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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75화 (75/450)

75. 마음이 가는 쪽으로 논리는 뒤따른다

75. 마음이 가는 쪽으로 논리는 뒤따른다

루산은 생각했다.

바덴? 줄리아?

바덴에게 사과하기로 한 것이 줄리아를 만나 보기로 한 것보다 먼저였다.

바덴을 만나려면 장원? 집?

바덴이 매일 늦게까지 일한다는 것은 알지만, 당숙의 장원을 상속받은 뒤로 지금까지 장원에서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노바에 갈 일이 있다고 미리 편지를 썼기 때문에 아마도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바덴의 집으로 가자.’

이런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나름의 논리를 동원한 일련의 사고 과정이 있었지만, 사실 그 논리라는 것의 출발은 마음이었다.

마음이 먼저 가는 쪽으로 논리가 봉사한 것이다.

루산은 그 마음을 애써 부정하며 논리 하나를 추가했다.

‘어차피 클라크를 맡기려면 그쪽으로 가야지. 멕 나이트 기동 시험장에 머물게 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바덴의 집으로 가는 판단은 여러 모로 옳았다.

마차가 주택가 골목으로 진입해 그녀의 부모가 운영하는 동네 빵집으로 들어가는데 마침 바덴이 집 앞에 도착해 전조등을 막 끄고 자동 마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루산이 생각한 대로 바덴은, 루산이 집으로 찾아올 것 같아 일거리를 잔뜩 싸 들고 평소보다 훨씬 빨리 퇴근한 것이다.

루산은 바덴이 반가우면서도 지은 죄가 있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마차가 멈추고, 차비를 지불한 루산은 클라크에 이어 마차에서 내렸다.

“이랴!”

은은한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마차가 떠나갔다.

“안녕하세요, 미스 고슬라.”

클라크의 인사에 바덴은 하루의 피곤을 지우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집사님.”

그러고는 루산을 쳐다보았다.

루산은 침을 꿀꺽 삼켰다.

바덴이 인사했다.

“오셨어요, 기사님.”

“네. 잘 지냈나요, 미스 고슬라?”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네. 다행입니다.”

살짝 어색한 침묵이 흐르려 하자 루산은 얼른 말했다.

“아! 클라크를 며칠 맡겨야 할 것 같아서요.”

“네! 동생들도 좋아할 거예요.”

바덴 역시 애써 목소리를 높이며 대답했다.

“그럼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내가 들어가면 공연히 번거로움을 끼칠 것 같으니까요.”

“···알겠습니다.”

“클라크, 폐 끼치지 말고 잘 지내고 있어.”

루산의 당부에 클라크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여러 날 남의 집에 맡기는 게 이미 폐를 끼치는 건데······.’

그러나 미안해서 공연히 잔소리를 하는 루산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클라크는 공손히 대답했다.

“잘 지내고 있을게요. 기사님도 건강 잘 챙기세요.”

루산이 들어가라고 손짓하자 바덴이 클라크를 데리고 들어갔다.

예의 바른 클라크가 밝게 인사하는 소리, 바덴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환영하는 소리, 잠시 후 바덴의 쌍둥이 동생들이 꺅꺅거리며 격렬하게 반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루산은 절로 미소가 피어났다.

얼마 안 있어 바덴이 나왔다.

“기사님, 저녁 안 드셨죠?”

“네. 미스 바덴은?”

“저도 아직······. 제가 살게요. 타세요.”

“내가 사죠.”

만나서 사과를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던 루산은 이거다 싶어 바덴의 제안을 얼른 가로채며 손을 내밀었다.

바덴이 주저하다가 자동 마차 열쇠를 건네주었다.

열쇠를 넘겨줄 때 두 사람의 손이 살짝 닿았다.

놀랍게도 이 찰나의 접촉을 두 사람 모두 선명하게 느끼고 있었지만, 둘 다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바덴을 옆에 태운 루산은 전조등을 밝히고 자동 마차를 서서히 출발시켰다.

막상 자동 마차가 주택가 골목을 나와 대로로 접어들자 루산은 막막해졌다.

‘어디로 가지?’

노바에서 외식을 해 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할 수 없지.’

루산은 그나마 잘 아는 곳으로 자동 마차를 몰았다.

옆에서 바덴은 치맛자락을 꼭 쥐고 있었다.

“저······.”

“그······.”

두 사람이 동시에 입을 뗐다.

“기사님 먼저 말씀하세요.”

바덴이 더 빨랐다.

루산은 쓸데없는 양보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네. 그때 일은 정말 어떻게 사과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정말 다시 한번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미스 고슬라.”

바덴은 살짝 실망했으나 루산답다고 생각했다.

“지난 일은 이제 거론하지 않기로 해요, 기사님.”

바덴이 미소를 지으며 똑 부러지게 말했다.

“아, 네!”

루산은 긴장한 신병처럼 대답하고 운전에 집중했다.

두 사람의 침묵 속에서 자동 마차는 법원 앞 대로를 지나 한참을 달리다 근처에 제국 기사 아카데미와 노바 대학이 있는 대학로로 진입했다.

***

똑똑한 바덴은 루산이 왜 이렇게 멀리 왔는지 금방 짐작했다.

20대 초반에 노바를 떠난 루산은 여자 - 자신을 여자로 보지 않더라도 최소한 지인 - 와 어디에서 외식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그나마 아카데미 시절 약혼녀와 다녀 본 기억으로 자신을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다.

살짝 불쾌할 뻔했으나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의 인생이 그만큼 고달팠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안쓰럽다는 마음도 들었다.

루산은 대학로 노천카페 거리에 자동 마차를 댔다.

가로등이 밝게 비치는 길거리 테이블에 앉아 청춘의 기운을 발산하던 대학생들, 데이트하는 젊은 남녀들이 자동 마차에서 내리는 우아한 여성과 균형 잡힌 탄탄한 몸매의 남성을 일제히 쳐다보았다.

“오!”

“와!”

루산은 시끄러운 대학생들 사이에서 빈자리를 하나 발견하고 얼른 바덴을 앉힌 다음 식사와 음료를 주문했다.

바덴은 기분이 좋아졌다.

오랜만에 와 보는 젊음의 거리에서 어린 후배 - 그래 봐야 몇 살 차이 안 나겠지만 - 들의 동경과 선망의 시선을 받는 것도 좋았지만, 젊음의 기운에 동화되어 정말로 데이트하는 기분에 설레고 즐거웠다.

늘 일에 치여 살다가 얼마 만에 느껴 보는 기분인지 몰랐다.

루산이 자신의 옛 애인과 와 본 장소일 것이라는 생각은 잊어 주기로 했다.

싸고 간단한 음식이어도 상관없었다.

배가 고파서였겠지만, 분위기 덕에 무척 즐겁고 맛있게 먹었다.

그러나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며 나누는 이야기는 젊음, 청춘과는 거리가 멀었다.

루산이 물었다.

“은행 대출을 최대로 얼마까지 할 수 있을까요?”

“대출은 왜요?”

바덴이 찻잔의 시원함을 느끼며 되물었다.

“이거는 비밀인데······.”

루산이 목소리를 낮추고 바덴 쪽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청춘의 목소리들이 너무 시끄러워 작게 말하면 잘 안 들리기 때문이었다.

바덴도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마치 두 남녀가 차를 마시다 말고 갑자기 마음이 동해 키스를 하려는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전혀 아니었다.

“아라드 왕국 전쟁이 끝났어요. 변경으로 들어오는 피란민 이주자가 끊긴다는 말이죠. 광고를 통해 개척민 지원자를 더 많이, 더 빨리 모을 필요가 생겼어요. 그리고 일단 그 지원자들은 레이크 시티로 오게 될 겁니다. 내가 그 도시의 책임자로 향후 10여 년 동안 징세권을 갖게 될 거라는 이야기는 했죠?”

“네.”

편지로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레이크 시티를 크게 키울 겁니다. 크고 빠르게 개발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해요. 빨리 성장시킨 만큼 회수도 빠르죠.”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그리고 이번에 노바에 온 건······.”

이 이야기는 더 중요한 비밀이라 루산이 바덴 쪽으로 몸을 더 기울였다.

너무 가까워 바덴은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레오파드라는 신형 멕 나이트 테스트 때문이에요. 조만간 제국군에 납품하게 될 겁니다. 물론 이번 획득 시험 이후에도 제국군의 요구 사항을 적용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요.”

“저번에 투자하신 신화 공업사와 관련된 이야긴가요?”

역시 바덴은 말이 잘 통했다.

“네. 신화 공업사에도 추가로 투자할 생각인데, 신화 공업사 외에도 레오파드의 다른 부품을 생산하는 회사들이 많거든요.”

루산은 레오파드 부품을 생산해 가프 마법 연구소에 납품하는 회사들 목록을 적어 넣은 봉투를 사랑의 편지처럼 조심스럽게 건넸다.

바덴은 그것을 펼쳐 읽어 본 뒤 자신의 서류 가방에 넣어 소중하게 보관했다.

“이 회사들에도 투자할 생각입니다. 알아봐 주세요.”

“아직 얼마나 팔릴지 결정된 게 아니지 않나요?”

“그러니까 지금이 기회죠. 이건 팔립니다. 제국군과 아라드 왕국에 팔릴 거예요. 그리고······.”

루산은 의자를 아예 바덴 옆에 바짝 붙이고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마치 애인과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달콤한 사랑의 말을 속삭이는 것처럼 보였다.

“아라드 전쟁이 끝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전쟁의 전조가 보여요. 이건 가프 마법 연구소 측의 제보입니다. 물론 언제, 어느 정도 규모로 발생할지는 모르죠. 그래도 군에서는 당연히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기 때문에 레오파드 판매량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할 수가 있습니다.”

“아!”

루산의 입김이 간지러워서인지 말의 내용이 심각해서인지 바덴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바덴은 잠시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상황을 정리해야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녀가 루산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청춘들의 소음이 너무 시끄러워 작게 말하면서 내용을 전달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니까 별장 사업을 담보로 은행에서 최대한 대출을 끌어와 레이크 시티 개척과 레오파드 관련 회사들에 투자해야 한다는 말씀이죠?”

“흐음······.”

루산이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몸에서 힘이 쭉 빠져 견딜 수가 없었다.

“그, 그렇죠.”

“기사님, 이 이야기를 피닉스 제철 슈텐달 남작님과 공유해도 될까요?”

“왜죠?”

“피닉스 제철은 규모가 워낙 커서 기반 설비 건설에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건설이 진행될 때마다 그때그때 공사 대금을 조금씩 지불하기 때문에 보유하고 있는 대출금 액수가 엄청날 거예요. 슈텐달 남작도 이 투자에 끼워 주고 그 자금 일부를 빌리는 거죠.”

“흐음······.”

루산은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넓은 슈텐달 지방을 담보로 정상적이라면 나올 수 없는 엄청난 액수를 대출했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자금이 막대했다.

그 자금을 이용할 수 있다면 별장 사업을 담보로 빌리는 것보다 훨씬 큰 자금을 동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심각한 내용이었지만, 청춘의 열기에 동화된 루산은 갑자기 장난기가 돌아 바덴의 귀에 대고 더 간지럽게 속삭였다.

“통이 크시군요, 미스 고슬라.”

“으음······.”

바덴이 신음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고는 혼자 당할 수 없어서 루산의 귀에 대고 복수했다.

“기사님이 통이 큰 거죠. 저는 아이디어 하나를 보탰을 뿐.”

“하아······. 그런가요? 어쨌든 공유하세요. 함께 갈 분이니까.”

루산은 슈텐달 남작에게 이 정보를 제공하고 그의 막대한 자금을 이용하기로 했다.

자신이 아니었다면 슈텐달 남작은 이미 망했을 것이고 대출받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자금을 이용하는 데 거리낌은 없었다.

이후에도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자작나무숲 장원과 새로 개장한 바람의 언덕 장원의 별장 사업 수지와 전망, 새로운 장원 별장 추진 상황, 변경 투어 모집 현황, 개척민 모집 아이디어··· 할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모두 사업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두 사람은 어떤 사랑의 밀어보다 가슴이 두근거렸고, 몸이 저릿저릿했다.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사업 이야기에 푹 빠져 있던 두 사람은 어느새 대학생들과 청춘 남녀들이 돌아가고 주변에 빈자리가 많아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때 마침 대학로 입구에 높이 설치된 시계탑에서 밤 11시를 알리는 종소리를 울렸다.

땡- 땡- 땡-

루산은 아쉬움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12시까지 돌아가 봐야 해요.”

“아! 그럼 서둘러야죠.”

두 사람은 자동 마차를 타고 출발했다.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눈 것뿐인데도 격렬한 운동을 한 것처럼 몸에 힘이 없고 나른했다.

도로에는 다니는 마차와 자동 마차도 거의 없었다.

멕 나이트 기동 시험장으로 빠르게 달리는 동안 루산과 바덴은 말이 없었다.

아쉬움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바덴이 침묵을 깨고 물었다.

“그럼 언제 또 나오시나요? 대출 가능 금액과 슈텐달 남작님과의 만남 결과를 알려드려야 할 텐데요. 내일도 나오시나요?”

“잘 모르겠어요. 앞으로 하는 테스트는 더 격렬해질 것이라서 나올 수 있을지······.”

그리고 나온다 해도 바덴 말고 만날 사람이 또 있었다.

“그래도 테스트가 끝나면 어차피 클라크를 데려가야 하니 돌아가기 전에는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네.”

자동 마차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두 사람은 마침내 노바 외곽에 있는 멕 나이트 기동 시험장 입구에 도착했다.

루산이 운전석에서 내리자 바덴도 조수석에서 얼른 내려 운전석 쪽으로 걸어갔다.

“혼자 돌아갈 수 있겠어요?”

“그럼요. 길눈이 어두운 편은 아니거든요. 표지판도 잘 돼 있고 전조등도 밝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도······.”

루산은 밤에 외곽 도로를 운전해 돌아갈 바덴을 생각하니 걱정이 되었다.

“밤에 운전하는 건 늘 있는 일이니까 걱정 마세요. 기사님보다 잘할걸요?”

자신을 안심시키려는 바덴의 과장된 목소리에 루산은 피식 웃었다.

그러나 좀처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걱정 때문인지 아쉬움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때 기동 시험장 입구를 지키던 초병이 전조등 불빛을 보고 다가왔다.

“무슨 일입니까? 여기는 민간인 출입 금지 구역입니다. 애정 행각은 다른 데 가서 하세요.”

바덴의 얼굴이 빨개졌다.

루산이 서둘러 말했다.

“그런 게 아니라 복귀하는 테스트 파일럿이에요. 금방 들어갈 겁니다.”

“아, 죄송합니다!”

초병이 얼른 돌아갔다.

“갈게요. 조심해서 가세요, 미스 고슬라.”

“네, 기사님.”

루산이 살짝 손을 들어 보이고는 출입문 쪽으로 걸어가고, 바덴은 그런 루산을 지켜보았다.

‘애인을 군대에 보내는 여자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바덴은 공연히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출입문을 통과한 루산이 어둠 속에 묻혀 완전히 보이지 않았다.

원망조차 잊기로 했지만, 아쉽고 서운하여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시간은 어느새 밤 열두 시.

마법이 풀릴 시간.

“아! 내일도 할 일이 많은데 언제 집에 가고, 가져온 서류는 또 언제 검토하지?”

바덴은 운전석에 올라 능숙하게 자동 마차를 돌려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부아앙-!

전조등을 밝힌 자동 마차가 산길을 넘어가는 속도가 무시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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