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달려라, 002
76. 달려라, 002
악어와 상어를 섞어 놓은 듯한 초대형 괴수가 물속을 빠르게 헤엄쳐 호숫가로 다가왔다.
반달 호수 최상위 포식자 중 하나인 에라스였다.
호수 가장자리로 갈수록 물이 점점 얕아지자 거대한 몸이 물 밖으로 드러났다.
푸하악-!
몸이 드러나면서 물이 뒤집혔다.
관성에 의해 물 위를 미끄러져 온 에라스는 호숫가 얕은 물에서 한가로이 물고기를 잡아먹고 있던 스피노의 다리를 덥석 물었다.
꾸에에-!
놀란 스피노가 괴성을 지르며 발버둥 쳤지만, 호숫가 대형 괴수도 에라스 앞에서는 악어에 물린 아기 사슴 같았다.
푸하아아-
촤촤촤촤촤-
물이 거칠게 뒤집히고 요동쳤으나 저항이 무색하게 스피노는 물속으로 끌려갔다.
호숫가의 다른 괴수들이 그 광경에 놀라 일제히 방사형으로 퍼져 달아났다.
장벽의 완공된 부분 위에서 호숫가를 감시하던 개척병 하나가 그 광경을 목격하고 확성기에 대고 소리쳤다.
- 북동쪽 방향에서 인스턴트 웨이브 발생! 괴수들이 온다! 수가 많다! 대기조, 즉시 투입하라!
호루루루- 호루루루-
호루라기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인간들이 내는 소음에 놀라 다른 방향으로 진로를 바꾸는 괴수들도 있었지만, 에라스의 공포에 사로잡힌 녀석들은 눈에 뵈는 것이 없는 듯 처음 잡은 방향 그대로 직진했다.
지쳐 쉬고 있던 멕들이 화들짝 놀라 자세를 잡고 소음 발생기를 작동시켰다.
- 애애애애애애!
- 삐유삐유삐유!
그 요란한 소리를 들은 괴수들은 주저하고 방향을 돌리는 녀석들과 화가 나 더 달려드는 녀석들로 분리되었다.
쿵쿵쿵쿵!
대기조에 속해 있던 우르사가 대형 철퇴를 어깨에 메고 땅을 울리며 장벽 방어선으로 나타났다.
- 잠에서 덜 깬 사람들은 정신 차려! 다들 일어나!
쾅쾅쾅쾅!
- 일 끝나고 다시 쉬어! 움직이라고!
3전대에서 자신이 넘버 투라고 - 넘버 투 역할을 해 내야 한다고 - 생각하는 바이크가 의욕 넘치는 목소리로 피곤에 절어 있는 파일럿들을 들깨웠다.
바이크의 재촉이 아니더라도 파일럿들은 습관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잠이 들었던 멕 워커 파일럿들은 옆에 눕혀 놓았던 멕 나이트용 대형 방패를 들었고, 멕 나이트들은 대기조까지 모두 장벽 방어선으로 올라왔다.
탐탐-
탐탐-
밀려오는 괴수의 수가 너무 많아 탐탐 정찰병들은 장벽 뒤로 모두 빠졌다.
3전대 담당인 장벽 동쪽 끝부분에서 시작된 괴수 떼의 갑작스런 이동이지만, 괴수들의 규모와 이동 방향으로 볼 때 1전대가 지키는 구역까지 모두 강하게 영향을 받을 상황이라 장벽을 지키는 모든 병력이 잔뜩 긴장했다.
- 멕 워커들은 장벽 연결 공사가 덜 된 부분으로 돌진하지 못하게 막아!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바이크는 열심히 목청을 높이고 명령을 내렸다.
딱히 지시를 내리는 다른 사람도 없었기에 멕 워커들은 바이크의 말에 따라 공사가 덜 돼 취약한 지점으로 얼른 움직였다.
쿵쿵쿵쿵-!
우르르릉-!
땅의 흔들림이 점점 가까워지고 괴수들이 달려들었다.
북동쪽에서 시작되어 서쪽으로 이어지는 인스턴트 웨이브와 장벽을 지키려는 인간들과의 충돌이 시작된 것이다.
쿠쿵!
터덩텅!
강력한 충돌로 인해 멕 워커들로 만든 방패벽이 출렁였다.
우르사가 얼른 멕 워커와 괴수 떼 사이로 뛰어들어 대형 해머를 강하게 내리쳤다.
후웅-
콰작!
중대형 괴수들이 질주를 방해하는 멕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난전이 벌어졌다.
어지러운 싸움은 장벽 동쪽에서 중앙으로, 중앙에서 서쪽으로 삽시간에 번졌다.
바이크는 우르사의 대형 해머를 쉴 새 없이 휘둘렀고, 002에 타고 있는 시에나는 할 수 없이 마나 진동 대검으로 괴수들의 숨통을 빠르게 끊어 나갔다.
대형 괴수들의 강력한 돌진을 버티지 못하고 뒤로 튕겨 나간 멕 워커가 괴수의 발에 그대로 밟히려는 순간, 레보르크가 탄 아이언 워리어가 괴수의 몸을 들이받고 연속적으로 녀석의 목을 베어 버렸다.
촥!
그 묵직하고 빠른 공격에 괴수가 단번에 쓰러졌다.
[쯧쯧! 들키면 어쩌려고 그리 깔끔한 연계기를 선보이나, 형씨? 그리고 목을 베어 버리면 귀한 피가 펑펑 낭비되는 거 몰라?]
파펜은 난전의 와중에도 레보르크의 움직임까지 파악하고 훈계를 했다.
[신경 끄시오. 이 상황에서 1전대 놈들이 이쪽을 살필 정신이나 있겠소?]
[그건 그래. 그럼 잘해 보라고! 크크크.]
파펜은 자신을 향해 돌진해 오는 괴수를 슬쩍 흘리고 간간이 다리를 쓱 벨 뿐 이 난전에 크게 개입하지 않았다.
다른 파일럿들이 욕을 하든 말든 장벽 공사 현장이 습격 받든 말든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그가 그렇게 설렁설렁 했어도 이 인스턴트 웨이브는 결국 무사히 막아냈다.
3전대의 멕 나이트 7대, 멕 워커 8대, 1전대의 멕 나이트 10대, 멕 워커 9대가 동원되었기 때문에 강한 충돌로 일부 멕이 찌그러지기는 했어도 결국 공사 현장을 아무 탈 없이 지켜낸 것이다.
동쪽 끝에서 시작된 인스턴트 웨이브는 시작 때와 마찬가지로, 동쪽, 중앙, 서쪽 구역 순으로 끝이 났다.
파일럿들은 긴장된 마음으로 격렬한 싸움을 한 탓에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멕 워커들은 싸움을 마친 뒤에도 쉬지 못했다.
허실이 발생하기 전에 신선한 피를 더 많이 뽑으려면 곧바로 작업해야 했다.
멕 워커들이 장벽에 설치돼 있는 호스를 길게 당겨 괴수 사체에 무시무시한 채혈 바늘을 푹푹 꽂았다.
괴수의 몸에서 피가 쭉쭉 빠져나갔다.
그렇게 채혈 장치를 작동시킨 뒤에는 이빨과 발톱을 뽑기 시작했다.
그 다음으로 가죽을 벗기고, 혈액과 체액이 완전히 빠져 나간 괴수부터 사체를 분해해 뼈와 힘줄을 분리해 내고, 각종 내장 기관에서 필요한 부분을 추출해 용기에 담았다.
가프 마법 연구소에서 구입하지 않는 괴수 부산물들은 다른 마법 연구소에 납품하기 위해 일단 라돔 시까지 운반하게 되지만, 어쨌든 가장 용량이 크고 무거운 괴수 혈액과 체액을 즉석에서 해결할 수 있게 되면서 막대한 비용을 줄이고 엄청난 수입 증진 효과를 가져 오게 되었다.
멕 워커들이 작업하는 동안 멕 나이트들은 피와 고기 냄새를 맡고 새로이 달려드는 괴수를 처치하고 너무 많을 때는 쫓아버리는 일을 하면서 휴식을 취했다.
죽은 괴수의 고기를 미끼로 사실상 무한 사냥도 가능하지만, 잘못하다가 어마어마한 괴수 떼를 끌어오면 큰일이기 때문에 장벽이 완성될 때까지는 이 정도 사냥을 했으면 유인을 자제하고 쉬기로 했다.
멕 나이트 파일럿들이 격렬한 사냥 이후 막간을 이용하여 달콤한 휴식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먼저 사냥이 끝나 부산물 수거 작업도 일찍 마무리 지은 3전대의 멕 워커 파일럿 하나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1전대와 3전대 담당 구역 경계 지점에 쓰러져 있는 대형 괴수 쪽으로 다가갔다.
쓰쿵- 쓰쿵-
크고 손상도 별로 없어 상당한 금액으로 환전될 것 같은 스피노의 사체였다.
1전대 멕 워커들이 작업도 하지 않고 있었고 정황상으로도 3전대 멕 나이트가 해치운 것 같았지만, 그동안 1전대 파일럿들이 워낙 패악스러워 마음대로 작업할 수는 없었다.
- 이 스피노, 작업해도 되겠습니까?
그 물음에 파펜이 대답했다.
- 해도 돼. 쟤가 잡은 거거든.
파펜이 탄 멕 나이트 손가락이 002를 가리켰다.
시에나가 잡았다는 뜻이다.
- 아, 네!
멕 워커 파일럿이 채혈 바늘이 달린 호스를 죽 끌어와 스피노 사체에 푹 찔렀다.
그런데 그때 1전대 멕 나이트 세 대가 땅을 쿵쿵 울리며 다가왔다.
- 지금 뭐 하는 짓이지? 우리가 잡은 걸 왜 빨아 먹으려는 너야? 미친 거 아니야?
- 이야, 3전대 많이 컸네.
3전대 멕 워커 파일럿이 당황했다.
- 우, 우리 쪽 파일럿이 잡은 거라고······.
- 지금 장난해? 우리가 잡은 거라고! 어이가 없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파펜이 능구렁이처럼 개입했다.
- 아이고! 이걸 어쩌나. 내가 착각했네. 우리 쪽에서 잡은 줄 알았어. 어이, 뭐해? 얼른 바늘 빼! 이거 미안하게 됐어. 아직 채혈기 가동 안 됐으니까 조금도 빨아 간 거 없어. 그렇지?
- 네? 그, 그럼요! 아직 작업 시작도 안 했습니다.
- 그렇다잖아. 경계를 넘어 우리 담당 구역으로 더 많이 들어와 있지만, 양보할 테니까 그냥 넘어가자고.
양보라는 말이 1전대 파일럿들의 신경을 건드렸다.
중대형 괴수들과의 격렬한 싸움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요 며칠 동안 쌓인 게 많았다. 슬슬 건드리는 것이 마치 자신들을 놀리는 것 같았다.
제대로 밟아 줄 때가 된 것이다.
1전대 파일럿 하나가 빠르게 마나 통신을 돌렸다.
[이놈들 정말 안 되겠네. 이제는 우리가 사냥한 걸 슬쩍하려 하다니, 참! 다시는 엉겨 붙지 못하게 밟아 버리자고!]
[음!]
그때 파펜도 마나 통신기로 말했다.
[지금이야, 형씨! 멕 팔다리 하나씩 뽑아 버려!]
[알았소!]
파펜은 시에나를 딱히 염두에 두지 않았다.
루산이 셋이서 어깨치기를 하라고 할 만큼 시에나의 기본기가 어느 정도 튼튼해 보였지만, 어린 여자애가 실력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을까 싶었다.
사실 레보르크를 믿는 것도 아니었다.
움직임을 보니 제대로 수련한 기사 같기는 했다.
그러나 멕 나이트라는 무기는, 파일럿의 실력이 어느 정도만 된다면, 파일럿 간의 실력 차이를 오히려 줄이는 역할을 한다.
맨몸으로 칼싸움을 하면 작은 실수 하나에도 승부가 나지만, 두꺼운 갑옷을 입고 칼싸움을 하면 서로 상처를 주기 어려워 계속 싸우게 되는 것이다.
마나 진동 대검이 두꺼운 철판조차 자른다고는 해도 서로 실력이 비슷하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어깨치기는 마나 진동 대검을 사용할 수 없었다.
두툼한 철갑을 입은 파일럿들이 무기 없이 맨손으로 싸우는 셈이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기사라 해도 혼자서 훨씬 많은 수의 멕 나이트에 둘러싸이면 전에 바이크처럼 이리저리 떠밀리다 멀미를 하고 안에서 토하게 되는 것이다.
파펜이 믿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
어느 정도의 실력과 남다른 머리를 믿었다.
애초에 어깨치기란 자신보다 약하고 겁이 많은 상대를 더욱 주눅 들게 하기 위해 여러 명이 달려들어 못 살게 구는 짓이다.
어깨치기를 하는 어떤 파일럿도 상대를 해치거나 상대 기체를 크게 훼손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하면 큰 벌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바깥세상의 법보다 훨씬 가혹한 변경의 특성상 중형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파펜은 변경 파일럿들의 심리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 다시는 까불지 못하게 만들어 주마!
1전대 멕 나이트 세 대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스피노에 채혈 바늘을 꽂았던 3전대 멕 워커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대로 있으면 먼저 튕겨 나가 찌그러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때 레보르크가 3전대 멕 워커 앞을 막으며 외부 확성기로 웅혼하게 외쳤다.
- 뭐 해? 피해!
- 네? 네!
멕 워커가 주춤주춤 달아나고, 그 앞을 막은 레보르크의 멕을 향해 1전대 아이언 워리어가 몸통 박치기를 해 왔다.
쾅!
그러나 레보르크의 멕은 밀리기는 했어도 쓰러지거나 드러눕지 않았다.
충돌의 순간 절묘하게 자세를 낮추고 무게 중심을 앞으로 기울이며 방패를 들어 버텨 낸 것이다.
1전대의 멕 나이트 두 대가 가세하여 레보르크를 에워싸고 방패로 후려쳤지만, 레보르크 역시 방패로 세 대의 멕을 막아내며 간간이 역습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허! 형씨, 제법이네.]
파펜이 순수하게 감탄했다.
기사 출신이니 변경 파일럿들보다 멕 나이트를 상대하는 데 익숙할 테지만, 변경 파일럿들도 전선 출신이 많으니 큰 차이는 안 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1대 3을 버텨 내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파탄이 나더라도 일단 버티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파펜은 스피노 사체 뒤로 재빨리 돌아 레보르크의 멕을 후려치고 있는 1전대 멕 나이트 한 대의 어깨를 붙잡고 강하게 잡아채 바닥으로 쓰러뜨린 다음, 있는 힘을 다해 그대로 어깨를 뒤로 꺾어 버렸다.
끼기기기기 끄엉-
멕 나이트의 왼쪽 어깨가 너덜거렸다.
- 이런 미친!
파펜은 1전대 다른 멕 나이트의 어깨도 재빨리 부러뜨렸다.
‘낄낄! 멕이 부서지면 부서질수록 너희들 전대장은 좆 되는 거란다.’
파펜은 먼저 공격받는 상황을 만들고 어깨치기에 임하는 상대 파일럿들의 심리를 이용해 루산의 뜻대로 1전대장을 지옥으로 보낼 생각이었다.
- 미친 새끼들이네! 진짜 뒈졌어!
남은 한 대는 얼른 달아나며 1전대 동료들에게 마나 통신을 보냈다.
괴수와의 싸움에 참여했던 1전대 멕 나이트 일곱 대가 동료들이 당했다는 말에 분노하여 달려왔다.
달아난 멕 한 대가 그들과 합세하여 총 8대였다.
[진짜 해 버리는군!]
레보르크도 혀를 내둘렀다.
[그럼 진짜지. 장난인 줄 알았나? 많이 부수면 많이 부술수록 1전대장은 확실히 잘리는 거지.]
[이렇게 멕을 많이 부수면 우리도 처벌을 받지 않겠소?]
[우리는 우리 전대장이 시키는 대로 확실히 한 것뿐이잖아. 충실한 사냥개가 되었으니 지켜 주겠지.]
[그래도······.]
[그리고 우리는 정당방위 상황이잖아. 나쁘게 봐도 과잉 방위 정도야. 먼저 공격한 저놈들하고 다르다고.]
[이런······! 그것까지 생각한 거요?]
[그럼! 변경은 말이야, 사람들이 착각하는데, 법이 센 곳이지 법이 없는 곳이 아니야. 무법 지대가 아니란 말이야. 처벌은 저놈들이 받고 우리는 쬐~끔 과하게 막은 부분에 대해 질책을 듣겠지. 우리 멕이 부서져도 다 저놈들이 뒤집어쓰는 거고.]
[······.]
[1전대장이 사라지면 우리 전대장이 8군단 기동 부대 실세야. 2전대장이랑도 친하다잖아. 자기를 위해 몸 바친 우리를 버리면 평판에도 안 좋지. 장담한 대로 책임져 줄 거야.]
1전대 멕 여덟 대가 분노한 코뿔소처럼 맹렬하게 달려왔다.
그러나 레보르크는 별로 무섭지 않았다.
이 약아 빠진 민머리 모사꾼에 비하면.
레보르크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그나저나 놈들이 독기가 잔뜩 올랐으니 우리도 살 궁리는 해야겠군. 여차하면 달아나라고, 형씨. 그래도 두 대는 약해. 예닐곱 대를 부수면 확실히 방어에 문제가 생기겠지?]
[예닐곱 대?]
맨손으로 예닐곱 대의 멕 나이트를 부순다?
상대도 이미 이쪽이 독하게 나온다는 것을 파악한 상황에서?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쨌든 해 봅시다.]
1전대 멕 나이트 여덟 대가 달려오자 정면충돌의 충격을 피하기 위해 파펜과 레보르크는 스피노 사체 뒤로 움직였다.
여덟 대의 멕이 4대씩 좌우로 돌아 파펜과 레보르크를 에워싸고 마구 두드렸다.
파펜과 레보르크는 완전히 포위되지 않기 위해 물러서며 방어하다 기회를 봐서 1전대 멕 나이트의 팔다리를 꺾으려 했다.
그러나 이제 불가능하다는 것을 두 사람 역시 깨달았다.
장벽 건설 현장은 10대의 멕 나이트가 치고받고 싸우는 소리로 가득 찼다.
사태가 너무 커져 모두가 불안한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거 우리도 나서서 도와야 되는 거 아니야?]
3전대 신입 파일럿들이 두려운 듯 물었다.
[까불지 마! 절대 어깨치기에 나서지 말라는 전대장님의 엄명이 있으셨으니까!]
바이크는 저 사이에 뛰어들고 싶어 근질거리는 것을 참느라 애를 쓰면서도 루산의 명령에 따라 3전대 나머지 파일럿들을 꽉 붙들었다.
그때 성난 1전대 파일럿들이 파펜의 멕을 붙잡고 오른팔을 완전히 꺾어 버렸다.
- 허허허!
그렇게 되고도 파펜은 기뻐하는 것인지 두려움에 실성한 것인지 모를 웃음을 토해 1전대 파일럿들을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그때 시에나의 002가 움직였다.
루산으로부터 어깨치기에 나서라는 명령을 받았고, 파펜과 레보르크가 당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차마 멕 나이트에 탄 동료 - 1전대도 변경 8군단에 속한 부대이니 동료라고 생각했다 - 와 싸워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 주저하고 있던 시에나가, 파펜이 탄 멕 나이트의 팔이 부러지는 것을 보고 갑자기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라 저도 모르게 뛰쳐나간 것이다.
츠쿵- 츠쿵- 츠쿵- 츠쿵-
002가 빠른 발놀림, 넓은 보폭으로 겅중겅중 달려가며 외부 확성기로 소리쳤다.
- 야! 대머리 아저씨 그만 괴롭혀!
멕 나이트의 팔이 부러지고 계속 두드려 맞고 있어도 일이 자신의 뜻대로 풀린다는 사실에 웃음을 잃지 않던 파펜이 처음으로 얼굴을 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