 거친 겁니다. 먼저 타겠습니다.”

율리안이 입술을 깨물고 루산의 손을 잡고 바구니 안으로 들어왔다.

부서장들이 죽을상을 하고 다리를 후들거리며 겨우 들어왔다.

안전 요원이 줄을 당기자 커다란 바구니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 어!”

바구니 안이 난리가 났다.

지상 20미터 높이에서 원시의 숲을 통과하는 기이한 체험에 사람들은 간이 콩알만 해졌다.

그러나 무척 신비로운 체험이었다.

그들은 몇 번이나 바구니를 갈아타며 숲 동쪽에서 서쪽까지 이동해 레인보우 시티의 외곽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렌커가 탐탐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율리안과 본부 체험단은 탐탐에 올라타 정찰병과 멕 나이트 한 대의 호위를 받으며 반달 호수 지역을 이동했다.

간간이 멀리서 괴수의 포효가 들리고 깨끗한 호수와 병풍처럼 펼쳐진 산들이 보이는 가운데 그들은 키보다 높게 자란 풀숲을 탐탐을 타고 지나갔다.

풀들이 쏴아아 서로의 잎들을 비비는 소리에 마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정찰병이 된 것 같은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들은 남쪽으로 이동해 장엄한 폭포를 구경하고, 어마어마하게 깊고 넓은 골짜기를 경사 로프를 타고 건너고, 멕 워커의 등에 메는 가방 형태로 특수 제작한 바구니를 타고 멕 나이트 수색대를 따라가고, 레인보우 시티 외곽에 만들어 놓은 임시 경기장에서 탐탐 경주를 관람하고, 중갑을 착용한 채 개척병들과 함께 소형 괴수들을 몰이해 발리스타로 꿰뚫었다.

2전대가 사냥한 거대 괴수 해체 작업을 구경하기도 했다.

자신이 변경 군단의 전투 요원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3박 4일 동안 정신없이 몰아치는 일정 사이사이에 8구역에서 가능한 사업들에 대한 설명이 진행되었고, 개척민의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개척민 거주지를 돌아보고 개척지 건설 과정을 듣기도 했다.

투어 마지막 날 밤.

천막을 치고 모닥불을 켜고, 야생의 기분을 만끽하면서도 요리사들이 맛있게 조리한 음식을 즐긴 뒤, 밤하늘에 가득 박힌 별들을 쳐다보고 있던 율리안이 나직이 말했다.

“나는 변경이 싫었어요. 다들 놀렸거든.”

옆에는 루산뿐이었다.

“패배자들이나 가는 곳이라고. 무시무시한 괴수들과 위험한 벌레들이 가득해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아버지가 악착같이 애를 쓰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농부처럼 용병처럼 땀을 뻘뻘 흘리면서 천하고 냄새나게 말이야.”

황족의 자기 고백.

루산에게는 부담스러운 시간이었지만, 궁금하기도 했다.

“어머니도 변경이 싫다고 하셨지. 그래서 나 역시 간간이 방학 때나 와 봤을 뿐 어머니 핑계를 대며 대학 때까지 노바에서 살았어요.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에게 이 땅이 오게 된 거예요. 단장님이 그러시더라고. 무늬만 황족이면 뭐 하느냐? 자기 땅 하나 없는데. 아버지가 피땀 흘려 일구신 곳이다! 당장 와라!”

“아!”

“변경을 누구나 오고 싶어 하는 하는 곳, 여기서 일하는 것이 자존심 상하지 않게 만들겠다는 캡틴의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그런 말 처음 들어 봤거든. 단장님 빼고.”

“······!”

“잘 부탁해요, 캡틴 루산, 보름스 부장님.”

율리안이 손을 내밀었다.

루산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황제의 5촌 조카의 손을 잡게 되어서 긴장한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 자신의 계획을 이렇게나 공감해주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 너무나 기뻤기 때문이다.

루산이 마음을 진정시키고 율리안의 손을 굳게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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