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공문이 왔어요
70. 공문이 왔어요
호리아 평원에서 마리노 공화국 원정군은 연료 부족으로 패퇴했다.
그것으로 전쟁은 사실상 끝이 났다.
아라드 왕국군과 아이젠 자작의 병력은 멕 나이트를 앞세워 마리노 공화국 원정군 사령부가 있는 항구까지 그대로 밀고 가 원정군 사령관을 포함한 많은 병력을 포로로 잡았다.
“필센 제국이 왜 이 전쟁에 개입했는지 모르지만, 뒷감당은 해야 할 거요.”
마리노 공화국 원정군 사령관의 말에 아라드 왕국군 사령관 니트라 장군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뭔 헛소리인지 모르겠으나 우리 왕국을 짓밟은 대가를 너희는 당장 감당해야 할 것이다! 여봐라, 저 침략자 놈들을 멕 나이트로 모조리 짓밟아 그대로 갚아 줘라!”
마리노 공화국 원정군 사령관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저, 전쟁법 위반이오!”
“전쟁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너희는 그 법을 지켜서 우리 병사와 백성을 짓밟았느냐!”
아라드 왕국의 멕 나이트 50여 대가 마리노 공화국 포로를 밀어 넣은 부둣가 진지 주위를 실제로 에워싸자 공화국 군인들은 두려움에 벌벌 떨고 비명을 질렀다.
다행히 니트라 장군은 아이젠 자작과 주위 참모들의 만류를 못 이기는 척 공격 명령을 중지했다.
원활한 포로 관리와 유리한 전후 협상 체결을 위해 과격한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그러나 아이젠 자작은 자신이 말리지 않았더라도 과연 포로를 짓밟으라는 명령을 중단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의 분노는 정당한 것이었다.
2년여의 전쟁으로 나라가 쑥대밭이 되었다.
많은 백성들이 죽었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백성들이 피란을 떠났다.
죽은 파일럿과 병사들, 무너진 건물과 부서진 멕들.
그렇지 않아도 가난한 나라인 아라드 왕국은 엄청난 피해를 입은 것이다.
노획한 멕 나이트 몇십 대로는 결코 극복되지 않을 피해였다.
결국은 마리노 왕국과 체결하는 전후 협상으로 얼마나 많은 배상을 받아내느냐가 중요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마리노 공화국 원정군 포로들이 무사할 것이다.
‘이 역시 장담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필센 제국군은 더 있을 필요가 없었다.
마리노 공화국이 필센 제국의 개입을 주장하는 것은 물증이 있어서가 아니라 갑자기 변한 전황과 처음 보는 멕 나이트의 등장 때문이지만, 공연히 더 오래 머물러 있다가 개입 증거를 들키기라도 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노획한 마리노 공화국 멕 나이트에 대한 처분과 수리 문제, 향후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본국에서 곧바로 사람을 보내올 것입니다. 우리 병력은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이젠 자작은 니트로 장군의 극진한 감사 인사를 받고 아라드 왕국 수도로 돌아와 국왕으로부터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받았다.
그런 뒤 필센 제국으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원시의 땅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북쪽으로 갔다.
필센 제국 남방군이 지키는 오베론 지방을 통과해 노바로 귀국하려는 것이다.
이는 자의적 판단이 아니라 노바에서 떠나오기 직전에 수도 군단 사령관이 내린 지시에 따른 일이었다.
“귀국할 때는 국경을 넘어 오베론 지방을 통과해 오시오.”
“남방군에 정말 문제가 있다면 우리가 아라드 왕국 전쟁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곧바로 아우로라 대륙에 알려지지 않겠습니까?”
“그걸 확인해 보려는 것이오.”
“······!”
“썩은 건 도려내야지.”
그렇다 하더라도 대전쟁을 촉발할 수 있는, 굉장히 위험한 방식이라고 아이젠 자작은 생각했지만,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수도 군단 제3 기동 전단 멕 나이트와 멕 워커는 국경을 넘어 필센 제국 오베론 지방으로 들어갔다.
오베론 지방.
필센 제국 영토의 8분의 1에 해당하는 광활한 땅.
3개 기동 군단과 3개 보병 사단으로 제국 남쪽을 수호하는 남방군의 주둔지.
이 오베론 지방으로 아무런 표식도 없는 멕 나이트와 멕 워커 100여 대가 남쪽에서 들어오자 국경을 지키던 남방군 멕 나이트들이 긴급 출동했다.
- 멈추고 정체를 밝혀라! 불응하면 공격하겠다!
‘대응이 빠르군.’
아이젠 자작은 그렇게 생각하다 멕 나이트에서 내려 걸어갔다.
크게 소리칠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국경 책임자를 불러 오게. 나는 비밀 임무를 수행하고 복귀하는 수도 군단의 아이젠 자작이다.”
***
국경 수비 대장이 달려오고,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수도 군단에 긴급 조회하여 신분을 확인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동안 수도 군단 3전단 멕은 남방군 지시에 따라 순순히 연병장으로 이동하고 멕에서 내려 대기했다.
“아이젠 장군님, 신원 확인했습니다. 조만간 특별 수송 열차로 수도 군단의 멕을 노바 외곽까지 실어 나를 것입니다.”
“고맙네.”
“다만 중간에 사령관님께서 잠깐 뵙자고 하십니다.”
“오베론 공작께서? 당연히 인사를 드리고 가야지.”
멕 운반용 특별 수송 열차가 도착하고 수도 군단 멕이 그 위에 실렸다.
한 번에 다 나를 수는 없었다.
1진과 함께 열차에 탄 아이젠 자작은 오베론 지방의 중심 도시 타나스에서 멈춰 섰다.
역에서 나가자마자 오베론 공작의 웅장한 성이 한눈에 들어왔다.
자동 마차가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아이젠 자작을 태워 성으로 들어갔다.
두려움은 없었다.
군인으로서 오베론 공작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작금의 상황이 조금 답답할 뿐이었다.
안내된 집무실의 문이 열리자 70이 다 된 공작이 여전히 정정한 모습으로 보고를 받고 있다가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젠 자작을 맞이했다.
아이젠 자작은 부동자세로 거수경례를 했다.
“남방군 사령관님을 뵙습니다!”
“반갑소, 아이젠 장군!”
두 사람 다 작위 대신 군 직함으로 서로를 불렀다.
한때 노바의 사교계를 휩쓸었다는 공작의 미모는 나이가 들어서도 남아 있었다.
원숙한 멋이 외모 전체에서 풍겨났으며 손짓 하나하나가 우아했다.
“앉으시오.”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물러나고 둘만 남았다.
“우리가 어디서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소만.”
“네, 사령관님. 5년 전, 개혁 헌법 수립 50주년 기념식을 겸한 이반 황제 폐하 추념식장에서 뵌 적이 있습니다.”
“맞아! 그런 것 같군. 그때 수도 군단에 부임했다고 했었나?”
“그렇습니다.”
“전선을 경험한 인재가 뛰어난 학생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수하고 다시 군으로 돌아간다. 참 좋은 시스템이야. 황제 폐하께서는 정말 제국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하셨지.”
현 황제가 아닌 이반 황제를 말하는 것이다.
위대한 황제와 동시대 - 외적의 침략에 맞서 싸우고 사회를 완전히 뜯어고치는 격동의 시대 - 를 살아온 노(老)공작은 잠시 추억에 젖어 들었다.
오베론 공작의 말은 아이젠 자작의 이력을 잘 알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오래전부터 기억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이번 일로 참모들이 급하게 찾아 보고했는지 모르지만.
‘물론 후자겠지.’
아이젠 자작은 그렇게 생각했다.
어쨌든 자신을 기억해 준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그때 차가 들어와 오베론 공작과 아이젠 자작의 상념을 깨웠다.
“드시오.”
“네.”
아이젠 자작은 잠깐 입술을 축이고 찻잔을 내려놓았다.
“사실 많이 놀랐소. 수도 군단 병력이 오베론의 남쪽, 아라드 왕국에서 나타난다면 누구나 그러지 않겠소?”
“맞습니다.”
아이젠 자작이 사죄의 뜻을 담아 인정했다. 그러나 사과하지는 않았다.
그럴 위치에 있지도 않았고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베론 공작도 사과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전쟁은 어떻게 되었소?”
아이젠 자작은 남방군 정보 요원들이 대강의 소식을 이미 다 파악했으리라고 보았지만, 성의껏 대답해 주었다.
“마리노 공화국 원정군을, 사령관 포함, 전원 포로로 잡았습니다. 대승이지요. 다만, 전후 처리 문제가 남았고, 협상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전쟁이 이것으로 끝이 날지 알 수 없는 일이고요. 아라드 왕국이 과연 이 전쟁의 피해를 복구해 낼 수 있을지도 걱정입니다.”
“어쨌든 대단한 일이오. 100대도 안 되는 멕 나이트를 투입해서 이 일방적인 전쟁을 역전시키다니, 장한 일을 하셨소.”
“운이 좋았지요.”
“그 운도 아무에게나 따르는 건 아니오. 허허허.”
오베론 공작이 찻잔을 들어 차를 마셨다.
아이젠 자작도 그를 따라 찻잔을 들고 오베론 공작을 마주 보았다.
아이젠 자작은 오베론 공작의 기운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지금까지 인자한 노(老)학자, 세련된 노(老)귀족 같은 모습이었다면 갑자기 성난 맹수 같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반 황제께서 살아계셨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소.”
“······.”
“남방군에 지시를 내리면 될 일인데, 굳이 수도 군단이 먼 길을 빙 돌아서 가다니···, 이 얼마나 낭비적이고 여러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일이란 말이오!”
“······.”
“수도의 귀족들 사이에 무슨 이야기들이 오가는지 알고 있소. 나를 복고파의 수괴로 부르고 자신들을 개혁 수호파로 칭한다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짓거리들을 하고 있어! 등 따시고 배가 부르니 헛짓거리들을 하고 있단 말이야. 황제 폐하와 함께 이 제국을 개혁한 게 누군데, 감히!”
오베론 공작은 분노했고, 아이젠 자작은 냉정하게 그 분노를 뇌리에 기억했다.
이것이 자신의 역할이었다.
그대로 가서 전하는 것.
이를 테면 메신저인 것이다.
“제국군의 순환 근무 시스템에서 남방군만 제외시키고, 제국군 편제에서도 제외하여 남방군을 세금이 아닌 내 재산으로 유지해 오고 있소. 누가 나를 제국의 적으로 몰고 가려 하는지 모르겠지만, 제국의 분열은 아우로라 대륙을 기쁘게 할 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오.”
침착하게 분노를 토한 오베론 공작은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듯 다시 찻잔을 들었다.
“젊고 유능한 장군에게 지저분한 협잡의 세상을 보이게 되어 부끄럽소.”
“별말씀을요.”
“이 또한 사람 사는 모습이지.”
“······.”
“아라드에서 세운 전공 정도면 이제 군단장인가?”
“······!”
“뭐, 인사권도 없는 늙은이가 기분 좋으라고 괜히 한마디 한 것이니 승진하면 내 덕, 승진 못 하더라도 덕담이라고 생각하시오.”
오베론 공작이 한때 사교계를 휩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농담했다.
사람을 쥐락펴락하는 능력이 일품이었다.
“감사합니다.”
아이젠 자작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바쁜 사람, 너무 오래 붙들고 있는 게 아닌가!”
오베론 공작이 일어서자 아이젠 자작도 일어나 경례를 했다.
“뵙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사령관님!”
“나도 반가웠소. 젊고 유능한 장군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기쁜 일이지. 장군은 협잡꾼들에 휩쓸리지 말고 승승장구하길 바라겠소.”
아이젠 자작은 대답 대신 미소를 짓고 공작의 집무실을 나왔다.
그리고 공작 가문의 자동 마차를 타고 역으로 가서 자신을 기다리는 열차에 올랐다.
멕 운반용 특별 수송 열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군쯤 되면 반은 이미 정치에 발을 담근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아이젠 자작은 자신의 능력으로 전쟁과 정치의 험난한 파도를 뚫고 여기까지 온 인물.
오베론 공작의 말을 100퍼센트 믿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제국이 분열하면 기뻐할 세력은 아우로라 대륙이라는 것.
이제 겨우 기동 전단장인 자신에게 정치적 힘은 없지만, 여기저기 휩쓸리지 않고 묵묵히 이 나라를 지탱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기사로서, 군인으로서 충성이고 명예였다.
특별 수송 열차는 노바 외곽에서 멈추었다.
수도 방위법에 따라 근위대의 멕 나이트를 제외한 모든 기체는 특별한 명령 없이 수도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수도 군단 3전단의 멕들은 노바 남쪽에서 내려 수도 외곽을 빙 돌아 서쪽에 있는 자신들의 기지로 복귀했다.
그리고 아이젠 자작은 곧바로 수도 군단 사령관을 찾아가 보고했다.
아라드 왕국의 전쟁과 오베론 공작과의 만남에 대해.
수도 군단 사령관은 모든 것이 기대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내용이었으나 오직 한 가지만 완전히 생소했다.
“가프 마법 연구소에서 만든 레오파드?”
“네, 사령관님. 지금 테스트 중인 기체인데, 기동성을 특화하여 아주 쓸모가 많습니다. 산악 기동은 물론이고 빠른 우회 기동이 가능하니까요. 모델도 여러 가지를 시험하고 있더군요. 이 기체가 없었다면 아라드 전쟁은 더 오래갔을 것입니다. 아라드 왕국에서도 곧바로 구입할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고 사정할 정도입니다.”
“음!”
사령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보도록 하겠소.”
“네.”
그로부터 얼마 뒤, 아이젠 자작은 수도 군단 3전단장에서 북방군 제3 기동 군단장으로 승진 발령됐다.
필센 제국 북부 전선으로 떠나게 된 것이다.
아이젠 자작은 자신의 이동 소식을 알리고 줄리아와의 결혼 의사를 묻는 편지를 루산에게 보냈다.
한편 가프 마법 연구소는 필센 제국 군무부에서 보낸 공문을 받았다.
<귀 연구소에서 테스트 중인 신형 기체 레오파드에 대한 획득 시험을 희망합니다.>
가프 마법 연구소가 흥분으로 발칵 뒤집혔다.
아이젠 자작이 보낸 편지와 가프 마법 연구소의 기쁜 소식은 거의 동시에 루산에게 전해졌다.
***
“···정말 잘됐군요.”
그러나 루산의 얼굴은 피곤으로 가득 차 그리 기뻐하는 것 같지 않았다.
면도도 며칠째 못 하고 잠도 멕 나이트 안에서 쪽잠을 자고 밥도 잠깐 짬이 날 때 빵 하나로 대충 때우는 실정이라 그럴 만했다.
“전대장님, 괜찮으십니까?”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달려온 칼리슈가 걱정된 표정으로 물었다.
루산이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웨이브 때는 늘 이렇고, 웨이브가 아닐 때에도 종종 있는 일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도······.”
그때 장벽 위에서 감시하던 개척병이 확성기를 들고 큰 소리로 외쳤다.
“11시 방향, 괴수 출현! 거대 괴수 출현!”
11시 방향에서는 이미 신입 파일럿이 탑승한 레오파드 스피디 두 대가 대형 괴수를 상대로 비틀거리고 있었다.
호수에서 나타난 거대 괴수가 공격해 온다면 그대로 찌그러질 것 같았다.
짝짝!
루산이 잠을 깨기 위해 자신의 뺨을 두드리고는 말했다.
“물러나 있으세요. 일단 끝나고 다시 얘기 나누죠.”
“아! 네.”
루산은 칼리슈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빠르게 조종실로 들어가 동화를 마치고 003을 움직였다.
기왕이면 테스트를 겸해 양산형 기체인 004나 005를 타려고 했는데, 전력이 부족한 3전대의 상황으로는 출력이 강한 003을 탈 수밖에 없었다.
루산이 최대한 빠르게 괴수의 숨통을 끊지 않으면 버티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후웅-
003이 파일럿의 컨디션과 달리 경쾌한 엔진음을 내며 겅중겅중 달려갔다.
거대한 아트라스 대검을 이제 신체의 일부처럼 자유롭게 휘둘러, 대형 괴수의 머리를 대검 끝으로 정교하게 베고 호수에서 올라오는 거대 괴수를 향해 달려갔다.
그 뒤로 대형 괴수가 쿵 하고 쓰러졌다.
- 곧바로 채혈기 꽂는 거 잊지 마! 그거 다 돈이야!
그 와중에도 낭비를 줄이고 수입을 높이려는, 짠 내 나는 철저함이 감탄스러웠다.
가프 마법 연구소 장벽 북쪽은 전쟁터였다.
크고 작은 8대의 멕 나이트와 거대한 방패를 든 8대의 멕 워커, 탐탐에 탄 정찰병 15명, 파수를 보는 개척병 30명이 매일매일 고함을 지르고 경고를 보내며 사투를 벌였다.
잠과 건강을 희생하여 안전과 수입을 얻고 있었던 것이다.
칼리슈가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이렇게나 바쁜데, 시험 기동 하러 갈 시간이 날지 모르겠네.”
노바의 제국군 관계자들 앞에서 레오파드 시연을 하는 데 루산을 시험 기동 파일럿으로 데려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 003이 겅중겅중 뛰어다니며 거대 괴수를 찌르고 관심을 끌어 채혈 장치 호스가 닿는 범위 안까지 유인해 왔다.
[우르사, 막아!]
[네, 대장님!]
시에나가 헤비 스틸의 방패를 가슴 높이로 들고 거대 괴수 앞을 막아섰다.
거대 괴수가 돌진하자 충격에 우르사의 몸이 죽 밀리고 발 뒤에 흙이 깊이 파였지만, 우르사는 절묘한 각도로 버텨 돌진을 저지해냈다.
“오!”
칼리슈가 감탄하는 사이, 003이 옆으로 돌아 아트라스 대검을 거대한 호수 괴수의 등에서 심장까지 찔러 넣었다.
푹!
단 한 방에 심장을 찌르는 놀라운 솜씨!
쿠쿵!
호수 괴수가 쓰러지자 땅이 흔들렸다.
- 멕 워커, 채혈기 당겨서 꽂아!
- 네, 전대장님!
지원 팀의 멕 워커들이 채혈기가 달린 호스를 당겨 괴수의 몸통에 꽂는 사이, 003은 어느새 다른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이들의 활약으로 장벽이 완공되기 전에 이미 저장소와 생산 설비가 먼저 증설되었다.
거대한 저장소에 채혈기에서 빨아들인 괴수의 혈액과 체액이 찰랑찰랑 들어차고 거기서 나가는 혈액이 마나 연료 추출 장치로 들어가는 광경에 칼리슈는 새삼 감탄했다.
“7구역에서 공급되는 물량을 곧 추월한다지?”
이곳에서 벌어지는 괴수와의 전쟁 소음은 곧 가프 마법 연구소가 떼돈을 버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주역은 003을 타고 이쪽저쪽 번쩍번쩍 나타나는 루산이었다.
“그래도 시간 내서 노바에 갈 수 있는 방안을 찾아봅시다, 전대장님.”
칼리슈가 중얼거렸다.
또 다른 품목으로 떼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