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FC 변경 군단의 기사-50화 (50/450)

50. 날아올라라, 피닉스여

***

그리마는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어쨌든 이 엄청난 사건에 뛰어들었고, 스텐커의 조언대로 최대한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용의자들을 경찰서로 데려가지 않고 루앙 마법 연구소, 인근 폐공장 등지에 분산 수용해서 심문을 진행해 나갔다.

그러나 이런 방식에는 당장 부하들부터 의문을 제기했다.

“왜 경찰서로 데려가지 않는 겁니까?”

“이유도 없이 남작을 체포해 오다니, 뒷감당을 어떻게 하시려고요?”

상부에서도 난리였다.

많은 경찰을 동원했으면 사유를 보고하거나 결과가 나와야 한다.

동원한 부하들의 입을 다 막을 수도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경찰서 안에서 이야기가 돌게 될 것이다.

‘길어야 이틀이야. 그 전에 뭐라도 나와야 해.’

정말 믿을 수 있는 심복 세 명에게만 이 사건의 개요를 모호하게나마 알려 주고 심문을 하도록 지시했기 때문에 심문을 진행할 수 있는 경찰은 자신을 포함해서 네 명뿐이었다.

그리마는 초조했다.

“단순 가담자는 간단히 취급하고, 중요한 녀석들에 집중해.”

미스터 핀, 마법사 3인, 파워 아머 착용자, 그리고 슈텐달 남작에게 미스터 핀을 소개한 측근.

이렇게 여섯 명을 중점적으로 심문했다.

“으아아! 어서 치료를······!”

“이게 대체 무슨 짓이오? 경찰이 이래도 되는 것이오? 변호사를 부르게 해 주시오!”

“뒷감당을 할 수 있겠어? 지금 큰 실수 하는 거야. 옷 벗는 걸로는 끝나지 않을걸?”

뼈가 부러진 마법사는 신음을 흘리며 비명만 질렀고, 다른 마법사는 경찰의 부당한 일 처리를 성토했다.

파워 아머 앞면을 겨우 뜯어 빼낸 기사는 경찰을 비웃으며 협박했다.

여러 제약들과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그리마는 경찰로서의 책임감과 자신의 생존을 위해 뭐라도 얻어 내야 했다.

그래서 끈질기게 심문을 진행해 나가는데, 대형 악재가 터지고 말았다.

심복 하나가 새파래진 얼굴로 달려와 더듬거렸다.

“노, 노, 놈이 죽어 버렸습니다!”

“뭐? 누가?”

“그 핀이라는 녀석이······.”

그리마는 사기꾼 핀을 가둬 두었던 사무실로 미친 듯이 달렸다.

사무실 밖을 지키고 있어야 할 무장 특경대원 둘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핀의 시신을 살피고 있었다.

그리마가 특경대원들을 밀쳐 냈다.

“비켜!”

핀은 목을 맨 채 숨져 있었다.

“젠장!”

이 사건에서 증언할 게 가장 많은 용의자가 영원히 입을 열지 못하게 돼 버린 것이다.

“대체 관리를 어떻게 한 거야!”

“잠시 용변을 보러 간 사이에······.”

“제기랄!”

부하를 탓해 봐야 이미 늦었다.

그리마는 자신의 경찰 인생이 끝장났다는 암담함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들 만큼 대단한 배후 세력에 대한 적개심이 뭉클뭉클 솟아났다.

경찰로서 그놈들을 가만둘 수가 없었다.

소란을 듣고 찾아온 스텐커가 눈살을 찌푸리다 독하게 말했다.

“이걸로 나머지 놈들을 더 압박해. 죽고 싶어서 이 일에 가담하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어차피 낭떠러지 앞으로 내몰린 상황, 무엇이라도 건져야 했던 그리마는 고개를 끄덕이고 핀의 자살로 나머지 주요 용의자들을 압박했다.

“흐흐흐! 인생 종 쳤네, 경찰 나부랭이들.”

파워 아머를 착용했던 자가 더 큰 소리로 조롱했다.

그러나 그리마는 그가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과장되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입은 웃지만, 눈가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 인생만 종 쳤을까? 넌 멀쩡할 것 같아? 나야 뭐 끽해야 경찰에서 잘리는 거지만, 너는 이미 송장이야, 이 새끼야! 뒈진 새끼가 왜 뒈졌겠냐? 경찰이 무서워서 자살해? 아니! 나중에 윗선으로부터 추궁당할 게 무서웠겠지. 차라리 죽어서 지키고 싶은 게 있었을 거야. 가족이라든가, 가족이라든가, 가족 같은 거 말이야. 넌 그런 거 없냐? 하긴 남의 가족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새끼가 가족 같은 게 있을 턱이 없지.”

경찰 따위로부터 욕을 먹어 발끈하려던 파워 아머 착용자는 가족이라는 말에 눈이 커졌다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기 시작했다.

마음속에 극심한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눈 크게 뜨고 감시해!”

그리마는 무장 특경대원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고 다른 주요 용의자들을 압박해 나갔다.

가장 먼저 손을 든 것은 슈텐달 남작의 측근 라이코 리엔츠였다.

“그, 그, 그게 먼저 핀이 접근해 왔습니다! 맞아요! 3만 골드를 주겠다고. 하지만, 3만 골드 때문에 이 일을 한 건 아니었어요. 사업이 슈텐달에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습니다! 정말입니다! 정말이에요!”

그는 핀이 죽었다는 소식에 극심한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옆방에서 라이코의 절규를 듣던 슈텐달 남작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배신감에 몸의 떨림이 가시지를 않았다.

루산이 그의 손을 굳게 잡아 주며 말했다.

“내 아버지는 가산을 모두 날리고 화병으로 돌아가셨죠. 운이 좋은 줄 아세요.”

“···대체 누구요?”

“······.”

“이런 짓을 하는 놈들이 누구냔 말이오?”

“알아서 어쩌시려고요?”

“갚아 줘야지! 모욕을 당하고도 참는다면 어찌 귀족이라 할 수 있겠소?”

“그냥 액땜한 셈 치고 잊어버리세요. 감당하실 수 있는 싸움이 아닙니다.”

루산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슈텐달 남작을 자극하려는 것이다.

“뭐라? 감당할 수 없어? 상대가 누구든 나를 죽이려 했는데 넘기라니? 날 무시하는 거요? 그러는 당신은 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은 가솔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했습니다. 이런 모욕을 당하고 어떻게 가만있습니까?”

“뭐라?”

슈텐달 남작이 끓어오르는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애를 썼다.

한참 후에 그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소. 내가 당신보다 운이 좋은 건 사실이지. 하지만, 나의 꿈을 무너뜨린 놈들을 가만둘 수는 없소. 이건 진심이니 더는 나를 시험하지 마시오.”

“···알겠습니다.”

루산은 슈텐달 남작을 피해자 연대에 1호로 가담시켰다.

***

“이러다 우리까지 덤터기 쓰는 거 아니야?”

“그럴 수는 없지.”

핀의 죽음을 목격한 무장 특경대원들이 책임을 피하기 위해 상부에 보고했다.

그리마가 경찰을 동원해 마법 연구소를 털고 슈텐달 남작을 체포해 불법 심문을 자행하다 한 사람이 자결했다는 이야기가 순식간에 위로, 위로 올라가 브레머 경찰청장에게까지 보고되었다.

청장이 경찰들을 보내 그리마를 강제적으로 데려왔다.

“사실이야?”

“···네.”

“미쳤어!”

“······.”

“무슨 일인지 말해 봐. 괜히 그러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지금은 말씀 못 드립니다.”

“너, 이 새끼!”

“모르시는 게 낫습니다. 알면 다치십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청장은 그리마를 한참 동안 노려보다 말했다.

“법은 황제라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이반 황제께서 말씀하셨지.”

물론 이반 황제가 정적들을 불법적으로 숙청한 일이 이루 셀 수 없이 많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았다.

그러나 이 말은 너무나 강력하여 필센 제국에 크나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제 귀족이라 할지라도 경찰의 검문에 응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사회가 된 것이다.

브레머 경찰청장은 그리마에게 무슨 말 못할 사정이 있으리라 짐작했지만, 가장 존경하는 이반 황제의 말씀과 필센 제국 헌법을 어길 수는 없었다.

“필요하면 다 데려와서 조사해. 중요 사건인 것 같으니 네가 있는 경찰서 말고 본청으로 데려와. 내가 지켜 주겠다. 그리고 너는, 감찰을 받게 될 거야.”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루앙 마법 연구소를 습격한 지 이틀 만에, 붙잡힌 사람들은 모두 브레머 경찰청으로 이송되었다.

마법사들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주장했고, 연고지에 연락을 보냈다.

그로부터 하루 뒤, 루앙 마법 연구소 사람들이 모두 풀려났다.

그들은 비웃음을 날리며 어디선가 보내온 마차를 타고 떠났다.

“어떻게 된 겁니까?”

그리마가 청장실로 달려가 항의했다.

청장은 표정을 잔뜩 구기며 오히려 호통을 쳤다.

“그러게 왜 사람을 잡아? 그리고 저것들 대체 뭐야? 왜 내무대신 각하께서 직접 석방 명령을 내리시냐고?”

“네?”

“불법을 자행한 경찰에게 엄벌을 내리고 불법적으로 체포된 사람들은 필요한 경우에 한해 출석 조사로 대체하라는 명이시다.”

“어디 사는 줄 알고 출석 명령을 보냅니까? 지금 어디로 가는 건데요?”

“난들 아니? 그건 네가 조사했어야지! 마법사들은 마법 연구소로 갔을 테고 마법사 아닌 사람들은 집으로 갔겠지.”

루앙 마법 연구소로 돌아간 마법사는 없었다.

루앙 마법 연구소 조사는 그렇게 흐지부지 끝이 났다.

그러나 소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법사들이 탄 마차는 스텐커가 예전에 추적한 툴롱 마법 연구소로 간 것을 그의 조수가 확인했다.

내무대신이 석방을 지시했다는 것도 의미 있는 정보였다.

내무대신이 직접 관련돼 있거나 적어도 그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개입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정보가 파워 아머 착용자의 입에서 나왔다.

그는 석방 명령이 떨어지자 오히려 당황하며 고민하다 그리마에게 작은 목소리로 빠르게 말했다.

“남방군 은퇴 파일럿들이 어디로 가는지 확인해 봐.”

“젠장! 수수께끼 하나? 가르쳐 주려면 시원하게 가르쳐 줄 것이지.”

“흥! 능력도 안 되면서 깝치다 뒈질까 봐 그런 거야. 이미 들쑤셔 놓은 셈이지만.”

“······.”

“······.”

“왜 알려주는 거지?”

“···남의 가족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놈이 가족이 있겠냐는 말이 걸려서. 난 가족이 있거든. 그리고 스스로 이 일을 그만둘 수가 없어.”

파워 아머를 착용했던 기사는 씁쓸한 표정을 짓고 떠나갔다.

그리마는 이 사건의 보고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로 채워 넣었다.

슈텐달 남작이 밀수와 관련돼 있다는 제보를 받음.

알고 보니 동행인 가운데 한 사람이 실제로 밀수를 하고 있었음.

밀수품 보관 창고로 이용된다는 건물 습격.

밀수 용의자 자살.

슈텐달 남작 무혐의.

밀수 창고에 있던 사람들도 무혐의.

그리마와 브레머 경찰청장, 슈텐달 남작에게 사과.

슈텐달 남작의 통 큰 용서.

그리고 그리마는 6개월 감봉 처분.

끝.

“젠장! 끝은 무슨······, 이제부터 시작이구먼.”

스텐커와 루산, 사기 사건, 파워 아머에 관한 내용은 보고서 어디에도 남겨 놓지 않았지만, 그리마는 자신이 이 사건에 한번 발을 담근 이상 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결될 때까지 밤길을 조심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렇게 사건 하나가 표면적으로 종결되었다.

파워 아머는 루산이 가프 마법 연구소로 비밀리에 보냈다.

파워 아머의 주인이 공식적으로는 돌려 달라고 요청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쓱 챙긴 것이다.

***

“어쨌든 이번 사건으로 저쪽에서도 누군가가 자신들을 노린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루산이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 일단 몸을 사려야 하나?”

슈텐달 남작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뇨. 오히려 판을 키우죠. 어차피 남작님도 저들의 감시망에 들어갔을 테니 차라리 더 활발하게 활동하세요. 그러는 편이, 저들이 남작님을 함부로 해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될 겁니다. 저들은 우리의 정체를 모르니까요.”

“음!”

일리가 있었다.

루앙 마법 연구소를 습격하고 그동안 공들여 온 슈텐달 남작 가문에 대한 공작을 방해한 무리가 누구인지 저들은 아직 모른다.

자신감 있게 행동하는 것이 오히려 상대를 위축시킬 수 있는 것이다.

“어차피 대출 받기로 한 거, 대출을 다 받으시고 하려던 사업을 시작하는 겁니다. 우리 제국의 상황으로 볼 때 제철소가 유망한 사업인 건 맞잖아요?”

슈텐달 남작의 눈이 퉁방울처럼 커졌다.

“대출을 받으라고? 핀이 없는데 대출이 나올까?”

“지점장이 확약했다면서요?”

“그야 그렇지만······.”

“지점장이 이 음모를 다 꿰고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 무리한 대출을 핀이라는 사람의 됨됨이를 봐서 해 주겠어요? 위에서 시키니까 대출을 해 주는 거지. 저쪽 수뇌부도 이 사건을 막 접해 혼란스러울 테니, 그 틈에 대출 받고 사업을 시작하는 겁니다. 어차피 유령 회사로 투자해 빼돌리려던 돈, 남작님이 제대로 회사 세워서 시작하면 됩니다.”

놈들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과감한 방법이었다.

“좋아! 듣기만 해도 속이 후련하구먼!”

슈텐달 남작은 브레머에 있는 공업 은행 지점들을 다 돌며 대출을 받았다.

루산의 짐작대로 그들은 핀이 없어도 이미 작성한 확약서에 따라 대출을 해 주었다.

넓은 슈텐달 지방을 담보로 중복 대출을 받았기 때문에 금액이 엄청났다.

슈텐달 남작은 루산이 불러온 변호사 포렌시스의 도움을 받아 그동안 체결했던 각종 계약 서류들을 꼼꼼히 검토해 독소 조항들을 걷어 내고, 그렇게 할 수 없는 계약들은 모두 해지했다.

그리고 루산의 권유로 ‘슈텐달 제철’이라는 기존의 회사명을 다른 이름으로 바꾸었다.

<피닉스 제철>

죽지 않는다!

죽지 않겠다!

죽어도 다시 일어선다!

어떤 일이 있어도 살아남겠다는 의지이자 적들에게 보내는 첫 번째 경고 메시지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