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FC 변경 군단의 기사-48화 (48/450)

48. 그때 왜 칼빵을 대신 맞아서

***

클라크는 겨울의 노바를 처음 겪어 보았다.

출발하기 전에 루산이 미리 말해 주었지만, 경험해 보지 못한 일에 대처하기는 어려워서 클라크의 옷차림은 상당히 얇았다.

“옷 사 줄 테니 가요.”

“전 괜찮아요, 미스 고슬라. 여러 벌 껴입으면 돼요.”

“내가 안 괜찮아요.”

바덴은 사양하는 클라크를 끌고 백화점에 가서 이것저것 입혀 보다 세련된 모직 재킷과 모자가 달리고 펑퍼짐해 활동하기 편한 방한 코트를 구입했다.

가게 분위기부터 옷의 질감까지, 딱 봐도 고급스러워 클라크는 안절부절못했다.

“얼마죠?”

“네, 아가씨. 다 해서 8골드 9실버입니다.”

자신의 한 달 급료보다 훨씬 높은 옷 가격을 들은 클라크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바덴의 소매를 잡아끌며 나직이 속삭였다.

“다른 데로 가요.”

바덴이 미소를 짓고 역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래 봬도 기사님 덕에 부자가 되었답니다.”

“그래도······.”

“우리 집 봤죠? 나도 평소에 이런 곳에 못 와요. 정말 사 주고 싶어서 특별히 온 거니까 사양하지 말아요.”

바덴은 계산을 마치고 클라크에게 모자 달린 방한 외투를 입혔다.

겨울 방학을 맞아 여행을 떠나는 명문 기숙 학교 학생 같았다.

“멋져요!”

“고맙···습니다, 미스 고슬라.”

바덴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감사 인사를 하는 클라크를 데리고 남성복 가게로 들어갔다.

루산 역시 차림이 너무 얇아 보였던 것이다.

“기사님은 이런 고급스러운 옷을 입지 않으세요. 옷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입을 일이 없다는 게 더 맞을 거예요. 차라리 몸을 완전히 가릴 수 있는 여행자용 외투가 좋겠어요. 한번 나가면 오랫동안 집에 안 들어오고 야영하실 때가 많거든요.”

바덴은 클라크의 조언에 따라 야영할 때 도움이 되도록 온몸을 덮을 수 있는 로브 형태의 롱 코트 두 벌을 구입했다.

옷을 구입한 뒤 클라크와 함께 마차를 잡아타고 집으로 향했다.

“기사님이 집에 안 들어오실 때가 많아요?”

“네. 예전에는 웨이브 기간이나 특별 임무 때만 그랬는데, 얼마 전에 전대장이 되신 뒤로는 한번 괴수 사냥을 가면 며칠 동안 안 들어오세요.”

“전대장?”

“아! 캡틴에서 전대장으로 승진하셨어요. 멕 나이트를 두 배 정도 더 많이 지휘하는 자리에요. 아직은 아니지만요.”

루산이 종종 편지를 보내오지만, 사업과 관련된 이야기 말고 자신의 신상에 대해 시시콜콜 말하지 않아서 바덴은 처음 듣는 이야기가 많았다.

클라크의 이야기를 들으니, 변경의 계급이나 직위에 대해서 잘은 몰라도, 루산이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기사님이 안 들어오면 우리 집사님 혼자 집에 있는 거예요?”

“네.”

“안 무서워요?”

“처음에는 무서웠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그리고 기사님이 안 계시면 잠잘 때나 집에 가니까요.”

“그건 무슨 말이에요?”

“이건 기사님도 모르시는 건데······.”

클라크가 말하기를 주저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물어봐 주기를 바라는 눈빛이었다.

바덴이 싱긋 웃으며 은근히 물었다.

“뭔데 그래요? 비밀로 할게요.”

“사실은··· 밤에 신전에 나가 글을 가르치거든요. 아이들도 가르치고 글을 모르는 어른들도 가르치고. 헤헤!”

바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수기 공모전 이후에 사람들이 글을 배우고 싶어 해요. 그런데 학교가 없거든요. 그래서 야학이 생겼어요.”

클라크는 가방에서 <변경 8구역 제1회 수기 공모전 모음집>을 한 권 꺼내 바덴에게 줬다.

그것을 받으면서 바덴은 가슴이 뭉클했다.

어쩌면 이렇게 기특한 일을 하는지, 꼭 안아 주고 싶을 정도였다.

괴수 사냥을 나가면 며칠씩 집에 못 들어오는 루산. 그리고 루산이 없는 동안에 야학에 나가서 글을 가르치는 클라크.

바덴은 자신이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마차를 타고 가는 중에 수기 모음집을 살짝 펼쳐 보는 것만으로 벌써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수기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변경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루산과 기특한 클라크 때문이었다.

“나중에 필요한 물품들을 보내 줄게요.”

“정말요? 안 그러셔도 되는데······.”

“내가 하고 싶어서 그래요. 회삿돈이 아니라······.”

“그 뜻이 아닌데······.”

“알아요.”

어느새 마차는 바덴의 집 - 동네 빵집 - 에 도착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곧바로 나올 테니까.”

“알겠습니다, 아가씨.”

바덴은 어머니와 동생들에게 클라크를 부탁하고 다시 마차를 탔다. 자작나무숲 장원으로 가려는 것이다.

“미스 고슬라, 기사님은 괜찮으시겠죠?”

“걱정 말아요. 별일 없을 테니까.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하고 있는 게 기사님 걱정을 덜어드리는 거예요. 그럼 나중에 봐요.”

바덴은 클라크를 안심시키고 떠났다.

할 일이 많았다.

그렇지 않아도 바쁜 겨울 시즌인 데다 제2 별장 준비가 한창이었기 때문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너무 피곤해 며칠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클라크의 이야기를 들은 뒤 다시 의욕이 넘쳤다.

바덴은 변경 수기 모음집을 가슴에 꼭 품고 머릿속으로 제2 별장의 방향성에 대해 다시금 검토해 나갔다.

***

“선배, 이거 정말 해도 되는 거 맞아요? 나 모가지 날아가는 거 아니죠?”

루앙 마법 연구소 근처 후미진 골목에서 만난 사복 차림의 경찰이 스텐커를 보자마자 앓는 소리를 했다.

스텐커의 후배 그리마였다.

마법 연구소를 친다는 이야기에 이 정도 반응이면 정말 양호한 것이었다.

“문제될 거 없다니까 또 그런다. 잘 들어 봐. 우리 쪽에서 들어가서 제압할 거야. 다 제압하고 신호하면 그때 신고 받고 출동했다고 하고 잡아서 조사하면 돼. 달아나는 녀석들이 있으면 무슨 일인지 조사한다고 붙잡아 두면 되고. 그 사이에 귀국하는 호구 물주와 사기꾼을 부두에서 곧바로 붙잡아서 확인하면 되는 거라니까.”

“후유! 정말 선배 부탁만 아니면······.”

“이거 엄청난 사건이야. 이거 해결하잖아? 2계급 특진에 황제 폐하 특별 포상도 가능한 일이라고.”

“포상이고 뭐고, 그런 놈들이 있으면 잡기는 잡아야지. 어쨌든 인명 사고 내면 안 돼요. 그건 수습 못 해 줘요.”

“알았어. 여하튼 달아나지 않게 잘해야 돼.”

“걱정 말아요. 특경대 애들로 데려왔으니까. 근데 선배 쪽 사람들은 어디 있어요?”

스텐커가 뒤쪽을 고갯짓으로 가리켰다.

루산이 자동 마차에 기대 서 있었다.

“어디? 설마 저 친구 혼자? 장난해요?”

그리마가 인상을 쓰며 스텐커를 째려보았다.

“말했잖아. 여기 상주 인원이 몇 명 안 된다고.”

“그래도 그렇지. 누군데요?”

“알려고 하지 마. 사건 해결되면 저절로 알게 될 거야.”

“어휴! 진짜 마음에 안 들어. 선배만 아니면······.”

“나중에 높은 자리에 가서 은혜나 잊지 말라고.”

“은혜는 무슨······. 할 거면 얼른 합시다.”

“음!”

그리마가 떠나고 스텐커가 눈짓을 보내자 루산은 차에 실어 둔 가방을 열었다.

변경 군단 정찰병이 착용하는 경갑 세트와 헬멧이 들어 있었다.

움직이기 편한 가죽 갑옷 세트와 판금 투구였다.

경갑 세트와 투구를 착용한 루산은 양손에 금속 몽둥이를 들었다.

손에 착 감기는 게 때리는 맛이 상당할 것 같았다.

“기사님, 들으셨겠지만 죽이면 안 됩니다. 부디······.”

“걱정 말아요. 고작 잔챙이들 상대하면서 우리 편 곤란하게 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러나 그의 눈에는 이미 분노의 불꽃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경갑 세트를 착용한 루산은 스텐커가 운전하는 자동 마차를 타고 루앙 마법 연구소 앞에 내렸다.

“조심하시길!”

“음!”

자동 마차가 떠나고 루산은 닫혀 있는 루앙 마법 연구소 입구로 걸어가 나무로 된 낡은 문을 밀어 보았다.

잠겨 있었다.

“흥!”

노크를 할 생각은 없었다.

루산은 뒤로 물러나 몸통으로 돌진했다.

콰작!

문짝이 깨지고 문을 지키던 경비원이 파편에 맞아 비명을 질렀다.

“크악!”

루산이 왼쪽 팔꿈치로 그의 목을 돌려 치자 그가 붕 날아가 떨어지더니 축 늘어졌다.

루산은 쓰러진 경비원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죽어도 어쩔 수 없지만.

루산은 그렇게 생각했다.

***

스텐커와 그의 조수가 오랫동안 관찰한 결과에 따르면 이곳에 상주하는 사람은 20명 안팎이었다.

마법사로 보이는 사람 3, 4명.

나머지는 연구 보조원, 사무원, 경비원 등으로 추정했다.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고 했지만, 루산은 신경 쓰지 않았다.

때려잡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다.

빡!

“헉!”

달아나다 쇠몽둥이로 등짝을 강하게 얻어맞은 사람이 그대로 엎어져 일어나지 못했다.

전투 상황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7년 동안 괴수를 때려잡던 루산의 몽둥이질을 버틸 수 없었다.

맨몸이 아니라 멕 나이트를 탔다 해도 휘두르고 찌르고 내려치는 동작은 동화기에서 그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루산의 몸은 살육과 파괴에 매우 익숙했던 것이다.

빠각!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느낌이 전해졌다.

“으악!”

‘죽이지 않았으니 이 정도는 양해해 주겠지.’

루산은 상대가 비명을 질러 시끄럽게 하기 전에 복부를 강하게 찔러 기절시켰다.

죽지 않게 마지막 순간에 힘을 뺐으나 괴수에 비해 인간의 몸뚱이는 너무 약해 힘 조절을 제대로 했는지 의문이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소란이 일고, 침입자를 확인했을 때는 이미 3분의 2가 쓰러져 있었다.

“당하지만 말고 그거 쓰란 말이야!”

“아, 알겠습니다!”

‘그거?’

누군가가 헐레벌떡 달려가는 동안에 루산은 명령을 내린 마법사의 다리와 어깨를 강하게 후려쳤다.

빠가각!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고 충격과 고통을 이기지 못한 마법사가 기절해 쓰러졌다.

루산은 한 대 더 때려 주지 못해 아쉬워하다가 ‘그것’의 정체를 깨닫고 깜짝 놀랐다.

쿵! 쿵! 치익!

‘파워 아머!’

단단하고 무거운 갑옷에 멕 나이트처럼 마나 엔진을 장착하여 강력한 힘과 속도를 부여해 주는 파워 아머였다.

빠르게 루산에게 달려온 파워 아머가 대검을 강하게 휘둘렀다.

쉬익!

바람 가르는 소리가 소름끼치게 들렸다.

루산은 얼른 오른쪽으로 몸을 피한 뒤 녀석의 왼쪽 옆구리를 강타했다.

까앙-!

엄청난 반탄력으로 인해 루산의 손이 덜덜 떨렸다.

반면 녀석은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았다.

치익!

“훗!”

녀석은 몸을 돌리자마자 가소롭다는 듯 비웃음을 날리고 무작스러운 공격을 펼치기 시작했다.

촥!

서걱!

쾅!

책상이 부서지고, 기둥이 잘려 나가고, 벽이 무너졌다.

루산은 한참 동안 몸을 날리고 굴러 그 무식한 공격들을 피했다.

파워 아머에 의해 부서진 실내에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콜록콜록! 뭐 하는 거야? 빨리 해치워!”

아직까지 쓰러지지 않은 몇몇 사람들이 소리쳤다.

루산은 파워 아머의 공격을 피하면서 일부러 그들 쪽으로 몸을 날려 가까이 다가갔다.

파워 아머가 동료들의 안전 때문에 주춤하는 사이 루산의 쇠몽둥이가 그들의 머리와 가슴을 가차 없이 두드렸다.

퍽!

퍼퍽!

멀쩡하게 서 있던 사람들이 허수아비처럼 쓰러졌다.

“너, 이놈!”

분노한 파워 아머 착용자가 쿵쾅거리며 달려왔다.

루산은 먼지가 희뿌옇게 날리는 가운데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 모습을 냉정하게 지켜보며 숨을 골랐다.

“후우우 하아아-”

파워 아머가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빗맞아도 피떡이 될 것 같은 전용 대검을 치켜들었을 때, 루산은 몸을 오른쪽으로 움직일 것처럼 움찔했다.

그러자 파워 아머가 루산이 이동할 방향으로 허리를 틀며 대검을 사선으로 강하게 내리쳤다.

그러나 루산의 움직임은 속임수였다.

그는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척하다가 파워 아머 안쪽으로 파고들면서 녀석의 허리를 잡고 왼쪽으로 돌았다.

그리고 배낭처럼 짊어진 마나 엔진 팩을 잡고 파워 아머의 등에 올라탔다.

순간적으로 루산을 놓친 파워 아머가 잠시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루산은 파워 아머 장갑복과 엔진 팩 사이의 빈틈에 쇠몽둥이를 끼워 넣고 강하게 당겼다.

“으랏차!”

발로 파워 아머 목을 짚고 젖 먹던 힘까지 모두 쏟아부어 몸을 등 뒤로 완전히 젖혔다.

뒤늦게 루산의 속셈을 알아챈 착용자가 비웃으며 말했다.

“미친놈, 그게 그렇게 쉽게 뜯어질······!”

그러나 그는 말을 끝까지 뱉지 못했다.

트트트트트!

엔진 팩과 장갑 몸체를 연결하던 리벳과 볼트가 빠지며 사이가 쩍 벌어진 것이다.

그와 동시에 동력 공급이 끊겨 파워 아머는 균형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쿵!

등에서 뛰어 내린 루산은 움직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파워 아머 착용자에게 다가가 발로 안면 부위를 툭툭 차며 말했다.

“뜯어지네?”

“이놈! 너 누구야?”

루산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누군데?”

“······.”

“이제 알아가 보자.”

“네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잘못 건드린 거야.”

“흥!”

루산은 코웃음을 치며 넘어진 채 움직이지 못하는 파워 아머 착용자의 얼굴 부분을 계속 툭툭 찼다.

잠시 후 무장 특경대가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마와 스텐커도 금방 따라 들어왔다.

그들은 완전히 파괴되어 먼지가 자욱한 건물 내부와 곳곳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 그리고 처음 보는 신기한 갑옷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이게 대체······!”

이 광경을 단 한 사람이 만들어 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변경 정찰병 경갑을 착용하고 투구를 쓴 루산이 밖으로 나가려 하자 특경대원들이 무기를 들고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루산은 고개를 돌려 그리마를 쳐다보았다.

그리마는 한참 동안 루산을 노려보다 말했다.

“보내 줘.”

무장 특경대원들이 길을 트자 루산은 밖으로 나갔다.

“후유! 저 친구, 대체 누굽니까?”

“빚쟁이···랄까?”

“네?”

“됐고, 저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하기 전에 이놈들 먼저 알아보자고. 시간은 없고 할 일은 많아. 일단 상부에 보고하는 걸 최대한 늦추고 심문 시작해. 그리고 사복 경찰들을 부두로 보내.”

“젠장! 이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거 맞죠?”

“그야 자네 하기 나름이지.”

그리마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그러나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되돌리기에는 늦었다는 것을.

“왜 그때 나 대신 칼빵을 맞아 가지고!”

그리마가 쓰러져 있는 쇳덩이를 발로 차며 투덜거렸다.

“누구야?”

“넌 누구야? 누군데 이런 쇳덩어리 안에 들어가서 나를 귀찮게 하는 거야? 너 나오기만 해! 이런 쌍놈의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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