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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82화 (82/450)

82. 선택할 수 있어야 의욕이 생긴다

82. 선택할 수 있어야 의욕이 생긴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기사님께서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물론 루산이 그렇게까지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바덴의 인사말에 렌커는 기분이 너무 좋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아, 네. 하하하!”

변경의 청년 렌커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변경에서 이처럼 지적이고 세련된 미인을 만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덴뿐 아니었다.

슈텐달 남작의 딸은 청순하고 깨끗하고 선한 인상으로 인해 마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천사나 물의 요정 같았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렌커는 서둘러 붐붐 수레를 준비해 왔다.

붐붐-

바덴과 슈텐달 남작 일행은 관악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큰 소리에 한 번 놀라고, 그 소리를 내는 거대한 존재를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타시죠.”

루산이 특별히 부탁한 손님들을 태우고 붐붐 수레는 관광을 시작했다.

렌커의 요청으로 변경 8군단 본부에서 나온 탐탐 정찰병들이 호위를 해 주었다.

탐탐-

탐탐-

크고 높은 붐붐 수레의 지붕 위에 앉아 낯선 변경의 자연과 그 사이에 간간이 들어서 있는 개척촌을 지나는 여정은 필센 제국의 수도와 제1의 항구 도시에서 온 손님들에게 이국적인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적재적소에 개입하는 렌커의 설명도 관광의 재미를 더해 주었다.

바덴과 슈텐달 남작은 아무래도 사업적인 부분에 질문을 많이 던졌다.

“레이크 시티까지 철도가 언제 완공이 되나요?

“철도는 내후년을 목표로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포장도로는 그보다 조금 빨라서 내년 후반기 완공을 목표로 하고요.”

“철도가 완공되면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붐붐 수레는 사라지나요?”

“그건 고민 중에 있습니다, 고슬라 사장님. 반달 호수 지역과 원시의 땅 관광 루트를 더 개척하는 방향과 기존의 루트를 유지하는 방향, 어느 쪽이 나을지.”

“붐붐 수레로 이동하는 것은 참 좋아 보여요. 도시에서 온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천천히 느끼고 감상할 기회를 주는 것이니까요. 철도가 안쪽까지 놓여도 이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네, 참고하겠습니다.”

“이쪽에 철광이나 석탄광 개발은 아직 진행이 안 되고 있는 것이오?”

“사실 변경 8구역은 개척 역사가 오래되지 않아 광업까지 신경을 쓰지는 못하는 것으로 압니다, 남작님.”

“그것 참 아쉽군요.”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 보면 변경 8구역의 자원을 선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선점이라······.”

“네. 8구역 본부는 세제 혜택과 도로 건설 같은 적극적인 투자 유치 정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변경 투어 이후 많은 사업가들이 이곳에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그중에 광산업에 뛰어든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아마 남작님을 위해 남겨두었나 봅니다.”

“허허!”

렌커의 너스레에 슈텐달 남작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단지 듣기 좋은 농담이 아니라 의미 있는 이야기였다.

“미스 고슬라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렌커 사장의 말이 일리가 있는 듯한데······.”

바덴이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대전쟁이 발발한다면 부르사 왕국의 철광석을 들여오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렇지요.”

“부르사 왕국뿐 아니라 해외 자원의 반입은 거의 막힌다고 봐야 할 겁니다.”

“음!”

“제 전문 분야가 아니라서 잘은 모르지만, 우리 제국은 철광석 수요가 많아 제국 내에서 나는 철광석은 상당히 값이 비싸지 않습니까?”

“맞아요.”

“만약 의미 있는 규모의 철광산을 찾을 수만 있다면 충분히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바덴이 덧붙였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기사님은 레이크 시티에 대규모 산업 단지를 염두에 두고 계십니다. 가프 마법 연구소 멕 나이트의 대량 생산을 위한 공장을 그곳에 두시려는 것이죠. 물론 유치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요. 어쨌든 멕 나이트 개발에 성공했으니 멕 워커까지 생산하면 철강 수요가 엄청날 거예요. 만약 피닉스 제철에서 재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해 줄 수만 있다면 남작님 사업은 순풍을 타겠죠? 그러려면 안정적인 원료 공급처 확보가 필수적이에요.”

“······!”

그 순간 슈텐달 남작은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장차 가프 마법 연구소의 멕 나이트와 멕 워커 생산 재료를 피닉스 제철에서 공급한다고? 그렇게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지!’

레오파드 생산에 필요한 철강을 납품하지 않더라도 해외 철광석 수입이 끊길 경우를 대비해 국내에 공급원을 마련해야 했다.

‘변경 기사가 마법 연구소 멕 생산 단지를 유치해?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정말 생각의 규모가 남다르구나! 대단한 사람이야!’

전에 만났을 때에도 치밀하고 냉철한 것이 큰일을 할 사람으로 보였다.

루산은 자신의 가문을 구한 은인인 동시에 갈수록 탐이 나는 젊은이였다.

슈텐달 남작은 자신의 딸을 쳐다보았다.

변경의 풍경을 바라보며 감탄하던 어여쁜 딸이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생긋 미소를 지었다.

슈텐달 남작도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딸에게는 아직 말하지 않은 상태였다.

‘네가 원하지 않으면 진행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구나.’

슈텐달 남작은 다시 바덴에게 고개를 돌렸다가 렌커에게 말했다.

“8구역 본부가 광산 탐색과 개발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소.”

“제가 관련 부서에 이야기해 놓겠습니다.”

붐붐 수레는 레인보우 시티와 점점 더 가까워졌다.

레인보우 시티 입구에서 지상 20미터 높이의 바구니를 타고 거대한 나무들 사이를 지나는 놀라운 체험을 한 사람들은 눈이 커다래졌다.

그 다음으로 탐탐을 타고 레인보우 시티 주위의 풀숲 - 안전이 확보된 상태였다 - 을 돌 때는 마치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탐험가가 된 것 같았다.

여성이 세 명이나 포함된 관계로 괴수 사냥 체험은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그들은 다시 붐붐 수레를 타고 레이크 시티로 향했다.

“마침 내가 근무 교대를 가는데 레이크 시티까지 호위해 주지.”

켐니츠가 멕 나이트를 타고 레이크 시티까지 호위해 주었다.

거대한 멕 나이트를 처음 본 사람들은 드디어 변경에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반달 호수 지역 동쪽은 그동안 꾸준히 괴수 소탕을 진행해 왔기에 이동하는 동안 괴수를 만날 일이 없었지만, 레이크 시티와 가까워지면서 난생처음 들어보는 무시무시한 소리를 접하게 되었다.

쿠어어어어!

캬아아아아!

저절로 소름이 돋고 두려움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 걱정하지 마세요. 호숫가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인데, 여기까지 오지 않습니다. 오더라도 멕 나이트가 있으니 안심하세요.

켐니츠가 멕 나이트 외부 확성기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지만, 처음 괴수의 포효를 들은 사람들을 안심시키지는 못했다.

다행히 켐니츠의 장담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켐니츠의 마나 통신으로 손님이 다가오는 것을 전달받은 루산이 탐탐을 타고 달려왔다.

경갑을 착용한 루산이 투구를 벗으며 말했다.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루산의 얼굴과 머리칼이 땀에 젖어 번들거렸다.

- 그럼, 나 간다!

“고마워요, 켐니츠!”

쿵! 쿵!

켐니츠의 멕 나이트가 남쪽으로 내려가고, 루산이 손님들에게 말했다.

“이왕 변경 땅에 오셨으니 흔히 보지 못할 광경을 먼저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요.”

괴수의 소리, 멕이 쿵쿵대며 이동하는 소리들이 점점 가까이 들리는 가운데 루산은 장벽 남쪽으로 붐붐 수레를 이끌었다.

그리고 계단을 통해 장벽이 완성된 부분 위로 안내했다.

엄청난 양의 액체가 차 있는 기괴한 시설과 장치들, 높고 두꺼운 장벽들, 수백 대나 되는 멕 워커들을 휘둥그레진 눈으로 보면서 그들은 장벽에 올랐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아연실색했다.

7미터의 멕과 거대 괴수의 싸움은 상상보다 훨씬 더 놀랍고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루산은 입을 떡 벌린 채 얼어붙은 손님들을 보고 만족스럽게 말했다.

“변경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바덴과 슈텐달 남작 일행은 그동안 변경 투어 손님들이 거치는 관광 루트를 며칠에 걸쳐 모두 경험했다.

그에 더해 변경 개발과 개척촌 건설 과정, 그리고 개척민들의 삶을 더 면밀히 살필 기회를 얻었다.

이들은 관광객이 아니라 루산의 사업 파트너였기 때문이다.

“미스 고슬라, 저희를 보러 여기까지 오신 건가요?”

바덴을 알아본 이주민들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네. 잘 지내시죠?”

루산은 워낙 바빠서 하루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했다.

집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장벽 건설 현장에서 쪽잠을 주무세요. 장벽이 완공될 때까지는 쭉 그러실 것 같아요.”

클라크의 말에 바덴은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레이크 시티가 크고 멋진 도시로 성장하는 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하는 것이 루산과 자신을 위한 일이었다.

바덴은 시간이 날 때마다 레이크 시티 주민들을 만나 위로하고 대화를 나누며 그들에게 부족한 것, 그들이 바라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일하는 환경과 조건들을 두루 둘러보았다.

레이크 시티 개척 요원들로부터 도시 개발 계획과 이후에 진행될 사업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을 들었다.

거리가 멀어 쉽게 올 수 없는 곳이기에 바덴은 꼼꼼히 살피고 최대한 많은 곳을 돌아보았다.

그렇게 해서 레이크 시티 이주민에게 도움이 되고 도시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정리해 나갔다.

1. 탁아시설

육아의 어려움을 돕고 여성의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장차 인구 증가에도 이바지할 것이다.

2. 학교

지적 욕망을 채우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욕구를 키운다. 이를 통해 더 나은 노동력을 확보하고, 법과 규율을 익혀 범죄와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3. 희미해진 경쟁 요소의 선명화, 주민의 선택의 자유 확대

이제 막 개척을 시작한 도시라 택할 수 있는 직업의 종류가 많지 않고 주민의 안전이 우선이라 활동 폭도 넓힐 수 없지만, 애초에 개척 경쟁을 명목으로 개척민을 모집한 만큼 자신의 아이디어와 계획으로 이 땅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판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몇 개 되지 않는 직업을 반강제로 할당하고 그 안에서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린 사람에게 1등 상을 수여한다면 몸이 크고 힘이 센 사람에게 유리할 뿐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개척 경쟁의 스토리를 풍부하게 만들고 설레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신문을 통해 이를 접한 사람들이 더 많이 지원할 것이다.

개척촌 건설에서 개척민의 역할을 획기적으로 전환하여 선택의 자유를 확대해야 개척민 지원자 모집 정책과 레이크 시티 건설이 성공할 것이다.

바덴은 특히 이 3번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 역시 아이디어로 인생을 바꾼 사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내고 그 아이디어를 통해 성공할 수 있는 판을 마련해 주는 것이 경쟁 요소를 도입한 개척 건설의 핵심인 것이다.

그래야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자신의 삶을 책임지기 위해 더 노력할 수 있는 것이다.

원래 이렇게 할 생각이었으나 가프 마법 연구소의 장벽 생산 시설이 들어오면서 이 개척 경쟁 요소가 완전히 묻혀 버렸다.

이 장벽 생산 시설이 몇 백 명의 개척 경쟁보다 훨씬 중요했기 때문에 그쪽으로 루산의 관심과 개척단의 역량이 모두 쏠려 버린 것이다.

“으음······.”

짬을 내 바덴이 정리한 내용을 읽어 본 루산은 미간을 찌푸렸다.

“1번과 2번은 변경에서 비용과 생산성의 관계가 확실히 증명이 되지 않기는 했지만, 확실히 필요한 것 같으니 비용을 들여서라도 도입하겠습니다. 그러나 3번은 당장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아이디어대로 지원을 해 주는 방식이 제대로 시행되려면 아이디어를 살피고 과연 타당한지 검토해서 지원 여부를 결정해야 할 텐데 현재 그 정도의 인력은 없거든요.”

개척 행정 요원의 수는 미미했다.

개척민의 삶을 살피기에도 부족한 수준이었다.

“어렵게 생각하면 한이 없어요. 이렇게 하면 됩니다.”

“어떻게요?”

“이주민들은 이미 몇 개월 살아 봤으니 레이크 시티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파악했을 거 아니에요?”

“그렇겠죠.”

“아이디어를 제출하는 주민은 누구나 100골드를 상한으로 돈을 빌려주세요. 그 아이디어로 성공하면 좋은 것이고 실패하면, 그때는 레이크 시티에서 부여한 직업으로 열심히 땀을 흘려 갚으면 되죠. 어차피 주택부터 생활까지 모두 장기 분할로 상환해야 하는 빚이잖아요. 그리고 주민들은 달아날 수도 없어요. 어디로 가겠어요?”

루산이 피곤에 찌든 얼굴로 피식 웃었다.

“짧은 시간에 변경의 생리를 제대로 파악했군요.”

이곳의 주민들은 달아나지 못한다.

그리고 주택, 토지, 각종 생계비로 처음부터 빚을 지고 시작하는 변경에서 100골드는, 적은 돈은 아니지만, 그리 큰 액수도 아니다.

“이 정도는 해야 사람들한테 의욕이 생기고, 멋진 스토리가 만들어지죠. 그래야 신문을 통해 변경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가슴이 두근거리고 나도 한번 변경으로 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겠어요? 이런 일을 하려고 대출을 받고 슈텐달 남작님한테 거액을 빌린 거잖아요.”

루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해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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