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FC 변경 군단의 기사-37화 (37/450)

37. 내 입으로 들어가던 건데

***

스텐커가 지난 몇 달 동안 알아낸 것이라고는 툴롱 마법 연구소, 그것 하나뿐이었다.

그곳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뒤를 밟아 보려 했지만, 특별한 성과가 없었다.

이유는 별다른 것이 아니었다.

마법 연구소에서 나온 사람이라 하여 모두가 사기 범죄와 연루돼 있지는 않았다.

식료품을 배달하는 사람, 오물을 버리는 사람, 마법 연구소가 운영하는 공장으로 가는 사람, 도서관에 가거나 인근 식당에 가는 사람, 퇴근하는 사람··· 누구를 추적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별 영양가 없는 사람을 추적하다 돌아온 일이 허다했다.

너무 가까이 붙어 오랫동안 추적하다 보면 들킬 수 있기 때문에 적당히 거리를 두다 보니 그 사이로 다른 마차가 끼어들고 교통이 혼잡하여 대상을 놓치는 일도 많았다.

출입하는 사람들이 대강 눈에 익고 누가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인지 점점 파악하게 되면서 추적 대상이 좁혀졌다.

그 뒤로도 들키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다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마침내 마법사로 보이는 두 사람의 뒤를 잡는 데 성공했다.

마법사들은 마차를 타고 여객선 터미널로 갔다.

“갔다 올게. 나 없는 동안 그거 알아보고 있어.”

“알았어요. 조심하세요!”

스텐커는 조수의 말에 대답할 여유도 없이 얼른 지팡이를 들고 마차에서 내려 두 사람을 따라 여객선 터미널로 들어갔다.

그런 뒤 그들 뒤에 바싹 붙어 두 사람이 하는 대로 똑같이 했다.

“브레머 항, 편도, 한 사람이오.”

스텐커는 표를 사고 여객선에 올랐다.

어설프게 마법사들 쪽으로 가까이 가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브레머 항에서 따라 내리면 되기 때문이다.

여객선은 노바를 지나 동쪽 바다로 가는 엘버 강 위를 부드럽게 흘러갔다.

연구 지구와 동부 공업 지구가 필센 제국의 심장이라면 엘버 강은 대동맥이었다.

노바에서 생산되는 공산품을 실어 브레머 항까지 나르거나 브레머 항에서 원자재를 싣고 노바로 가는 대형 화물선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브레머 항에서는 노바와 다른 도시들에서 모인 화물을 더 큰 화물선에 실어 다른 나라로 수출하고 원자재를 들여왔다.

의자에 앉아 푹 자던 스텐커는 추락하는 꿈을 꾸다 몸을 부르르 떨며 잠에서 깼다.

깨어날 때가 되자 본능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화들짝 놀라는 옆 사람에게 사과의 표시로 모자 테를 붙잡아 살짝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잽싸게 여객실을 훑었다.

마법사들이 보이지 않았다.

깜짝 놀라 밖으로 나가니 선미 갑판에서 바람을 쐬는 사람들 가운데 난간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마법사들이 보였다.

안심한 스텐커는 자연스럽게 기지개를 켜며 갈매기에게 먹을 것을 주는 연인들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강과 바다가 만나는 엘버 강 하구의 경치를 구경하는 척하면서 슬금슬금 마법사들 쪽으로 다가갔다.

뿌우뿌우-

여객선이 도착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를 우렁차게 울리며 선착장으로 들어갔다.

먼저 내리려는 사람들이 배가 멈추기도 전에 우르르 몰려나왔다.

스텐커는 인파에 떠밀리는 척하며 얼른 마법사들 뒤에 바짝 붙어 배에서 내린 뒤 여객선 터미널 밖으로 나와 그들이 타는 마차의 바로 다음 마차를 타고 능숙하게 가짜 경찰 패를 마부에게 보였다.

마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경찰 나리십니까요?”

스텐커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 서둘러 말했다.

“앞 마차, 놓치지 말고 추격해 주게. 사례는 할 테니까.”

“알겠습니다요!”

“적당히 거리 유지하고, 놓치면 안 되네!”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이랴!”

마부는 혼잡한 여객선 터미널을 지나 마법사들이 타고 가는 마차를 따라갔다.

한참 후 마법사들은 수출항 근처 공업 지대 옆에 있는 허름한 건물 앞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거리를 두고 따라온 스텐커의 마차가 그 앞을 천천히 지나갔다.

<루앙 마법 연구소>

‘잡았다, 요놈들!’

스텐커는 짜릿함을 느끼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마침내 놈들이 벌이고 다니는 사기 행각의 꼬리를 잡은 것 같았다.

***

“최소 두 달이라면서요?”

루산이 삐딱하게 서서 정비부장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정비부장은 느물느물 넘어가려 했다.

“최소 두 달이 왜요? 최소 두 달은 넘게 걸린다고 했는데 내 말이 틀렸어요?”

“아니, 말이라는 게··· 다섯 달이 걸릴 거면 최소 두 달이라고 표현하면 곤란하잖아요! 최소 두 달이라고 하면 넉넉잡고 세 달 정도 걸리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지 누가 다섯 달까지 걸린다고 생각하겠어요? 다섯 달 걸릴 거면 처음부터 최소 네 달, 이런 식으로 말했어야죠!”

“최소 두 달, 두 달은 넘어간다는 뜻이니 틀리지 않은 것 같은데, 흐음······. 그러니까 최소 두 달이라는 말을 나는 수학적 범위 개념으로 생각한 것이고 캡틴은 일반 언중의 통념으로 이해한 것인가?”

“아니, 말장난 하지 마시고······. 이건 심각한 겁니다. 다 양보해서 내가 세 달까지는 예상했으니 그렇다 치고, 두 달은 그냥 손 놓고 논 셈이잖아요. 내 사냥 실적 대충 알고 있지 않아요? 탑 5 안에 드는 거. 작년에는 탑이었어요! 두 달 사냥 못한 건 엄청난 금전적 손해란 말이에요! 세상에! 내가 8구역에 온 뒤로 다섯 달 동안 놀고 있었다니! 이걸 어떻게 배상해 줄 겁니까? 괜히 조립한다고 해 가지고. 에잇!”

루산이 계속해서 정비소 안을 뒤집어 놓자 바르통은 인상을 찡그렸다.

‘얘가 또 왜 이래? 아니, 몸통 부품이 늦게 나온 게 내 잘못이야? 게다가 아트라스 엔진도 공짜로 분해 점검을 마치고 새것처럼 깨끗해져 왔는데 말이야. 중고 부품 가져와서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는 소리 안 들으려고 한 번 점검할 것도 두세 번씩 점검했는데, 이거 확 들이받아 버려?’

그러나 바르통은 변경 생활을 더 오래 하고 싶었다.

“캡틴, 왜 이래요? 다섯 달 동안 사냥 못 한 심정이야 오죽하겠어? 하지만, 우리도 놀고 있었던 게 아니잖아요. 우리 애들 꼴 좀 봐. 희멀겋게 떴잖아요. 우르사 조립하고 다듬는다고 밖에 나가 빛도 못 쫴서 그런 거야. 지금 우르사 몸체에서 광채가 번쩍번쩍하는 거 있잖아. 저거 몸체 부품이 원래 저렇게 나온 게 아니야. 나랑 우리 애들이 사포로 윤이 나게 갈았다고. 접합부도 깔끔하게 다듬어서 몸체 안으로 물 한 방울도 안 들어갈걸?”

“흥!”

“애들 고생한 거 생각해서 언성 낮추고 나랑 밖에 나가서 음료수 한 잔 하면서 얘기합시다. 야! 내 방 가서 시원한 과즙 음료 가져와. 유리병으로 된 거 있지? 내가 평소 안 먹고 아끼는 거. 얼른!”

바르통이 루산의 등을 떠밀며 정비 요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눈치 빠른 정비 요원 하나가 얼른 부장 방으로 가서 냉각기로 식혀 놓은 유리병을 들고 왔다.

“아니, 밀지 마요!”

루산은 괜히 퉁명스럽게 저항하다 못 이기는 척 밀려서 정비소 밖으로 나와 시원한 나무 밑 벤치에 앉았다.

그러고는 바르통이 세 번 흔든 뒤에 따 준 과즙 음료를 꿀꺽꿀꺽 마셨다.

‘캬하! 이거 좋은데? 역시 돈이야.’

루산은 표정 관리를 하며 음료수 병을 내려놓았다.

“내가 괜히 우리 부장님한테 소리를 쳤겠어요?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다섯 달을 공쳤다니까. 이런 적 처음이야.”

“그치, 그치.”

“오죽하면 멕 나이트 파일럿이 정찰병들이나 타는 탐탐 타고 돌아다녔을까?”

‘그건 네가 본부 관광 사업 하느라 그런 거잖아? 어디서 또 밑밥을 깔아?’

하지만 그건 속마음이었다.

“우리 캡틴 마음 다 알지.”

루산은 벤치에 내려놓은 빈 유리병을 들어 괜히 입안에 털어 보았다. 음료 한 방울이 병 안쪽 벽을 타고 굴러오다 말았다.

그 모습을 본 바르통이 정비소 쪽에 대고 소리쳤다.

“야! 음료수 하나 더 가져와라!”

“됐어요. 이거 비싼 거 같은데.”

“괜찮아, 괜찮아. 캡틴한테 주는 거, 하나도 안 아까워.”

루산은 기분이 좀 풀렸다는 듯 표정을 풀고 말했다.

“화내서 미안해요.”

“아니, 누구라도 그럴 수 있지.”

“이미 손해 본 건 손해 본 거지, 뭐. 이제 와서 정비부에 받아 내겠어, 어쩌겠어? 갈게요.”

루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르통의 눈 밑이 파르르 떨렸다.

‘꿈자리 뒤숭숭하게 하지 말고 할 말 있으면 얼른 해라. 답답하니까.’

“뭘 그냥 가. 나도 할 수 있는 일은 해 줘야지. 돈으로 물어내라는 것만 아니면······.”

그 말에 루산이 냉큼 앉았다.

“중고 부품 모아서 멕 스켈레톤을 만들어 보는 건 어때요?”

“멕 스켈레톤?”

무슨 뜻인지는 알았다.

뼈대와 조종실만 만들어 움직이는 멕을 말하는 것이다.

“응. 굳이 멕 나이트 부품으로 할 필요 없이 멕 워커 부품으로 하는 거지. 그럼 훨씬 싸게 먹힐 거 아니에요?”

“그렇지. 근데 그걸 왜 만들어? 뭘 하려고?”

몸체를 씌우지 않으면 변경에서 오래 사용하기 어려웠다.

오물이 묻으면 금방 부식되고 중대형 괴수의 공격에 순식간에 부서지기 때문이다.

“마나 진동 기능 없는 멕 대검 들고 투덕투덕 싸우면 재미있지 않겠어요? 관광객들 태우려고.”

변경 투어 비용에 포함되지 않는 옵션 상품.

멕 나이트 탑승 대결!

실제 멕 나이트에 탑승해 본 파일럿이 보기에는 우습겠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일이었다.

멕 나이트는 누구나 탈 수 있다. 말을 누구나 탈 수 있는 것처럼.

그러나 누구나 잘 타지는 못한다. 말을 누구나 잘 타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고가의 멕, 그것도 무시무시한 군용 멕을, 조종도 잘 못하는 일반인에게 타게 하는 정신 나간 군대는 없었다.

그러나 루산은 바로 그 일을 하려는 것이다.

바깥세상의 법이 통하니 않는 변경이니까.

이건 돈 냄새가 진하게 났다.

중고 부품 뼈대만 조립한다면 돈도 얼마 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얼마나 드는지 일반인들이 알기는 어려웠다.

“부장님과 정비 요원들도 멕 조립 실력을 늘리는 일 아니에요? 하면 할수록 좋은 거잖아요.”

“그야 그렇죠.”

바르통이 미간을 찌푸리며 머릿속으로 주판알을 튕겼다.

‘새로운 수익 사업이라···, 안 할 이유가 없지!’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한테 얼마나 떨어지는 거예요? 조립 비용 말이야.”

그러자 루산이 다시 인상을 찌푸리며 언성을 높였다.

“나 다섯 달 공 쳤잖아요! 그런데도 그냥 넘어가기로 했잖아. 처음 두 대는 부품 값만 받아요. 그 다음부터는 계산해드릴게.”

‘우이 씨! 이러려고 그렇게 밑밥을 깔았냐?’

바르통은 순간 열이 확 받았으나 이번에도 역시 가라앉혔다.

루산에게 우르사를 조립해 준 뒤로 조립 멕에 관심을 보이는 파일럿들이 여럿 있었다.

멕 스켈레톤을 만들며 기술을 가다듬고 조립 역량을 키운다면 루산 외에도 조립 멕을 구입하겠다는 파일럿들이 생길 것 같았다.

‘그놈들한테 확 땅기면 되지!’

바르통은 그렇게 마음먹었다.

“하지 뭐! 우리 캡틴 부탁인데!”

바르통이 쓰린 속을 부여잡고 화통하게 소리칠 때 멀찍이 떨어져 눈치를 보던 정비 요원이 시원한 음료수를 가지고 와 루산에게 공손히 바쳐 그의 속을 더 쓰리게 만들었다.

루산은 병을 딸깍 열고 꿀꺽꿀꺽 마셨다.

“캬하! 시원해서 좋아, 우리 부장님!”

바르통은 루산이 갈수록 능구렁이가 된다고 속으로 욕했다.

***

루산은 우르사 조립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델타 기지로 온 김에 머릿속에 담아 두고 있던 계획 하나를 실현해서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 상태로 오랜만에 우르사를 타고 레인보우 시티로 돌아가려는데, 델타 기지 대장 호른 영감이 루산을 불렀다.

“부르셨어요?”

“오, 캡틴! 어서 와요.”

호른 영감이 언제나 그렇듯이 웃는 얼굴로 루산을 맞이했다.

그러나 호른의 말을 들은 루산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캡틴이 워낙 잘해 줘서 이제 델타 기지를 레인보우 시티로 옮겨도 될 것 같아요.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

전투 요원과 개척병, 개척 요원과 이주민들이 호흡을 딱딱 맞춰 하루에도 개척지가 엄청나게 넓어지고 새로운 주택 수십 채를 번쩍번쩍 지어 나갔다.

개척에 필요한 자재 공장들이 멈추는 일 없이 잘 돌아갔다. 남는 자재는 다른 개척 기지에 팔기도 했다.

자신의 몫으로 챙겨도 되는 개척 장려금으로 공장 부품을 사고 수레와 말을 잔뜩 들여왔다.

‘이렇게 만들어 놨는데, 홀라당 뺏어 간다고?’

루산의 표정이 벽돌처럼 굳고 말았다.

갑자기 밀려오는 상실감과 억울함을 마음속으로 소화시켜 태연한 척하기에는 아직 경륜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상보다 빠르기는 해도 언젠가는 이렇게 될 일이었다.

루산이 억지로 표정을 풀면서 물었다.

“언제······?”

“오늘부터로 합시다.”

호른 영감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남의 입으로 들어가던 감자 칩도 웃으면서 빼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루산은 배울 것이 참 많다고 생각하며 살짝 목례를 하고 나왔다.

후훙- 후훙-

분해 정비를 마친 아트라스 엔진 소리가 경쾌했다.

그러나 루산은 우르사를 타고 레인보우 시티로 가는 길이 별로 즐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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