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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65화 (65/450)

65. 호스 쭉 당겨서 채혈기 바늘 꽂으면 끝 (무료 연재 마지막 편)

65. 호스 쭉 당겨서 채혈기 바늘 꽂으면 끝

<슈텐달 남작 사기 사건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미스터 핀이란 자를 기억하십니까?

왜 자살을 했는지 사실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배후 세력이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리고 설사 가족이 인질로 잡혀 있다 해도 가족을 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이 사람의 본성인데 목숨을 끊다니, 의문이 크게 남았습니다.

그런데 그 비밀의 일부를 엿본 것 같습니다.

보름스 가문의 유제품 공장 사장이던 루돌프 기센에게서 중요한 단서를 얻었습니다.

당시 돌아가신 보름스 자작님 곁에 찰싹 붙어 사업의 전체적인 방향을 잡아 주고, 마법 연구소와의 연결을 주선하고, 대출의 편의를 봐주고, 현지답사를 함께한 미스터 아인스라는 자가 있었죠.

루돌프 기센이 고 보름스 자작님을 배신하는 것이 두려워 손을 떼고자 할 때 자신을 재무부 관리라고 말하며 압박을 해 와 버티지 못했다더군요.

말뿐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만났던 은행 지점장들, 해외 공관장들이 미스터 아인스가 자신을 소개하고 신분 패를 내밀면 지극히 공손해지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고 합니다.

물론 신분 패가 가짜일 수도 있겠죠.

그래서 슈텐달 남작 사기를 주도했던 미스터 핀, 그자를 소개했던 남작의 심복 라이코 리엔츠를 다시 만나 추궁했더니, 그 역시 미스터 핀이 자신을 정부 고위 관리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위협했다는 겁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일들을 척척 해내는 것을 보면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답니다.

그 어마어마한 대출, 마법 연구소와의 협력, 해외 철광 매입··· 이런 건들을 주도했으니까요.

그러면 미스터 핀의 자살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죠.

배후에 대한 두려움뿐 아니라 배후를 숨겨야 한다는 의무감, 조직에 누를 끼치지 않겠다는 소속감과 책임감 같은 것이 동시에 작동하지 않았을까요?

관리에게는 그런 것들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비정상적인 은행 대출이 그렇게 수월하게 나오는 것이 과연 공작 아들의 압박만으로 가능한 것이냐?

안 되죠.

재무부 관리가 뒤에 있다면?

공작 아들보다 더 가능성이 높겠죠.

해외 자산 구입 역시 재무부 관리가 뒤에 있으면 수월하겠죠.

그러면 정말로 재무부 관리였는지 아니면 신분마저 사기를 친 것인지가 중요하겠죠.

그래서 재무부에 알아봤습니다.

물론 비공식적으로 발품을 팔아서 알아보았죠.

지난겨울, 근무 중에 순직한 것으로 처리된 관리가 있었습니다.

필립 바우첸.

인상착의를 물어보니 자살한 미스터 핀과 비슷하더군요.>

루산은 분노가 치솟고 소름이 돋았다.

‘재무부라니! 정말로 정부가 개입했단 말인가?’

“후우우- 하아아-”

그는 심호흡을 하고 스텐커가 보낸 편지를 계속 읽어 나갔다.

<이런 불법적인 일에 재무부 전체가 가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정부의 특성상 그렇습니다. 정부는 불법을 저지르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 아니거든요.

소수의 비리 경찰이 있다 해서 경찰이 비리를 저지르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정부라면 이 나라가 이미 엉망이 됐겠죠.

그렇다면 일부가 개입했다는 것인데, 그 일부가 누구이고 어디까지 관련돼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오베론 공작의 차남, 공업 은행, 툴롱 마법 연구소 그리고 재무부 관리들이 이 일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기에 필센 마법 연구소와 남방군 파일럿들도 엮여 있을 수 있다는 것 정도가 우리가 확보한 내용입니다.

남방군 관련해서도 조사 방법을 모색하는 중입니다.

차근차근 밝혀내겠습니다.

다행히 저들은 함부로 행동하지 못합니다.

궁지에 몰리면 자살을 택한다는 것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숨길 게 많다는 뜻이거든요. 함부로 정체를 드러내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조심스럽게, 그러나 지속적으로 근원을 찾아가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몸 건강히 지내시길 바랍니다.>

편지를 다 읽은 루산은 길게 콧숨을 뿜어냈다.

“흐음······.”

분노와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잠시 후 마음을 가라앉히고 짧게 답장을 썼다.

<내가 필요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당신을 만난 것을 신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신께 드리는 감사보다 당신께 보내는 감사가 훨씬 크다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습니다.

부디 늘 조심하세요.>

***

루산은 본부로 가서 가프 마법 연구소의 생산 시설 유치 계획을 설명했다.

통치자와 단장의 눈이 번쩍 뜨였다.

“와!”

젊은 통치자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것이 실현된다면 8구역 발전에 엄청난 도움이 된다.

일단 괴수를 사냥한 뒤 부산물을 채취해 이동하는 거리가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에 지원 팀의 효율이 몇 배는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사소한 일.

마법 연구소 생산 시설이 들어서면 그곳에서 일하는 마법사와 직원들이 들어오고, 새로 필요한 사람을 고용하고, 이들을 상대하는 상인들이 생기고, 부속 산업이 발달하게 된다.

마법 연구소 생산 시설 주위로 거주 구역, 상업 지역, 공업 지역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 신사업부 부장님은 스케일이 다르다니까!”

“크흠!”

통치자 율리안의 들뜬 반응이 거슬렸던 단장이 헛기침을 했다.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니니 진정하시지요.”

“···네.”

“풀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먼저, 안전은 어떻게 할 건가?”

앞말은 율리안에게 뒷말은 루산에게 하는 말이었다.

“레이크 시티, 앞으로 건설할 도시 이름입니다. 레이크 시티는 반달 호수 지역 중앙에 건설하는 델타 기지의 새로운 개척 기지에서 북쪽으로 쭉 올라가 호숫가에 들어설 예정입니다.

호숫가에 먼저 가프 마법 연구소 생산 시설을 짓습니다. 이걸 획기적으로 지어 호수의 괴수들이 이 시설 남쪽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만들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 시설 남쪽에 들어설 거주 구역이나 상업 구역의 안전이 보장됩니다.”

루산은 가프 마법 연구소 생산 시설에 대한 구상을 살짝 풀어 놓았다.

호수 가까이 최대한 붙여 동서로 길고 단단한 장벽을 친다.

괴수용 채혈기를 장벽 곳곳에 설치한다.

장벽 앞까지 괴수를 유인하여 사냥한 뒤 채혈기 바늘이 달려 있는 호스를 당겨 괴수의 몸에 꽂는다.

괴수의 피를 뽑는 호스와 기름을 뽑는 호스는 색깔로 구분한다.

호스를 통해 빨아들인 괴수의 피가 장벽 안쪽 거대한 통으로 모이고, 곧바로 마나 연료 추출 공정이 시작된다.

아직 가프 마법 연구소 측과 상의한 것은 아니지만, 무난히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신사업부 부장님은 어떻게 이런 생각들을 하시는 겁니까?”

율리안이 감탄하여 묻자 루산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괴수를 사냥하면 일단 사냥 단계에서 출혈이 발생하고, 채혈과 운반 단계에서 부패가 시작되면서 마나 농도가 떨어지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낭비적인 부분을 줄일 수 있을지 생각하다 보니 사냥하자마자 채혈기를 꽂고 바로 마나 연료를 추출하면 되지 않을까 싶더군요.”

“흐음!”

단장도 내심 감탄했다.

루산이 고안한 장벽 겸 생산 시설 구조도를 머릿속에 떠올리자 어떻게 하면 호수의 거대 괴수들로부터 안전을 지킬 수 있을지 걱정되는 것이 아니라 호수 괴수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루산의 이야기가 계속됐다.

“마나 연료와 윤활유 생산성이 급격히 향상될 테니 가프 마법 연구소에서 장벽을 기꺼이 세워 주겠죠.”

“호오! 좋아요! 아주 좋아요!”

이번에는 율리안이 호들갑스럽게 반응해도 단장이 나무라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의 사냥 수입도 급격히 올라갈 것입니다.”

루산의 말에 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괴수를 사냥하면 수거 팀이 부산물을 해체하고 수거하는 동안 멕 나이트와 정찰병이 수거 팀을 보호해야 한다.

그동안 사냥은 중단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식이면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채혈 과정이 급격히 단축되어 멕 나이트는 계속해서 사냥을 할 수 있게 된다.

사냥 수입이 증가한다는 것은, 군단 본부의 수입이 늘어난다는 뜻이고, 그렇게 되면 더 많은 멕 나이트를 구입할 수 있으며 더 많은 이주민에게 정착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가프 마법 연구소 생산 시설이 막아 주는 북쪽을 제외하고 나머지 방향은 레인보우 시티에 준한 방어벽을 설치하고 주변 지역 괴수들을 소탕해 나갈 것입니다. 단, 병력 증원이 필요합니다.”

“병력이 더 필요하다?”

단장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반문했지만, 루산은 주눅 들지 않았다.

본부에 막대한 수입을 가져다주고 8구역을 크게 성장시킬 도시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3전대는 자체 멕 1대, 레오파드 시제기 7대가 들어와 있습니다. 조만간 시제기가 3대 더 들어올 예정이니 총 11대의 멕을 보유하게 되죠. 그런데 경량 멕이 다섯 대입니다. 이건 호수 거대 괴수를 상대하기 어렵습니다. 최소 8대의 멕은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야 가프 마법 연구소가 쉬지 않고 돌아갈 수 있고, 괴수 부산물 수입도 의미 있게 증가할 겁니다.”

멕 나이트 8대 증원 요청.

단장이 얼굴을 와락 구겼다.

“한 대, 두 대도 아니고 여덟 대? 멕 나이트가 장난감이냐?”

“······.”

“세 대까지 해 줄게.”

“그걸로는 많이 부족한데요.”

“계획이 아무리 좋아도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야지.”

루산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단장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로는 레이크 시티 개척에 차질이 생긴다.

호숫가는 다른 지역보다 훨씬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뭐? 말해 봐.”

“가프 마법 연구소가 지금 제작하고 있는 기체는 완성형이 아닙니다. 일정 기간 험하게 굴려 문제점을 보완하려는 시험 기체죠. 어쨌든 가프 마법 연구소는 멕 나이트 생산이 처음이기 때문에 많이 만들면 많이 만들수록 경험이 쌓여 좋을 테니, 시험기라도 많이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겁니다. 원가로요. 그리고 장기 분할로요. 어차피 호숫가 사냥 수입 많이 올려서 갚아 나가면 되지 않을까요?”

“원가에 장기 분할로? 허허!”

단장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루산은 단장이 웃는 모습이 참으로 신선했으나 이 아이디어가 결코 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정확한 시기는 몰라도 레오파드는 제국군과 아라드 왕국에 팔려 나가게 될 것이고, 대전쟁이 발발하기라도 한다면 생각보다 많은 물량을 생산하게 될 것이다.

가프 마법 연구소는 이미 이러한 일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량 생산을 하기 전에 충분한 조립 능력, 생산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납품했더니 하자가 발생하면 오히려 큰일이 아닌가?

그러니 미리 많이 만들어 봐야 하는 것이다.

완제품도 아닌 시험 기체를 사 주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가프 마법 연구소는 지금 떼돈을 벌고 있었다.

원가 장기 분할 납부로 인해 위기를 겪을 만한 조직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로 협력을 해 왔습니다. 호숫가에 생산 시설을 건설하는 것은 가프 마법 연구소에 이로운 일이고, 더 많은 시제기를 운용하는 것 역시 레오파드 품질과 제작 능력을 높이는 일입니다. 거절할 리가 없다고 봅니다.”

“으음······.”

그동안 멕 나이트 대금을 원가에 장기 분할로 납부하는 경우는 없었지만, 루산의 말을 들으니 왠지 그럴듯했다.

옆에서 율리안이 거들었다.

“말이나 해 보죠. 돈 드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게 하지요.”

결국 단장은 루산과 함께 가프 마법 연구소를 직접 방문했다.

그곳에서 가프 측 고위 마법사들과 시제기 구매 계획과 레이크 시티 생산 시설 건설 계획에 대해 논의하고 일괄적으로 진행하기로 약속하는 협약서를 체결했다.

이렇게 술술 풀릴지 몰랐기 때문에 단장은 내심 당황했지만, 그래도 8구역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기꺼워 가슴이 벅차올랐다.

협약서 체결 이후에도 루산은 고위 마법사들에 붙들려 아라드 왕국 전쟁 전황, 실제 탑승자가 느끼는 레오파드의 특징, 반달 호수 옆에 건설하게 될 생산 시설 아이디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허허! 다 저 녀석 때문인 건가?’

가프 마법 연구소와 이 정도나 긴밀한 관계가 된 것은 루산이 세르펜스 사냥에 성공하고 레오파드의 성능을 전쟁터에서 성공적으로 증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루산과 가프 마법 연구소 사이의 은밀한 약속을 알지 못하는 단장은 루산이 마냥 예뻐 보였다.

그러나 결코 티를 내지는 않았다.

“전대장, 이야기 끝났으면 가세. 열차 끊기겠어.”

“아! 네! 갑니다.”

루산은 그리고 있던 호숫가 장벽 모양 생산 시설의 상상도를 후다닥 완성시키고 마법사들에게 말했다.

“말려 있는 호스, 쭉 당겨서 괴수 몸에 채혈기 바늘 꽂으면 끝난다니까요.”

“오오! 이런 생각을 왜 못 했을꼬?”

“역시 물이 고이면 안 돼. 외부인의 아이디어 하나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지 않는가!”

“보름스 부장님, 우리 종종 봅시다!”

루산은 가프 마법 연구소 고위 마법사들과 칼리슈에게 인사하고 나서 단장과 함께 마차를 타고 코부스 역으로 갔다.

[반달 호수 지역 개척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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