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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59화 (59/450)

59. 길 가다 주웠다

***

스피디와 멕 워커의 싸움.

쉽게 볼 수 없는 구경거리였다.

날쌔고 성미 급한 스피디가 삼지창을 이리저리 찔러 봤지만, 멕 워커는 발을 높이 들지 않고 바닥을 스치듯이 움직이면서 팔로 창대를 밖으로 쳐내며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받아냈다.

[멕 워커 파일럿, 제대로 배운 것 같은데? 중심이 낮아.]

[멕 워커로 가능한 최선의 움직임 같군.]

멕 워커는 적은 비용을 들여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 출력이 높지 않은 엔진을 장착하고 자체 중량을 줄였다.

그러다 보니 멕 나이트에 비해 느렸고, 관절이 약해 동작 범위가 좁았다.

그런 기체를 가지고 이 정도 버티는 것은 순전히 파일럿의 역량이었다.

[그러나 싸움이 계속되면 승리는 결국 스피디의 것이 될 수밖에 없지.]

[그렇겠지.]

모리츠와 파비안은 스피디의 승리를 예측했다.

멕 워커는 무기를 들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멕 나이트 부품과 멕 워커의 부품은 차이가 많이 났다.

멕 나이트는 몸체가 두껍고 골격과 관절이 단단한 반면 멕 워커는 몸체가 얇고 골격과 관절이 약했다.

계속해서 싸우다 보면 결국 찌그러지다 쓰러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이크가 생각이 있다면 마나 진동 삼지창으로 굳이 찌르기만 고집할 게 아니라 휘둘러야지. 멕 워커의 얇은 몸체는 마나 진동 날에 그냥 잘려나갈 테니 말이야.]

[경험 부족이지.]

모리츠와 파비안의 대화를 듣기라도 한 듯이 바이크가 삼지창을 크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멕 워커는 마나 진동 날을 막을 수단이 없어 바이크가 삼지창을 휘두를 때마다 뒤로 훅훅 물러났다.

그러나 루산의 눈에는 보였다.

‘멕 워커 파일럿이 겁이 나서 물러나는 것이 아니야. 기회를 엿보고 있어.’

그래서 뒤로 멀찍이 물러나지 않고 빠르게 접근할 수 있도록 아슬아슬하게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우웅-

스피디가 삼지창 손잡이 끝부분을 잡고 크게 휘둘렀다.

쓰릉-!

가장 긴 창날이 멕 워커의 가슴을 얕게 베고 지나가자마자 멕 워커가 들소처럼 돌진해 두 팔로 스피디의 다리를 잡고 어깨로 몸을 밀었다.

쿵!

굉음과 함께 먼지가 들썩이고, 스피디가 뒤로 벌렁 넘어갔다.

- 어이쿠!

충격에 놀라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온 바이크의 목소리.

두말할 것 없이 바이크의 완패였다.

멕 워커는 얼른 스피디의 몸통 위에 앉아 그 두 팔을 자신의 손으로 눌렀다.

출력이 더 높은 스피디가 밑에 깔린 굴욕적인 자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멕 워커는 유리한 자세를 이용해 계속 누르며 버텼다.

모르츠와 파비안은 자신들의 예상과 달리 멕 워커가 승리하고 바이크가 패배하자 깜짝 놀라면서도 왠지 수긍해 버렸다.

[정말 대단하다! 대단해!]

[그러게 말이야!]

루산은 혹시라도 멕 워커가 마나 진동 삼지창을 빼앗아 스피디를 공격할까 봐 얼른 달려갔다.

그러나 그 전에 멕 워커가 외부 확성기로 크게 소리쳤다.

- 항복!

***

시뻘게진 얼굴로 씩씩거리며 애꿎은 바위를 발로 차고 있는 바이크.

간간이 바이크를 쳐다보면서도 이 작은 부대의 우두머리가 루산이라는 것을 눈치 챈 멕 워커 파일럿.

“이름이 뭐지?”

루산이 003 조종석을 열고 나와 멕 손바닥에 앉아 판관처럼 아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양옆에는 001, 002가 멕 나이트 전용 대검을 든 채 위협적으로 서 있었다.

멕 워커에서 나온 파일럿이 고개를 쳐들고 대답했다.

“시에나. 시에나 타란토.”

소년처럼 짧은 단발머리, 잘 훈련돼 단단한 팔다리와 탄탄한 몸, 굵은 목소리.

그러나 목소리는 일부러 굵게 내려고 목을 긁는 것 같았다.

갸름한 얼굴선, 가슴과 허리와 골반의 윤곽이, 여자에 대해 잘 모르는 루산이 볼 때에도 여자였다.

“왜 공격했지?”

“공격이 아니라 방어를 했는데요?”

“뭐?”

“미쳤다고 멕 워커 타고 멕 나이트랑 싸우겠어요? 어차피 우리 쪽 멕 나이트가 달아나는 상황에서 걸음이 느린 멕 워커로는 도망치는 게 불가능하니까 목숨이나 건질 생각으로 처음부터 항복하려 했죠. 그런데 저 작은 멕이 죽일 듯이 달려오잖아요.”

시에나가 스피디를 가리키며 말했다.

바이크가 시에나와 눈을 마주치자 다시 뜨거운 콧김을 뿜어내며 노려보았지만, 시에나는 그 눈길을 가볍게 무시했다.

“그대로 죽을 수는 없지 않겠어요? 그래서 몸이 알아서 움직여 피하고 반응한 것뿐이에요.”

루산이 눈살을 찌푸렸다.

“일개 멕 워커 파일럿의 몸놀림이 아니던데?”

그 말에 시에나가 반가운 얼굴로 소리쳤다.

“그렇죠? 그쵸? 멕 워커 파일럿으로는 아깝죠?”

루산은 시에나의 이상한 반응에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몰랐다.

“아, 뭐, 조금 그렇기는 하더군.”

“마리노 놈들은 그걸 몰라요.

“응?”

“어렵게 마리노 파일럿 양성 학교에 들어갔거든요. 잘 모르세요?”

“어? 응.”

“2년 단기 교육으로 파일럿을 기르는 학교가 있어요. 거기서 다 이겼는데, 여자라고 멕 워커 파일럿으로 배정하지 뭐예요? 참 나, 오만 정이 다 떨어져 가지고······.”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길게 말고 짧게.”

“네!”

마리노 공화국은 작은 나라라 뱃사람과 각종 인력을 충당하는 배후 식민지를 여럿 거느리고 있었는데, 시에나는 그중 하나인 마카르스카 출신이었다.

시에나의 아버지는 뱃사람으로 일하다 젊은 시절 자신이 타는 화물선에 멕 나이트를 실어 나를 일이 있었다.

그때 거대한 멕 나이트의 위용을 보고 매료되어 멕 나이트 파일럿을 꿈꾸게 됐다.

그러나 이미 늦은 나이였기 때문에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꼭 멕 나이트 파일럿으로 기르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줄줄이 딸이 태어나는 바람에 꿈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할 수 없이 막내딸을 멕 나이트 파일럿으로 기르기로 마음먹고 어릴 때부터 단련을 시킨 것이다.

- 허허!

- 허 참!

듣고 있던 모리츠와 파비안이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마리노 공화국은 차별이 없고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멕 나이트 파일럿이 될 수 있다고 해서 비싼 학비 내고 들어가 열심히 훈련했는데, 알고 보니까 본토와 식민지 간 차별도 심하고, 남녀 차별은 말할 것도 없고, 그래서 항복한 거예요. 제국은 남녀 차별이 없다면서요? 능력만 되면 파일럿이 될 수 있나요?”

“제국? 무슨 제국?”

“에이! 다 알죠. 필센 제국군이 참전한 거잖아요.”

“어떻게 알아?”

“그럼 누가 아라드 왕국에 원군을 보냈겠어요?”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아직 적에게 노획된 적이 없기 때문에 항복한 포로 앞이라지만 섣불리 인정할 수는 없었다.

루산이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그러니까 마리노 측 멕 나이트가 패배하고 멕 워커로는 달아나기 어렵기 때문에 처음부터 항복하려 했단 말이지? 저 작은 멕과 싸운 건 저 녀석이 먼저 공격해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난 해프닝이고?”

“네!”

“제국에 항복해서 멕 나이트 파일럿이 되려고?”

“네!”

“그 말을 믿으라고?”

“사실인 걸 어떡해요?”

시에나가 울상을 지었다.

아버지의 꿈이자 자신의 꿈인 멕 나이트 파일럿.

그를 위해 어릴 때부터 또래 여자애들과 어울리지 않고 구슬땀을 흘리며 오직 수련의 나날을 보냈다.

마리노 공화국에서는 꿈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절망한 소녀는 필센 제국에서는 여자도 차별 없이 일한다는 소문을 듣고 귀순을 결심한 것이다.

“흐음!”

이 황당한 상황에 루산은 얼른 적당한 대답을 해 줄 수가 없었다.

사회 개혁 이후 필센 제국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남녀가 평등한 대접을 받는 세상은 아니었다.

바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법대를 수석으로 졸업해도 사건을 의뢰하려는 사람이 없어 일거리를 따내려고 발버둥을 쳐야 했다.

그나마 민간 분야는 나은 편이었다.

제국군에서 여성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황후나 공주를 호위하기 위해 여자 기사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기는 했으나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여자 기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필센 제국군이 은근한 적대 관계에 있는 마리노 공화국의 식민지 출신 포로를 굳이 파일럿으로 선발할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루산은 시에나가 멕 워커로 보여 준 실력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마리노 공화국도, 필센 제국도 안 쓴다고? 그럼 내가 쓰지, 뭐.’

루산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자신은 필센 제국에 별로 충성심이 없었고, 시에나 역시 마리노 공화국에 정나미가 떨어진 것 같으니 그것도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었다.

변경 군단에는 제국군에 비해 여자 요원들이 많이 활동하는 편이었다.

파일럿은 없었지만.

“멕 나이트 파일럿만 되면 상관없어?”

“네?”

“그러니까 전선에서 다른 멕 나이트와 싸우는 군인이 되고 싶은 거야 아니면 멕 나이트 파일럿이 되고 싶은 거야?”

“멕 나이트 파일럿만 되면 상관없어요. 멕 나이트에 타기 위해서는 군인이어야 한다면 군인이 되겠지만, 어쨌든 멕 나이트 파일럿이 되고 싶거든요.”

“좋아! 그럼 돌아갔다가 필센 제국 변경 8구역으로 와서 우르사의 주인을 찾아.”

“네?”

“이 자리에서 포로가 되면 널 멕 나이트 파일럿으로 만들어 줄 수가 없거든. 넌 아라드 왕국군 포로가 되어 고초를 겪게 될 거야.”

“아!”

“돌아갔다가 나중에 알아서 찾아와. 그럼 내가 반드시 널 멕 나이트 파일럿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루산을 올려다보는 시에나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꿈에 이르는 방법을 알게 된 소녀의 눈빛이었다.

루산은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필센 제국 변경 8구역 우르사의 주인.”

시에나가 잊지 않기 위해 되뇌었다.

루산은 바이크를 손짓으로 불렀다.

“시에나는 멕 워커 타고 달아나고, 바이크는 추격해. 죽이지는 말고.”

무슨 말인지 의아해하던 시에나는 루산의 의도를 금방 이해했다.

적의 추격으로부터 달아나는 모습을 보여야 의심을 사지 않고 복귀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바이크는 그런 생각 대신 복수할 기회를 얻은 데 만족했다.

두 사람이 자신의 멕에 탔다.

멕 워커가 뒤뚱뒤뚱 달아나고, 스피디가 겅중겅중 그 뒤를 쫓았다.

바이크는 루산의 지시를 거역할 수 없어 마나 진동 삼지창으로 찌르지는 않았지만, 복수하기 위해 힘차게 달려 뒤에서 쾅 밀쳤다.

멕 워커가 충격에 앞으로 넘어져 짊어지고 있던 짐이 와르르 무너졌다.

- 이 씨! 적당히 해!

멕 워커가 얼른 일어나 다시 뒤뚱뒤뚱 달렸다.

- 킥킥!

바이크는 또 다시 뒤에서 강하게 밀었다.

멕 워커도 또 다시 앞으로 꽈당 넘어졌다.

- 이런 옹졸하고 비겁한 자식! 대장님이 시늉만 하라고 했잖아!

-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 맛이 어떠냐?

바이크는 다시 뒤에서 힘차게 달려 멕 워커의 등에 몸을 날렸다.

그러자 시에나는 속으로 타이밍을 재고 있다가 얼른 멕 워커의 몸을 숙였다.

그러자 스피디가 멕 워커에 다리가 걸려 앞으로 강하게 넘어졌다.

쿠웅!

이번에는 시에나가 비웃음을 날렸다.

- 헤헤! 맛이 어떠냐?

- 너, 죽었어!

둘이 티격태격 쫓고 쫓기는 모습을 보고 있던 모리츠와 파비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흐유~!]

[으음~!]

잠시 후 모리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이렇게 돌려보내도 되는 것입니까? 첩자일지도 모르잖습니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다시 003에 올라탄 루산이 마나 통신으로 대답했다.

[첩자라면 빨리 돌려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알아낸 게 없으니까요.]

[변경 8구역이라는 말을 듣지 않았습니까?]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변경 8구역까지 와서 뒤지려면 마리노 공화국의 힘이 어마어마해야 할 것 같은데, 이 나라에서 싸우는 걸 보니 그 정도 능력까지는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음······.]

[애초에 실력 좋은 파일럿을 멕 워커 파일럿으로 쓰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보급품을 나르다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첩자로 썼겠어요?]

[그렇기는 하지요.]

[길 가다 주웠습니다.]

물론 정말로 올지 여부는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루산은 왠지 시에나가 꼭 찾아올 것 같았다.

눈빛을 보니 그랬다.

[네?]

[바이크가 실력이 약간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멕 나이트를 타고 있는데, 멕 워커로 저렇게 농락할 정도면 보통 솜씨가 아니죠. 여자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식민지 출신이 아니었다면 마리노 공화국에 엄청난 에이스가 출현했을 겁니다.]

[하긴, 하체 훈련이 제대로 돼 있는 것 같더군요. 순간 반응도 뛰어나고.]

세 사람은 시에나의 실력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리츠와 파비안은 여자라서 아쉽다는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았다.

‘나도 바덴을 만나지 않았다면 똑같은 반응을 보였겠지.’

능력, 일이라는 단어는 남자와 관련된 말.

능력 있는 여자와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루산은 법이 바뀌어도 관습과 풍토는 좀처럼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덕에 시에나를 주울 수 있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능력 있는 바덴의 얼굴이 떠올랐다.

든든하고, 고맙고, 미안하고, 또······.

그때 멀리서 스피디가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며 소리쳤다.

[적이다!]

그 뒤로 마리노 공화국의 멕 나이트 여러 대가 고개를 올라오고 있었다.

보급대가 습격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소탕 부대가 출동한 것이다.

지형과 숫자를 보니 싸울 만했다.

루산과 두 베테랑 파일럿은 쏜살같이 도망쳐 오는 스피디를 보고 쓴웃음을 지으며 전투 준비에 돌입했다.

[가죠!]

[네!]

마나 진동 기능을 활성화시켜 빛이 일렁이는 대검을 들고 003, 001, 002가 바람처럼 산길을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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