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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45화 (45/450)

45. 이거 고장 난 것 같아요

***

루산은 기동 전단장의 호출을 받고 본부로 갔다.

그런데 안내된 곳은 기동 전단장실이 아니라 단장실이었다.

단장실 안에는 단장, 기동 전단장, 1전대장, 2전대장이 둥글게 앉아 있었다.

통치자, 회계부장, 개척부장 같은 비전투 중역들이 빠지고 순수 전투 요원 상관들만 있는 자리였다.

루산은 괜히 긴장이 되었다.

“앉지.”

“네.”

단장의 권유에 루산은 단장 맞은편에 앉았다.

“델타 기지 캡틴에 임명된 지 1년 9개월이 되었군.”

“네, 단장님.”

“이번에 3전대를 신설하기로 했다. 3전대장으로 임명한다.”

단장이 워낙 무덤덤하게 말해서 루산은 얼른 이해하지 못했다.

집중시키기 위해 잠시 말을 멈추거나 목소리를 높여 강조했더라면 금방 알아들었을 텐데 특별할 것 없는, 수많은 일들 가운데 하나라는 듯이 말한 것이다.

그래서 1초 정도 늦게 반응했다.

“네?”

기동 전단장이 미소를 지으며 설명해 주었다.

“이번에 가프 마법 연구소에서 우리에게 신형 멕 나이트 테스트 협조를 요청해 왔잖아요.”

“네.”

“이미 3대가 들어왔고 나중에 추가로 5대가 더 들어올 예정이라지요?”

“그렇습니다.”

“그것으로 새로운 전대를 꾸린다는 뜻이에요. 캡틴이 전대장으로 승진해 가는 것이지.”

“아······.”

루산은 무슨 말인지 이해했지만, 이 갑작스럽고 전격적인 조치가 쉽게 수긍이 가지 않았다.

“테스트가 끝나면 반환될 기체들이지 않습니까?”

“테스트가 한두 달 만에 끝날 리는 없잖아요?”

맞는 말이었다.

“그 사이에 우리도 전력을 충원할 테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요.”

“···네.”

8군단에 속한 이상,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임명장 수여식은 나머지 병력이 편성되는 대로 하기로 하고 기동 전단장이 임무와 포상 내역을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델타 기지 선임이었던 트리어가 더욱 자세한 설명을 위해 루산을 자신의 방으로 데려갔다.

“최연소 캡틴은 놓쳤지만, 최연소 커맨더가 되었구나! 소감이 어때?”

트리어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이런 식은 아니죠. 언질도 없이 갑자기 이게 뭐예요?”

루산이 툴툴대며 의자를 잡아 빼 삐딱하게 앉았다.

부당한 조치에 화가 난 소년 같았다.

“이제 겨우 델타 기지의 전투 요원들, 개척 요원들 데리고 일하는 법을 좀 알 것 같은데, 빼 버리는 건 너무하다고요.”

“하하, 투덜대지 마라. 네가 델타 기지 캡틴도 하면서 신형 멕 8대를 지휘하는 건 무리지. 본부로서는 아까운 일이잖아.”

“뭐, 그야······.”

최근에 루산이 호숫가에서 공격적인 사냥에 나서고는 있었지만, 원래 전진 기지 캡틴은 기지 방어와 주변 순찰이 우선이었다.

그런 수비적인 임무에 열다섯 대나 되는 멕을 배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본부는 공짜로 들어온 멕을 어떻게든 잘 이용하고 싶었다.

테스트 명목으로 최대한 굴리면서 괴수를 소탕하여 안전한 개척지를 빠르게 넓히고 부산물 수입을 많이 올리려는 것이다.

그러려면 전진 기지에 배속시키기보다는 기동 전대로 편성하는 것이 나았다.

루산도 그 의도를 모르지는 않았다.

“최대한 뽑아 먹겠다는 마음, 잘 알겠다고요.”

갑작스러운 통보에 기분이 좋지 않아 품위 있는 표현이 나오지 않았다.

“이용할 수 있는 건 악착같이 이용해야지. 그래야 그 조직이 살아남는 거야. 맨땅에서 이만큼 일구신 단장님이 이 좋은 기회를 그냥 두시겠어?”

“흐음······.”

“델타 기지 요원들을 다루는 데 이제 좀 익숙해지니까 다른 곳으로 옮겨 버리는 것 같아 서운한 건 알겠는데, 원래 그런 거야. 그 대신 달달한 보상이 있잖아.”

기동 전대장 수당 20골드. 캡틴 수당이 10골드였으니까 10골드가 더 많았다.

테스트 파일럿 수당 40골드. 가프 마법 연구소에서 지급하는 것이다.

이로써 사냥으로 얻는 성과 보상금을 제외하고 매달 240골드를 받게 된다.

제8구역뿐 아니라 변경 모든 지역을 통틀어서 최고 수준이었다.

그뿐 아니었다.

어쨌든 루산이 가프 마법 연구소의 신규 멕 나이트 여덟 대를 8군단이 무료로 활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8군단에 막대한 재산상 이익을 가져왔으므로 단장이 특별 포상을 내렸다.

3천 골드.

멕 나이트 8대 가격에 비하면 얼마 안 되는 것 같지만, 변경 신입 멕 나이트 파일럿의 기본급이 월 20, 30골드인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액수였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

“켐니츠는 데려가게 해 줘요.”

켐니츠가 레인보우 시티를 잘 맡아 준 덕분에 여러 날 안심하고 자리를 비우고 다른 일들을 진행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건 안 되지.”

“왜요?”

“그 녀석도 캡틴 한번 해 봐야지.”

루산이 인상을 찌푸렸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럼 아무것도 없이 신입들 데리고 시작하라는 거예요?”

“경량 멕 만들어지려면 멀었다면서? 당장 한 사람만 더 있으면 되잖아. 켐니츠만 빼고 아무나 데려가.”

레오파드 003은 기존 설계에 팔다리 몸체 부품을 제거하고 세르펜스 가죽을 입히기만 해서 만드는 데 시간이 얼마 안 걸렸지만, 경량 멕은 설계를 변경하는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시간이 더 걸린다고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암담했다.

‘우르사와 레오파드 001, 002, 003. 당장 네 대뿐이잖아?’

일곱 대를 지휘하다 네 대를 지휘하게 되니 크게 손해 보는 느낌이었다.

“어쩔 수 없죠. 바이크 데려갈게요.”

“바이크? 걔는 너무 딸리지 않아? 그래도 경험 많은 하겐, 제프, 에센 중 한 명이 낫지.”

“그냥 바이크로 할게요.”

루산은 이미 자기 고집이 강하게 형성돼 있고 높이 올라가려는 마음이 없는 중년의 파일럿들보다 실력은 떨어지더라도 말 잘 듣는 젊은 파일럿을 키우기로 했다.

“네가 쓸 사람이니까, 뭐··· 알았다.”

“당장 멕이 4대뿐이니까 정찰병들은 실력자들로 좀 밀어 줘요.”

“그게 내 맘대로 되냐? 어쨌든 그것도 부탁해 볼게.”

“멕 워커도 네 대는 붙여 줘요.”

“다 달라고 하지 그러냐?”

“다 주세요.”

트리어가 상의 주머니를 뒤집었다.

먼지만 떨어졌다.

루산은 피식 웃고 말았다.

“어련히 알아서 해 주실까. 가프 마법 연구소에서도 지원 빵빵하게 해 줄 테고. 그러니 너무 보채지 마.”

“···알았어요.”

트리어가 화제를 돌렸다.

“신화 공업사에서 이번 일로 일감이 좀 들어왔나 봐.”

“무슨 일감이오?”

“가프 마법 연구소에서 테스트 모델 종류를 워낙 다양하게 뽑아서 전에 선정된 업체에서 다 소화를 못 했나 봐. 코부스··· 뭐였지?”

“코부스 멕 바디요.”

“맞아! 코부스 멕 바디. 그 회사에서 단기간에 소화를 못 해서 신화 공업사로 몸체 제작 몇 건 의뢰했나 보더라고. 네가 한 거냐?”

신화 공업사에 일감을 주려고 가프 마법 연구소의 칼리슈에게 부탁했냐는 말이었다.

“아니오. 거기까지는 아니에요. 그래 봐야 시제기 몇 대, 사이즈 다양하게 뽑는 수준이겠네요.”

루산의 계획은 레오파드의 판매량을 높여서 신화 공업사까지 납품 업체로 만드는 것이었다.

단기적으로 시제기 몇 대 주문 받아 제작하는 자잘한 일까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도 그게 어디야? 두 회사의 몸체 부품 내구력을 비교할 수 있는 기회잖아.”

“······!”

루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트리어의 말을 듣고 몸체에 충격을 가하는 테스트를 늘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했더니 신화 공업사 것이 먼저 깨지면 어떡하지?’

신화 공업사 사장과 트리어, 그리고 신화 공업사에서 만든 우르사의 단단한 몸체를 믿고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

루산이 3전대장으로 승진하고 켐니츠가 델타 기지의 캡틴이 된다는 소식에 파일럿들이 몸을 떨었다.

“루산, 나도 데려가 줘!”

“켐니츠는··· 으으!”

이미 그 사건을 알고 있는 루산은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힘이 없어요.”

“왜 힘이 없어? 전대장이면 높은 거 아니야?”

“8군단에 나보다 높은 사람이 한가득하더라고요.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 다음에 또 봐요.”

그러고는 켐니츠에게 손을 내밀었다.

“바이크 자리는 금방 채워 준다고 하더라고요.”

켐니츠가 멋쩍게 루산의 손을 맞잡았다.

“얼떨떨하네.”

“그러게요.”

‘더 높이 갑시다, 캡틴.’

‘금방 따라갈게, 커맨더.’

루산이 빙긋 웃었다.

켐니츠도 웃었다.

***

바이크가 나란히 서 있는 우르사와 003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와! 정말 극단적이네요!”

“그렇긴 하네.”

아이언 워리어의 중량을 기준으로 레오파드 003은 3분의 1, 우르사는 2.5배.

003과 우르사는 중량에서 무려 7.5배나 차이가 났다.

그런데 엔진 파워를 포함하면 둘 사이의 격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아이언 워리어 엔진 출력을 기준으로 003은 1.3배, 우르사는 2.5배.

003의 순간 출력이 2.0까지 올라가는 것을 생각하면 전투시 엔진 출력은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엔진 출력이 높아도 관절이 버티지 못하거나 동작 가능 범위가 좁다면 충분히 파워를 낼 수 없지만, 그것은 앞으로 확인해 볼 문제였다.

어쨌든 이 레오파드 003도 어떤 의미로는 괴물이었다.

중량 대비 출력이 이 세상 멕 나이트 가운데 가장 높을 것이다.

“일단은 내가 003을 타는 게 좋겠어. 넌 우르사를 타도록 해. 필요하면 바꿀 거야.”

“예스, 커맨더!”

바이크가 신이 나서 소리쳤다.

루산이 다른 사람들을 제쳐 두고 신설되는 3전대에 자신을 데리고 간다는 것을 알고 눈물이 날 뻔했다.

끝까지 책임져 준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비록 자신의 멕은 아니지만, 군단 멕이 아닌 8군단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우르사를 타게 되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사냥 성과 보상금 분배 비율이야 전에는 8군단에 상납하던 것을 이제 루산에게 상납하는 것으로 바뀌어 달라진 게 없지만, 무슨 상관이랴!

시골 출신 젊은 파일럿은 자신이 금세 루산의 뒤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우르사 조종실에 올라 동화를 마친 뒤 첫발을 떼려는 순간, 무언가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어?”

마치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채운 것처럼 발이 묵직했다. 한 발, 한 발 걸음을 옮기는 것만으로 금세 근육이 뻐근해졌다.

발뿐 아니라 팔도 묵직했다.

잠깐 움직이는 사이에 벌써 땀이 흘렀다.

아무리 안 유명한 아카데미라지만 그래도 기사 아카데미를 나왔고 나름 열심히 단련을 해 왔는데 이럴 리가 없었다.

“커맨더, 이거 동화기가 고장 난 것 같은데요?”

그러자 003을 타고 나는 듯이 달려가던 루산이 마나 통신으로 대답했다.

[아! 그거 뻑뻑하지?]

“네!”

[원래 그래.]

“네?”

[그거 중고 부품 모아서 조립한 거잖아. 동화 시스템 텐션 조절이 안 된대. 그래도 싱크가 안 맞는 건 아니니까 싸우는 데는 지장 없을 거야.]

‘헐! 여태껏 이렇게 조종해 왔다고?’

멕을 조종하기 위해 몸을 움직일 때 장력이 이렇게나 강하면 금방 지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까지 루산이 먼저 지치는 경우는 본 적이 없었다.

‘우르사가 괴물이 아니라······!’

[수련한다고 생각하고 타. 실력이 쭉쭉 늘 거야.]

‘죽었다!’

엄격한 켐니츠 밑에서 벗어나 루산이 내민 줄을 잡고 변경 생활에 날개를 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잘못된 생각이었다.

앞으로 지옥이 펼쳐질 것 같았다.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움직이는 바이크와 달리 루산은 그동안 몸에 달고 있던 납덩이를 모두 떼어난 것처럼 홀가분하게 평원을 질주했다.

003은 타조처럼 달렸다.

그 뒤로 레오파드 001과 002가 따라오고 있었다.

파일럿은 그때 그대로였다.

가프 마법 연구소로서는 아무래도 외부인인 루산에게만 테스트를 맡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레오파드 테스트 파일럿들이 원하기도 했다.

지난번 임무는 그동안 변경에 대해 무시해 온 마음을 송두리째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오래전에 전선을 떠났지만, 오랜만에 가슴이 뜨겁게 타올랐다.

변경의 괴수에게든 변경의 파일럿에게든 지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천천히 갑시다, 커맨더!]

[하하, 너무 기분 내는 거 아니오? 우리 기체보다 훨씬 가볍잖소.]

[하하하! 모리츠 경, 파비안 경, 기체를 탓하는 것은 두 분의 경력에 먹칠을 하는 게 아닙니까?]

[허허, 그건 그렇지 않아요. 전문가일수록 좋은 도구를 찾는 법이거든!]

[그럼, 그럼!]

루산은 모리츠, 파비안과 농을 주고받으며 서쪽으로 이동했다.

전진 기지와 인근 개척촌을 지켜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난 김에 변경의 괴수를 원 없이 사냥하여 주머니를 가득 채워 볼 생각이었다.

‘테스트가 별건가? 이게 바로 테스트지.’

비록 멕 나이트 4대, 멕 워커 2대로 이루어진 단출한 전력이지만, 루산은 즐거웠다.

003을 타고 평원을 질주하니 델타 기지 전력을 앞으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느낀 불만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루산은 홀가분하게 이 자유를 즐겼다.

***

스텐커, 포렌시스 그리고 바덴이 사무실에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번에 해외 답사를 다녀오면 슈텐달 가문은 계약을 체결할 겁니다. 그러면 보름스 가문과 비슷한 운명을 겪게 되겠지요.”

스텐커의 말에 포렌시스와 바덴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가 개입해야 하는 겁니까, 아니면 모르는 척해야 하는 겁니까?”

“흐음······.”

섣불리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만약 개입하여 저들을 방해한다면 우리 존재가 노출되고 우리는 위험에 처하게 될 겁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저들이 극도로 조심할 테니 앞으로 추적이 어려워지겠죠. 아직까지 이렇다 할 증거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이 틀어지는 것입니다.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침묵 속에서 고민과 고심이 계속되었다.

한참 후에 바덴이 입을 열었다.

“우리끼리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군요. 기사님께 연락을 하겠어요.”

스텐커와 포렌시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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