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면회 올게요
77. 면회 올게요
파펜과 레보르크를 둘러싸고 공격하던 1전대 파일럿들은 외부 확성기로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 3전대 파일럿이 누구인지 당연히 알고 있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여자 멕 나이트 파일럿이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시에나의 귀에 다 들리도록 일부러 큰 소리로 이죽거렸다.
- 허! 8군단 꼴이 정말 말이 아니구나! 하다 하다 어린 여자애를 데려와 멕 나이트 조종을 시키네.
- 멕 나이트 조종을 시키려고 데려왔는지 다른 걸 시키려 데려왔는지 알 게 뭐야?
- 누가 가서 제대로 교육 좀 시켜 줘.
- 난 밤 교육 전문인데······.
- 낄낄낄!
- 내가 하지! 난 낮 교육도 자신 있거든! 그렇잖아도 언제 한번 교육시키고 싶었단 말이야. 흐흐흐!
- 같이 가자고! 2 대 1도 괜찮지 않아?
1전대 파일럿들 가운데 두 명이 나섰다.
멕 나이트 두 대가 002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동시에 몸통 박치기로 002를 날려 버리려 했다.
그렇잖아도 무게가 아이언 워리어의 0.8밖에 되지 않는 002로서는 당연히 피해야 했다.
- 흥!
그러나 시에나는 결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 보였던 것이다.
마주 달려오는 두 멕 나이트 사이의 틈새가.
‘002의 힘과 속도면 뚫을 수 있다!’
찰나의 순간 판단을 끝낸 시에나는 속도를 더욱 높였다.
츠쿵, 츠쿵, 츠쿵, 츠쿵-
상대 멕 나이트가 어깨로 들이받으려 몸을 살짝 틀고 허리를 앞으로 기울이자 두 멕 나이트 사이의 틈새가 더욱 벌어졌다.
002 역시 몸을 살짝 틀고 상체를 약간 기울여 왼쪽 어깨로 두 멕 나이트 사이를 정확히 파고들었다.
시에나는 순간적으로 압박감을 느꼈지만, 충분히 통과할 수 있다고 느꼈다.
쾅 하고 충돌하는 대신 끼긱 하고 긁히는 소리가 나면서 002가 멕 나이트 두 대 사이를 통과했다.
1전대 멕 나이트 두 대는 쐐기처럼 파고드는 002의 양옆으로 튕기듯 벌어지며 땅바닥에 거칠게 나뒹굴었다.
“와!”
장벽 위의 감시병들, 장벽 사이의 정찰병들, 건설 공사에 동원된 멕 워커 파일럿들이 마치 마법을 본 것처럼 탄성을 질렀다.
더 무거운 기체 두 대와 가벼운 기체 한 대가 충돌했는데 왜 무거운 기체 두 대가 쓰러진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002는 계속 달렸고, 그 모습을 본 1전대 멕 나이트 두 대가 새로이 002를 향해 달려왔다.
상대 멕 나이트가 002를 강하게 후려치기 위해 방패를 뒤로 젖히는 순간, 시에나는 한 걸음 빨리 파고들어 뒤로 젖혀진 어깨를 잡고 상대 멕 나이트의 몸을 빠르게 한 바퀴 돌려 버렸다.
[어? 어!]
빙그르르 돌던 중고 아이언 워리어가 쿵! 쓰러졌다.
방패를 들어 가슴을 가리고 돌진해 오는 멕 나이트를 상대할 때는, 상대의 방패를 잡고 멕이 진행하던 방향으로 당기며 몸을 옆으로 잽싸게 옮기고 발을 걸었다.
쿵!
1전대 멕 나이트는 굉음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세상에! 우연이 아니었어!”
“와!”
지켜보던 사람들의 놀람과 환호 속에서 레오파드 002는 주인공처럼 달렸고, 1전대 파일럿들은 표정이 완전히 구겨졌다.
[젠장!]
002를 향해 주먹을 날리고, 방패를 후려쳐도 002는 한 대도 제대로 맞지 않았다.
그 사이로 진입해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리거나 상대의 힘을 이용해 빙글 돌려 쓰러뜨렸다.
쓰러졌다 해도 끝난 것은 아니었다.
다시 일어나서 싸우면 됐으니까.
그러나 다시 일어나 덤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1전대 멕들은 002를 향해 달려들었고, 002는 힘들이지 않고 상대를 다시 쓰러뜨렸다.
002는 동시에 여러 대를 상대하는 법이 없이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이며 1전대 멕들을 계속해서 쓰러뜨렸다.
그러나 쓰러뜨린 뒤에도 멕을 크게 손상시키지는 않았다.
차마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뭐 하냐, 꼬마야! 팔을 꺾어 버려! 다리를 분질러 버리란 말이야! 그래야 끝이 난다니까!]
보다 못한 파펜이 마나 통신기로 호통을 쳤다.
[하, 하지만······.]
시에나는 우물쭈물하면서 여전히 상대 멕을 넘어뜨리기만 했다.
이 임무에 깔려 있는 루산의 속셈을 정확히 모르는 그녀로서는 충분히 이긴 싸움에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를 몰랐던 것이다.
[다그치지 마시오. 우리가 하면 되니까.]
시에나 덕에 여유를 찾은 레보르크가 1전대 멕을 1 대 1로 상대하며 팔과 다리를 휙휙 꺾어 버렸다.
그 또한 놀라운 모습이었다.
멕 나이트 팔다리가 나뭇가지도 아니고 그렇게 쉽게 꺾일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멕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입을 떡 벌렸다.
멕의 구조에 대해 잘 알고, 멕의 힘을 잘 이용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쉽게 팔다리를 훼손시킬 수 없는 것이다.
[크크크, 이러나저러나 임무만 완수하면 됐지.]
어느 순간 팔다리가 꺾인 1전대 멕이 무려 여덟 대나 되었다.
두 대는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달아났다.
반면 3전대는 파펜이 탄 멕 나이트의 팔이 꺾이고, 레보르크의 멕이 잔뜩 두드려 맞아 장갑이 몇 장 뜯어진 것이 손상의 전부였다.
[저 여자애가 이렇게 해 줄 것도 알고 있었소?]
레보르크가 물었다.
[알았으면 귀찮게 판을 안 짰지.]
[흐음······.]
[괴물이구먼.]
[음!]
레보르크도 동의했다.
[우리 여우 전대장이 저 여자애와 함께 싸우라는 건 다 이유가 있었군그래.]
[그러게 말이오.]
[괴물을 키우고 있었어.]
사실 괴수를 상대할 때에는 시에나의 실력이 이 정도까지 되는지 알지 못했다.
어쨌든 1전대와 8군단에는 난리가 났으나 1전대와 3전대 간의 어깨치기는 파펜이 계획한 대로 끝이 났다.
어깨치기인지 어깨 부수기인지 논란이 있겠지만.
[이거 어떡해요! 대머리 아저씨, 나 혼나는 거 아니에요? 쫓겨나는 거 아니에요?]
울상을 짓는 시에나와 쓴웃음을 짓는 레보르크, 그리고 화를 내는 파펜.
[대머리 아저씨라고 부르지 마!]
[그럼 뭐라고 불러요?]
[그건······, 생각 좀 해 보자.]
잠시 후 소식을 듣고 달려온 1전대장 레겐스가 이 놀라운 소식을 듣고 기가 막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못했다.
그러다 악을 썼다.
- 이 새끼들! 가만 안 둘 거야!
- 가만 안 두면 어쩌려고?
파펜이 능청스럽게 물었다.
- 직접 어깨치기라도 해 보시게?
- 이, 이, 이놈!
- 이놈, 저놈 하지 마. 얼른 본부에 보고하셔야지. 뭐라고 보고하실 거야? 멕 나이트 열 대로 세 대를 밟으려다 여덟 대가 상했다고 보고할 건가? 맘대로 해. 내 알 바 아니니까.
- 이놈이······!
레겐스가 보고하지 않아도 이 소식은 군단 본부에 즉각 알려졌다.
가프 마법 연구소 측에서 장벽 생산 시설 건설 현장의 안전이 우려되어 곧바로 알린 것이다.
깜짝 놀란 단장은 트리어에게 명령을 내려 2전대 멕 나이트 3분의 2를 장벽 건설 현장에 즉시 투입하도록 지시하고 기동 전단장, 감찰부장을 대동해 레이크 시티를 직접 찾아왔다.
웨이브도 아니고 전쟁도 아닌데 무려 아홉 대의 멕 나이트가 크게 손상된 사건.
부품을 구하고 수리를 마칠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레겐스를 노려보는 단장의 눈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1전대장 레겐스는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권한을 정지한다. 본부 경비대는 달아나지 못하게 철저히 감시하라. 손해를 끼친 게 있으면 배상을 해야 하니까. 그때까지 1전대는 트리어가 지휘해.”
파펜, 레보르크, 시에나도 조사 대상에 포함되었지만, 시에나를 제외한 두 사람은 별로 겁을 먹지 않았다.
그리고 이 세 사람은 레겐스처럼 감시를 받지도 않았다.
이 세 명의 파일럿이 빠지면 3전대 전력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에 공사 현장의 안전을 위해 그대로 근무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뒤늦게 루산의 꿍꿍이를 짐작한 레겐스가 부들부들 떨며 중얼거렸다.
“두고 보자, 루산!”
***
루산은 왠지 기분이 좋았다.
레오파드 획득 시험은 점점 격렬해졌지만, 아직까지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테스트가 끝나고도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아 루산은 외출을 알리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기동 시험장 입구 바깥, 장군들과 제국군 관계자들이 타고 온 마차와 자동 마차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마차 보관소에서 익숙한 자동 마차 한 대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바덴의 자동 마차였다.
루산은 얼른 다가가 창을 두드렸다.
똑똑!
바덴이 반갑게 쳐다보고 차에서 내렸다.
“아니, 웬일이에요?”
“그게··· 지시하신 사항을 보고하려고 왔어요.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요. 나중에 혹시나 집으로 찾아오셨을 때 못 만날 수도 있고 해서······.”
“그렇다고 여기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요? 차라리 초병한테 면회를 왔다고 하지 그랬어요?”
“그럴까도 생각했는데 비밀이라고 하셔서 혹시라도 기사님께 피해를 끼칠까 봐······.”
“이런!”
루산은 안타까움과 함께 미안함과 고마움이 마음속에 가득 들어찼다.
“테스트 참관하는 장군들이나 현역 파일럿 같은 군 관계자들은 어차피 다 출퇴근하고 있어요. 관계자들에게 비밀 엄수 의무가 있고, 일반인이 직접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지 외부와의 교류가 완전히 차단된 시험이 아니에요. 내가 밖으로 나가나 면회 신청해서 만나나 비밀 누설 위험은 똑같지 않겠어요? 다음에는 면회 신청을 하세요.”
말을 하고 나니 다음에 또 찾아오라는 말 같아 우스웠다.
루산도 웃고 바덴도 미소를 지었다.
“아 참! 기사님, 저녁 안 드셨죠?”
바덴은 바구니에 먹을 것도 싸왔다.
“그렇기는 한데, 이런 걸 다······.”
“바람의 언덕 장원에서 손님들한테 나가는 배달 음식이에요. 궁금하실 것 같아서······.”
바덴이 혀로 입술을 살짝 적시며 말했다.
루산은 바덴의 정성에 감동했다.
어제도, 그제도 음식을 싸 와서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는 자신을 기다렸을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러나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두 번 다시 실수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약간의 불편함을 무릅쓰고 자동 마차 안에서 바덴이 가져온 음식을 먹었다.
귀족들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식사라 무척 훌륭했다.
길거리 싸구려 음식을 사 왔더라도 루산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겠지만.
맛있게 먹는 루산을 바덴이 흐뭇하게 지켜보다 말했다.
“대출을 알아 봤더니, 좀 까다롭더라고요.”
음식을 입에 물고 있어 루산은 눈빛으로 물었다.
바덴이 얼른 설명했다.
“그게, 이전 대출은 토지 구매를 조건으로 곧바로 담보를 설정하는 방식으로 7, 발전 가능성을 보고 3을 해 준 것인데, 이건 장원 별장 사업과 무관한 용도로 사용하게 돼서 그렇게 많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런가요?”
“그래도 바람의 언덕 장원에 대한 투자가 끝나고 여름 시즌 수익이 생각보다 높게 나왔고, 자작나무 숲 장원은 이제 들어가는 시설비가 거의 없이 순수익이 매우 높게 발생하는 상황이라 자산 가치를 높게 쳐 줘서 최대 40만 골드까지는 해 주겠답니다.”
루산은 깜짝 놀랐다.
“대출이 많이 안 나온다는 말에 10만 골드도 안 되나 싶었는데, 40만 골드라니! 정말 통이 크시군요, 미스 고슬라!”
바덴이 웃으며 말했다.
“이래 봬도 은행들이 서로 돈을 가져다 쓰라고 하는 사업체의 대표랍니다. 그리고 슈미트 은행 지점장님이 워낙 우리 사업을 좋게 봐서요.”
“미스 고슬라의 능력과 노력을 높게 산 것이겠지요.”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고맙죠.”
바덴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식사를 마치고 둘은 차에서 나와 노을이 지는 산 능선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어디로 가시나요? 제가 태워다 드릴게요.”
“아니에요. 미스 고슬라를 봤으니 됐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나 더 하죠.”
차마 다른 사람을 만나러 간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바덴을 만나 사업 이야기를 하는 것이 즐겁기도 했다.
바덴 역시 루산이 자신을 만나러 오려고 했나 보다는 생각에 기꺼웠다.
“조만간 제가 변경 8구역과 코부스 지역을 직접 다녀올까 해요.”
코부스 지역에 가프 마법 연구소에 멕 나이트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들이 많이 있었다.
목록에 있는 투자 대상 회사들을 직접 살피려는 것이다.
루산이 고개를 끄덕이다 물었다.
“코부스는 알겠는데, 변경에는 무슨 일로······?”
“그렇잖아도 변경 투어를 유치할 때 기사님 말씀과 편지에 기대어 상상만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쉬웠어요. 직접 가 본다면 변경 관광이나 변경 사업을 좀 더 잘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리고 개척민을 모집할 때에도 도움이 될 것 같고······.”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워낙 멀고 험하니 혼자 오지는 말고 믿을 만한 사람들과 함께 오세요. 그리고 미리 편지로 날짜를 알려 주세요.”
“네. 그럴게요. 그리고 내일은 슈텐달 남작님과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어요. 만남 결과를 알려드리러 면회 올게요. 만약 일이 성사되면 코부스 지역과 변경을 답사할 때 같이 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다 좋은데, 여기로 또 온다고요? 그렇잖아도 매일 운전하느라 피곤할 텐데······.”
“괜찮아요. 결과가 나오면 바로 알려드리는 게 마음이 편하답니다.”
바덴이 극구 그렇게 하겠다고 하니 루산은 말릴 수가 없었다.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멕 나이트 시험장 입구를 지키던 초병이 겹겹이 쌓인 능선과 노을이 아름답게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그림처럼 서 있는 남녀를 보고 부러운 듯 중얼거렸다.
“또 왔네. 애정 행각 커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