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조사 좀 하겠습니다
78. 조사 좀 하겠습니다
레오파드 획득 시험에 동원된 수도 군단과 근위대의 파일럿들은 시종일관 진지하게 임했다.
시험에 통과된 기체는 언젠가는 자신이 탈 수도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어서는 안 된다. 테스트 기간에 철저히 검증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수도 군단과 근위대 파일럿들은, 전선으로 순환 근무를 갔다 오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실전을 치를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획득 시험에 투입되는 것을 자신의 실력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최소한 장군들과 에이스 파일럿들 앞에서 시험 기체에 당하는 꼴사나운 모습은 피해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재수가 없는 것을 넘어 최악이었다.
[뭐 하나? 남동쪽 포위망에 구멍이 뚫린다!]
[너무 빨라 잡을 수가 없다고!]
[이미 알고 있었잖아! 2조 막아!]
임시 전대장이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이미 루산이 탑승한 003은 남동쪽에 생긴 구멍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언덕을 달려 내려가고 있었다.
그것도 그냥 달아난 것이 아니었다.
003은 구멍을 막기 위해 허둥지둥 달려오는 수도 군단의 아이언 워리어 쪽으로 급격히 방향을 전환했다.
아이언 워리어는 깜짝 놀랐지만, 유능한 파일럿답게 금방 냉정을 되찾고 방패를 들어 003의 공격 경로를 막았을 뿐 아니라 동시에 공격을 가했다.
- 훗!
루산은 비웃음을 날리며 훈련용 대검 - 마나 진동 기능이 없어 자르지 못한다 - 으로 상대의 검을 밖으로 쳐 내고 어깨로 방패를 들이받았다.
쿵!
003의 무게가 아이언 워리어의 3분의 1에 불과하다지만, 언덕 위에서 달려 내려오던 속도가 있고 상대가 비탈진 곳에 서 있었기 때문에 아이언 워리어는 뒤로 미끄러지다 크게 넘어갔다.
터덩!
돌가루와 흙먼지가 풀썩 피어올랐다.
003은 쓰러진 아이언 워리어의 가슴을 훈련용 대검으로 빠르게, 그러나 살짝 내려쳤다.
깡!
불쾌한 소리가 아이언 워리어 파일럿의 고막을 두드렸다.
멀리서 멕을 타고 지켜보던 통제관은 더 불쾌한 판정을 내렸다.
[1조 5번 파일럿 사망!]
[젠장!]
사망 판정에 파일럿이 분통을 터뜨리는 와중에도 003은 쓰러진 아이언 워리어를 지나 다음 언덕으로 겅중겅중 올라갔다.
2조 멕 나이트들이 임시 전대장의 명령을 듣고 포위망을 다시 형성하기 위해 낮은 언덕을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나 포위라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주력이 빠르고 경사 지형에서 기동성이 뛰어난 기체를 상대로는 더욱 어려웠다.
003은 다른 멕들 사이에서 돌출한 채 올라오던 근위대의 멕 나이트를 향해 달려 내려갔다.
츠쿵 츠쿵 츠쿵-
근위대의 파일럿은 자신들을 농락하고 있는 003을 경시하지 않고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녀석의 다리를 베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겠다고 판단을 내리고 위에서 달려 내려오는 003의 다리를 베어 갔다.
그러나 003의 파워와 도약력은 근위대 파일럿의 예측을 훨씬 넘어섰다.
003은 바위를 딛고 점프해 근위대 멕의 베기 공격을 뛰어넘어 무릎으로 상대의 가슴을 강타했다.
쾅!
이번에도 달려 내려오는 속도와 경사로 인해 근위대 멕이 뒤로 미끄러지다 바위에 걸려 넘어갔다.
003은 허공에 떠 있는 찰나의 순간, 훈련용 대검으로 근위대 멕 나이트의 등을 찔렀다.
당연히 멕 나이트가 뚫리지는 않았고 경쾌한 소리가 났을 뿐이다.
팅!
이윽고 근위대 멕이 굉음을 내며 뒤로 거칠게 넘어갔다.
[2조 3번 파일럿 사망!]
003은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다음 먹잇감을 노리고 표범처럼 달렸다.
“음!”
망원경을 들고 지켜보던 참관인들이 신음을 흘렸다.
옆에는 마나 통신 장치가 있어 통제관의 판정을 파일럿들과 똑같이 들을 수 있었다.
“난전에서, 특히 산지나 언덕에서는 무시무시하군!”
“전단에 저런 기체 대여섯 대만 있어도······.”
장군들은 레오파드 003을 운용하고 싶은 욕심에, 에이스 파일럿들은 자신이 직접 저 기체를 타고 적진을 휩쓸고 싶은 욕심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군무부 획득관이 그들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범용 기체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엔진 출력이 비상하게 높고 관절도 고가 부품을 채택했어요. 가격은 아직 미정입니다만, 아이언 워리어보다 훨씬 비쌀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양산이 쉽지 않습니다.”
가라로슈가 얼른 덧붙였다.
“엔진에 사용하는 점화기 때문인데요. 매우 특수한 재료가 사용되기 때문에 양산이 쉽지는 않지만, 기동 부대에 몇 대씩이나마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구해 보겠습니다.”
처음부터 양산형을 많이 팔면 좋겠지만, 고가의 특수 기체도 어떻게든 판매량을 늘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인지도를 쌓다 보면 양산형 판매에도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들은 장군 하나가 말했다.
“가격이 비싸다 해도 이 정도 성능이면 충분히 도입해 볼 만 하지요. 이미 많은 기체를 혼자서 부수고 있지 않습니까?”
다른 참관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003은 이후에도 포위망을 연신 헤집으며 수도 군단과 근위대의 멕 나이트를 부수고 결국 최종 포위망을 탈출하여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005는 003의 다운그레이드 모델인 만큼 당연히 003만큼의 활약은 보이지 못했지만, 그래도 빠른 속도로 적진을 헤집고 예측 못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호평 속에서 각개 전투 테스트를 마쳤다.
스피디2는 적 멕 나이트와의 정면 대결이 아니라 척후와 기습, 산간이나 늪지 등 특수 지형에서의 활용도에 주목을 받았다.
가볍고 빠른 데다 가격까지 저렴하면 어떻게든 활용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루산의 제안으로 변경 판매를 위해 만든 스피디 계열 또한 전선에서 어느 정도 수요가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가프 마법 연구소 측에 유리한 분위기가 조성되어 가던 중에 문제가 발생했다.
모리츠가 조종하던 001이 전투 능력 테스트 와중에 가슴 부분 몸체 부품이 깨져 버린 것이다.
003에 농락당한 근위대와 수도 근단 파일럿들이 화가 부글부글 끓어 더욱 끈질기고 집요하게 001을 포위해 방패로 맹격을 가한 것도 있지만, 그것을 탓할 수는 없었다.
내구도 테스트는 언제든 이루어지는 항목이었고, 전투 상황을 염두에 두었다면 이처럼 격렬하게 공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001은 003보다 훨씬 무겁기 때문에 003만큼의 기동성을 보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강력한 엔진 출력과 적당히 빠른 몸놀림으로 적을 무찔러 나가야 하는 기체인 것이다.
몸체 부품이 깨졌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참관인들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가프 마법 연구소 사람들은 사색이 되었다.
지금까지 좋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 된 것이다.
그러나 루산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깨졌구나!’
그동안 내심 몸체 부품이 깨지기를 바랐으나 변경에서 아무리 많은 괴수를 상대해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어떻게든 설욕하려는 수도 군단과 근위대 파일럿들의 격렬한 공격을 받고 마침내 깨진 것이다.
레오파드 계열의 멕 나이트 시제기 몸체 부품은 모두 코부스 멕 바디라는 회사에서 만든 것이었다.
루산은 충격을 받아 멍하게 서 있는 칼리슈에게 가서 나직이 조언했다.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몸체 부품이 깨지는 일은 없어야겠지만, 종종 나타나는 것이거든요. 레오파드의 나머지 성능에 문제를 삼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지는 하지만······.”
칼리슈는 워낙 중요한 자리에서 사고가 나서 패닉 상태였다.
“레오파드 몸체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가 또 있지 않습니까? 우르사 몸체 부품을 주문 제작한 곳인데, 신화 공업사라고······.”
그 말에 칼리슈가 얼른 정신을 차렸다.
“아! 맞아요. 신화 공업사! 스피디 계열 몸체 부품을 납품한 곳이죠.”
“스피디2는 안 깨졌습니다. 남은 기간 스피디2 내구성 테스트를 특별히 강력하게 요청해서 가프 측에 다른 대안이 있다는 것을 알리세요. 레오파드 계열의 몸체 부품도 신화 공업사에서 납품을 받으면 되지 않습니까?”
“아!”
칼리슈가 얼른 스승인 가라로슈에게 달려가 루산의 이야기를 전했다.
“음!”
가라로슈도 정신을 차리고 획득관들에게 이야기했다.
“그래요?”
어차피 다른 성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몸체 부품의 내구성이 문제이고, 가프 마법 연구소 측이 이것을 문제없이 생산하는 다른 공급처를 확보할 수 있다면 별일 아닌 것이다.
레오파드는 충분히 매력적인 멕 나이트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남은 기간에 전투 능력과 함께 내구성 테스트에 집중하기로 하지요. 그리고 향후 몸체 부품을 다른 공급처에서 확보한 것으로 대체한 뒤에 다시 내구성 테스트를 하기로 합시다.”
그렇게 획득 시험은 계속 이어졌다.
가프 마법 연구소는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했고, 루산은 속으로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면회를 온 바덴에게 루산이 말했다.
“지금 당장 신화 공업사와 투자 계약 체결하고 지분 최대한 확보하세요.”
“네, 기사님.”
***
오스카 빈켈.
군무부 감찰관.
스텐커를 만나 귀족 가문 재산 사기 사건 조사에 합류하기로 한 그는 은퇴한 남방군 파일럿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아보기로 하고 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 일을 조사하는 것이 얼마나 막막한 일인지 금세 깨닫게 되었다.
남방군.
필센 제국 남쪽을 책임지는 막강한 군대.
3개 기동 군단과 3개 보병 사단으로 이루어져 있다지만, 사실 군무부는 그 편제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왜냐하면 남방군은 여러 측면에서 제국군과 별도로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사 교류도 없었고, 물자와 자원도 제국 정부를 거치지 않았다.
남방군의 병력 선발과 운영을 오베론 가문이 알아서 해 왔던 것이다.
국가가 세금을 투입하지 않고 오베론 가문에 무책임하게 떠넘겼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선후 관계를 따지면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남방군이 제국군 내에서 별도의 취급을 받게 된 것은 오베론 공작을 따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존중에 바탕을 둔 우대 조치였다.
각 제후가 각 지방의 왕이나 다름없던 시절, 모든 제후는 자신의 군대를 자신의 힘으로 알아서 운영해 왔다.
그때는 그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다 아우로라 대륙의 침공이 빈발하고 그것이 대전쟁으로 이어지면서 일사불란한 지휘 체계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와 함께 오랜 전쟁을 견뎌 낼 수 있도록 경제 구조를 튼튼하게 바꾸고 멕 나이트 파일럿을 원활하게 수급하기 위해 평민 계층의 사회적 지위를 끌어올리는 여러 조치들 - 이른바 사회 개혁 - 이 시행되면서 평민의 재산이 늘고 사회적 위상이 급격히 올라가자, 귀족들의 부와 권위는 상대적으로 크게 위축되어 어떤 제후도 스스로 대규모 군대를 운영할 수 없게 되었다.
제국은 부자가 되었지만, 영주들은 가난해진 것이다.
그렇게 필센 제국 안에 있던 영주들의 군대는 자연스럽게 - 강력한 황제의 힘에 굴복하여 - 제국군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었다.
여기에 유일한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오베론 공작 가문이었다.
필센 제국 영토 8분의 1에 달하는 광활한 오베론 지방은 예로부터 드넓은 평야와 풍족한 자원을 가진 복 받은 땅이었고, 전대 오베론 공작은 일찍이 대규모 공업 단지를 구축하고 해운 회사를 설립해 필센 제국 제일의 해운사로 키운 선각자였다.
사회 개혁이 가문에 절대로 손해가 아니고 오히려 평민의 생산성을 높여 가문에 이익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오베론 공작은 황제를 적극적으로 지지해 개혁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뿐 아니라 아들 - 현 오베론 공작 - 을 오베론 군과 함께 동방 전선으로 파견해 일선에서 제국의 적과 싸우게 함으로써 귀족으로서의 명예를 드높였다.
황제는 그토록 공이 많고 스스로 병력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오베론 가문을 존중해 제국군에 강제로 편입시키지 않은 것이다.
오베론 가문도 황제의 조치에 감사하고 제국에 충성하는 의미로 가문의 군대를 제국 편제에 맞추어 남방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입장일 뿐이지.’
사회 개혁을 강행한 이반 황제는 적이 많았다.
힘을 잃은 모든 영주들이 이반 황제를 증오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 개혁 이후에도 스스로 군대를 운영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오베론 공작과 등을 돌릴 수 없어 그의 군대 보유를 용인했다 - 용인할 수밖에 없었다 - 는 것이 세간에 도는 소문이었다.
존중했든, 할 수 없이 용인했든, 남방군은 제국군 편제에서 벗어난 유일한 제국의 군대가 되었다.
필센 제국 군무부 감찰관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오스카는 가문의 원수, 가문을 그렇게 만든 원인을 찾는 일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아예 몰랐다면 모를까 스텐커를 만나 힌트를 듣게 되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았기에 모든 가능성을 꼼꼼하게 훑어 나갔다.
그러다 마침내 찾아냈다.
남방군을 감찰할 수 있는 사안을.
‘이걸로 과연 알아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일단 해 봐야지!’
오스카는 기안을 작성해 국장에게 올렸다.
“조사 좀 하겠습니다.”
내용을 읽어 본 국장이 뜨악한 표정으로 오스카를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