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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57화 (57/450)

57. 판매를 위하여

***

“정리를 해 봅시다. 그러니까 이 일은 단지 일개 사기 사건이 아니라 거대한 음모의 일부분이라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스텐커는 평온한 표정으로 대답했지만,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그동안 접촉해 온 피해자 가문 - 보름스 가문, 슈텐달 가문을 제외한 9개 가문 - 사람들은 가문이 망한 뒤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루산의 아버지처럼 화병으로 유명을 달리하거나 병석에 누워 있거나 뿔뿔이 흩어져 어렵게 삶을 유지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스텐커는 그들 가운데 젊고 의지가 굳센 사람들을 접촉해 데리고 와 생활 자금을 지원하면서 이 사건 조사에 투입했다.

그렇다고 무슨 거창한 일을 시키는 것은 아니고 최근 10여 년 동안의 신문 기사와 재판 기록을 열람해 관련 있어 보이는 사건이나 정보를 찾아보게 하는 정도였다.

개중에 인내심이 강하고 눈썰미가 있는 사람들은 몇 번 데리고 다니며 잠복, 미행에 투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정도 활동으로 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해 내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눈앞에 있는 이 남자와 접촉한 것이다.

빈켈 남작 가문의 삼남 오스카 빈켈.

전선에서 근무하는 동안 가문이 망하고, 지금은 순환 근무로 군무부 감찰관으로 일하고 있는 30대 후반의 기사.

순환 근무가 끝나면 승진하여 다시 전선으로 가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공적인 조사 권한 없이 외부에서 관찰하거나 미행하는 것만으로는 이 사건의 내밀한 부분까지 파고드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스텐커는, 그 전에 오스카 빈켈의 공적 권한을 이용해 보려는 것이었다.

물론 그가 가진 권한이라 봐야 상대의 힘에 비하면 미약하기 그지없지만, 자신에게는 그 미약한 힘마저도 없었기 때문에 무척 탐이 났다.

“흐음······.”

오스카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코로 길게 뿜어냈다.

“내가 옳게 이해했다면 이 사건은 오베론 공작의 둘째 아들이 공업 은행, 툴롱 마법 연구소와 짜고 최소 10개 가문의 막대한 재산을 강탈한 사건입니다. 이 세 주체가 상하 관계인지 협력 관계인지는 알 수 없고, 배후에 오베론 공작이 있는지도 파악되지 않았지만, 관련성이 충분히 의심이 되는 상황입니다. 필센 마법 연구소에서 보유하고 있던 파워 아머도 사기에 동원되었다니, 놀랍군요.”

스텐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내가 비록 군무부 감찰관으로 있지만, 당신이 말한 내용의 대부분은 내 관할 범위가 아닙니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군무부 감찰관은 군대 내 위법, 비위를 조사하는 일을 한다.

오베론 공작의 차남이나 공업 은행, 툴롱 마법 연구소를 조사할 권한이 전혀 없었다.

공연히 조사한다고 나섰다가는 이쪽의 존재를 저들에게 알려주는 꼴이 될 것이다.

“슈텐달 남작 사건에서 붙잡힌 파워 아머 착용 기사가 회심하는 듯이 남긴 말이 있습니다.”

“회심? 뉘우치며 고백이라도 했다는 겁니까? 무슨 말을 했습니까?”

“남방군 파일럿들이 은퇴한 뒤에 어디로 가는지 확인하면 이 사건에 대해 알 수 있을 거라는 말이었습니다.”

“남방군 파일럿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아 봐라?”

“네.”

이 일은 군대와 관련된 사항이라 계획만 잘 짜면 의심을 사지 않고 조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조심해야 했다.

노골적으로 이 문제를 파고들면 저쪽을 자극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해 주시겠습니까?”

스텐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스카 빈켈은 운이 나쁜 것인지 좋은 것인지 몰라도 당시 해외 영토에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록 본가는 망했지만, 자신의 가정은 지킬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 사건을 파헤치다 잘못되면 자신의 가정마저 날아갈 수 있는 것이다.

부인과 두 아이는 나름 품위를 지키며 사교 모임에 나가고 썩 괜찮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최고의 사치는 누리지 않더라도 유복한 환경.

이것이 부서질 수 있는 일에 참여시키려는 것이다.

그러나 스텐커는 귀족 가문의 자존심을 잘 몰랐다.

“그 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큰형님은 반신불수가 됐어요. 이제 겨우 40대 초반인데 말입니다.”

둘째 형은 빚쟁이들이 몰려오자 가문과의 인연을 끊어 버렸다.

이해가 안 되는 바는 아니지만, 그 뒤로 얼굴도 보지 않고 연락도 하지 않았다.

“은혜는 두 배로, 원한은 백 배로 갚아야죠.”

긴장하던 스텐커의 얼굴이 마침내 살짝 펴졌다.

“부디 조심스럽게 진행하시기 바랍니다.”

“걱정 마세요.”

오스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스텐커 역시 다 식은 차를 벌컥벌컥 들이마신 뒤 카페에서 나와 기다리던 마차에 올라탔다.

“어떻게 됐습니까?”

“합류하기로 했다.”

“잘됐군요!”

조수가 기뻐했다.

이로써 경찰 쪽에 한 명, 군대 안에 한 명의 조력자가 생긴 것이다.

경찰 쪽 조력자는 살기 위해 죽은 듯이 지내느라 지금은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지만, 어쨌든 자신들끼리 잠복하고 미행하고 수소문하기만 반복하던 때에 비하면 마음이 든든했다.

“루돌프 기센을 잡으러 갈까?”

“벌써요?”

“한 명씩 쳐내야지, 영양가도 별로 없는데 계속 감시를 붙일 수는 없잖아. 할 일도 많은데.”

“그야 그렇죠.”

“가자.”

“네.”

오스카 빈켈의 합류로 기분이 좋아진 스텐커는 과거 보름스 가문의 우유 공장과 치즈 공장을 관리하던 루돌프 기센을 털기로 했다.

그의 소재를 파악한 뒤 그동안 꾸준히 감시를 붙여 왔다.

사기꾼 세력과 접촉하는 모습은 관찰하지 못했다.

어차피 도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지만,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털 것이 있으면 얼른 털고 끝낼 생각이었다.

스텐커를 태운 마차는 카페 골목을 벗어나 대로를 달렸다.

***

과거 마리노 공화국은 필센 제국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먼 옛날부터 동쪽 아우로라 대륙과 서쪽 오카수스 대륙을 오가며 무역으로 번영을 누려 온 나라답게 모든 나라와 두루 친하게 지내려 애써 왔다.

그러다 필센 제국이 아우로라 대륙의 부르가스를 확보하면서 사이가 틀어졌다.

필센 제국이 부르가스를 무역 기지로 삼아 직접 동서 무역에 뛰어든 일은 마리노 공화국을 지탱해 온 교역 경제에 치명적이었다.

마리노 공화국이 필센 제국에 은근히 적대적으로 변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그러나 필센 제국은 거대한 나라이고 마리노 공화국은, 부유하기는 했지만, 작은 나라여서 노골적으로 싸울 수는 없었다.

그런데 최근에 필센 제국 남쪽에 있는 아라드 왕국 앞바다에서 마리노 공화국 상선이 해적에 의해 나포되는 일이 몇 번 발생하게 되었다.

마리노 공화국은 당연히 아라드 왕국에 항의했다.

아라드 왕국은 군대를 파견해 이 일을 해결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산이 많은 나라답게 군대의 공격을 받은 해적들은 산으로 달아나 버렸고 나라가 가난하다 보니 계속해서 해적 소탕을 실시하기도 어려웠다.

백성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개선시켜 주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자 마리노 공화국은 아라드 왕국이 해적 행위를 근절할 의지가 없는 것을 보니 배후가 틀림없다고 비난하며 직접 사태를 해결하겠다고 군대를 파견해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이해했나?”

“아니오.”

파비안의 친절한 설명을 듣고도 바이크는 당당하게 고개를 저었다.

파비안은 바이크의 처참한 이해력에 좌절할 만도 했지만, 지금까지 들인 노력이 아까워 포기하지 않았다.

“뭐가 이해가 안 되나?”

“그냥 다, 너무 복잡해요.”

“그러니까 뭐가?”

“해적이 자기네 상선을 털었고 아라드 왕국에 힘이 없으면 협력하여 해적을 치면 되잖아요. 왜 아라드 왕국을 치죠?”

“그러니까 속셈이 있는 거지. 애초에 해적을 문제 삼으려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를 삼키려는 거라니까?”

“마리노 공화국이 나쁜 놈이라는 말이죠?”

파비안은 지금까지 일껏 국가 간 이해관계의 문제를 친절히 설명해 주었음에도 좋은 놈, 나쁜 놈이라는 유아적 이분법으로 대답하려니 자괴감이 들었다.

그러나 이왕 손을 댄 것, 끝까지 맡기로 했다.

“뭐, 그놈들이 나쁘지. 사실 해적에 나포됐다는 것도 조작했거나 유도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니까.”

“정말 나쁜 놈들이네요!”

“게다가 이 나라를 차지하려는 이유가 괴수 부산물을 직접 획득해 우리 제국에 손해를 끼치려는 거니까 더 말할 것도 없지.”

“진짜, 진짜 나쁜 놈이네!”

듣고 있던 루산과 모리츠는 고개를 돌리고 웃음을 참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다 루산은 문득 바이크 같은 사람이야말로 기사가 되기에 적합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관계의 문제와 선악의 문제가 뒤엉키기 시작하면 사람을 죽이기 어려워진다.

전쟁터에서는 단순하고 무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검을 잡기 시작한 다섯 살 때부터 제국 기사 아카데미에 다니던 기간 내내 들은 이야기가 황제와 제국에 충성을 다하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기사의 명예라는 것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단순하고 무식해야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나라에 가치 있는 기사가 된다.

그러나 루산은 가문이 망하도록 이 나라가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어쩌면 가문이 망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모의하거나 방조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충성심이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그럼에도 다섯 살 때부터 스물한 살 때까지 강도 높게 받아 온 기사 교육, 충성 교육 때문에 충성에 대한 강박이 가슴 저 밑바닥에 뿌리 깊게 박혀 있어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그런 심란함이 바이크 덕에 웃게 되면서 조금 풀린 것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어. 나를 위해 싸우는 거지, 뭐.’

모리츠와 파비안에게는 필센 제국에 충성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지만, 루산은 자신을 위해 싸우기로 했다.

제국군에 레오파드를 많이 팔기 위해, 그리고 가까운 사람을 돕기 위해.

정말로 자기 자신을 위해 전쟁에 뛰어드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자신이 정말 이익을 위해 전쟁터에서 몸을 파는 싸구려 용병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오히려 충성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홀가분하기도 했다.

그때 제국군 파일럿이 루산을 불렀다.

“전단장님이 부르시오.”

“가죠.”

***

아라드 왕성 밖 지휘 막사.

아이젠 자작이 루산을 손짓으로 불렀다.

아라드 왕국의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나빴지만, 그의 기분은 썩 괜찮은 편이었다.

루산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는 이것을 승낙의 표시로 이해했다.

오래 묵은 가문의 골칫거리를 해결하고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기분이 그렇다는 것이지 멕 나이트 네 대로 전황을 확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산악 기동에 좀 더 유리한 기체이니 무언가 예상하지 못한 활약을 펼쳐 아군의 사기를 올려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정도는 품었다.

“이쪽은 아라드 왕국 사령관 니트라 장군.”

아이젠 자작의 소개에 피곤에 쩐 초로의 장군이 루산에게 고개를 살짝 까딱했다.

“이쪽은······.”

아이젠 자작이 루산을 소개하려다 잠시 멈칫했다.

그렇잖아도 적의 멕 나이트가 예상보다 많아 필센 제국 지원군의 규모에 실망하던 차에 변경 파일럿이라고 하면 아라드 왕국군의 사기가 확 떨어질 것 같았던 것이다.

루산은 그 짧은 순간에 아이젠 자작의 침묵을 이해하고 자신이 직접 나섰다.

“반갑습니다, 니트라 장군님. 필센 제국군 산악 특임 기동 전대의 루산입니다.”

아이젠 자작의 얼굴에 감탄과 뿌듯함의 미소가, 니트라 장군의 표정에는 호기심이 떠올랐다.

“산악 특임 기동 전대? 그게 뭐 하는 부대입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거칠고 경사진 산악 지형에서 적을 쳐부수는 부대죠. 우리 부대가 운용하는 신형 멕 나이트는 산지를 평지처럼 달립니다.”

물론 과장된 말이지만, 니트라 장군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오! 그렇습니까?”

“물론 개발 단계에 있기 때문에 이번에 동원한 것은 4대밖에 되지 않습니다만 40대! 아니, 그 이상의 역할을 해낼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아이젠 장군님의 의견을 귀담아들으시고 작전을 수립하시기 바랍니다.”

“음!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니트라 장군의 얼굴에서 피곤과 불만이 사라지고 결연한 의지가 떠올랐다.

루산은 다음과 같이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개발이 끝나고 마리노 놈들을 몰아내면 우방인 아라드 왕국에도 이 신형 멕의 판매를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레오파드를 꼭 제국군에만 팔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세일즈였으나 산지가 많은 아라드 왕국에 꼭 필요한 물건이라 니트라 장군은 제품 홍보라고 여기지 않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젠 자작도 루산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쓴웃음을 지을 정도였다.

“자, 자, 산악 특임 전대장의 말대로 우리 필센 제국을 믿고 싸우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될 겁니다.”

아이젠 자작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루산이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선창했다.

“승리를 위하여!”

아이젠 자작도 얼른 부동자세를 하고 따라 외쳤다.

“승리를 위하여!”

그러자 아라드 왕국의 니트라 장군과 지휘관들도 큰 소리로 외쳤다.

“승리를 위하여!”

“승리를 위하여!”

“승리를 위하여!”

우스꽝스럽게도 말 한마디에 우중충하던 지휘 막사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마치 승리가 눈앞에 있는 것 같았다.

이러니 루산을 바라보는 아이젠 자작의 눈에 애정이 담뿍 묻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루산, 내 옆에 있으려무나. 제국 최고의 장군으로 밀어줄 테니.’

그때 루산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기기만 하면 아라드 왕국에도 판매 확정이구나! 몇 대나 팔 수 있으려나?’

잠시 후 본격적인 작전 회의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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