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내 이름은 스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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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에서 출발한 화물 열차가 거대한 화물들을 잔뜩 싣고 라돔 시에 도착했다.
수도 군단 제3 기동 전단의 멕 나이트가 분해되어 도착한 것이다.
수도 군단의 엔지니어들과 변경 8군단 지원 팀 요원들은 크레인을 이용해 화물을 붐붐 수레에 싣고 8군단 정비창으로 옮겨 조립을 시작했다.
비슷한 편제와 명칭을 사용하지만, 정식 군단은 변경 군단보다 규모가 훨씬 커서 분해된 멕 나이트를 실은 화물 열차가 며칠에 한 번 꼴로 계속 들어왔다.
8군단 정비창에서 단번에 소화하기 어려운 물량이라 다 조립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조립이 끝난 멕은 비밀 유지를 위해 반달 호수 지역 가장 깊숙이 자리한 본부 개척 기지보다 훨씬 서쪽에 마련된 임시 캠프로 이동해 변경 땅에 적응하도록 했다.
여기까지 안내하는 것은 본부 정찰병이 맡았고 임시 캠프의 지원과 관리는 트리어의 2전대가 담당했다.
루산의 임무는 아직 개척되지 않은 진짜 원시의 땅에서 길을 안내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은 그가 나설 일이 없었다.
그래서 원정 준비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괴수 사냥을 계속해 나갔다.
그런데 아라드 왕국을 구원하기 위한 제국군 기동 전단이 준비를 마치기 전에 가프 마법 연구소의 신규 멕 나이트가 먼저 도착했다.
변경 순찰, 정찰용으로 출력과 무게를 확 줄이더라도 가격을 내려 달라는 루산의 제안에 따라 만든 새로운 모델.
레오파드 스피디(leopard speedy)
약칭: 스피디
신장: 6미터
무게: 레오파드 003의 0.7
엔진 출력: 아이언 워리어의 0.6
무기: 마나 진동 삼지창, 소형 원형 방패
외형은 레오파드와 비슷하지만, 기존의 멕 나이트보다 작고 가볍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일단 최대한 기사님이 제안하신 내용에 맞춰 제작해 봤습니다.”
스피디의 외형을 찬찬히 살펴보는 루산 옆에서 칼리슈가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격은 얼마로 책정하시나요?”
“일단 8만 골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원에 비해 너무 높은 거 아닌가요?”
아이언 워리어를 기준으로 엔진 출력은 0.6, 무게는 0.23 정도인데 가격은 0.5나 된다면 비싸다는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습니다. 판매량이 늘고 양산 체제를 구축하면 내려가겠죠.”
칼리슈의 설명에 루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볍고 빠르게 만든 것이 가장 큰 특징이고, 거친 원시의 땅을 달릴 때 미끄러지지 않게 발을 새 발처럼 크고 뾰족하게 만들었어요. 바닥을 감싸 쥐듯 팍팍 박히면서 달리게 됩니다. 그러면서 발가락 사이에 물갈퀴처럼 넓은 막을 만들어 늪지대에 푹푹 빠지지 않도록 한 것도 변경을 고려한 포인트 중 하나죠.”
“이렇게 정교하게 만들면 가격도 올라가고, 고장이 나기도 쉽지 않을까요? 변경에서는 무엇보다 막 쓸 수 있는 게 중요하거든요. 변경을 막 달리다 보면 물갈퀴처럼 생긴 이것은 쉽게 망가질 것 같은데······.”
“당연히 쉽게 망가지지 않도록 신경을 썼죠. 그리고 그런 점까지 고려해서 조금씩 변화를 준 모델들을 제작하고 있는 것이고요.”
“알겠습니다. 어쨌든 가격을 제외하면 마음에 듭니다.”
“하하하!”
루산의 뼈 있는 말을 칼리슈는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그런데 기사님.”
“네?”
“지난번에 말씀하신, 파워 아머 선물에 대한 답변 말입니다.”
“아! 선물이라니까요, 선물.”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하죠. 하지만, 친구 사이에도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 서운해 하지 않고 오래도록 잘 지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뭘 드리는 게 좋을지 결정하기 어려워 스승님이 직접 오셨습니다.”
“네?”
결국 루산은 가프 마법 연구소의 실세 중 하나인 마법사 가라로슈와 직접 대면하게 되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보름스 기사님. 그동안 우리 마법 연구소에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요.”
“별말씀을요. 오히려 도움을 받았죠.”
“허허허!”
루산의 자연스러운 응대에 가라로슈는 현명하고 너그러운 노인처럼 웃었다.
루산이 수도 노바의 명문가 출신이고 제국 기사 아카데미를 나왔다는 것, 가문이 망해서 변경을 택했다는 것, 그리고 그 흉수가 만만치 않은 상대로 추정된다는 것은 이미 제자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마법 연구소의 고위 마법사쯤 되면 상대의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눠 보면 대충 어떤 사람인지 가늠이 된다.
적절한 교양과 꿍꿍이를 지닌 상대, 굳이 돌아가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가프 마법 연구소는 기사님의 싸움에 직접적인 도움을 드릴 수 없습니다.”
루산은 조금 놀라기는 했으나 당황하지는 않았다.
가라로슈가 몸소 왔다는 것은 이미 선물이 욕심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마법 연구소가 노출되지 않는 선이라면 정보를 드리는 방식으로 돕도록 하지요.”
마법 연구소는 오랜 역사를 지닌 경우가 많고 정부, 고위 귀족, 큰 회사들과 거래를 하기 때문에 남들이 잘 모르는 것도 알고 있었다.
가라로슈는 이 정도도 큰 은혜를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대는 이미 몰락한 가문의 변경 기사.
그가 준 것을 그대로 가로챈다한들 어쩌겠는가?
그럼에도 세상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상대가 원한을 품지 않도록 하기 위해 통 크게 제안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루산을 너무 쉽게 본 것이었다.
“저는 칼리슈 님께 크나큰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하여 선물을 드린 겁니다. 가지고 있어 봐야 마법 지식이 없으니 연구할 수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가라로슈 님의 말씀은 살짝 실망스럽군요. 세상에 공짜는 없다! 대가를 지불해야 깔끔하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대가가 균형이 맞아야죠.”
“흐음!”
가라로슈의 표정이 굳었지만, 루산은 개의치 않았다.
이미 가문이 망했고, 변경으로 와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상대가 마법 연구소의 고위 마법사면 어쩌란 말인가?
겁날 것 없었다.
지켜보는 칼리슈만 안절부절못했다.
“저는 우정이라고 생각했는데 거래로 받아들이셨다면 제대로 거래를 해 보시겠습니까?”
“그래 어디 말해 보시오. 들어나 봅시다.”
“레오파드와 스피디를 합쳐 빠른 시일 안에 100대를 팔아 보죠. 그러면 가프 마법 연구소는 최선을 다해 내 일을 도와주세요. 당연히 전면에 내세우거나 이름을 함부로 이용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신규 멕 나이트 100대 판매!
칼리슈가 입을 떡 벌리고 가라로슈가 눈을 부릅떴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셔야지······.”
“말이 안 될 것 같으면 약속을 하시죠. 손해 볼 거 없잖습니까?”
가라로슈가 생각에 잠겼다.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기 때문에 특히나 보수적인 무기 시장에서 신규 멕 나이트를 판매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애초에 가프 마법 연구소에서 멕 나이트를 개발한 것 자체가 그리 진지한 계획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마나 연료, 윤활유, 각종 멕 소모품 판매로 이익이 많이 남는 상황이라 새로운 사업을 시도해 보기로 했고, 굳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것이라면 주력 제품 소비를 증진할 수 있는 멕 나이트를 만들어 팔면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하는 원론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사업이었다.
그래서 가프 마법 연구소에서는 멕 나이트 사업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 않았다.
몇 대라도 팔면 기특한 일, 못 팔면 어쩔 수 없는 일.
어차피 기존의 주력 상품들이 여전히 잘 팔리고 있었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그러나 가라로슈는 자신이 멕 나이트 사업의 최고 책임자가 되었기 때문에 악착같이 연구했고, 오랜 연구 끝에 레오파드라는 썩 괜찮은 멕 나이트를 만들어 낸 것이다.
만약 멕 나이트가 잘 팔리면, 여러 고위 마법사들이 달라붙어 경쟁하는 기존 사업들과 달리 멕 나이트 사업은 자신이 혼자 틀어쥐고 있기 때문에, 가프 마법 연구소 안에서 입지가 확 올라가게 된다.
‘잘하면 가프 마법 연구소의 대표 마법사도 꿈은 아니지.’
가라로슈는 그렇게 생각했다.
“빠른 시일 안에 100대라······. 빠른 시일이라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것이오?”
“2년 안에 보여 드리죠.”
애초에 한 달에 세 대 분량의 멕 나이트를 생산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 또한 안 팔리면 윤활유와 부품 테스트에 활용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다른 사업 마법사들이 적선하듯 허락해 준 것이다.
“좋소! 만약 2년 안에 100대를 팔아 준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루산 보름스 기사님을 돕도록 하지요.”
마침내 가라로슈가 루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스승이 돌아간 뒤 칼리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루산을 타박했다.
“아니, 기사님! 왜 굳이 잘 지낼 수 있는 기회를 차 버리세요. 우리 스승님과 잘 지내시면 레오파드 시제기 이용 문제부터 해서 변경 군단에 많은 도움이 될 텐데 말입니다.”
루산이 칼리슈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마법사님이 만든 멕 나이트에 별로 자신이 없으세요?”
“네? 그, 그건 아니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이건 팔립니다.”
기동성은 멕 나이트가 등장하기 전부터 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기동력이 받쳐 주면 몇 배나 많은 적도 무찌를 수 있고 적의 배후를 칠 수도 있고 빠른 정찰과 신속한 정보 전달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레오파드는 변경에서만이 아니라 전선에서도 충분히 통하리라고 루산은 확신했다.
다만 보수적인 멕 나이트 시장에서 언제 통하느냐가 문제일 뿐.
다행히 루산은 그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제국군 멕 나이트 기동 전단을 데리고 원시의 땅을 지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쉽게 얻지 못할 홍보의 기회!
기동성을 특화시킨 경량 멕 나이트의 놀라움을 제국군 파일럿들은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자, 그럼 스피디를 테스트해 볼까요?”
루산은 레오파드 스피디에 올라탔다.
엔진 출력이 아이언 워리어의 0.6 수준에 불과했지만, 무게는 0.23밖에 되지 않아 움직임이 무척 가벼웠다.
원정을 떠나기 전에 기체 상태를 충분히 점검해야 해서 루산은 한동안 스피디를 타고 반달 호수 전역을 바람처럼 누비고 다녔다.
속도가 빠른 중형 괴수 벨로키도 스피디의 스피드를 따라잡지 못했다.
레오파드 003과 스피디의 대결에서는 엔진 출력이 훨씬 높은 003이 더 빨랐지만, 늪지대와 모래사장 그리고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숲에서는 무게가 더 가볍고 미끄럼 방지가 확실한 스피디가 승리하기도 했다.
루산이 새로운 멕 나이트 스피디를 타고 사냥까지 나서면서 어느 정도 적응 훈련을 마쳤을 때 화물 열차로 보내온 수도 군단 멕 나이트 조립이 끝나고 반달 호수 지역 임시 캠프에 원정군이 모두 모였다.
변경 땅에 봄꽃이 피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
루산이 3전대 파일럿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여러분은 지금부터 비밀 엄수 의무가 생깁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쉿! 그냥 들어.”
001 파일럿 모리츠가 바이크를 보고 검지로 입을 가렸다. 바이크가 입술을 삐죽이면서도 입을 꾹 다물었다.
루산은 모리츠에게 감사의 표시로 고개를 살짝 끄덕하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처음 보는 멕 나이트들이 서쪽으로 이동하는 광경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제국군 기동 전단 병력이에요. 우리는 그들을 이끌고 원시의 땅을 통과해 아라드 왕국으로 갈 겁니다.”
“······!”
바이크뿐 아니라 모리츠와 파비안도 깜짝 놀랐다.
“물론 레오파드 테스트 파일럿들은 동행할 의무가 없지만, 가프 마법 연구소 측에 협조 요청을 했습니다. 이번 일은 극한 환경에서 신규 기체를 테스트할 수 있는 기회일 뿐 아니라 제국군에 레오파드의 장점을 선보일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거든요.”
모리츠와 파비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르사는 오랜만에 정비소에 넣고 레오파드 001, 002, 003 그리고 레오파드 스피디를 타고 가겠습니다.”
그렇게 루산은 3전대 파일럿들을 모두 데리고 오로지 신규 기체만 이끌고 가기로 결정했다.
모리츠와 파비안이 나가고, 바이크가 눈치를 보다가 조용히 물었다.
“전대장님, 그런데 그 임무를 맡으면 사냥을 못 하지 않습니까?”
“뭐, 가는 길에 만나는 괴수를 잡을 수는 있어도 작정하고 사냥하지는 못하지.”
“그러면 우리 사냥 성과 보상금은······?”
바이크는 스스로가 사냥에 기여하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아서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아시다시피 제가 기본급이 많이 낮아서요.”
사냥에 기여하는 바가 작아도 함께 사냥하면 일정한 비율로 성과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바이크의 분배 비율은 무척 낮지만, 그래도 루산이 워낙 많은 사냥을 했기 때문에 성과 보상금이 기본급보다는 훨씬 많았다.
“어머니가 몸져누우셔서 고향에 조금은 부쳐 드려야 하고······.”
“알았으니 그만.”
루산은 다른 사람의 우울한 사연을 듣고 싶지 않아 바이크의 말을 끊었다.
“넵!”
“지금까지 나오던 만큼 성과 보상금을 계산해 줄게. 됐지?”
“네! 감사합니다.”
바이크의 표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해졌다.
루산이 사냥을 하지 못하는 데 대해 본부에 요구한 보상은 금전이 아니었다.
“원하는 게 있나요? 신사업부 부장 겸 3전대장님?”
그날 통치자의 질문에 루산은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전에 말씀드린 개척민 모집 광고를 했으면 합니다.”
“음?”
“우리 제국군이 아라드 왕국 전쟁에 개입한다는 것은 이제 피란민이 줄어든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당장은 아니더라도 조만간 피란민이 안 들어오겠죠.”
“그렇겠죠.”
“앞날에 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통치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렇게 모집 광고로 들어온 개척민들을 제가 관리하도록 해 주십시오. 그들의 삶을 기록하고 취재하고 신문에 연재하는 일련의 과정을 신사업부에서 관장하는 것이 개척민 유치 사업의 효율을 높일 것입니다.”
결국은 특별한 전진 기지 대장을 희망한다는 뜻이었다.
단장은 여전히 인상을 찌푸렸고, 통치자는 단장을 바라보다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거부할 명분이 없지 않습니까?”
“흥!”
단장이 콧방귀를 뀌었다.
자신이 전에 한 말을 거두는 것이 불쾌했던 것이다.
그러나 통치자의 말처럼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아라드 전쟁이 끝나면 피란민이 들어오지 않으니 개척민을 적극적으로 유치할 필요가 생겼고, 그 사업의 효율을 위해 처음부터 기획한 루산이 그들을 맡는 것이 나았다.
무엇보다 제국군 길 안내라는 임무의 보상으로 현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쨌든 8구역에 이로운 사업을 시작하겠다는 것이니 기특해 보이기도 했다.
‘영악한 놈! 기어이 하고 싶은 걸 해야겠느냐? 나중에 힘들다고 지원 요청이나 하지 마라!’
단장은 눈으로 짜증을 발산하며 말했다.
“그렇게 해.”
“감사합니다!”
루산은 신문에 개척민 모집 광고를 내도록 곧바로 바덴에게 편지를 보냈다.
***
원정군 임시 캠프로 다가오는 네 대의 낯선 멕 나이트를 향해 제국군 파일럿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루산은 레오파드 스피디에서 내렸다.
트리어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다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이 보였다.
루산은 그동안 임시 캠프를 관리해 온 2전대장 트리어 쪽으로 걸어가다 우뚝 멈춰 섰다.
트리어에 가려져 있던 사람의 얼굴이 나타난 것이다.
“오랜만이군.”
루산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대로 서 있다가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을 떠올리며 다시 천천히 움직여 트리어와 그 사람 앞으로 다가갔다.
“잘 지내셨습니까···, 교수님.”
아이젠 자작은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으나 루산은 걸어오는 짧은 시간 동안 지금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이 호칭을 찾아내느라 에너지를 모두 소비한 탓에 어딘가에 몸을 기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