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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83화 (83/450)

83. 밝은 빛이 되십시오

83. 밝은 빛이 되십시오

“인구가 얼마 되지도 않고 구매력도 없는 개척촌에서 보석 세공이 꿈이라거나 소설가가 꿈이라며 100골드씩 빌려 가면 어떻게 하죠?”

개척민이 내는 아이디어가 모두 개척 도시에 효과적이고 생산적일 리는 없었다.

“직업 선택의 자유를 준다는 것은 모호하고 무모한 일입니다. 심지어 대출까지 해 준다? 정확히 말하면 개척촌 건설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낭비하는 것이죠.”

개척 행정을 책임지는 아트민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사람들이 원하는 일을 하겠다고 하던 일을 관두면 레이크 시티 건설 공사에 투입되던 인력을 어디서 충당해야 합니까? 계획이 완전히 틀어지게 됩니다.”

바우엔 역시 반대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이 수립한 계획대로 인력을 투입해 오던 방식이 무너지게 되기 때문이다.

계획을 다시 짜야 하고, 인력 충원 방식도 바꿔야 한다.

루산이 말했다.

“여기 지원자들은 어쩔 수 없이 끌려온 사람들이 아니에요. 변경 땅에서 자신의 삶을 일으켜 보고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온 사람들이죠. 그리고 몇 개월 살아 봤잖아요. 무엇을 해야 성공할지, 무슨 일이 돈이 벌릴지 나름 판단을 하겠죠.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더 의욕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물론, 실패할 수도 있어요. 의지만으로 성공하는 건 아니니까.”

루산은 바우엔과 아트민에서 분명한 지시를 내렸다.

“현재 레이크 시티에서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일에 얼마의 보수를 지급하는지, 경력과 능력과 직위에 따라 보수가 얼마나 차이 나는지 모두가 볼 수 있게 표를 만들어 공개하세요. 건설 현장에 투입될 때, 벽돌 공장이나 제재소에서 일을 할 때 올릴 수 있는 소득을 분명히 알 수 있게 하라는 겁니다. 농사를 지을 때, 가축을 기를 때 올릴 수 있는 수입은 시세에 따라 변동하겠지만, 대략적으로는 알 수 있잖아요.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일로 벌어들이는 소득이 안정적이고 더 크다고 판단하면 계속 그 일을 하겠죠.”

“음!”

“그리고 창업 대출 건은 선별 방식이 아닙니다. 행정관이 아이디어를 검토하고 실현 가능성을 따져서 대출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 아니에요. 업무 부담이 크게 증가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

“아이디어만 제출하면 다 주세요.”

“네?”

“소설가를 하겠다고 하면, 보석 세공을 하겠다고 하면, 하라고 하세요. 10골드든 100골드든 원하는 대로 대출해 줍니다.”

“정말요?”

아트민과 바우엔은 믿을 수가 없었다.

“실패하면 자기 책임입니다. 이자는 늘고 갚아야 할 돈이 많아지니까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일을 더 열심히 해서 갚아 나가야 되겠죠. 어차피 여기서 달아날 방법은 없으니까.”

“으음······.”

“그 돈을 받아 사업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사후 관찰하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업이 성공하는지, 어떤 계획이 실패하는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 파악해 나가면 됩니다. 그 정보가 쌓이면 좀 더 의미 있고 생산성을 더욱 높일 수 있는 개척 방식이 만들어질 겁니다.”

바우엔과 아트민은 루산이 무엇을 원하는지 대강 파악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가 있었다.

“실패에 따른 막대한 비용, 대출 비용은 어떻게 충당합니까? 부족한 인력은 어떻게 충원하죠?”

아트민이 물었다.

“창업 대출을 비롯한 레이크 시티 건설 비용은, 정부 지원금과 본부 지원금 외에는 모두 내가 댈 겁니다.”

호른 영감처럼 사재를 털어 건설하고 향후 거둬들이겠다는 뜻이었다.

“······!”

루산이 8군단에서 가장 높은 사냥 수익을 올린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작은 개척촌이 아니라 큰 도시 개척 비용을 모두 댈 정도로 부자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루산은 적당히 둘러댔다.

“물론 내 돈은 아니에요. 레이크 시티의 가능성을 보고 큰 사업을 하시는 분이 지원해 주기로 하신 겁니다.”

“아!”

최근에 들어와 관광하고 이 일대를 둘러보던 세련된 중년 귀족 사업가인가 보다, 두 사람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인력 부족도 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 3개월 마다 300가구씩 들어올 겁니다. 각 기수별로 개척 경쟁이 벌어지는 셈이죠.”

바덴과 이야기가 끝난 부분이었다.

개척민 모집 광고를 냈을 때 도착한 지원자들의 편지 수로 판단하건대 그 정도는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본 것이다.

무엇보다 1기 경쟁이 끝나는 1년 뒤에 2기를 받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이었다.

“2기부터 각 기수는 3개월 동안 의무적으로 배정된 일을 해야 합니다. 그 기간에 레이크 시티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자신이 무슨 일을 할지 결정하는 것이죠. 물론 배정된 일이 적성에 맞다면 그대로 해도 됩니다. 이렇게 하면 건설 인력 부족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 것 같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 그럼요.”

바우엔이 놀란 표정으로 대답했다.

루산이 말한 대로 된다면 레이크 시티는 그동안 개척된 어느 도시보다 빠르게 성장할 것이고, 주민의 수도 역대급이 될 것이다.

당연히 개척 건설에 들어가는 비용도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었다.

바우엔과 아트민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비용을 다 댄다고?’

‘그 귀족 사업가가 그렇게나 부자야? 와!’

루산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얼마나 중요한 프로젝트인지 잘 아시겠죠?”

“네.”

“내가 성과 보상금에 인색한 사람은 아니니 앞으로도 레이크 시티의 건설에 최선을 다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두 사람 또한 의지를 불태웠다.

들은 대로 된다면 장차 8구역 최대 도시가 될 것 같았다.

수입도 수입이지만, 그런 도시를 건설한다는 자부심도 두 사람을 살짝 설레게 했다.

루산은 그들과 탁아 시설, 학교, 각종 편의 시설, 상업 시설 도입 문제를 논의한 뒤 장벽 건설 현장으로 가서 다시 괴수와 씨름했다.

획득 시험으로 빠진 레오파드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만, 루산이 투입된 것만으로도 파일럿들은 잠시나마 한숨 돌리고 마음 편히 잠을 잘 수 있었다.

***

슈텐달 남작이 루산을 방문했다.

좀처럼 만날 시간이 없어 직접 찾아온 것이다.

마침 사냥이 시작되어 장벽 북쪽이 소란스러웠다.

괴수의 포효, 멕 나이트의 확성기 소리, 쿵쾅거리는 울림.

3전대 파일럿과 병사들은 슈텐달 남작이 루산의 손님이라는 것을 알기에 괴수 사냥을 볼 수 있도록 장벽 위로 안내해 주었다.

개척병이 말했다.

“너무 앞쪽으로 가시면 위험하니 뒤로 물러나서 보십시오. 괴수의 피나 살점이 여기까지 튈 수도 있거든요.”

“알겠소.”

슈텐달 자작은 3전대와 괴수들 간의 싸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살아오던 인간 세상과 완전히 달랐다. 험악하고 거대한 존재들이 격렬한 싸움을 벌였다.

멕 나이트들이 다른 괴수들을 상대하는 사이, 방패를 든 멕 워커들이 괴수를 둘러싸 움직임을 봉쇄하려는데, 괴수가 꼬리를 크게 휘두르자 멕 워커 두 대가 벌러덩 넘어지고 포위망이 풀렸다.

- 야! 이 새끼들아! 똑바로 못 해? 일어나, 새끼들아!

외부 확성기로 웅웅 울리는 거친 욕설.

- 스피노가 간다! 피해!

분주히 달아나는 탐탐 정찰병들.

쿵쾅거리며 그 뒤를 쫓는 대형 괴수.

- 내가 처리할 테니 이쪽으로 달려와!

방금 괴수 하나를 쓰러뜨린, 거대한 곰처럼 생긴 멕 나이트의 말에 그쪽으로 달려가는 탐탐 정찰병.

후웅-!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바람을 가르고 대형 괴수의 정수리를 강타하는 철퇴.

쩡!

단 한 방에 두개골이 함몰되어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는 대형 괴수.

관성에 의해 앞으로 죽 밀리는 바람에 곰을 닮은 멕 나이트가 휘청거릴 것 같았으나 그 멕은 발을 들어 괴수의 대가리를 밟는 것으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묵직한 중량감과 강력한 힘!

대형 괴수의 대가리를 밟고 서 있는 오만한 자세!

그 멕 나이트는 얼른 다른 괴수를 잡기 위해 이동했지만, 그 모습은 슈텐달 남작의 뇌리에서 얼른 지워지지가 않았다.

똑같은 장면을 보던 개척병이 감탄하며 말했다.

“캬아! 전대장님이 오시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니까요!”

“그렇소?”

“그럼요! 여전히 멕 숫자는 부족하지만, 이제는 절대 뚫리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거든요.”

“그렇구려.”

잠시 후 사냥이 끝나고 멕 워커들이 채혈 바늘이 달린 호스를 잡아끌어 쓰러진 괴수의 몸통에 꽂기 시작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괴수 분해와 부산물 채취가 시작되었다.

기괴하면서도 흥분되는 장면이었다.

슈텐달 자작 역시 루산을 알기 전에는 변경이라고 하면 막연히 위험하고 더럽고 인생의 막다른 길에나 선택을 고민하는 최악의 장소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와 보니 그게 아니었다.

괴수 부산물의 가치와 기능을 루산에게 들은 뒤로 슈텐달 남작은 이 장면들에 대한 혐오감이 많이 줄어들었다.

이곳이 문명사회를 지탱하기 위해 필수적인 산업 현장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장벽 북쪽 사냥 팀은 잠깐 사이에 바깥세상 사람들이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엄청난 액수를 벌어들였다.

동원된 멕 나이트와 멕 워커들의 가격을 생각하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눈이 휘둥그레지는 액수였다.

그것을 가공하여 또 막대한 돈을 벌게 될 마법 연구소 생산 시설.

그 생산 시설에서 만들어진 연료와 윤활유로 물건을 쉬지 않고 생산하는 공장들. 그리고 사람과 화물을 대량으로 나르는 열차와 배.

문명이 작동하는 이 일련의 과정에서 루산은 첫 번째 톱니바퀴를 맡고 있었다.

그것도 굉장히 똑똑하게 자신의 역할과 가치를 높여 가면서.

가프 마법 연구소에서 연료와 윤활유 생산 시설을 이곳에 건설함으로써 8군단의 괴수 부산물 수입은, 채 완공되기도 전에 이미 몇 배나 뛰었다는 이야기를 본부 투자 유치 담당자와 대화하면서 들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사람이 바로 루산 보름스.

망한 가문을 자신의 힘으로 다시 일으키고자 변경을 선택했다는 기사.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이 정도 규모의 생산 시설을 건설하고 있다면 멕 나이트와 멕 워커 생산 단지를 건설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겠군. 뭐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니까.’

슈텐달 남작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루산이 우르사를 바이크에게 맡기고 장벽 위로 올라왔다.

개척병이 경례를 하고 일부러 멀찍이 이동해 자리를 피해 주었다.

“내가 번거롭게 했군요.”

“아닙니다, 남작님. 변경까지 오셨는데 자주 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말아요. 바쁜 걸 아는데, 뭘······.”

슈텐달 남작의 경호원도 대화를 듣지 않기 위해 멀찍이 떨어졌다.

루산과 슈텐달 남작은 장벽 위에 서서 반달 호수와 바로 앞 괴수 부산물 채취 현장을 바라보았다.

슈텐달 남작이 넌지시 물었다.

“사건은 어느 정도나 파악이 되었소?”

사기 사건의 진정한 배후와 목적을 묻는 것이다.

“아직까지 조심스럽게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더 있는지 알아보고 있고, 정부 쪽 관련자들의 규모와 범위에 대해서도 파악해 나가고 있답니다. 그리고 남방군 파일럿의 이동에 대해서도 알아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쪽도 쉽지 않습니다. 조사 권한이 없고 상대가 너무 막강하니까요.

“음!”

상대가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대강 짐작하기 때문에 슈텐달 남작도 무거운 신음을 흘렸다.

오베론 공작 쪽이든, 황제 쪽이든, 아니면 제3의 세력이든, 정부 인사와 은행과 마법 연구소와 남방군을 이용할 정도라면 보통 강한 것이 아니다.

섣불리 수사 기관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그들이 어디까지 손을 뻗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그들이 크게 소란을 일으키려 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합법을 가장하여 활동하기 때문에 당장 생명의 위협을 가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점이지만, 그것도 모르는 일이었다.

핵심에 다가간다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목적을 알아야 대상을 좁힐 수 있을 텐데······.”

“그러니까요.”

답답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온 것도 기적이라면 기적.

“그때 이후로 남작님께 다시 접근하거나 위해를 가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여전히 노출을 꺼리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시간이 있는 것이죠.”

“무슨 시간 말이오? 놈들을 알아낼 시간?”

루산이 고개를 저었다.

“강해질 시간 말입니다. 적을 파악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강해질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재력과 사회적 영향력과 경호 수준을 최대한 끌어올려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수준으로 올라서면 됩니다. 우리를 치겠다고 멕 나이트 같은 것을 동원하지는 못할 테니까요.”

“음.”

“밝은 빛이 되십시오. 사업과 관련해서는 앞으로도 미스 고슬라가 도움을 드릴 겁니다. 사건과 관련해서는 스텐커 씨가 연락을 드릴 테고요. 남작님이 빛이 되어 저들의 주목을 끄는 동안 저는 어둠이 되어 없는 사람처럼 지내겠습니다. 그래야 중요한 순간, 저들을 칠 수 있을 테니까요. 앞으로는 직접 만나는 일을 자제하고 연락도 조심스럽게 여러 사람을 거쳐 하도록 하지요.”

“···무슨 말인지 알겠소.”

루산의 말을 충분히 이해했기 때문에 슈텐달 남작은 차마 딸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애초에 딸의 의사를 먼저 묻고 나서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어쨌든 아쉬웠다.

그러나 루산의 정체를 노출시키는 것은, 여전히 저들의 정체와 목적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너무나 큰 패를 보여 주는 셈이기 때문에 최대한 숨기는 것이 옳았다.

“내가 코부스 지방이나 변경 8구역에 투자하는 것은 상관없겠소?”

“상관없을 겁니다. 사업가가 사업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저들이 변경에까지 관심을 둘 정도로 한가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다만 변경으로 자주 오시는 것은 의심을 사거나 미행이 붙을 수 있으니 앞으로는 직접 움직이시는 것보다 직원을 시키는 것이 나을 겁니다.”

“알겠소.”

슈텐달 남작은 사업 이야기를 더 나누다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변경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라돔 시로 떠났다.

루산이 탐탐을 타고 그들과 동행했다.

호위도 하고 본부에서 일도 볼 겸 함께한 것이다.

슈텐달 남작은 변경 8구역 본부와 광산 개발 협약을 체결했다.

광산 개발자를 투입하여 철광과 탄광을 찾는 일은 8구역 본부가 맡고 그에 소요되는 모든 비용은 슈텐달 남작이 대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각종 세제 혜택과 도로 건설을 약속받았다.

광산 개발이 본격화되면 주민들에게 일자리가 생기고 일대가 크게 번성하기 때문에 8구역으로서는 바람직한 일이었다.

투자 협약 체결을 마치고 슈텐달 남작과 바덴 일행은 마나 열차에 올랐다.

열차가 라돔 시를 떠나는데 슈텐달 남작의 딸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 나이에 스스로의 힘으로 그토록 대단한 일들을 해내고 그 많은 권한을 갖다니,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네요.”

“음? 갑자기 무슨 말이냐?”

“아버지가 그 사람을 보여 주려고 저를 여기까지 데려오신 게 아니었나요?”

“······!”

슈텐달 남작의 딸, 로제는 전후 맥락과 눈치로 이미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능력이 대단하다 해도 사람의 됨됨이도 모르는 상태에서 사랑도 없이 이토록 멀리 떨어진 변경에서 살 자신은 없어요, 아버지.”

딸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슈텐달 남작은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마라.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

“네?”

“우리 사이에 직접적인 접촉은 피하는 게 낫겠다고 하더구나.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 말을 들은 로제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차인 것 같다는 느낌에 갑자기 마음이 복잡해진 것이다.

자신을 염두에 두고 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하면서도, 그 말을 듣자마자 ‘네가 뭔데?’라는 생각이 불쑥 치솟았다.

생각할수록 분했다.

그때 맞은편에 앉아 책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 부녀의 대화를 안 듣는 척 듣고 있던 바덴은 슈텐달 남작의 말에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한편 열차가 떠난 뒤 루산은 본부로 들어갔다.

1전대와 3전대 간 어깨치기로 인해 멕 나이트 9대가 파손된 사건.

이에 대한 본부의 공식 결정을 듣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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